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이라크 땅에서 천인공노할 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고 김선일 씨의 참혹한 죽음은 온 국민들로 하여금 충격과 경악에 빠지게 하였고, 비통함과 슬픔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더구나 그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려고 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음을 생각할 때 더욱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고인의 죽음이 반드시 한 알의 밀알처럼 되어서 공산주의 몰락에 이어 마지막 선교의 장벽인 모슬렘권이 무너지고 중동지역에 복음 전파의 문이 활짝 열리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하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비유는 지난주일 선포한 ‘깨어 있음의 비유’와 오늘의 본문인 ‘씨 자람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중심 주제는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꼭 천국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늘나라 비유 혹은 천국 비유는 교회나 신앙인들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는 속성을 신앙인과 교회에 빗대어서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씨 자람의 비유’를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씨 뿌림의 의미 여기에서 씨를 뿌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의 씨를 뿌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받은 사람은 잘 자라나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 성도들은 씨를 뿌리는 일에 열심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자신은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씨를 자라나게 하시지만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의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씨 자람의 의미 1)교회의 성장 씨는 그 자체 안에 장차 성장할 모든 것의 근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씨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뿌려진 씨 안에 모든 가능성과 미래의 결실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씨에는 놀라운 생명력과 번식력이 있습니다. 크기가 한 알의 화약 정도밖에 안 되는 한 개의 양귀비 씨는 4년 내에 전 지구 표면의 1/4을 덮을 만큼 번식이 가능하다고 하며, 옥수수 한 알이면 8년 내에 온 인류에게 1년 반 이상 빵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번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 시대에 한 남자가 딸기를 많이 먹은 후에 곧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에 이 사람의 시신이 로마 황제가 그려진 동전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약 1770년 동안 미이라가 된 채 묻혀 있었는데, 진기한 사실은 그 시신의 위에서 발견된 딸기 씨를 원예 조합 정원에 뿌렸더니, 1700년이나 된 씨에서 새로운 싹이 트고 자라났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의 씨에는 반드시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씨가 뿌려지면 반드시 성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은 밑으로 다 빠지나 콩나물은 자라나는 것처럼,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먼저 교회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의 성장에 대한 기록들이 나옵니다. 교회는 심지어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기화로 오히려 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계속하여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2)신앙의 성숙 교회가 크고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각 성도들도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자라나야 합니다. 베드로는 교회들에게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신앙이 날마다 달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성숙해져야 합니다. 3. 씨 자람의 방도 1)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뿌림과 같으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씨 뿌리는 사람을 가리켜 농부라 하지 않고 사람이라고 한 것을 음미해보야 합니다. 농부는 농사일에 전문가입니다. 그 어떤 직업인도 농부처럼 농사일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농부 역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비록 농사일에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씨를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기능적으로 자라나는 원리를 기반으로 농사를 지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주도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나의 신앙, 우리 교회의 발전, 그리고 복음 전파 사역 등 모든 하나님 나라의 일들에 생명을 주시는 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만하고 무지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시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의 율법주의 종교 상황에서는 모두가 공로의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라면 모두가 이방 민족보다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민족만을 선택하시고 또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음의 공로를 세웠기에,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민족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율법에 더 충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특별히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모든 생각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에 대한 반 신본주의적인 잘못된 사상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이끌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들이 성숙하는 것은 모두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농부가 그 어찌된 것임을 알지 못해도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란다고 하였습니다. 농부도 사람인지라 먹고 잠을 자야 합니다. 늘 논밭 곁에서만 지낼 수도 없으며, 더구나 땅속에 묻혀 있는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 도리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간의 무력함을 통감하게 해줍니다. 절대로 농부가 씨를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부는 어떻게 자라는지도 몰랐습니다. 여기에 씨 자람의 비밀이 있습니다. 생명의 신비를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또는 참된 의미에서 무언가를 창조한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사물을 발견하고 그 배열을 바꿀 수 있고, 그것을 발전시킬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것들을 창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신자의 영적인 성장 역시 사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곧 하나님에 의해서 자란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나님 나라의 자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목수 출신의 예수님과 식민지 유대 땅의 몇 명의 제자들에 의해 시작된 천국 복음이, 오늘날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낙심하거나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영생의 씨앗으로 우리 영혼 속에 심어졌으니, 기필코 영생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과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를 위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 각인의 노력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2)하나님의 말씀 신앙인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양식을 취하지만, 성도는 영의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열심히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그대로 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인들이 처음에는 미국의 교회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크게 부흥하여, 한인 교회와 미국 교회의 예배당 주인이 뒤바뀌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3)전도와 선교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전도와 선교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위한 복음 전파의 책임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성장케 하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의 피로 값 주고 사서 고용한 하나님 나라의 농부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는 피할 수 없는 성도들의 의무요 본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도와 선교를 게을리 한다면 교회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반드시 전도와 선교에 힘쓰고 또 힘써야만 합니다. 4. 씨 자람의 과정 1)싹 교회의 성장이나 성도의 신앙은 마음만 먹는다고 급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긴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마치 어린이에게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여도 시간이 흘러야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본문에 보면 먼저 싹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것이 어린 싹입니다. 이제 막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마치 어린 싹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싹은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의무입니다. 2)이삭 이삭은 열매의 준비단계이며 열매를 좌우합니다. 신자들이 언제나 어린 싹으로만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에 보면 어린 싹으로만 있는 사람이 꼭 말썽을 일으킵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언제나 어린아이의 몸, 어린아이의 성격, 어린아이의 지식으로만 있으면 안 됩니다. 신앙인은 누구든지 성숙하여 이삭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교회도 어린 싹과 같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고, 이삭처럼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곡식 이삭에 충실한 곡식은 씨가 되고 종자가 됩니다. 그리고 씨가 되어야만 재생산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삭에 충실한 곡식 같은 신자라야 재생산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이와 같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교회나 성도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반드시 신앙과 인격에 성장과 성숙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재생산까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5. 추수 씨를 뿌렸으면 반드시 거둘 때가 돌아옵니다. 그리고 수확기가 되면 당연히 두 가지 일이 생깁니다. 즉 좋은 열매는 거두어들이고 잡초와 가라지는 불태워 버리는 수확과 심판이 속속 진행됩니다. 우리는 불원간에 하나님의 추수 때가 들이닥칠 것을 생각하면서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1)인내입니다. 우리는 순간적인 존재입니다. 그런고로 순간적인 사고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가운데서 일하십니다. 시 90:4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하였고, 시 102:26에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 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경질, 초조, 흥분, 혈기, 성급함 대신에 인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다 같이 약 5:7-11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밭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2)소망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실망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부에 실망하고, 교회에 실망하고, 사회에 실망하고,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볼 때 정말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인간에게 비관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때로 후회와 회한이 있으며, 참회와 회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실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각간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3)준비입니다. 농사의 최종 단계는 추수하는 일입니다. 곡식이 익으면 농부는 지체하지 않고 낫을 대어 거두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구원의 경륜이 성취되면 성도들을 모으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심판의 추수 때가 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미 종말이 임하였을 때에 가서야 준비하면 너무 늦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하는 강의 지류에 어느 날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음덩어리 위에는 양 한 마리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커다란 독수리 한마리가 쏜살같이 내려와 발톱을 양털 깊숙이 박고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독수리는 폭포가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폭포소리가 우렁차게 들리자 독수리는 옆을 한번 쳐다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강한 날개를 한번 펴서 창공을 날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얼음이 폭포에 다다랐습니다. 독수리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날개만 푸드득거릴 뿐 날아오르지 못했습니다. 양털 깊이 박힌 발톱이 이미 얼음에 얼어붙은 것입니다. 결국 독수리는 양의 사체와 함께 폭포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가리 아스’라는 사람이 하루는 해골과 대화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해골에게 물었습니다. “네 속에 머물러 있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있습니다.” ‘마가리 아스’는 다시 물었습니다. “네 영혼보다 더 깊은 지옥에 빠진 이는 없느냐?” “구주 예수를 반역한 유대인이 더 깊은 지옥에 빠져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 유대인보다 더 깊은 지옥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도 있는가?” “있고말고요. 그들은 예수의 구원을 알고도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여긴 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 ‘씨 자람의 비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쉼 없이 성장하듯이 개인과 교회는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지만, 우리의 의무와 해야 할 일을 피하면 안 됩니다. 개인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는 전도 혹은 선교를 통해서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자연의 계절은 바야흐로 성장과 성숙의 계절입니다. 이 성장과 성숙의 계절에 우리의 신앙도 반드시 성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는 이 여름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리도록 하십시다. 또한 어린 싹과 같은 새 신자는 잘 보호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수년을 믿었으면서도 어린 싹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이삭에 충실한 곡식 같은 신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꼭꼭 영근 씨라야 재생산이 가능한 것처럼, 알곡 같은 신자라야 재생산이 가능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씨가 뿌려진 다음에는 싹이 트고, 이삭이 나오고, 충실한 곡식이 된 후에는 낫을 대어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추수 때는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들은 농부처럼 인내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가슴 벅찬 소망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준비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송정 중앙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들이 꼭꼭 영근 곡식 같은 신앙의 신자로 성장하여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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