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온전한 합일에서 비롯되는 행복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에 합하면서 살아간 많은 성인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천국을 맛보면서 살아갔다. 도로테오 성인은 말한다. "성인들은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직접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으므로 늘 영혼을 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파치(Pazzi)의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합하는 생활을 했던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만들어도 즉시 황홀경에 들어 갔다고 한다. 세상살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우리의 감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러한 파문은 영혼의 표면만을 건드릴 뿐 우리늬 뜻이 하느님의 뜻과 합해 있는 한, 영혼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평온과 평화에는 주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요한 16, 22)이며 "너희 기쁨이 충만해 질 것이다."(요한 16,24) 하느님의 뜻에 합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은 충만하고 영원한 기븜을 맛본다. 충만한 기쁨은 그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는 데서 오는 기쁨이고 영원한 기쁨은 아무도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하는데서 오는 기쁨이다. 신심 깊은 요한 타울러 신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는 오랫동안 하느님께 자신의 영성생활에 참으로 깊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보내 주십사고 기도했다. "내가 일러주는 교회를 찾아가라. 그러면 너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신부는 음성이 시키는 대로 그 교회를 찾아갔는데, 그 교회 문턱에 맨발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거지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신부는 교회에 들어가면서 "내 친구여, 안녕하신가?" 하고 인사를 건냈다. 그랬더니 거지가 말했다. "아, 신부님, 안녕하냐고 저에게 물으시닌 감사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오늘날까지 안녕해 보지 못한 날이 하루도 없었는 걸요." "아, 그래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굉장한 행복을 주신 것이 틀림없구려." "예, 신부님. 그렇고 말고요. 저는 신부님 말씀대로 한 번도 불행해 본 일이 없는 행복한 사나이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허풍을 떤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이것은 진정이니까요. 왜 그런지 말씀드릴까요? 나는 먹을 것이 없으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요.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그런 대로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요, 때로는 저를 마구 쫓아 내는 사람도 있지요. 얻어먹는다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지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하루도 불행한 날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정말 그래요. 저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드리는 데에 익숙해 있거든요.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어요. 좋은 일이건 궃은 일이건 달게 받는 답니다. 하느님이 제게 가장 좋고 이익이 되는 것을 손수 저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왜 불행하겠습니까?" 하! 그래요? 도대체 당신은 그런 하느님을 어디서 찾았던가요?" "예, 저는 세상의 피조물을 떠난 곳에서 하느님을 발견했어요." "굉장한 발견이로군! 그럼 한가지 더 물어 봅시다. 당신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시오?" "저는 왕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왕국은 어디 있단 말이오?" "그야 내 영혼 안에 내 왕국이 있지요. 내 왕국에는 모든 질서가 뚜렸하지요. 거기에는감정이 지성에게 복종하고, 지성은 하느님께 복종하는 질서가 엄연합니다." "아, 그것은 큰 덕행이구먼! 그런데 그런 덕행을 어덯게 얻었던가요?" 침묵이지요. 저는 하느님께는 별의별 말을 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침묵을 지키는 습관을 몸에 익혔습니다. 하느님과 대화함으로써 내 영혼은 평화를 발견하고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하느님의 뜻에 합한다는 행위로 이 거지는 이런 높은 수준의 성덕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비록 가난하지만 이 세상의 가장 돈 많은 왕족들보다 더 풍요로웠으며, 얻어먹는다는 어려움 속에서도 이 세상의 어떠한 즐거움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