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김춘강갤러리 원문보기 글쓴이: 春剛(金永善)
계절 (季節) |
절기명 (節氣名) |
양력(陽曆) |
음력 陰曆 |
기후(氣候)의 특징(特徵) | |
봄 春 |
立春(입춘) |
2월 |
4~5일 |
1월 |
겨울의 절정에서 봄이 조금씩 움튼다 |
雨水(우수) |
18~20일 |
얼음이 녹고, 초목이 싹트기 시작한다 | |||
驚蟄(경칩) |
3월 |
5~6일 |
2월 |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난다 | |
春分(춘분) |
20~22일 |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봄기운이 무르익는다 | |||
淸明(청명) |
4월 |
4~5일 |
3월 |
하늘은 맑고, 날씨는 따뜻하다 | |
穀雨(곡우) |
20~21일 |
농사를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 |||
여름夏 |
立夏(입하) |
5월 |
5~6일 |
4월 |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 |
小滿(소만) |
20~21일 |
작은 꽃들이 피고, 여름기운이 서서히 감돈다 | |||
芒種(망종) |
6월 |
5~6일 |
5월 |
보리는 익어서 거두고, 모심기를 하게 된다 | |
夏至(하지) |
21~23일 |
낮이 가장 길어지고, 해가 뜨거워 진다 | |||
小暑(소서) |
7월 |
6~8일 |
6월 |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 |
大暑(대서) |
22~23일 |
이윽고 무더위가 최고 절정에 이른다 | |||
가을秋 |
立秋(입추) |
8월 |
7~8일 |
7월 |
더위가 약간 수그러 들면서 가을에 접어든다 |
處暑(처서) |
22~23일 |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지며 더위가 수그러든다 | |||
白露(백로) |
9월 |
7~8일 |
8월 |
풀잎에 이슬이 맺히며, 가을 기분이 난다 | |
秋分(추분) |
22~24일 |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며, 완연한 가을이다 | |||
寒露(한로) |
10월 |
7~9일 |
9월 |
찬 이슬이 맺히고, 날씨가 서늘해 진다 | |
霜降(상강) |
23~24일 |
서리가 내리면서 가을이 깊어간다 | |||
겨울冬 |
立冬(입동) |
11월 |
7~8일 |
10월 |
어느덧 날씨가 추워지며 겨울이 시작된다 |
小雪(소설) |
22~23일 |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 |||
大雪(대설) |
12월 |
6~7일 |
11월 |
큰 눈이 내리며 본격적으로 추워진다 | |
冬至(동지) |
21~23일 |
밤이 가장 길어지며, 겨울의 복판에 든다 | |||
小寒(소한) |
1월 |
5~7일 |
12월 |
한겨울이 닥쳐와 날씨가 몹씨 추워진다 | |
大寒(대한) |
20~21일 |
매섭고 큰 추위가 몰아쳐서 엄동설한이 된다 |
인간이 역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즉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 하늘에서 태양이 1년을 통하여 지나가는 경로를 황도(the Ecliptic)라고 부른다. 이것은 지구의 공전운동으로 인해 태양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하루에 1도(°)씩 천구 상에서 이동하여 생기는 궤도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지구가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길이 황도이다. |
절기가 소만에 이르면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부터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감자꽃이 필 때면 아이들은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을 즐겨 부르며 놀았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감자
이 노래처럼 하얀꽃 핀 것은 하얀감자가 달리고, 자주꽃 핀 것은 자주감자가 달린다.
아이들은 이 동시에다 그들 나름의 신명나는 후렴을 지어 부르며 놀았다.
조선꽃 핀 건 조선감자
파 보나마나 조선감자
왜놈꽃 핀 건 왜놈감자
파 보나마나 왜놈감자
자주감자는 일명 '돼지감자'라 불렀다. 생명력이 왕성해 한국토질에 잘 되었으니, 맵고 아려서 어린애들이 잘 안 먹으려고 했다. 그러니 돼지감자는 자연히 어머니들 몫이었다.
하얀꽃 피는 흰감자는 맛이 좋아 아이들이 즐겨 먹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평지에서 연작하기가 어려웠다. 자연 맛은 떨어지지만 소출이 많은 자주감자를 심었다.
요즘에사 고랭지 지역에서 재배한 씨감자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씨감자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대관령, 봉화에서 바이러스에 강한 흰 씨감자가 생산되면서 흰감자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그러자 자주감자는 차츰 사라졌다.
지금은 어디선가 홀로 자주꽃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망종(芒種)
망종은 보리를 먹게 되고 볏모를 심는 시기다. 망종은 말 그대로 까라기 종자라는 뜻이니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를 수확하게 됨을 의미한다.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고 늦게 들면 나쁘다고 했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 갈아 콩도 심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바람에 보리가 넘어져 수확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보리는 "씨 뿌릴 때는 백일, 거둘 때는 삼일"이라 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보리를 수확한 후에는 보리깍대기를 태워야 모내기 하기에 편리하다. 그리고 모를 심어도 빨리 사름(뿌리 활착)하게 된다. 그래서 보리수확이 끝난 논마다 보리깍대기 태우는 연기로 장관을 이루게 된다.
농가에서는 이맘 때 쯤이면 보리수확과 모내기가 연이어져 부척 바쁘게 된다. 이때의 바쁨을 일러 "발등에 오줌 싼다"고 말한다.
망종때는 농사일이 끊이지 않고 연이어져 일을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 말 그대로 농번기의 최고 절정인 것이다.
보리수확과 타작이 끝나는 망종때부터 모내기가 대대적으로 시작된다. 특히 이모작을 하는 남부지방에서는 보리나 밀을 베랴, 논을 갈고 써래질하고 모심으랴,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이렇게 바쁘다 보니 자연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때의 바쁨을 이문구는 동시 '오뉴월'에서 이렇게 감칠맛나게 표현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모심기는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논에 물이 많으면 심어도 모가 곧 뽑히고, 적으면 구덩이가 쉽게 드러나 뿌리가 마르고 만다. 또 모를 심으면 며칠간 모끝이 하얗게 마르는 죽사름을 시작한다.
못자리에 있다가 옮겨오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잠시 죽은 듯이 있다가 뿌리를 내리며 다시 기운차게 살아오르기 위해서이다.
하지(夏至)
하지는 일년중 낮이 가장 길다는 날이다.
하지가 되면 묵정밭과 산야는 희디 흰 개망초꽃으로 뒤덮힌다. 과거 보온용 비닐 못자리가 나오기 전 남부 이모작 지대에는 하지 '전삼일·후삼일'이라 해서 그때가 모내기에 적기였다.
지금은 보온용 못자리 설치로 모내기가 빨라져 하지 때가 되면, 모는 새 뿌리를 내리며 날마다 더욱 굳어진다.
늦모내기가 대체로 끝나는 하지부터는 비료치기와 벼 병충해 방제작업에 들어간다.
장마와 가뭄대비도 해야 하는 만큼 이때는 일년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때이다. 메밀파종, 누에치기, 감자캐기, 고추밭매기, 마늘캐기 및 건조, 보리수확 및 타작, 보리수매, 모내기, 모낸 논 웃비료치기, 제초제 살포 등이다. 그루갈이용 늦콩심기, 또 대마수확이 이루어진다. 대마를 하는 농가는 모내기보다 더 바빠 대마철은 아예 잠을 못 잔다고 한다.
보리 타작한 농가는 할매단지에 가을추수 후 넣어둔 쌀을 꺼내고 보리를 넣어 잘 모셔둔다.
벼농사의 경우 모내기가 끝나면 김매기(지역에 따라서는 논매기라 한다)가 뒤따른다.
벼가 패기까지(출수기) 두세번에 걸쳐 김매기가 이어진다. 처음 매는 김을 초벌매기(애벌매기라고도 한다)라 한다. 초벌매기 후 3주 쯤 지나면 두벌매기가 이어지고 잡초가 많은 논이나 알뜰한 농가, 일손이 많은 농가에서는 세벌매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 김매기를 하는 논은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모두들 손쉬운 제초제로 김매기를 대신 하게 된다.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해 땅에 마구 뿌려댄 제초제는 결국 벼로 옮겨가고, 그 벼는 사람이 먹게 됨에 따라 체내에 축적되고, 마침내는 각종 암이나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심각한 상황을 유발하고야 만다.
두레 김매기를 통해 이웃간의 도타운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우리네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지고 지금이사 한 사람이 충분한 일손이 되어 제초제를 뿌려대고 있으니 인간이 이기로 인해 머지않아 이 땅덩이와 밥상이 몰락할 날이 도래하고야 말 것이다.
지렁이와 구데기, 각종 벌레들이 우글거리던 우리네 옛 땅으로 희복할 날은 과연 언제일까?
소서(小暑)
'작은 더위'라는 소서부터 본격적인 더운 날씨로 접어든다.
이맘 때가 되면 벼는 출수기를 맞는다.
벼논에서는 잎도열병과 멸구를 방제하기 위해 1차 농약을 친다. 물약을 치기도 하고 요즘은 손으로 뿌리는 농약을 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장마기와 가뭄기가 겹치는 이때 논물관리와 무너지기 쉬운 논둑 관리, 그리고 가뭄에 대비해 양수기를 설치해 놓는다.
<농가월령가>에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 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여
삼사차 돌려 맬 제
날 새면 호미들고
긴긴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 할 둣
했듯이 김매기도 빼놓을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다양한 제초제와 기계화로 인해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과다한 제초제와 농약살포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땅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는 농법에서 벗어나 자연에 순응하며 벌레와 지렁이와 공생하는 생태농법, 유기농법이 활발해져야 한다.
농사에 있어 진짜 농군이라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무농약', '무제초제', '무화학비료'이다.
농약을 쓰지 않으려다 보니 메뚜기와 각종 병충해가 들끓어 이를 감당할 농법을 개발해야 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사흘이 멀다고 김매기와 피사리로 허리펼 날이 없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려다 보니 퇴비와 유기질 비료를 만드느라 일손을 다 뺏겨야 한다. 3무의 원칙을 지키며 농사 짓는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허나 진짜배기 농사꾼,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농군이라면 이런 수고를 수고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바보같은 짓한다고 손가락할지라도 대대로 물려줄 땅임을 안다면, 묵묵히 3무의 원칙아래 굵은 땀, 진실의 땀을 흘리며 한뙈기의 논이라도 정성스레 대할 것이다.
대서(大暑)
'큰 더위'인 대서는 겨울인 대한으로부터 꼭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일년중 가장 더운 시기로 특히 대서 이후 20여일이 일년중 가장 무더운 시기이다. '불볕더위', '찜통더위'도 이때에 해당된다.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며 더위때문에 "염소뿔이 녹는다"고 할 정도다. 특히 무더위를 초ㆍ중ㆍ말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ㆍ대서라는 큰 명칭으로 한것도 무더위의 경종을 농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대서때는 뜨거운 태양과 많은 비로 인해 벼를 비롯한 모든 작물이 잘 자라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고 한다. 이때는 더운 날씨 때문에 많이 발생하는 병의 문고병과 이화명흑나방 등을 예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논두렁의 웃자란 풀들이 벼를 덮어 생육을 방해해 논두렁 풀도 베어준다.
논두렁에 심어둔 두렁걸이 콩.팥도, 고구마밭의 풀 등도 이때 메고 복돋아 주어야 한다.
농가에서는 대서가 낀 "삼복(삼복)에 비가 오면 대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여름철 잦은 비와 고온 다습한 날씨는 벼에 바람 한 줌 통할 수 없게 한다. 이렇게 되면 벼 줄기가 썩어 들어가게 되는데 이 병을 문고병(또는 몽고병)이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많은 벼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함께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잘 자란다. 그것은 벼들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 존재를 지켜나갈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 듯, 벼들도 자기 세계를 지키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음력 6월은 보리, 밀을 위시해 노지용 수박, 참외 등 각종 과일들이 생산되는 시기이다.
벼를 비롯해 그동안 경작한 농사는 가을의 수확을 기다리는 시기로서 농군들의 일손도 다른 달보다 한가한 때이다.
오월에 이어 유월에도 이모작 지대와 특수작물을 수확한 논에서는 늦모내기가 이어진다.
연이어 그간 심어둔 호박, 고추, 콩 등을 솎아내고, 김을 매고 흙을 북돋워 준다. 잎담배도 따로 건조시킨다. 퇴비 만들기, 삼베하기, 논 물빼기와 물대기도 소서ㆍ대서 절기의 중요한 일이다.
7.8월은 본격적인 장마시기로 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특히 집중적으로 오는 태풍과 비도 문제이지만 장기간 계속되는 장마는 냉해와 병충해 등을 유발해 벼의 생육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7.8월이 벼와 옥수수, 밤, 감 등 작물의 알곡이 열리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가뭄이 심해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논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다. 벼들이 누렇게 타들어가면 농민들의 마음도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장기간 한발이 계속되면 마을 단위로 기우제를 지낸다. 그것도 신통치 않으면 장을 옮겨 섰다. 비가 내리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농민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단지 안에 도마뱀을 잡아 넣고, 병에다 버들가지를 꽂아두며 비가 오길 원했다.
쌀 농사에 가장 무서운 복병은 가뭄과 냉해이다.
과거엔 가뭄이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나 오늘날 저수지의 축조로 천수답이 많이 사라지고, 양수기 등 농기계의 발달로 가뭄은 그다지 심각한 해를 입히지 못한다.
그보다는 장기간 날씨가 차가워지고 비만 내리는 냉해는 현대과학으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저 구멍뚫린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의 삿대질을 해댈 뿐이다.
얼마나 복장터지고 심장이 상했으면 "냉해가 진 해는 이삭이 달리지 않아 벼를 붙잡고 운다"고 했을까?
여름철 때이른 잦은 강우와 냉해는 잎도열병, 이삭도열병 등 각종 병ㆍ충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입추(立秋)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 입추이다.
입추라 해도 더위는 여전하여 '잔서(늦더위)'가 계속된다. 이때쯤이면 김장용 무·배추를 심기 시작한다.
벼논에서는 목도열병과 벼멸구를 막기 위해 농약을 친다. 특히, 이 시기에는 태풍과 장마가 오면 자주 발생하는 목도열병과 고온이 지속되면 주로 발생하는 벼멸구의 피해가 심하다. 목도열병은 일반벼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는 출수기로 쌀감수와 직결되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방제해야 한다. 잠깐 실수로 잘 지은 농사를 망칠수 있기 때문이다.
또 뜻밖의 복병, 사리가 도사리고 있다. 사리는 한 달에 음력 2-4일과 17-19일 두 차례 생기며 사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때가 음력 7월 보름 전후인데 백중 부근에 사리 현상이 드높다 하여 '백중사리'라고 부른다.
바다의 수면이 올라가는 사리 현상은 태양과 달의 위치가 지구-달-태양 또는 태양-달-지구일 때 태양과 달의 인력이 합쳐져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겨 생긴다. 이로 인해 바닷물의 수위가 최고가 되어 낮은 지대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다.
이때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천, 안산, 평택, 보령, 군산, 목포, 여수, 광양, 통영, 부산 등 저지대는 침수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평택지방은 바닷물 높이가 9미터 53센티미터까지 올라가 애써 가꾼 농작물이 온통 잠겨 농민을 깊은 시름에 빠뜨리기도 한다.
볍씨는 크게 일반벼와 통일벼가 있었다.
일반벼는 기존 재래종을 약간 개량한 것으로 밥맛이 좋고 매우 차졌다. 또 볏짚의 길이가 길어 소의 사료로부터 초가지붕, 가마니나 거적, 새끼, 노끈 재료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할수 있다. 그러나 소출이 떨어지고 병충해에 약한것이 흠이다.
여기에 비해 통일벼는 볍씨가 일반벼에 비해 크고 소출도 많으나 쌀이 푸석푸석해 밥맛이 없고 밥을 해 놓으면 찰기가 적어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 또 볏짚의 길이가 짧고 억세며, 쉽게 서리에 고꾸라져 사료용과 장작 대용의 연료 이외에는 잘 쓸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존 농가에서는 일반미, 그 중에서도 속칭 '아끼바리(원명은 아끼바레)'라 불린 쌀을 많이 심었다. 차지고 밥맛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진된 '녹색혁명·산미증산 계획'에 따라 신품종 볍씨가 대대적으로 바뀌는 일대 혁명이 있었다.
10월 유신을 통해 영구집권의 토대를 공고히 한 박정희는 그의 혁명 유업처럼 볍씨의 이름도 '유신벼'라 했다. 유신정부는 농민들에게 유신벼를 강요했다. 허나 농민들은 밥맛이 좋고, 그간 입맛에 길들여진 일반벼를 선호했다. 그러나 유신정부가 그리 호락한 정부이던가?
군마다, 면마다, 가구마다 할당된 목표치가 정해지고 공무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방문하여 독려·감독하는 성화를 부렸다. 못자리에서부터 통일벼를 뿌리지 않으면 일반벼 볍씨를 빼앗아갈 정도였다. 이런 공무원들의 등쌀에 못 이겨 통일벼가 전국적으로 심어졌다.
마을 회관 벽면에 새겨진 '자급자족'의 기지처럼 '증산'이 첫 번째 목표였다.
"오천 년 보리고개 가난을 몰아내고…"란 노래를 틀어 대며 군마다 면마다 '증산왕'을 선정하고 쌀 자급을 더더욱 독려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몰락처럼 "잘 살아 보세"의 구호가 슬그머니 내려졌다.
시간이 흐르고. 보리고개의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을 지나 양보다 질을 따지게 되자 그 흔하던 유신벼는 논에서, 밥상에서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밥맛이 없어 생활보호대상자들의 배급용이나 군인들의 군량미로 죄수들의 가다밥으로, 그리고 없는 집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일반미 내다 팔고 되팔아 먹던 그 벼.
안남미라 홀대 받으며 눈물밥을 먹게 했던 통일벼의 왕자 '유신벼'는 유신정권이 무너지듯 그렇게 우리의 뇌리에서, 들판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 땅에서 유신벼 찾기란 천연기념물 찾기보다 어렵게 되어 버렸다.
처서(處暑)
여름이 지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농부들은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농쟁기를 씻고 닦아서 둘 채비를 한다.
옛 조상들은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밭두렁이나 산소의 벌초를 한다.
여름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리는 일도 이 무렵에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처럼 파리·모기의 성화도 면하게 된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곡식 천 석을 감한다."든가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곡식이 준다."는 속담처럼 처서의 비는 곡식이 흉작을 면치 못한다는 믿음이 영·호남 지역에 전하여져 온다. 그만큼 처서의 맑은 날은 농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옛부터 처서날이 잔잔하면 농작물이 풍성해진다 했다.
입추·처서가 든 칠월은 논의 '지심 맨다'하여 세 벌 김매기를 한다.
피뽑기, 논두렁풀 베기를 하고 참깨를 털고 옥수수를 수확한다. 또 김장용 무·배추 갈기, 논·밭 웃비료 주기가 이루어진다.
농가에서는 칠월을 '어정 칠월이요, 동동 팔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팔월은 추수하느라 일손이 바빠 발을 구르며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칠월도 생각보다는 일거리가 많다. 특히 태풍이 오거나 가뭄이 오면 농민의 일거리는 그만큼 늘어난다. 논물도 조정해야 하고 장마 후에는 더 극성을 부리는 벼 병·충해 방제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백로(白露)
하얀 이슬 산들바람 가을을 보내주자
발 밖의 물과 하늘 청망한 가을일레
앞산에 잎새 지고 매미소리 멀어져
막대 끌고 나와 보니 곳마다 가을일레
백로는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때이다.
이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한다. 맑은 날이 연이어지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날이 된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지장이 있음을 걱정했다.
초가을인 이때는 가끔 기온이 뚝 떨어지는 '조냉(早冷)'현상이 나타나 농작물의 자람과 결실을 방해해 수확의 감소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에 접어들면 밤하늘에선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일 때가 더러 있다. 농부들은 이를 두고 벼이삭이 패고 익는 것이 낮동안 부족해 밤에도 하늘이 보탠다고 한다. 이 빛의 번쩍임이 잦을수록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한낮에는 초가을의 노염(老炎)이 쌀농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 : 양력 8월중순 - 9월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소확량도 많아지게 된다. 이때의 햇살과 더위야말로 농작물엔 보약과 다름없는 것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 쬐는 하루 땡볕에 쌀 12만섬(1998년 기준)이 증산된다고 한다. 중위도 지방의 벼농사는 그간 여름 장마에 의해 못자란 벼나 과일들도 늦더위에 알이 충실해지고 과일은 단맛을 더하게 된다. 이때의 더위로 인해 한가위에는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게 되는 것이다.
추분(秋分)
들판은 어디서나 귀뚜라미 울어예고
바람에 마르는 콩꼬투리 툭툭 터지는 소리
조 이삭, 수수 이삭 여물어 가는 청명한 가을 하늘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의 들녘에 서면 곡식들 여물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수와 조가 늘어 뺀 고개를 숙일대로 숙이고, 들판의 벼들은 강렬한 태양, 천둥과 폭우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인다.
머잖아 쌀알로 열매맺게 될 저 알곡들이 황금빛 바다를 이루어 빛나는 시기이다.
없는 이웃 논바닥을 피바다로 만드니, 이웃집 농부들의 수군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피사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맘 때는 여름내 짙푸르기만 하던 들이 하루가 다르게 누릿누릿 익어 물들어 간다. 또 고추가 익기 시작하므로 수시로 따서 말린다.
가을 누에치기, 건초 장만하기, 반찬용 콩잎 따기도 한다. 논물 빼고 도구치기, 마지막 논두렁 베기, 병·충해 방제, 논에 피사리 등 수확을 앞두고 관리에 들어간다.
한로(寒露)
찬 이슬 맺히는 한로에 접어들면 농부들은 잠시 머뭇거릴 겨를도 없다. 새벽밥 해먹고 들에 나가 밤 늦도록 일을 한다.
한로에는 찬 이슬 머금은 국화꽃 향기 그윽하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이즈음 기온이 더욱 내려가니 늦가을 서리를 맞기 전에 빨리 추수를 끝내려고 농촌은 바쁘기 그지 없다.
벼이삭 소리 슬슬 서걱이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때. 북에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벼들의 황금빛 물결에 맞추어 벼베기가 시작되고 단풍은 춤추듯 그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다.
벼가 여물어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때 농부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벼를 베거나 타작하는 날은 무슨 잔칫날처럼 부산하고 고될망정 수확을 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예전엔 길손이 지나면 꼭 불러 새참이나 점심을 함께 권했고,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돌려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의 가을 들판은 너무도 다르다. 주인은 논둑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콤바인이 굉음을 울리며 순식간에 논을 오가며 벼를 담은 가마니를 떨어뜨린다.
상강(霜降)
된서리가 내려 천지가 눈이 온 듯 뽀얗게 뒤덮히는 때다. 이때쯤이면 각 시·군의 엽연초조합에서 잎담배 수매가 시작된다.
과거 수입담배가 들어오기 전 잎담배가 제값을 받을 때는 담배수매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그 지역은 흥청거렸다. 담배 등급을 판정하는 심사관들이 묵는 여관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판정가를 받으려고 술 접대가 한창이었고 수매가 시작되는 날이면 목돈을 쥔 사람들을 유혹하는 장사꾼이 도처에서 모여들어 흥청거렸다. 목돈을 손에 쥔 농민들은 할 일없이 어슬렁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더러는 제 기분에 취한 나머지 일 년 고생해 지은 담배값을 기생집이나 사기꾼에 홀라당 털리기도 했다.
상강은 보리파종의 적기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기 무섭게 이모작 지대인 남부지방에서는 보리파종에 들어간다. 보리파종이 늦어지면 동해(凍害)를 입을 우려도 있고 수확량도 급감한다. 또 보리파종이 늦어지면 이듬해 보리 숙기가 늦어져 보리베기가 지연되고 보리베기가 지연되면 모내기가 늦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이 시기를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명을 다한 잎새들이 마무리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보름간의 준비가 겨울을 얼마나 알차게 따뜻하게 보낼수 있느냐를 좌지우지한다. 얼마 후면 입동, 농촌은막바지 가을걷이로 바쁘다.
농부에겐 길고 힘든 한 해였지만 그래도 거둠의 기쁨이 있으니 어떠랴.
농사를 잘 지었으면 잘 지은 대로, 못 지었으면 못 지은 대로의 수확이 있으니.
가을 동안 잘 익은 호박 따 들이랴, 밤·감 따랴, 조·수수 수확하랴, 서리 오기전 고추 따랴, 깻잎 따랴, 고구마 캐랴, 콩 타작하랴, 농부는 고단한 몸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들판에서 살게 된다.
논갈이 및 가을보리 파종, 마늘 심기와 양파모종 이식도 이맘때가 절정이다. 일손이 많이 가는 마늘농사는 집집이 모여 품앗이 형태로 심게 된다.
최근엔 농촌 일손이 달리면서 도회지에서 품을 팔러 온 이들이 몰려 늦가을 들녁은 사람과 단풍의 물결로 출렁이게 된다.
입동(立冬)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찬서리는 내리고 집 한 쪽 감나무 끝엔 까치밥만이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일순간 몰아치는 바람은 짧았던 가을의 끝임을 알리고 벌써 긴 겨울이 시작됨을 고한다. 이때 쯤이면 가을걷이도 어느덧 끝나고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다.
농부들은 예히 자연의 변화를 직감하고 기나긴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입동은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 묶기에 들어가고,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 "추분에서 46일이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고 하였다.
바야흐로 겨울의 문턱이요, 시작이다.
월동동물들은 동면에 들 준비를 하고, 푸르게 자라나던 풀이며 무성하던 나무들은 왕성한 자람을 멈추고 잎을 떨군 채 겨울의 채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것은 긴 겨울을 대비해 영양분의 소모를 적게 하기 위함이다.
이맘 때면 수확을 끝낸 들판에선 소들의 중요한 겨울먹이인 볏짚을 모은다. 모든 볏짚은 농가 마당에 보기 좋게 쌓아 두기도 하고 논배미에 단촐히 모아두기도 한다. 농가의 큰 일꾼이자 초식동물인 소에게 볏짚같은 풀사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먹이인 것이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이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다.
소설(小雪)
24절기 입동 후에 소설이 있다. 입동이 지나면 첫눈이 내린다하여 소설이라 했다. 소설에는 눈이 적게, 대설에는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했듯이 첫얼음과 첫눈이 찾아드므로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 호박 오가리, 곶감 말리기 등 대대적인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농가월령가에도 겨울채비를 노래하고 있다.
무 배추 캐여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이렇게 많은 월동준비 가운데 뭐니뭐니 해도 김장이 가장 큰 일이다. 오죽하면 "김장하니 삼동 걱정 덜었다."고 하겠는가?
김장독은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구덩이를 파고 묻는다.
천지가 잠들고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철, 김치는 싱싱한 야채 대용으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훌륭한 음식이었다.
김치는 새나물이 돋아나는 이듬해 봄까지 더할 수 없는 영양분이자 겨울철 가장 사랑받는 반찬이 되는 셈이다.
음력 시월은 '농공(農功)을 필(畢)'하는 달이다.
추수를 끝내고 아무 걱정없이 놀수 있는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수 있어 '공달'이라 했다.
농가에서는 배추와 무를 절여서 김장을 담그고, 들나물도 절여 담그며 겨울을 준비한다. 이때는 벼 건조 및 저장하기, 추곡 수매와 담배 수매를 제외하고는 큰일이 없다.
소 사료용 볏짚 모으기, 무·배추수확·저장, 시래기 엮어 달기, 목화 따기 등 조촐한 일이 있을 뿐이다.
대설(大雪)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소설 뒤 대설을 놓은 것은 동지를 앞에 두고 눈다운 눈이 이때쯤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눈이 고르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대설이라고 해도 어느 해는 소설보다 적게 오기도 한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가 적어 보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가정에선 누런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메주를 잘 만들어야 한 해 반찬의 밑천이 되는 장맛이 제대로 나기에 갖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단시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손으로 비벼보아 뭉그러질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후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갖춘 메주를 그대로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을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 달 때는 대개 짚을 사용하는데 이는 짚에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좋은 나일론끈이 많지만, 메주를 달 때 유독 짚으로 묶어 다는 이유는 푸른 곰팡이의 번식을 양호하게 하기 위함이다.
간혹 도시에서 자란 새댁들이 물색 모르고 나일론끈으로 달아 메주를 버리기도 하고 장맛을 형편없이 만들기도 한다.
메주를 띄울 때도 곰팡이가 잘 번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불같은 것을 덮어 주는데 이때도 천연섬유로 된 이불이어야 좋지 나일론 등 합성섬유로 만든 이불은 좋지 못하다. 곰팡이균도 자연친화를 좋아함을 알수 있다.
동지(冬至)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길이가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나누어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 등에 놓아 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산죽을 쪄와 사등분으로 쪼개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근 뒤 그늘에서 건조시켜 만든다. 쌀에 든 돌이나 이물질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대보름이 지난 뒤 팔러 다니면 상놈이라 욕을 먹기도 했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이때는 가장들보다 아녀자들이 할 일이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로 부산할 때다.
무말랭이, 토란 줄기, 호박 오가리 등 각종 마른나물 말리고 거두기에 겨울 짧은 해가 아쉽기만 할 때다.
비닐하우스 농가에서는 비닐하우스 골조설치, 비닐 씌우기, 거름내기, 논갈이 등 중노동이 잇따른다. 과거엔 농한기로 쳤지만 비닐하우스의 등장으로 모내기철보다 더 바쁜 농번기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네 기억 속엔 정겨운 화롯가의 추억이 남아 있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 집 질화로에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 헤치며 잎담배 피우시며
'고놈 두 눈동자 초롱같애'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은 연신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중략)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기도 하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더러 손재주 좋은 이들은 윷놀이와 곡식을 말릴때 쓰는 멍석, 음식을 보관하는 봉새기, 재를 밭에 뿌릴때 쓰는 삼태기, 배낭의 일종인 조루막, 풀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졸음이 몰려올 쯤이면 쌈지담배를 꼬실리다가 이내 아낙네들이 삶아온 고구마를 먹으며 마을 소식들이 오갔다.
내년 소작료 얘기며 부당한 물세 때문에 복장이 터진다는 얘기며 안산 너머 닭실골짝 김서방네는 소작료 때문에 논주인과 다투다 부치던 논을 뺏겨 내년 살길이 막막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밖은 눈이 무진장 내리는데 말이다.
안방에서 동네 아낙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강부잣집 딸년은 시집가 잘 산다는 얘기며, 양달마을 박서방은 술집 작부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그때 쯤이면 어린 것은 아이스크림 같은 겨울 감홍시를 입이 벌개지도록 칠한 채 먹다 말고 이내 어미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이처럼 겨울나기는 눈오는 밤 질하로에 묻어둔 불씨요 밤알처럼 훈훈한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라는 험한 상황이 아름다운 겨울의 낭만을 사라지게 했다.
모진 바깥 세상에 시달린 손을 포근하게 묻을 곳이며 얼어붙은 볼을 감싸 녹여주며 거칠어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情)의 원천이던 겨울나기. 쇠죽을 끓여 지글지글 끓던 방에서 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가족끼리, 이웃끼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 따뜻함이 새삼 그리운 시절이다.
소한(小寒)
소한은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나타나는 절기다. 소한때는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이다.
'소한땜'이 아니라도 이때는 전국이 최저기온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고 할 정도로 추웠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간 혹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출입이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 것을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야 했다.
논은 지가 품고 있던 벼가 없으니
슬퍼 하늘만 쳐다본다
벼하고 지하고
더 어려운 일도 이겨 내었재
논아 너무 슬퍼하지 마고
내년에 우리
멋지게 살아보자
농촌에서 자란 한 초등학생의 시각을 통해 이 시기의 들녘을 보자. 그것이야말로 논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일 것이다.
벼가 없어진 빈 들판에 눈이 내리면 특히, 동짓달과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고 반겼다.
눈을 풍년의 징조로 본 것이다. 또 눈은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상서(祥瑞)롭게 보았다.
겨울 농사의 중요한 몫은 보리 차지다.
보리하면 경상도 특히 경북을 연상한다.
오죽하면 경상도 하면 "보리 문디"라고 까지 했을까?
경상북도의 대다수 농지는 보리재배의 적지이자 논보리 이모작이 가능해 일찍부터 보리재배가 성했던 곳이다. 한시라도 땅을 놀리면 벌받는 줄 알았던 부지런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보리를 심어 자식들을 부양하고 그것을 팔아 농가의 농사밑천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겨울에 쌀을 먹고 여름엔 보리를 먹어야 보양(保養)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철따라 나는 곡식을 맞추어 먹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엄동에 쌀밥을 권하는 것은 천지가 음기(陰氣)에 든 겨울에, 따가운 땡볕 속에 영근 쌀에서 양기를 취하여 음양 조화를 지니려는 것이며, 한여름에는 엄동의 눈밭에서 자란 보리의 냉기를 취하여 모자라는 음기를 보강하려는 것이다.
지금은 보리 농사가 줄어 보리밭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가곡『보리밭』이나 한흑구가 수필에서 예찬했던『보리예찬』은 늦가을부터 봄까지 우리 농촌을 대표하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그래서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고 했고, '보리밭 로맨스'니 '보리밭에만 가도 취한다'는 등 보리는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왔다.
특이한 것은 가을보리씨를 이듬 해 봄에 심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을보리는 혹독한 겨울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따뜻한 봄에 파종하니 자신의 성질을 잃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가을보리를 봄에 심어 열매 맺게 하려면 '춘화처리'라는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춘화처리'란 가을보리가 추운 대지에 뿌리내려 겨울을 나듯 보리씨를 추운 곳에 일정기간 보관했다 뿌려야 정상적으로 열매가 맺힌다.
엄동설한을 보내지 않고는 결실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보리처럼 인간의 삶도, 시련의 시절을 보낸 후에야 그 꿈을 열매맺는 것은 아닐런지….
이렇듯 하찮게 보이는 보리도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추운 흙 속에 묻혀 자신을 죽이고 삭이는 인내의 굳은 시련을 겪은 후 비로소 황금물결로 춤추는 보리가 되는 것이다.
대한(大寒)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다. 소한 추위는 대한에 오면 절정에 달한다.
대한은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이다.
시베리아 기단의 맹위로 인해 몹시 추운 날이 계속된다. 이때는 또 건조한 날씨로 불이 일어나기 쉽고, 가뭄이 들 때가 많아 보리 등 겨울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며 불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거엔 소한·대한 때는 꿈쩍도 않고 집에만 있었지만 요즘은 비닐하우스일을 비롯한 여러 특용작물 재배로 인해 바쁘기는 매 한가지이다.
대한 때면 눈덮힌 겨울 들판에 황량함만이 남아 있다.
이 죽어 있는 땅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올 것 같은 희망 따위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죽어 자빠진 땅에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그 희망을 소설가 김영현은 그의 작품집『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서 건강한 농사꾼의 눈을 빌려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
그것이 바로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민중이라네.
진짜 훌륭한 諍염《窄?농민과 같을거야.
적당한 온도와 햇빛만 주어지면 하늘을 향해 무성히 솟아 나오는 식물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이구.
일시적으로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네."
무릇 농경 사회에서 겨울 석달은 농한기로, 다음 해 농사를 하기 위한 휴식·준비의 시기였다. 그러나 농촌에 휘몰아친 변화의 바람은 결코 농한기로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농한기를 부지런히 움직인 이가 부와 명예를 얻을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벼농사 중심의 농가는 본격적인 농한기에 해당된다.
기껏해야 보리밭의 월동 거름덮기, 농기구 손질, 겨울 땔감 준비 등이다.
예전엔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등도 빼놓을수 없는 일이 몸부림쳤다.
특히 겨울에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 먹기에 삼시 세 끼 밥 먹기 죄스러워 겨울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다. 이는 쌀을 아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자 일하지 않고는 밥을 먹지 않겠다는 투철한 노동정신이 스민 것임을 알수 있다. 또 양식 있는 겨울에 아끼지 않으면 돌아오는 보릿고개에 모두가 굶어 죽게 되니, 있을 때 아끼자는 깨어있음의 청정한 정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