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고절이의 입향조인 무안박씨 애한정 박익경 공과 성명함자가 같은 함양박씨 지겸 박익경 선생의 <애한정기>가 있네요. 이름자는 같아서 혼돈했는데, 살아가는 연대가 달라서 다행히, 간신히(?) 분간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흥미로워서 올려봅니다.^^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정기(愛閑亭記),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삶. 1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원본출처 : https://story.kakao.com/yhkoh85hanmail/FGypmD9fshA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정기(愛閑亭記)>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고전수필이다. 예나 제나 세파에 시달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자 수기지도(修己之道)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조용히 은둔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그중에 한양에서 충북 괴산군 괴강(달천)으로 옮겨와 살던 지겸(知謙) 박익경(朴益卿 1549~1623)이 그러했다. 그는 애한정(愛閑亭) 정자를 짓고서, 오랜 벗인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에게 기문(記文)을 요청했다.
<애한정기(愛閑亭記)>의 줄거리는, ‘세상일에 속박되어 사는 자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무엇인지 몰라 한가로움을 사랑할 줄도 모른다. 사시사철 유유자적하며 여유롭게 지내던 익경(益卿)은 마침내 애한정(愛閑亭)을 짓고 한가로움(閑)과 하나가 되니,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경지에 이르렀다’며 한가로운 삶을 칭송했다.
한편 애한정 주인 박익경(朴益卿)이 예전에 한양 모악산 아래에 살 때, 이웃이었던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이 말하길, ‘애한(愛閑)’은 한가로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한한(閑閑)’은 ‘진실로 한가로움(閑)을 한가롭게(閑) 하는 것이니 참된 한가함을 말한다’면서 정자 이름을 애한(愛閑)에서 한한(閑閑)으로 바꾸어 <한한정기(閑閑亭記)>를 따로 지어 전한다.
○ 현재 애한정(愛閑亭)은 충북 괴산군(槐山郡) 괴산읍 검승리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앞에는 괴강(槐江)이라 불리는 달천이 흐르고 있다. 조선중기 학자 지겸(知謙) 박익경(朴益卿 1549~1623)이 1614년(광해군 6)에 건립한 정자 애한정(愛閑亭)은 정면 6칸, 측면 3칸, 197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선조의 유현(儒賢) 박지겸(朴知謙 1549~1623)이 둔세자오(遯世自娛, 세상을 피하여 스스로 즐김)하던 곳으로 1610년(광해군 2)에 세워 자기의 호를 따서 애한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쪽 괴강교 밑으로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괴강(槐江) 불빛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또 이 정자에는 「愛閑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안에는 광해군 6년(1614년)에 애한정 주인 박지겸(朴知謙)이 지은 ‘애한정기(愛閑亭記)’와 ‘애한정팔경시(愛閑亭八景詩)’를 비롯하여, 현종 15년(1674년)에 우암 송시열이 지은 ‘애한정이창기(愛閑亭移創記)’와 ‘제애한정기첩후(題愛閑亭記帖後), 숙종 38년(1712년)에 조천(鳥川) 정당(鄭棠)이 지은 ‘애한정중수기’, 숙종 44년(1718년)에 송병선이 지은 ‘애한정중수기’, 순조 20년(1820)에 박의화가 지은 ‘애한정게판기’ 등 많은 현판이 있다.
◉ 저자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는 애한정(愛閑亭) 박익경(朴益卿)의 벗으로, 조선중기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한문학의 대가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 · 보만당(保晩堂) · 치암(癡菴) · 추애(秋崖) · 습정(習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의 생애는 어디까지나 조정의 관리로서 소임을 다하는 사대부 문학의 전범(典範)을 보였다. 또한 그의 문장은 장유(張維) · 이식(李植) · 신흠(申欽)과 더불어 이른바 한문사대가로 일컬어졌다. 또 중국어에 능하여 어전통관(御前通官)으로 명나라 사신이나 지원군을 접대할 때에 조선 조정을 대표하며 여러 차례 중요한 외교적 활약을 했다.
◉ 애한정 주인 박지겸(朴知謙 1549~1623)은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맹경(孟卿), 호는 애한정(愛閑亭)이다. 또는 박익경(朴益卿)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부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지은 박세무(朴世茂 1487~1554)이고, 부친은 군수(郡守) 박응립(朴應立)이다. 문목공(文穆公)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가 동생이다. 임진왜란 때 백의로 선조를 의주(義州)까지 호위한 공으로 별좌(別坐)에 올랐다. 광해군 때 낙향하여 아내의 고향인 충북 괴산에 애한정(愛閑亭)을 짓고 살았다. 「묘는 충북 괴산면 대덕리 갈전동에 있으며, 괴산군 화암서원(花巖書院)에 할아버지 박세무와 함께 배향되었다.
● 다음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고전수필 <애한정기(愛閑亭記)>는 조선중기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의 작품이다. 내용은 기승전결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첫 번째 단락에선, 괴산군 괴강(달천)으로 옮겨와 사는 오랜 벗 지겸(知謙) 박익경(朴益卿)이 애한정(愛閑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기문을 요청했다. 이호민(李好閔)이 먼저 시문(詩文)을 지어 이름을 한한정(閑閑亭)’이라 바꾸었다. ‘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愛閑)은 한가로움을 외물(外物)로 인식하게 만든다.
두 번째 단락에선, 한가로움에 일부러 마음을 두는 것은 참으로 한가로운 것이 아니다. 곧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한가로운 것이다. 그래서 이호민이 ‘한한(閑閑)’이라 칭하였다. 세상일에 속박되어 사는 자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한가로움을 사랑할 겨를도 없다.
세 번째 단락에선, 애한정을 지은 박익경(朴益卿)이 번화한 것을 멀리하고 한가로운 것을 사랑하여 계절에 따라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거문고를 타고 낚시를 하며, 책을 읽고 시를 읊는다. 산수를 유람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한가롭게 지낸다.
네 번째 단락에선, 마침내 익경(益卿)은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가로움과 자신이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익경을 위해 <애한정 팔영(愛閑亭八詠)> 따로 지었다며 끝맺었다.
--이어 계속--
느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