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감상 (7)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작가소개 및 작품 감상
본명은 정식(廷湜)이고 소월(素月)은 그의 아호이다. 평안북도 정주(定州)가 본가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철도를 설치하던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이 되자 할아버지가 그를 돌보았다.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숙모에게 <심청전>, <장화홍련전>등의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1915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였으나 3·1운동 직후 오산학교가 잠시 문을 닫게 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만식(曺晩植:1883-1950)이 교장, 김억(金億:1896-?)이 교사로 있었는데, 김억에게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3년 도쿄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에 입학했으나,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돕다가 1924년 <진달래 꽃>의 무대인 영변(寧邊)을 잠깐 다녀왔다. 김동인(金東仁:1900-1951) 등과 <영대(靈臺)>의 동인(同人)으로 활동했으며, 나도향(羅稻香:1902-1926)과 친하게 지냈다. 광산 일에 실패하여 땅을 팔아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했으나 다시 실패했다. 그 뒤로 생활이 어려워져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염세주의에 빠져 술만 마시다가, 1934년 32세 때, 음독(飮毒)으로 타계했다.
1920년 2월 『창조』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나 본격적인 창작활동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한 뒤부터이며, 주로 <개벽>, <영대>를 무대로 활약을 했다. 이를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22년에는 시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밤 제물포에서>, <새벽>, <진달래꽃>, <개여울>, <강촌>, <먼 후일>, <님과 벗> 등과 소설 <함박눈> 등을, 1923년에는 시 <님의 노래>, <옛이야기>, <못 잊도록 생각이 나겠지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이 발표되었다.
1924년에는 시 <밭고랑 위에서>, <생과 사>, <나무리벌 노래>, <이요(俚謠)> 등을, 1925년에는 시 <옷과 밥과 자유>, <남의 나라 땅>, <천리만리>, <꽃촉불 켜는 밤>, <옛 님을 따라가다가 꿈 깨어 탄식함이라>, <물마름> 등을, 1934년에는 시 <생과 돈과 사>, <제이·엠·에쓰(조만식)>, <돈타령>, <고락( 苦樂)>, <삼수갑산> 등을 발표했고, 그가 죽고 난 뒤인 1939년 『여성(女性)』에 시 <박넝쿨타령>(6월호), <술>(7월호), <술과 밥>(11월호) 등이 발표되었다.
그는 전해오는 설화(說話)에서도 시적 소재(素材)를 찾았는데, <초혼(招魂)>, <물마름>, <돈타령>, <박넝쿨 타령> 등이 그러한 작품이다. 이와 같이 그는 민요가 갖고 있는 향토적 소재, 설화적 내용, 민중적 정감, 방언을 직접 서술하거나 반복하는 등의 수법으로 기다림의 정서, 낭만적인 비극적 정서를 잘 보여주었다. 또 그는 지명(地名)에 대한 애착도 퍽 강해서 그의 작품에는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사후(死後), 김억이 엮은 유고집(遺稿集)으로 『소월시초(素月詩抄:1939)』가 나왔다. 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1981)되었으며 1968년 3월 한국일보사에서 서울의 남산에 그의 시비(詩碑)를 세웠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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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로 또 가곡으로 너무 잘 알려진 <엄마야 누나야>는 단 네 행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시이다. 그러나 짧은 시에 담긴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전원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친숙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강변'에 대한 아릿한 그리움을 먼저 느낀다. 시의 화자는 마음의 평화와 안식처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마르지 않는 시심(詩心)의 원천(源泉)으로서의 강변(江邊), 그 마알갛고 고운 물가를 일깨워 준다.
그렇다면, '강변'이란 어떤 곳인가? 그것은 아마도 평범하고 습관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일상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일상성(日常性)이 소멸(消滅)된 시공간(時空間)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일상성을 뛰어넘는 세계로의 동경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일상어(日常語)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래서인지 소월은 굳이 해맑은 어린이의 말투를 빌려 쓰고 있다.
"강변"은 여기에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현실이 닿지 못하는 다소 현실과는 분리된 이상화(理想化)된 공간이다. 시속의 화자는 다시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돌아가 현실이 아닌 '강변'으로 대표 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어 한다.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은 편안한 '모성(母性)'에 기대고 싶은 "나" 의 마음을 의미 한다.
그가 꿈꾸는 세계에는 인간세계의 혼탁함이나 갈등 같은 것은 없다. 아름답고 전원적인 작은 세계에서 어린이로 돌아가 가정이라는 둥지를 틀고 편안한 휴식처럼 사는 것이 그가 이 시에서 꿈꾸는 세계다. 세 사람이 함께 살 이 공간은 자연이 아름답고 세계의 모든 존재가 나에게 우호적인, 동화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강변의 모래를 뜰로 삼고, 집 뒤에는 갈대가 흔들리며 노랫소리를 내는 그런 곳 이다.
또한 이곳은 마음의 안식처다. 부유한 살림살이나 멋있는 집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집이 없어도 '모래밭을 뜰로,' '갈대 밖을 뒷문 밖'으로 삼아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수 있다면 그 곳이 바로 '평화로운 안식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네 줄의 짧은 시 속에 담긴 소월의 염원은 바로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다.
강변으로 비유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머님, 누님"이 아니라, "엄마야 누나야"라는 어린아이가 사용하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순수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강변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처소(處所)로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를 의미할 수도 있고 또한 당시의 현실상황을 고려할 때, 일제의 압제(壓制)와 고통(苦痛)과 어려운 현실을 벗어난 어떤 이상향을 의미할 수 도 있다
.
그러나 다른 한편, 금빛 모래가 반짝이고 갈잎의 노래가 들려오는 그곳은 너무 이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그곳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러운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첫댓글 지기님!!~
감사합니다~아주!~
청산선생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