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혁명 동지와의 만남 ③
혼란스러운 세상에 스님이 남기고 간 글씨 三君之緣(삼군지연).
오늘의 혼례를 두고 말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해석이 안 됐고, 알 수 없는 문장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삼군지연이라? 우리 딸의 지아비가 셋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사위가 세 명의 임금을 모시게 된다는 뜻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딸이 세명의 왕자를 둔다는 뜻인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문맥이었다. 아무리 뜯어봐도 해석할 수 없었다. 학문에 일가견이 있다는 민제다. 해자(解字)로 풀어 봐도 답이 안 나왔다.
조금 전에 하륜이 남기고 간 말도 머리가 아픈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모두가 끔찍한 상상만 스치고 지나갔다.
골치가 지끈거리고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얘 장쇄야? 너에게 글씨를 전해준 그 스님이 아직도 마당에 있느냐?"
"아닌뎁쇼, 벌써 떠났는뎁쇼?"
"냉큼 나가 그 스님을 찾아서 모시고 오너라"
민대감의 하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쇄가 대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장기판에 왕 장기알이 왕기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흥청거리던 대감댁 잔치도 끝날 시간이 되었다.
마당 한쪽에서 신나게 연희를 펼치던 놀이패들도 놀이를 접고 멍석에 앉았다.
지나가던 객도 한 상 거하게 차려주는 것이 잔치집 인심이다. 수고한 놀이패들에게 고기도 그득그득, 전도 층층이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나왔다.
떠들며 먹느라고 소란스럽다.
"이러한 잔치가 날이면 날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아니래, 우리 같은 길놀이 천민들에겐 오늘 같은 날이 생일날인데.“
"내일은 어디로 가지?"
"아흐레 날 해주 나갈 때 까정 배창자가 고로울꺼다.
오늘 배터지게 먹어둬라?“
"건 그렇고 이 집 대감 나으리의 심기가 안 좋아 보이던데 놀이 값이나 제대로 줄려나?"
"우리 놀이가 신통찮아서 그런 건 아닌데 설마 그럴려고.“
"이렇게 즐거운 날 대감 나으리는 왜 그러지?"
"조금 아까 내가 엿들었는데 왕긴가 뭔가 그 소리 들은 후부터 그러던데 도대체 왕기가 뭐드래여?“
"자석아, 그것도 모르냐? 장기판에 왕장기 알이 왕기지."
"무식이 유식하기는…, 왕장기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왕 건더기나 처먹어라."
먹고 마시고 킬킬거리며 웃음판이 질펀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은 마당에 시무룩한 모습으로 돌아온 장쇄가 민제에게 고했다.
"벌써 서문 밖으로 사라졌는뎁쇼.“
"그래 어디서 온 스님이라는 소리는 들었느냐?"
"묘향산에 있는 스님인데 귀산사에 잠깐 들려 벽란도에서 나룻배를 타고 떠났다 하옵니다."
"묘향산에 묘한 스님이라, 정말 묘한 일이로구나.“
"중놈이 술 내오라고 호통이더니만 호리병에 술이 그대로랍니다."
"으음, 괴이한 스님이로구나."
곡차를 내오라고 호통을 친 것은 구실일 뿐,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민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심이 태산 같았다.
가슴이 뻐근하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배웠거늘 내가 분에 넘치게 장군의 아들을 탐 낸 것이 아닌가?
과유불급이 화근이라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민제의 입술이 파리하게 떨렸다.
관상의 대가 하륜은 관상을 보았지만 스님은 세상을 읽었다. 하륜은 신랑 이방원의 관상을 보았지만 스님은 신부 민제의 딸을 보았다. 그리고 세상을 읽어냈다.
꼬마신랑의 첫날밤은 깊어 갔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신랑신부는 신방으로 들어갔다. 꼬마신랑과 두 살 위 연상의 신부가 맞이하는 첫날밤이다.
가슴이 설레는 것은 신부지만 신랑이 오히려 떨고 있다. 꼬마신랑이기 때문이다.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신부를 살짝 보았다. 장난기다. 색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예쁘다. 그리고 밤은 깊어갔다.
이렇게 혼례를 치른 꼬마신랑이 훗날 조선 3대왕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이다.
신부는 만인이 추앙하는 세종대왕을 낳은 원경왕후 민씨다.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태종 이방원은 평생 혁명동지이며 아내인 민씨(훗날 원경왕후)를 이렇게 만났다.
당시 개경에는 권문세족으로 자리 잡은 다섯 가문의 토호세력이 있었다.
왕(王)씨, 전(田)씨, 강(康)씨, 고(高)씨, 김(金)씨다.
이들은 서로 통혼하며 세력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신흥세력으로 부상한 것이 민(閔)씨와 이(李)씨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는 형국이다.
오늘의 혼인은 민씨 가문이 장군의 아들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나 그 내면에는 강씨의 입김이 스며있었다.
동북면에서 여진족을 무찌르고 남해안에 상륙한 왜구를 토벌하며 남과 북 전선을 떠도는 이성계는 부인 한씨를 개경에 두고 제2부인 강씨를 데리고 다녔다. 오늘 혼례를 올린 아들 이방원보다 고작 11살 더 먹은 젊은 색시였다.
장군 이성계가 좋아 살육이 춤추는 전쟁터를 따라다니는 여자이지만 실은 개경의 권문세족 강씨 집안의 딸이다.
판도사판서(版圖司判書)를 역임한 윤성의 딸로서 세련된 자태와 사교력을 갖춘 미모의 여인이었다.
여자답지 않게 야망도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있던 야망을 이성계의 가슴에 이식시켜준 여인이 제2부인 강씨다. 단순한 군인에 불과했던 이성계를 중앙정치무대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게 해준 여인이다.
오늘의 혼인도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강씨가 훗날 왕자의 난 때, 대척점에 서게 된 방석이를 낳던 해에 이방원은 장가를 간 것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