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폭설이 준 선물
김 도 희
첫눈이 내렸습니다.
오, 오!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이 오면 만나자는 약속이 없어서 어느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펑펑 쏟아 붓는 눈을 바라보며 예상치 못하게 쌓이는 폭설이 놀랍습니다.
첫눈은 '살포시 조용하게'란 생각을 언제 심어놓았을까요? 몰랐던 생각을 발견합니다.
친구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작은 아들 결혼식을 말하며 갑자기 내린 눈이 추위로 느껴집니다. 추운 것을 무서워하는 친구는 내리는 폭설을 보고 결혼식에 입고 올 따뜻한 새 옷을 장만했다는 말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한 달 전에 광주에 사는 동생의 둘째가 시집을 갔습니다. 날이 포근하고 화창했습니다. 함께 간 아들이 자기 결혼식 날도 날씨가 따뜻하면 좋겠다고 지나듯 말했습니다.
좋은 날이길 바라는, 하늘의 축하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을 들었습니다.
펑, 펑,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는 눈을 보며 아들을 생각합니다. 혹시 끝도 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아들 마음에 걱정이 앉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엄마 마음은 앞설 때가 있습니다. 아들 목소리가 활기찹니다. 금세 근심이 날아갑니다.
어제 눈이 많이 내리니, 전화로 친구는 외출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에 그 말을 간직합니다. 나가지 말라는 말이 맴돌아서, 그리고 굳이 나갈 일이 없기에 집에서 지냈습니다.
오늘은 나가보기로 합니다. 어릴 때 무릎까지 차오른 눈높이만큼 쌓인 눈을 그냥 밟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는 것도 아깝고 집 앞의 눈도 치우고 싶습니다.
치울 장소가 넓지는 않지만 거의 30cm는 될 것 같이 쌓인 눈을 삽으로 떠서 길을 내었습니다. 다행히 눈이 다져지지 않아서 눈 치우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어제 펑펑 내리는 눈을 시장 근처에 사시는 지인이 할머니들 눈 치우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어서 아픈 허리로 나가서 함께 눈을 치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픈 허리가 느껴졌습니다. 아파보아서 요통이 어떻다는 걸 경험해 보았습니다. 힘은 허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통증에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함께 힘을 모은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평소 아픈 허리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 것을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오늘 내가 치운 눈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30여 분 걸렸습니다. 쌓인 눈을 치우는 동안 엉거주춤 허리에서 힘을 길어 올리며 속에서 기쁨이 차 올랐습니다.
앉아도, 누워도, 서도 고통스럽던 요통을 꽤 긴 날들을 경험하며 지나온 날들이 있어서입니다. 바닥에 쌓인 한 자가 넘는 눈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고맙고 기뻤습니다. 아파 보아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작년 겨울, 집에 생명을 들였습니다. 전에는 잘 건사하지 못해서 감히 들이려 하지 않은 화초를 한번 같이 살아보자 한 겁니다. 겨울에는 집이 춥고 직장 생활로 화초에게 까지 마음을 쓸 여유가 없는 것도 이유였습니다.
정년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입니다. 식물을 집에 들여 살아보기로 한 겁니다. 다행히 생명은 유지됩니다만, 활기차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 가까운 학의천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다가 화초에 줍니다. 좀 더 화초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물을 길어 오고 때맞춰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고 살핍니다. 작은 화초지만 서로 느낌을 주고 받습니다. 화초에게 줄 물이 떨어져서 개천으로 물을 길으러 가야 합니다.
세상에나, 눈이 많이 오긴 했습니다. 포크레인 중장비가 출동해서 도로의 눈을 긁어 모아 큰 트럭에 싣고 있습니다. 중장비가 동원되어 도로의 눈을 치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나 궁금합니다. 골목에는 쌓인 눈이 자동차의 바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세워진 자동차 바퀴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냅니다. 트럭도 갈 길을 못 가고 빈 바퀴만 돌립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가락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걷습니다.
잠시라도 발가락을 의식하지 않으면 자동차 바퀴가 헛돌듯 미끄러지려고 합니다. 의식을 깨웁니다.
개천가 둑에 살고 있는 커다란 살구나무는 한꺼번에 내린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굵은 가지를 찢어서 무게를 덜었습니다. 엊그제까지 곱던 붉은 단풍은 눈 속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이미 낙엽으로 작정한 단풍이니 무엇인들 기쁘지 않겠습니까?
개천으로 내려갈 계단이 위험해 보입니다. 잘못하면 미끄러질 텐데 하며 겁이 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끌, 살짝 미끄러집니다. 귀신 같습니다. 이렇게 내 속을 들켰습니다.
마음을 다잡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며 차분하게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습니다. 앞선 발자국에 발을 놓습니다. 안정됩니다.
눈이 없을 때는 물을 페트병에 담기 쉬웠는데, 동안의 가뭄으로 물이 바닥에 가깝고 많이 내린 눈이 길을 덮어버렸습니다.
발을 이용해서 눈을 치웁니다. 몸을 낮게 숙이고 발을 물 가까이 디딜 곳을 찾아야 합니다. 눈을 툭툭 발로 차냅니다. 그리고 물 가까운 곳의 납작한 돌에 발을 놓습니다. 물을 넣기 위해 몸을 숙여도 무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거꾸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여기서도 겁에 질리면 흔들립니다. 다시 마음을 봅니다. 집중하고 차분하게 대상과 하나가 되고 마음을 엽니다.
흐르는 물이 가져간 패트 병 안으로 들어옵니다. 내 화초가 될 것입니다. 화초가 내 놓는 산소를 나는, 나도 모르게 호흡할 것이고 작은 화초도 나를 들이마실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쌓인 눈으로 모든 놀이기구가 눈에 덮힌 놀이터, 아니 요즘은 소공원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이 놀이기구도 있고 어른을 위한 운동기구도 있습니다.
형제인 초등학생 1학년과 3학년의 두 아이가 폭설로 온통 하얀 세상이 되어버린 소공원에서 놀고 있습니다. 둘 뿐입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많이 내린 폭설 덕분에 새로운 일상을 삽니다. 커다랗게 눈을 굴려서 한 곳에 모아놓은 형제는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습니다. 장갑도 없이 맨 손입니다. 걱정의 말을 건네니,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어 빨개진 두 손을 문지릅니다.
궁금해집니다. 친구들도 없는데 여기서 노느냐, 물어봅니다. 친구들은 아마도 게임하며 놀겠죠, 대답합니다. 정말 그러겠다, 맞장구를 칩니다.
학교에 정전이 되어서 등교하지 못한 폭설이 준 휴교랍니다.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답니다. 눈을 굴려 눈덩이는 만들었는데 눈덩이를 눈덩이 위에 올리지 못한 것일까요? 커다란 눈덩이 세 개를 가리킵니다. 동생은 굴려 만든 커다란 눈덩이 위에 올라가서 미끄럼을 타듯 몸을 눕히고 기댑니다.
엄마 아빠는 집에서 누워 잔다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려다가 자동차가 눈이 많이 와서 앞 바퀴만 빙빙 헛바퀴를 돌아서 출근을 못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집에 계셔서 좋다고 합니다. 폭설이 내려서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맞다! 선물이구나! 불편도 있고 할 일을 못 하기도 하지만, 뜻밖에 하늘이 하는 일을 너희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즐길 수 있는 소풍이고 선물이구나.
첫눈, 폭설이 준 선물을 형제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빨개진 손으로 노는 것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늘 남의 집 일을 다니셨던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집에서 우리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어른 들이야 비 오는 날을 궂은 날이라 말했지만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나는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선물이었습니다.
김도희 2021년 시와 문화 등단 rag12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