벌써 3주째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공부했는데
정작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파게티를 못 얻어먹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바야흐로 <도시와 하늘 2> 베르셰바에도 등장하는 그 스파게티를 맛보았네요.
지난 주에 요르님이 잘 정리해준대로
베르셰바는 천상의 도시와 지하의 도시 두 세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배설할 때만 자유로운 그 도시는 별똥별로 표현되기도 한다고 말예요.
지하의 베르셰바의 쓰레기통 안엔 치즈껍질이며, 기름에 전 종이 생선 비늘, 구정물, 스파게티 찌꺼기, 낡은 붕대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했지요.
쓰레기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바이올린 소나타 선율을 떠올리며
스파게티를 냠냠 먹었답니다.

닭가슴살이 올려진 스파게티가 꽤나 먹음직스러운데두
아무도 맛있단 말을 안하던데
우리반 반장님이 감기에 걸린 것으로 미루어
아마 입맛이 변해 간을 잘 못 맞춘 게 아닌가 싶어요.
구색을 갖추느라 피클도 장만했더라구요.
아, 피클이 아니라 장아찌로군요.
그런데 스파게티를 먹다보니 칼비노의 또다른 작품 『코스모코미케』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공부한 그 작품엔 또 어마어마한 과학과 무시무시한 해학이 담겨 있는데
<모든 것이 한 지점에>란 이야기 속에 '칼국수'가 나오거든요.

우주 기원이 시작된 '빅뱅'은 대략 150억년에서 200억년 전에 일어났다고 보고
모든 물질이 우주 공간으로 팽창하기 전엔 단 하나의 점으로 응축된 시간이 있었다는 거지요.
그 시간에 크프우프크도, 프레르t 프레르d 도, 프(이)느크0부인과 그녀의 짝꿍 데 크수오수크도, 이민자들인
즈'주 가족과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모두 한 지점에 있었답니다.
도대체 몇명이나 있었나고요?
글쎄 당최 무언가 헤아려보려면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모두 동일한 한 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니까요.
천박하고 협소한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은 프(이)느크0 부인을 누구나 다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부인이 말했답니다.
"얘들아, 조금만 더 공간이 있다면, 너희들에게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어 줄텐데!"
그 순간 그들은 모두 공간을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얇은 밀가루 반죽 위에서 밀방망이를 앞뒤로 움직이는 그녀의 동그란 팔이 차지할 공간,
팔꿈치까지 하얀 밀가루와 기름에 뒤덮인 그녀의 두 팔이 반죽을 하는 동안 널따란 도마 위에 수북이 쌀인 밀가루와 달걀 더미 위로 출렁이는 그녀의 가슴이 차지할 공간을 생각했지요.
우리는 밀가루와 밀가루를 만들 밀, 밀을 경작할 밭, 밭에 필요한 물을 흘러내리게 할 산,
그리고 국물용 쇠고기를 제공해 줄 소 떼들을 위한 목초지가 차지할 공간을,
곡식들이 익도록 태양이 햇살을 비출 공간을,
천체의 가스 성운과 모든 태양과 모든 행성들이 떠다닐 우주 공간 속으로 달아나는 은하계들의 덩어리와 별들과 은하계들의 숫자를 생각했습니다.' (우주 만화 193쪽)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바로 그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우주 공간이 형성되었다는군요.
프(이)느크0 부인이 "...칼국수, 그래 얘들아!" 하는 순간에 말이죠.
그렇다면 오늘날 우주에 사는 우리 존재는 모두 칼국수에게 신세를 진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칼국수란 말이 너무 어색하지 않나요?
이탈리아에 칼국수가 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스파게티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죠.
원문을 찾아보았더니
Tagliatelle (탈리아텔레) 이로군요.

생김새를 보니 왜 칼국수란 말로 번역한 줄 아시겠지요?
파스타 중에 넓쩍한 걸 그리 부르나봐요.
담엔 탈리아텔레 파스타를 먹어봐야 겠어요.
이탈리아 사람들의 3대 모토는 만자레, 칸타레, 아모레(Mangiare, Cantare, Amore)라고 하지요?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자 말예요.

사랑의 느낌이 가득한 꽃을 전할게요.
우린 다음주에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와 함께
모두 만나요.
오늘 처음 오신 지승현군 환영하고요
결석하신 승희경감님 내내 기다릴게요.
첫댓글 반장님이 해주신 스파게티 너무 맛있었어요.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감사 인사를 못 드렸네요. ㅠㅠ
요르님이 맛있다면 믿을게요.
담주엔 크림 탈리아텔레에 도전해 볼까요?
어제밤에 들어와 보니 사진이 하나도 없길래
아무 것도 안 드신줄 알았습니다.(못드신 줄)
그림자님은 장난도 잘 치시는군요.
스파게티는 정말 먹음직스럽습니다.
부럽습니다.
어머나.
오랑캐님.
글쎄 저도 오늘 보니
사진이 싹 달아나버렸더라고요.
저의 장난이 아니라 카페 속에 요정이 숨어서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항상 관심을 가져주시는 오랑캐님 반갑습니다.
공간이 항상 문제이군요.
로체는 좋은 문학이란 무엇, 왜, 그렇다면, 어디서 라는 4가지 요소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 요소인 어디서란 바로 공간적인 개념이라고 하며
문학이 어떤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때 Topophillia라고 하더군요.
아뭏든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로체는 또 누구예요?
옥산님보다 인지도가 낮은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건 사양할래요.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맛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