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8 12:54:13
유년시절 우리집은 극장 바로 옆집이었다
소도시에 두 개의 극장 중
한 곳이었던 '왕성극장'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름이다
TV가 귀하던 시절
극장은 그야말로 우리 고장의
독보적인 문화 예술공간이었다
그즈음은 영화 산업이 최고 전성기였으니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변사 조 특유의 목소리가
왕성극장 마이크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 군민 여러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홍보 방송
'예술을 사랑하는'
'예수를 사랑하는'
후자 '예수'가 맞다고 우기는 친구에게
'예술'이 맞다
증명한다고 애를 썼다
친구는 예술이 뭔지 모르는
아직 어린애였나보다
극장에서 하는 방송도 모자라
영화 포스터가 잔뜩 붙여 있는 자동차
확성기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가두 선전하며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저 하늘의 슬픔이'
단체 관람 영화는
학교마다 전교생이 줄을 서고
재미있다고 소문 난 영화나
극장 쇼 하는 날이면
시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극장 앞은 북새통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시끄러운데서
어떻게 살았을까 의아하네
어마어마한 소음 공해였을텐데
순박해 순응하며 살던 시절이다
극장 앞에는
오징어 구워 파는 사람도 있었고
엿장수 엿판은 리어카에 올려져 있는데
엿판 앞 아저씨들 엿치기는
언제나 재미있어 보였다
툭 하고 자른 엿 단면을 한눈 찡긋 감고 보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고
아저씨들이 한쪽 눈으로 들여다 보던
구멍은 커야 이기는건지
많아야 이기는건지 지금도 궁금하다
극장 벽에도 담벼락에도
영화 포스터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자주색 책가방을 매고
집에 가는 길에
담 벼락에 영화 포스터는
내게 늘 신기한 충격이었다
정기적으로 바뀌는 포스터가
갖가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으니
동화책 수준은 시시해 졌다
'포옹' 이란 어려운 단어도
나는 영화 제목으로 익히며 성숙해졌다
극장이 놀이터였으니
구석 구석을 훤히 꿰고 있었고
그곳은 언제나 흥미로운 것 투성이
호기심 가득한 어린 영혼을 끌어 당겼다
궁하면 통한다고 .
극장 옆 구석에 작은 문을
몇 명이서 힘을 모아 당겨 봤더니
아래 부분에 작은 공간이 생겼다
동네 아이들이 그곳으로 들어가
공짜 영화를 봤는데
누가 잡으러 올 것 같고 겁이 나서
이대엽 나오는 액션 영화가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만 난다
유료 무료 참 많은 영화를 봤고 탐닉했다
그 시절 나는 현실과 영화
두개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영화보고 눈이 빨개져서 민망해
울지 않은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했다
쪼끄만게 영화보고 울었다고
엄마는 막 웃으셨다
우리집 방 한쪽 벽에는
여배우 사진들이 그림인 척 붙어 있었다
졸업 앨범처럼 동그란 테두리 안에
한사람씩 들어 있었는데
요건 누구지? 하고 물어보면
척척 대답했다
<최지희> <김지미><이빈화><조미령>
<최은희><이민자><오수미>
잘한다 해서
많은 배우 이름을 외웠다
아니 저절로 외워졌다
어느날 마지막 상영 영화 보고
늦은 시간 집에 왔는데
대문이 잠겨 있었다
누군가 나를 번쩍 들어 담에 올려 줬는데
방범용으로 담 위에다 콕콕 심어 놓은
유리 조각에 그만 배 옆구리를 찔렸다
피가 나고 겁이 났지만
늦게 그것도 다쳐서 들어 왔다고
엄마 꾸지람 들을 일이 더 걱정이었다
갓 시집 온 새댁 때
신랑이 나를 호락호락하게 보면
그 날 밤 유리 조각에 찔려 생긴
옆구리 흉터를 보여 주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했더니
"와 ~무슨 여자가 칼침을 맞고 다녔냐?"
그러면서 가소로운건지 부러운건지
깔깔대며 재미있어 했다
지난 날 흉터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성극장이
내게 새겨 준 문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