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승혜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앱이라고 합니다. 2020년에 석사 과정을 위해 독일 뮌헨에 왔고, 졸업 후 베를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일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독일에 계속 살 계획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탄소 배출권 관련 일을 했는데 국내 정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유럽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어서 기술과 정치 관련 전공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원래는 영국을 고려했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으로 가는 게 맞을까 고민하던 중 주변에서 독일과 친숙해지는 계기가 많이 생겼어요. 독일 상사와 함께 일하게 되었고, 독일에서 공부한 친구들도 독일어가 안 되어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경험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에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졸업 후 지금 회사에 바로 취업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일에 계속 머물게 됐어요.
독일 생활은 어떠신가요?
독일어를 못해도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을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독일 시민들의 환경과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들어서 실제로 주민들과 이야기하면서 경험하고 싶었는데 결국, 저도 영어를 할 줄 알고,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버블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요즘 뒤늦게라도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코로나 시기에 유학하며 대학 생활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독일의 디지털화가 빨라져서 도움받은 부분도 있어요. 다만 택배 시스템과 대중교통의 잦은 지연은 아직도 적응이 안 돼요. 뮌헨에서 베를린으로 이사할 때 큰 짐 네 개를 택배로 보냈는데, 하나는 파손되고, 하나는 분실되고, 하나는 엉뚱한 곳으로 가고… 결국 짐을 받는 데 두세 달이 걸렸어요. 한국에서는 택배나 배달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 있는데, 그건 물론 배달 노동자들의 건강을 침해하면서 일어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런 편리한 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면서 두 나라의 가치관 차이를 많이 느꼈어요.
한국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고 저도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와 양당 구도가 아닌 다양한 정당이 존재해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제가 다니던 대학원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이런 점이 녹유 참여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한국에서는 이미 환경 관련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정치 활동까지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기도 해서 환경 NGO 후원 정도만 했었어요.
그러다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당이나 정치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논하는 분위기에도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녹색당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2020년부터 녹유 메일링과 똑녹유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녹유 활동을 시작한 건 2024년 1월쯤이었어요. 똑녹유 잠정 중단 전 마지막 뉴스레터에서 다양한 소모임과 활동을 세세하고 다정하게 소개한 글을 읽고 관심이 생겼어요. 저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한국 분들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요. 당원이 아니어도 모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고, 이후 페미니즘 모임, 총회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만약 그 뉴스레터를 지나쳤다면 가입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정당 정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겨서라기보다는, 가볍게 모임에 참여해 볼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국내/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보다 제 개인적 차원의 정치참여에 대한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어요. 현재는 이민자로서 유럽 정치에 직접적인 투표권은 없지만, 그럼에도 녹색 정치에 대한 제 입장도 모임을 통해 점점 재정립해 나가는 중이에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한국에서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좀 더 확장된 형태로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한국 배출권 거래제도 관련 컨설팅 업무를 주로 했고, 지금은 배출권 스탠다드를 만드는 비정부기관에서 일하면서 이 기준이 실제 사업들에 잘 적용되는지 검토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환경 정책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느껴 독일로 왔는데, 막상 공부하며 각국의 정책 결정도 기대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현재 기관은 탄소 배출권 사업이 단순히 시장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환경 보호와 현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더 체계적이고 엄격하게 다루고 있어서 가치관이 잘 맞아 만족하며 일하고 있어요.
현재 하시는 일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가장 큰 단점은 100% 원격 근무로 회사 동료들과 직접 교류할 기회가 없고 지역 사회와 연결될 기회가 없는 점이에요. 베를린은 저에게 새로운 곳인데 회사 동료들이 아닌 밖에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니 추가적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죠.
또한, 실제 탄소배출 감축 사업들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쉬워요. 한국에서 일할 때는 한국 기업들이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에서 진행하는 쿡스토브나 물 정화 프로젝트 등 사업들을 현장에서 직접 볼 기회가 많았어요. 현재는 사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설계되게끔 한다는 점은 만족스럽지만, 직접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보다는 문서로만 접하는 점이 아쉬워요.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이 나중에 더 현장에서 활동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한국 정부가 세운 기준에 맞춰 컨설팅을 제공했다면, 지금은 더 엄격한 스탠다드를 적용하는 기관과 일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어요. 언젠가 현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지금의 경험이 사업들의 더 다양한 면을 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환경 문제에 있어서 기술과 정책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석사 때 학과에 절반 정도는 정치학, 절반 정도는 공학이나 컴퓨터 과학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었어요. 후자의 학생들은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과 AI에 대한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환경 정책과 에너지 전환에 관심이 많아서 이 과정을 선택했는데, 학과과정에서 AI의 비중이 이렇게 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학교에서도 AI와 정책 관련 과목을 많이 개설했고, 졸업 후 AI 정책을 전담하는 학과가 따로 분리되어 신설된 것을 보면서, AI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현재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AI의 도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지금은 관련 문서를 PDF로 제출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읽고 검토해야 하지만, AI가 도입되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을 거예요. 휴먼 에러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아직은 시스템이 많이 디지털화되지 않아서 갈 길이 멀지만, 디지털 모니터링을 위한 파일럿 사업도 진행 중이라 점차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올해 녹유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나요? 또는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올해 총회가 특히 기대돼요. 작년보다 길게 진행될 예정이고, 장소도 검은 숲이 후보로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사실 제가 독일에 온 이유 중 하나가 환경 이슈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서였는데, 아직 환경 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를 가보지 못했거든요. 녹유에서 그곳에서의 총회를 기획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서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또, 매주 열리는 모임에도 더 자주 참여하고 싶어요. 요즘 잘 못 가고 있어서 아쉬운데, 그 모임에서 얻는 에너지와 소소한 이야기들이 정말 좋거든요. 올해는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