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사람에게 시집은 좋은 선물이다. 그래서 받으면 어쨌든 기분이 좋다. 당연히 사서 봐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사서 보는 시집보다 선물 받는 시집이 더 많아졌다. 물론 품앗이처럼 이게 갚아야하는 빚이다. 그런데 빚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또 뭔가. 어쨌든 일면식도 없는 시인에게 시집을 받으면 주시는 성의가 고마워서 한 편 한 편 끝까지 다 읽어본다.
시가 가을날 추수하는 곡식보다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시를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대다수 아마추어 시인들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어렵게 시를 써도 자비로 출판을 해야 하고 의례 시집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닌 것처럼 공짜로 여기저기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공짜라 달라는 사람 얘기는 이승하 시인의 어느 글에서 읽은 것이다. 이승하 시인에게도 누가 시집을 그냥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자진해서 주면 모를까 시에 대해서 개뿔도 모르는 사람이 너도나도 달라고 하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다.
뭐 어쩌면 시 역시 생계가 아닌 취미생활이라면 돈을 투자해야하는 것이 맞기는 맞다. 다른 것을 취미로 가져도 돈이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취미활동인 등산, 축구, 배드민턴 낚시, 자전거 등 어떤 취미활동을 해도 돈이 들어간다. 다만 적고 많고의 차이가 있을 뿐. 시가 다른 어떤 취미와 특별히 다른 것은 없지만 그나마 조금의 위로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불러주는 고상한 취미이기는 하다.
제목이 말하는 ‘누나가 주고 간 시’ 이 시의 본질은 시집을 내는데 돈이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 쓰기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시인들이 시가 안 써지면 귀신에게 접신도 하고 시 하나 주옵소서 누군지도 모를 대상에게 구걸을 하기 도 한다. 해서 누나가 주고 간 시처럼 생각지도 않게 어쩌다 시가 대어처럼 걸려들면 한량없이 기쁜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 ‘시’는 연인이자 애인, 오르고 싶은 나무, 늘 가까이 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던가... -정호순
첫댓글 ㅇk
전
술한잔
중얼대며
혼자 걷기도 해요
그게 인생이요
삶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