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십수 번씩은 농원 안길을 걸어 오르내립니다. 닭장이나 밭에 갈 때는 물론이고 우편함의 우편이나 택배물을 가져오기 위해서도 오르내립니다. 정확하게는 내려갔다가 올라온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듯한데요. 집이 대문으로부터 약 200m쯤의 농원 안길 아래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산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산책은 작은 도랑을 따라서 나 있는 농원 안길의 주위와 작은 텃밭들 사이사이로 나 있는 좁은 오솔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오솔길까지를 합하면 농원 안길은 모두 1km쯤의 거리가 됩니다.
농원의 길을 걷는 시간을 어림잡아 헤아려본다면 하루 평균 약 2시간, 낮에 활동하는 시간의 약 1/5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농원을 걷는 시간의 약 절반은 일을 위해서입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텃밭과 꽃밭, 안길 화단을 가꾸려면 일의 시작과 끝은 물론 이런저런 필요에 따라 몇 번이고 길을 오르내려야 합니다. 보통은 맥고모자를 쓰고 한두 개의 연장을 들고 일터로 향합니다. 이곳저곳으로 종종걸음을 칩니다. 때로는 퇴비나 농작물 따위의 짐을 실은 수레를 끌어야 합니다.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절반의 걷기는 오직 걷기 위한 것입니다. 산책입니다. 아침을 깨서 집 문을 열고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일이 아침 산책입니다. 한여름에는 5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각에 시작하는 때도 있고, 한겨울에는 7시 반쯤은 돼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동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는 산책의 동선이 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농원 안길을 위로 아래로 텃밭이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고는 했습니다. 텃밭에서 가꾸고 있는 것들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고는 했습니다. 또 가슴을 벌려 아침 공기를 깊숙이 들여 마시기도 하고 한결같지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이제는 대문 밖으로 나서서 더 많은 것들과 만납니다. 늘 같은 모습으로 자리해 있는 길가에 선 나무, 무성한 풀, 우뚝한 산봉우리와 그 산록을 스치듯 바라보기도, 들려오는 온갖 소리를 흘리듯 귀에 담기도 합니다.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오늘의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합니다.
닭, 고양이와 개를 키우기 시작하고 나서는 산책의 횟수와 그 패턴도 적잖이 변했습니다. 우선 산책의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고양이나 개를 데리고 산책에 나서는 일이 아침은 물론 점심, 저녁 후에 한 번씩 최소한 두 차례가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하면서는 고양이와 함께 산책길에 나서고는 했는데, 개를 기르기 시작하고서는 더 잘 따르는 개와 함께 길을 나섭니다. 5달이 조금 넘은 아직은 강아지인 진돗개 ‘산이’는 앞장서 길을 갑니다.
마당에 있는 산이의 집 앞에서 시작되는 산책은 먼저 닭장을 향합니다. 닭장 문을 열어주고 길을 내려가서 대문 밖까지 나갑니다. 대문 앞 삼거리길에서는 때로는 마을 아래쪽으로 또 때로는 마을 위쪽으로 발걸음을 정합니다. 보통은 마을이 있는 아래쪽으로 방향을 잡고 작은 사찰이 있는 밭 자락을 지나 몇몇 집들이 있는 곳까지 걷습니다. 길가의 작은 공터에 이르러서는 그곳서 간단하게 몸을 풀기도 하고 좀 쉰 다음에 길을 되돌아옵니다. 언제나 앞서가는 산이는 천천히 뒤따라오는 나를 뒤돌아보며 확인하고는 다시 앞쪽으로 달려갑니다. 대문을 들어서서는 삼거리길에서 건너 언덕의 밭 가장자리 길을 올라 한참을 걷습니다. 의례 정해진 길을 따라 산이는 언제나 앞서갑니다.
이렇듯 걷는 아침이나 저녁 산책에는 30분쯤의 시간이 걸립니다. 점심 무렵에 하는 산책은 좀 가까운 길을 짧게 걷고요. 이제는 혼자서 하는 고독한 산책이 아니라 나의 반려견 '산이'와 함께 하는 가벼운 산보(散步)가 되었습니다.
『산책의 숲 - 봄․여름․가을․겨울』. 수필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처녀 출간한 수필집(도서출판 도솔刊)의 타이틀입니다. 도시에 있던 집과 직장 인근의 산 숲을 찾아 오솔길을 걸으며 느끼고, 때로는 풀과 나무를 스케치한 것을 모아서 책으로 펴낸 것인데요. 그게 2004년이니까 2000년에 이곳 농원을 마련한 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말이면 찾았던 이곳에서의 생각과 느낌도 거기에 담겨있다고 해야 할 듯싶습니다. 한결같은 나의 자연 사랑과 가꿈에 대한 소망을 키우고 확인하는 것이지요. 숲이나 다름이 없는 이곳 농원에서의 산책은 내가 도시에서 찾던 인근의 숲속으로의 산책을 일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걷는다』(2003 효형출판刊) 라는 제목의 3권이 한 질인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사람이「르 피가로」,「파리 마치」등 프랑스 유수 신문과 잡지사의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뒤 은퇴하고 나서 이스탄불(Istanbul)에서 시안(西安)까지 장장 1만 2,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4년에 걸쳐 오로지 걸어서 여행한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그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 나는 걷는다. 왜냐하면 한쪽 손이, 아니 그보다 알 수 없는 만큼 신비한 한 번의 호흡이 등 뒤에서 나를 떠밀고 있기 때문에...”. 걷는 것은 매 순간 우리를 신비로운 세상으로 안내해 줍니다. 작은 공간에서일지라도 거니는 것은 내게 늘 새로움을 가져다줍니다.
불과 2살의 나이에 열병을 앓고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는 그녀의 50대 초에『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녀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음의 눈으로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읽어냈습니다. 그녀는 그 글에서 첫날에는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후에는 숲으로 긴 산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날은 여명과 함께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황홀한 기적을 지켜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 주위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것들, 무엇보다도 기적과도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homo sapiens)은 서서 걸을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똑바로 선 사람의 특권을 물려받았습니다. 영장류 중에서도 인류만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걷는 자유로움도 선사 받았습니다. 걷는 것은 그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인간만이 지니는 특권을 향유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는 공기와도 같이 너무 흔하고 자연스럽고 또 본능적이어서 그 소중함을 잊게 되는 것과도 같은 걷기.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매일 기적과도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하루의 일과를 아침 산책의 걷기로 시작했습니다. 방금 아침 산책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숨을 쉬는 한 아마도 나의 걷기는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걷기가 극히 사사롭고 보잘것없는 이 시골구석이지만, 내 노년의 공간인 이곳 농원에서이길 소망합니다. (2024.11.23.)
첫댓글 걸을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죠. 한 때 허리가 아파 걷는 게 불편했던 적이 있었죠. 그때를 반성하여 지금은 걷기를 통하여 건강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걷기는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활력을 보하는데 너무 좋은 수단이죠. 기발한 어이디어가 떠오르고 같은 코스라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최근 나처럼 유목생활하는 자가 주변 적응을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걷기뿐이지요. 순우의 걷기 예찬론....적극 동의합니다. 강원도 산골냄새가 아주 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