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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메시지
2017년 4월 16일 주일
성경본문-사도행전 2:32~36
1. 성경대로 부활에 대하여 이해하기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광복절, 개천절, 삼일절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을 정하여 흐르는 시간에 마디(節)를 정하면서 잠시 멈추어 그 날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온 어떤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너무 사랑하여 귀화신청을 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한국인이 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역사와 풍습,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동안에 광복절을 배운다고 하면, 그에게 무엇을 설명해 주어야 할까요? 먼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제로 나라를 빼앗고 우리 민족을 괴롭힌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광복이 얼마나 기쁜 날이었으며, 이 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수고를 했는지를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열강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에, 한국의 독립을 인정해 주었다는 것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귀화희망자는 광복절에 대해서 점점 깊이 이해하고 그 아픔과 기쁨을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온 어떤 사람이 우리의 역사를 잘 모른다고 합시다. 그는 광복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 중국인은 한자를 잘 아는데 그 날의 의미는 잘 모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광복(光復)은 빛 광(光)에 다시 복(復)자로서 ‘빛이 다시 돌아오다’ 또는 ‘빛을 다시 찾다’는 말입니다. 광복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어떤 사람이 광복절을 ‘빛을 다시 찾은 날’ 또는 ‘두 번째 빛을 갖게 된 날, 즉 호롱불 대신에 새로운 전깃불을 갖게 된 날, 또는 전기가 마을에 들어온 날’로 설명한다면 이는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광복절을 ‘전기가 들어온 날’(?)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오해도 보통 오해가 아닙니다.
부활절(復活節)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부활절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계란 껍질처럼 얇은 것이 되어 우리에게 별 중요성을 부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부활절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의미의 빈곤이라는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자주 듣는 용어인 복음과 십자가, 교회와 은혜, 구원과 하나님 나라, 은혜와 사명 등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쉽게 우리가 아는 상식이라는 계란껍질에 갇히게 되어 금방 깨지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확신이라는 조약돌이 되어, 그것을 잘 사용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능히 넘어뜨릴 수 있는 무기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오늘 다시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며, 이 일은 해마다 갱신(更新)되고 새롭게 해석되고 일신(一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2. 베드로의 관점에서 본 예수님의 부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베드로라는 예수님의 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것이 복음서(福音書)이며, 서신서(書信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서 현장 목격자인 베드로가 우리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살펴보면,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좀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갈릴리의 어부였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유대 나라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邊方)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심이 서울이라면 변방은 함경도나 제주도 또는 남해안 땅끝마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태어나 자란 곳은 그렇게 유대나라의 변방인 갈릴리였으며, 그의 직업은 어부입니다. 당연히 그는 학문을 깊게 쌓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한 예언자가 났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분은 세례 요한인데, 그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를 선포하던 예언자입니다. 이 세례 요한은 낙타의 털로 만든 남루한 옷을 입고 광야에서 메뚜기를 잡아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이한 예언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죄를 회개하고 그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어느 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더 위대한 분이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주는 나와는 달리 불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신발 끈을 묶고 풀어주는 종이 되기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귀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어느 날 청년 한 사람을 보더니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여러분, 제가 전에 말하던 분이 바로 이분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의 머리 위로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임하여 계시지 않습니까? 이분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가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전하신 메시지와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등의 일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선지자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부로 살던 베드로도 어느 날 예수님을 자기 배에 태우고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은 경험을 합니다. 사실 베드로는 경험 많은 어부였지만 그 전날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 자기를 떠나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도 못하고, 성전에도 못 가는 자신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오실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그가 앞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미래의 모습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Simon)인데 그에게 새로운 이름 곧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Peter)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베드로가 본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기적을 보면서, 베드로는 ‘이분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구원자 곧 메시아시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유대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는 정말 신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마중하면서 자기의 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맞아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따르는 선생님이요 주님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그렇게 맞아줄 때, 이제 주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이 오는가 하는 기대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3. 예수님의 죽음과 의심, 그리고 절망
그런데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후 예수님은 백성들의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붙들려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그 자리에 있었지만 예수님이 붙들려 가실 때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왕이시라고 믿은 분이 죽었습니다. 제자들과 늘 함께 하시고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던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짜 메시아’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짜라면 어떻게 그렇게 힘없이 붙들려 죽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면서 ‘다윗과 같은 힘 있는 왕이라야 나라를 제대로 세울 텐데, 결국 또 하나의 ‘사기꾼’ 메시아가 왔다가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문득 자신이 했던 고백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이 하신 모든 일과 기적은 예수님이 바로 구원자시요, 새 나라를 여실 분이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도 잡히셨을 때, 법정에서 재판관과의 심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누가복음 22:66~71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권능을 물려받을 만 왕의 왕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예언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단 7:13~14).
그런데 그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심지어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으신다는 말씀은 어떻게 됩니까? 이 모든 말씀이 거짓입니까? 심지어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에 죽은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어떤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베드로는 의심하면서 사라져버린 꿈과 목표에 실망하여 그만 자기의 고향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꿈으로 고향을 떠났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모든 꿈을 접고 다시 물고기 잡는 어부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붙들리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했던 자신의 초라한 결심을 회상하면서 무거운 그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모든 꿈을 접게 하는 절벽의 끝과도 같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이 증명한 것
그날도 삼 년 전의 그날처럼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날이 밝았습니다. 갈릴리의 차가운 밤공기는 빈 배로 인하여 더욱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려는 그 때, 이른 아침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배를 향하여 소리를 칩니다. “고기 좀 잡았소?” 베드로는 시큰둥하게 대답합니다: “밤새 허탕이요!” 그때 그 남자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배 오른쪽에 그물을 한번 더 던져 보시오!” 이상한 일입니다. 이제 집에 가려는데 저 사람이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니요? 베드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한번만 그물을 던지고 집에 가자고 생각하고는 배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집니다. “자, 한번 던져 보자구. 아니면 그냥 가는 거야!”
베드로는 그물을 잡아 올리다가 뭔가 묵직한 것을 느낍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물에 고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환호성을 울립니다. 그 때 문득 누군가 바닷가에 서 계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시다!”하고 외칩니다. 베드로도 거의 동시에 ‘그렇지! 이런 일을 하실 분은 우리 주님 밖에 없는 거야!’라는 생각에 겉옷을 입고 물에 뛰어듭니다. 첨벙첨벙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숯불을 피워놓고 제자들을 맞아주시면서 생선을 구워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거기서 정말 주님이 다시 사셨음을 확인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베드로를 용서하셨고, 주님의 양들을 잘 돌보라고 맡기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주님이 하시던 일을 자신이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한번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홀연히 나타나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어떤 제자는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함께 음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나면서 정말 부활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동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이요, 예수님께 드렸던 자신의 신앙고백도 사실이며, 예수님을 가짜요 사기꾼이라고 하던 사람들의 말이 모두 틀렸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예수께서 법정에서 하신 말씀 곧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으리라는 말씀도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베드로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메시아시며,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왕이시라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은 사람 열둘을 택하셔서 주님의 나라의 열두 지파를 새롭게 만드셨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세상에 파송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자신을 포함하여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대리인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의 서신을 보면 이렇게 강력한 메시지로 선포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5.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일어난 일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모든 것이 명확해진 베드로와 제자들을 남기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시고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면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때는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이었는데, 천하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그 절기였습니다. 기도를 드린 지 십일 째 되는 날, 마침내 성령이 제자들이 모인 그 방에 임했습니다. 제자들은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성령이 불같이 내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던 때처럼 마음에 평강과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을 살리신 하나님은 예수님이 메시아시라는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왕이 이 세상에 나셨고 그분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면 그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우리처럼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돌아왔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갑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서 점점 부흥하고 복음은 사방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비로소 베드로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던 멋진 삶,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로마 장교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그와 온 가정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마리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삼천 명의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게도 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진정한 베드로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전했으며,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어리고 약한 영혼들을 돌보고 도와주며 그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이 하시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박해가 일어납니다. 어떤 제자는 칼에 죽기도 하고 어떤 제자들은 돌에 맞아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중단 없이 전파되었고, 제자들은 자신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자신들을 통해서 계속 세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확신하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사실임을 확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성령으로 예수님이 함께 하시며 일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요,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서 성령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확증시켜 준 것입니다.
6. 부활절에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일
오늘 부활절에 우리는 어김없이 계란을 먹으며 부활절임을 알리기 위해 계란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내려오는 부활절 풍습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절에 우리가 잊지 말고 계속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 말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맡을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하나님이 확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밝히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지금도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이 오순절 날 베드로가 목소리 높여 외친 말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사도행전 2:36)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날입니다. 그 말은 지금 온 세상의 주인이자 왕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그 거룩한 교회의 머리시며,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온 세상이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예수님을 세상에 나타낼 대리인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베드로가 본 예수님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가 따랐던 예수님, 그가 보았던 기적들, 그리고 그가 보았던 예수님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겪게 된 의심과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 그리고 옛 삶으로 돌아가 버린 시간들, 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회복된 모든 진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베드로가 있다면 그는 이렇게 소리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입니다. 그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정말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아니,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알리고 나타낼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주님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 밝히 보여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이 하나님 나라에 여러분도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새소망교회는 매주 이렇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세워가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명확히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세우시려고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의 삶을 드려 그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입니다. 이 위대한 일이 시작된 날이 바로 부활의 아침이요, 이 영광스러운 일이 완성되는 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영광의 아침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믿음과 소망으로 이 부활절 아침을 기뻐하며 베드로처럼 다 같이 외칩시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