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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 (탈출 34,5)
╂ 오늘의 복음 Re: 2023년 6월 4일 주일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제1독서ㅣ 하느님 숨 = 나의 숨 = 모든 이의 숨ㅣ무화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6.05 00:16
★벌거벗은지금 1부 발음되지 않는 이름
지혜(무비) 17.09.29 10:14
유다인들이 부르는 하느님 이름에는 실로 놀라운 계시가 담겨있다.
거기엔 우리 영성의 본질과,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숱한 우상숭배와 터무니없는 교만에서 우리를 해방해 줄 심오한 가르침이 있다.
지금 우리가 발음하는 대로 하면 하느님 이름은 '야훼(Yahweh)'다.
히브리어로는 신성한 자음 YHWH(요드,헤,와우,헤)다. 유다인들에게 그것은 발음이 불가능한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계명에 이른 대로(탈출 20,7) 처음부터 '헛된' 짓이었다.
대신에 그들은 '엘로힘'또는 '아도나이'로 말하고 기록했다.
하느님 쪽에서 볼 때 당신의 정체는 신비스럽고, 인간이 머리로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당신 이름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모세가 얻은 답은
"나는 있는 나다.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탈출 3,14-15)였다.
이 발음 불가능한 이름에 담긴 깊은 뜻을 이제 우리는 짐작하게 되었다.
본디 그것은 입술과 혀로 발음되는 이름이 아니라 <코로 '숨 쉬어지는(breathed)' 이름>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신성한 자음의 정확한 발음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를 그대로 시늉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매 순간 하는 일이 하느님 이름을 부르는 것> 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었고,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 그분 이름을 부르는 것> 이라는 얘기다!
호흡에는 유다교식, 이슬람교식, 그리스도교식 호흡이 없다. 아메리카 호흡, 아프리카 호흡, 아시아 호흡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가난뱅이 호흡도 없고 부자 호흡도 없다.
실로 놀이마당은 지극히 공평하다! 지구의 공기는 하나고, 아디에서나 같은 공기다.
하느님의 바람은 어디든지 "불고 싶은 데로"(요한 3,8) 부는데, 가지 않는 곳이 없고 따로 가는 곳이 없다.
어느 인간도, 어느 종교도, 이 '영'을 통제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느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고 있는 호흡처럼, 가까이 있고 가까이 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기도의 스승들은 늘 말해왔다. "네 숨과 함께 있으면서 숨에 마음을 모아라."
그 숨은 <하느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창세2,7) 바로 그 숨>이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으로 거둔 (요한19,30) 바로 그 숨>이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을 향하여 평화와 용서와 성령으로 내쉬신 바로 그 숨(20,22-23)>이다.
그 숨, 바람, 영이 정확하게 '없는 것(nothing)'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everything)'이라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
< 주의 깊게 마음 모으고 숨을 쉬어보라.
당신은 동굴의 원시인에서 도시의 현대인까지, 동물들에서 식물들까지,
모든 인간과 살아있는 것들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과학자들도 우리에게 말해준다.
지금 우리 코를 드나드는 원자 알맹이들은 물리적으로 빅뱅에서 발생한 바로 그 원자 알맹이라고.
'하나임'은 더이상 신비주의적 관념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 ]
{ 천 20-52 (1927년 1월 25일)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이는 전부이신 분을 호흡한다.
4 “딸아,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호흡한다.
호흡에 들숨과 날숨이 있는 것처럼, 그리하여 숨을 들이쉬는 사람은 이어서 또 내쉬는 것처럼,
<‘모든 것’, 곧 하느님을 들이쉰 사람은 숨을 내쉴 때 그가 들이쉰 그 ‘모든 것’을 내준다.>
5 그러니 그는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모든 것’을 내놓는다.>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드림으로써 하느님을 하느님에게 드리고, '모든 것'을 피조물에게도 준다.>
그런 다음 다시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들이마신다.
<‘모든 것’을 받아 가지는 사람은 당연히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오로지 하느님의 뜻 안에서만 '지고하신 존재의 생명'이 피조물에게도 끊임없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
8 ‘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린다. 심지어 하느님 자신도 하느님께 드린다.
그분 뜻 안에서 살고 있으니 하느님이 내 소유요, 하늘이 내 것이며, 태양이, 이 ‘지고하신 피앗’이 행하신 모든 것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다.’ }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6.05 00:21
╋ 내맡김 기도문 < 숨 한 번 들이쉬며 >
조안젤라 9.12.17 17:27
< 숨 한 번 들이쉬며 > moowee
생명의 친구인 공기야, 정말 고맙구나.
내가 너를 통하여 이렇게 숨 쉬고 움직이며 늘 기쁘게 주님을 찬미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너 없이 단 몇 분도 살아갈 수 없구나.
특히, 내게 생명을 주신 분께서 너를 거두어 가신다면 나는 그저 그것으로 그만일뿐이란다.
+ 성호경
(성호를 긋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른 다음)
이제 곧 너는 내 폐 속으로 들어와 혈액을 타고 나의 온 구석을 고루 다니며 나의 지친 세포들과 근육과 장기들에게 커다란 생기를 불어 넣겠지.
그리하여 내 몸은 더욱 활력을 얻고 나는 더욱 열심히 주님을 찬미하며 더욱 기쁘게 나의 삶을 살아가겠지.
이제 나도 너를 본 받아 다른 지친 영혼들에게 주님의 참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서 오늘을 성실히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해 본단다.
내가 나중에 대자연의 푸르름을 바라보면서, 나의 식탁에 올려진 땅과 바다의 죽어진 생명들을 바라보면서
너의 고마움을 기억할 때까지부디 많은 수고를 부탁하며 지금 우리 함께 우리를 내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자꾸나.
( 공기는 하느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숨만 잘 쉬어도 병이 치유됩니다. )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6.05 01:27
인간의 입으로 발음되지 않는 이름, 결코 발음해서도 안 되는 이름,
신성한 자음 YHWH(요드,헤,와우,헤), '야훼(Yahweh)'를 알려 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야 그 이유를 이곳에서 찾았습니다, 아니 당신을 믿고 따른다는 많은 신앙인들로부터 말입니다!
이곳에서조차 정말 적지 않아왔습니다~ ㅠㅠ
< 입으로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한다. >, <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겼다. >, <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 무소유를 외치는 이들조차 사실은 그렇지 못함을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하신 이유를 말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탈출 20,7)"
사랑하는 아버지, 이곳의 모든 이들이 입으로만, 머리로만, 댓글로만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찾고 부르지 않았으면 참으로 정말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곳의 모든 이들을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맡겨드립니다, 당신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이 세상에 크게 드러나고 빛나도록 말입니다!
╂ 오늘의 복음 Re: Re: 2023년 6월 4일 주일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제1독서ㅣ 경계는 없다?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6.05 00:54
[ < 주의 깊게 마음 모으고 숨을 쉬어보라.
당신은 동굴의 원시인에서 도시의 현대인까지, 동물들에서 식물들까지,
모든 인간과 살아있는 것들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과학자들도 우리에게 말해준다.
지금 우리 코를 드나드는 원자 알맹이들은 물리적으로 빅뱅에서 발생한 바로 그 원자 알맹이라고.
'하나임'은 더이상 신비주의적 관념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
- 리처드 로어(벌거 벗은 지금) -
└ 【 ╂ 오늘의 복음 Re: Re: 2023년 4월 28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ㅣ 경계는 없다?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4.28 12:41
경계는 없다!!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뀝니다. (feat. 아보가드로수) 10:30
https://youtu.be/fik69QWCvxE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4.28 16:33
╋ 내맡김 기도문 <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 내맡김 기도문 < 숨 한 번 들이쉬며 >
* * *
[ (1:59~2:24)
경계라는 건 무엇일까요?
먼곳에서 지구를 보면,
하늘과 땅의 경계는 마치 칼로 잘라 놓은 듯 명확하며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원형의 행성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넘실대고 육지에는 평원 사이로 뾰족한 산맥들이 모습을 드러내죠.
구슬처럼 매끄러워 보이던 지구의 부드러운 표면은 온데간데 없고
거칠고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표면이 지구를 덮고 있죠 ]
마.목.정 < 그냥 한 번 말해 봤소 22 > moowee(山을 私有化 해서야?)
moowee 10.08.02 08:49
아주 흰 백색의 만년설과 파란하늘의 히말라야의 산을 TV에서 그냥 지켜만 보아도 우리의 마음이 신성해 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왜 그 나라의 사람들이 너무도 종교적일까요?
성경에서 하느님은 왜 모세를 시나이 산으로 부르셨을까요? 엘리야가 왜 갈멜산에서 살았을까요? 그리스의 아토스 산에 왜 그 많은 수도원이 세워졌을까요?
山, 山, 山!
山은 인간의 때가 적은 거룩함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담겨 있는 "山"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한 산을 교회법에 의한 "屬地主義"를 적용하여 신자들의 거룩한 신심행위를 제한해 버린다면 그것은 산의 "私有化"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교구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 입니까?
지리산은 광주대교구와 마산교구의 관할지역인데 지리산을 등산한다면
등산코스에 의해 국가 행정구역상 전라도와 경상도 땅을 이리저리 밟고 지나가게 됩니다.
다른 말로 광주대교구의 땅과 마산교구의 땅을 번갈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넓은 지리산 깊은 산 속 곳곳에까지 교구에서 다 관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산은 그렇다고 치고,
그러면 <바다와 하늘에까지 "속지법"이 적용되는지> 저는 무척 궁굼합니다.
아픈 신부가 영육을 고치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들어와 살다가 영육을 고쳐서 그 경험을 다른 영혼들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속지법이 필요한 것인지요?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다른 영혼들에게 알려서 그 체험을 전해 받은 영혼은 또 다른 영혼에게 하느님을 전해 주는데 그것이 그리도 크게 문제가 되는지요?
제가 약 5년을 지리산에서 살아왔지만 산 속은 그 지역 본당신부의 활동에 한계가 있음을 눈여겨 보아 왔습니다.
산 속은 속지법을 적용시킬 수 없는 지역임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본당신부의 발걸음이 지리산의 어느 곳까지 미칠 수 있겠습니까.
지도를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보시면 내 지역이 눈에 잘 들어 와도 산 속으로 들어오시게 되면 숲만 보입니다.
하늘도 잘 안 보입니다.
제가 서울교구 소속의 사제이지만 저를 찾는 아픈 이들의 발걸음을 그냥 돌리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픈 영혼들은 예수님의 길 잃은 어린양입니다.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양을 찾아드리고자 사제가 된 사람이 그 먼데서까지 저를 찾아오시는 어린양들을 제가 외면해 버린다면,
그 어린양을 위해 "희생양"이 되신 "하느님의 어린양"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눈물은 아픈 이들의 눈물과 똑같은 눈물입니다. 하느님이 지금 눈물을 흘리십니다.
ㅠㅠ(성부) ㅠㅠ(성자) ㅠㅠ(성령) 어엉 어엉 엉엉엉~~~ ] 】
* * *
╂ 오늘의 복음 Re: Re: Re: 2023년 6월 4일 주일 <지극히 삼위일거룩하신체 대축일>제1독서ㅣ 경계는 없다?ㅣ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물이요
위무위.보조.지도사제 23.06.06 00:11
그대로되었다.보조 23.06.05 20:51
<경계는 없다!!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뀝니다.> (feat. 아보가드로수)
[ 익히 아시다시피 이 세계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로 구분됩니다.
거시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 즉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있는 세계를 의미하며, 미시세계는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없는 아주 아주 작은 소립자들의 세계를 의미하죠.
이렇게 두 개의 세계로 나눠져 있는 이유는 단순히 크고 작고의 차이를 떠나 두 세계에 적용되는 물리법칙의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시세계의 고전역학은 미시세계에서 통하지 않고 미시세계의 양자역학은 거시세계에서 통하지 않죠.
그럼 미시세계의 물질이 얼마나 많이 모여야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거시세계로 나올 수 있을까요?
물론 측정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명확하게는 알 수 없겠으나 우리는 어느 한 특별한 숫자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보가드로수'입니다.
주로 화학에서 쓰이는 단위인 몰(mol)은 어떤 물질이 그 화학질량만큼의 그램(g)질량을 갖게 되는 입자의 수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원자량이 1인 수소는 1g이 되기 위해 1몰에 해당하는 원자가 필요하고 원자량이 12인 탄소도 12g이 되기 위해 탄소 원자가 1몰 만큼이 필요하죠.
그리고 이런 1몰에 해당하는 입자의 개수를 아보가드로수라고 부르는데,
이는 6.02214076*10²³으로 대략 6뒤에 0이 23개나 붙는 수로 억,조,경 다음에 오는 해(垓) 단위까지 가서도 6,000을 곱해야 하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엄청나게 큰 수입니다.
무려 이 정도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한데 모여야만 미시세계를 벗어나 거시세계로 들어서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물질이 된다는 말입니다.
아보가드로수는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큰 숫자이지만 동시에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을 통째로 바꿔버리게 만드는 마법같은 수이기도 합니다.
아보가드로수는 단순히 자연법칙으로서 갖는 의미이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초월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시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함께 알아보죠.
(2:00) 경계라는 건 무엇일까요?
먼 곳에서 지구를 보면 하늘과 땅의 경계는 마치 칼로 잘라놓은 듯 명확하며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원형의 행성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넘실대고, 육지에는 평원 사이로 뾰족한 산맥들이 모습을 드러내죠.
구슬처럼 매끄러워 보이던 지구의 부드러운 표면은 온데간데 없고 거칠고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표면이 지구를 덮고 있죠.
미시세계까지 확대해 본다면 어떨까요. 이곳에서는 중력이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지며, 따라서 땅이 하늘이고 하늘이 곧 땅이 되죠.
대한민국에는 남한과 북한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뚜렷한 경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휴전선을 가까이서 보면 어디까지가 남한이고 어디까지가 북한인지 모호해 집니다.
이 흙들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남한이라고, 북한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핸드폰이나 모니터의 화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경계가 확실해서 지금처럼 뜨억맨의 영상을 보면서 자막도 읽을 수 있지만,
이를 고배율로 확대해 본다면 그저 빛을 내는 발광 다이오드만 있을 뿐, 경계 자체가 사라집니다.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이죠.
그런데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구분하는 것이며, 구분하는 것은 곧 경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름이라는 경계는, 또 서로의 소통과 이해를 자주 가로막아서 국가 갈등, 종교 갈등, 정치 갈등은 물론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등 온갖 갈등과 혐오를 만들죠.
그런데, 사실 이름 때문에 생겨난 경계들은 실체가 전혀 없습니다.
이름이란 것은 본래 자연에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만의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쌍하게도 인간들은 이름이라는 허구적인 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본질 자체를 보지 못하고, 이름을 본질로 착각하는 동물이죠.
이는 고작 이름 세글자가 그 사람의 정체성 전부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뜨억맨'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대부분 잘생기고 멋진 사람(?)을 떠올리지만, 내면의 인간적이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뜨억맨(??)까지 드러내지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죄송합니다...)
어쨋든 세상의 모든 이름은, 그리고 경계는 인간이 만든 실체 없는 허상이자 허구입니다.
그렇다면 경계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될까요?
그렇습니다.
(04:10)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말이죠.
여기에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이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하고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친구들과 공을 차러 뛰어갑니다.
소년이 떠난 자리에는 소변이 고인 채로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자, 인간의 소변은 약 90%가 물인데 이 소년의 소변에는 물 180ml가 들어있군요.
그렇다면, 이 소변에 포함된 물 분자가 몇 개나 될까요? 물은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로 이루어진 분자로 화학식이 H2O죠.
수소의 원자량은 1이고, 산소의 원자량은 16이니 모두 합치면 원자량이 18이 되며, 물분자 1몰(mol)이 곧 18g인 셈입니다.
또한 물 180ml는 통상적으로 180g쯤이라고 볼 수 있으니 180g을 18g으로 나눠보면 10몰의 물 분자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 분자 10몰을 아보가드로수에 대입해보면 6뒤로 0이 24개나 붙는 단위(6.02214076*10²⁴)가 나오는데 이는 해(垓) 다음 단위인, 자(穣)단위까지 오는 숫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한 소년이 방뇨한 이 소변에는 무려 물 분자가 6자 개나 들어 있던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변의 물 분자들은 표면부터 점차 증발하기 시작합니다.
6자 개나 들어있는 어마어마한 소변의 물 분자들은 하늘로 올라가 지구의 대기에 뒤섞여 떠나니게 됩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의 중부 상공에 저기압에 동반된 비구름대가 형성되며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빗물은 흐르고 흘러 강 상류로 모였고, 정수장의 복잡한 시스템을 거쳐 한 집의 수도관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리고 당신은 목이 말라 컵에 정수기의 물을 따라 마십니다. 벌컥 벌컥-.
그렇습니다. 당신이 방금 마신 이 물컵 한 잔에는 한 달 전 아프리카의 시골마을에 사는 한 소년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방류한 소변에 물 분자가 최소 몇 백개는 들어 있었으며 따라서 당신은 방금 아프리카 소년의 소변 일부를 마신 게 됩니다.
어디 그뿐만 일까요?
(06:00) 이 물컵 한 잔에는 인도의 중년 남성이 뱉은 침도, 중국 여성이 조깅을 하며 흘린 땀도, 유럽 청년이 샤워를 하던 물도, 미국 식당의 웨이트리스가 서빙을 하다 실수로 엎지른 콜라도,
어쩌면 당신과 관계된 누군가가 당신 때문에 흘린 눈물 몇 개의 분자도 함께 담겨져 있죠.
사실 당신이 별 생각 없이 그저 시원하다 생각하며 마신 이 물 한잔은,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들의 역사가 담겨져 있던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동물도 식물도 포함되죠.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진 이상, 이는 물로만 한정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공기를 보시죠. 일상적으로 공기 약 22.4l에 아보가드로수만큼의 공기 분자들이 들어있고 지구 대기의 전체 무게가 약 5*10의 18제곱kg이니,
한 번 숨을 들이킬 때 2l의 공기를 마신다고 가정한다면, 그 한 번의 숨에는 누군가의 폐를 거쳐온 공기 분자가 대략 20개는 들어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당신이 방금 들이마신 이 공기에는 오래 전 석가모니의, 예수의, 무함마드의, 공자의, 세종대왕의,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그리고 히틀러의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 분자가 최소 수십 개에서 수천 개는 들어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석가모니의 허파에 있던 공기 분자가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의 허파로 들어가고,
예수의 허파에 있던 공기 분자도 반야심경을 외는 스님들의 허파로 들어가고
히틀러의 허파에 들어 있던 공기 분자가 유대인들의 허파로 들어가서
그들의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디 인간뿐 일까요? 이 호흡 한 번에는, 오래 전 멸종한 공룡들과, 사바나의 사자와, 태평양의 고래와 아마존의 식물 등 모든 호흡하는 생물의 삶도 담겨져 있죠.
우리의 신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탄소와 수소, 산소, 질소 등 무수히 많은 원자들이 모이고 모여
뼈를 이루고, 살을 이루고, 장기를 이뤄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대략 7*10의 27제곱 개라는 아보가드로수보다 0이 뒤에 4개나 더 붙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원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순환의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역시 오래전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죽고 흩어져 다시 모여 이루어진 것이죠.
예수와 석가모니와 무함마드와 공자와 세종대왕의 몸을 이루던 원자들 또한, 작게라도 우리의 신체 일부분을 이루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08:14) 이렇게 원자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생명의 죽음은 단지 내가 살면서 먹고 마시며 차곡차곡 모아놓은 원자들을 다시 흩뿌리는 일이며,
반대로 생명의 탄생과 성장 과정은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죽음으로 흩뿌려진 원자들이 다시 모이는 일입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는 것입니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어마어마한 개수의 원자들은 내가 죽으면 결국 널리 흩어져 미생물이 되고, 나무가 되고, 곤충이 되고, 새가 되고, 돼지가 되고, 또 다른 인간이 됐다가, 또다시 미생물이 되겠죠.
50억 년 후라면, 지구가 태양에 삼켜져 우리의 몸을 거쳐온 모든 원자가 태양의 일부가 될 겁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떨까요?
운 좋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주 멀리 떨어진 외계 얼음행성의 얼음 조각 일부가 되거나, 지구와 닮은 행성에 도달해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외계인의 몸을 이룰지도 모르는 일이죠.
원자는 우주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으며 특정 생명체에 영원히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이 원자를 아주 잠깐 빌려 몸을 이루고 살다, 다시 토해내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며, 생이 반복된다는 불교사상 '윤회'를 과학적으로 해석한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아보가드로수는 결국, 우리에게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당신의 몸이 결국 내 몸이요, 내 몸이 당신의 몸이며, 당신과 나는 우리고, 생명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물질 자체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두 하나이며,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수,
이처럼 아보가드로 수는 모든 것들의 경계를 허무는 마법같은 수인 겁니다.★
갑자기 감사 인사를 드려야 될 것 같네요.
지난 주에 전봇대에 노상방뇨 하신 분,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몸에도 물 분자가 충만해 졌습니다.
500년 전에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누렁아, 고맙다. 네 몸에 있던 탄소 원자가 내 근육이 됐다. 덕분에 콧구멍을 벌렁거릴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숨쉬며 내뱉은 이산화탄소로 집 근처의 나무들이 광합성을 해서 그때 생긴 산소로 제가 숨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시네요.
경계라는 허구의 관념을 무너뜨리고 아보가드로수의 의미를 떠올리면 이처럼 여러모로 세상이 재미있어집니다.
이상으로 영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 *
모든 것 창조하시고 영원히 함께인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지난 번에 들었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을 갖고 오늘 다시 시청하며 한참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비어 있다 생각했던 모든 공간이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오히려 가득차 있음을, 내 시야를 넘어선 거대함 안에 내가 있음으로 오히려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었음을 느끼며,
무한하신 내 하느님아버지를 숨 쉬고 있음에 하아~ 하아~ 하며 감격하는 요즈음이어서, 더더욱 머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나의 증인이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나의 종이다.
이는 너희가 깨쳐서 나를 믿고 내가 바로 그분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나 이전에 신이 만들어진 일이 없고 나 이후에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으리라.'(이사야 43,10)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그 어느때 보다 더 굳건하고 완전한 신뢰를 요구하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주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원자, 물질의 순환으로만 바라본다면 인간은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지.
그저 흩뿌려질 물질의 집합인 이 생명체에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고 찬미할 수 있는 하느님의 영이 부어졌음에 뜨겁게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내 몸의 작은 세포,분자,원자,전자... 아무리 계속 쪼개어도, 비록 눈으로 볼 수 없다 해도 하나, 둘을 세아릴 수 있다는 것은 그 경계가 지어져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각각이 스스로를 지키려 애쓰거나 버티지 않고 속한 존재의 그 큰 흐름이 일어날 때 그 자체로 거기에 있는 거라면.
큰 흐름, 그 움직임으로 봐서는 내가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 힘에 이끌려 가 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에 함께 한다면. 명령처럼 흐르는 물길에 순응하듯 그렇게...
★각기 존재하되, 모든 것을 각각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위탁되어져 있다면. 더 나아가 온전히 내어맡겨져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주만물의 창조주, 나의 하느님, 나의 아버지께 내 모든 것이 온전히 위탁된 상태,
즉, 100% 내맡겼을 때 무경계, 천상적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나는 그저 여기에 존재할 뿐인데, 나는 '그'일 수가 있으니 감격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작은 하느님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내가 그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벅찬 감동이 밀려옵니다.
100% 내맡긴 영혼의 무경계.천상적 삶.
각자의 꼴. 각자 가진 그 고유의 경계를 지우는게 아니라, 경계를 '지워서' 되는 경계 없음이 아니라, 받아들임이, 내어놓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창조주 나의 하느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내가 만든 허상이 아닌, '친히 주신' 나의 꼴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부르는 대로 오라는 대로 온전히 이끌려 가면 되는 것임을......
내가 굳이 무언가로 되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파도가 밀려오는 시원함처럼 자유와 평화가 밀려와 나를 들어올리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 거룩한 내맡김 >은 내 아버지와 온전히 하나되는 길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 4) 하신,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하신,
그 절절한 사랑의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 거룩한 내맡김 > 봉헌은 참으로,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내 아버지께 대한 믿음의 고백, 한껏 낮추어진 자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라 느낍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물처럼 바람처럼~ 단상~ 100% 내맡김~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한 말씀 한 말씀입니다. 끊임없이 아버지를 부르며, 이 영혼 뜨겁게 입맞춤 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을 살고 있음이,
참으로 엄청난 은총임을 날이 갈수록 뜨겁게 느끼며 엎디어 경배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2코린 4,18)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콜로새1,16)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히브리 11,1.3)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로마 1,16-25)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끌어 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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