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농촌 보건소 방문기
집 근처에 보건소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면사무소 내에 있다. 면사무소에 있는 보건소는 시설과 규모가 수준급이고 양의사와 한의사가 각각 1영 씩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쪽으로 1.5km 떨어진 화천리라는 마을에 있는 조그만 보건소로 보건소장 1명이 있고, 보건소장은 의사가 아닌 듯 했다. 화천리 보건소 근처에는 다른 의료기관은 없다. 어쩌다 두 군데에서 진료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 해 여름, 옆집에서 점심에 매운탕을 같이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 깊이 걸려 빠지지 않고 많이 불편해 병원에 가서 빼야할 상황인 듯 했다. 먼저 면사무소에 있는 보건소에 갔다. 보건소는 진료 받는 사람이 없어 한가했다. 접수를 보는 분께 상황을 설명하니 보건소에서는 이비인후과 진료는 못하니 근처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5km 쯤 떨어진 예산 신례원의 명지병원에 갔다. 명지병원에서도 이비인후과가 없어 가시를 뽑을 수 없으니 예산 읍내의 이비인후과에 가보라며 의원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다. 4km 정도 떨어진 예산읍의 이비인후과를 찾아가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의사선생님이 상을 당해 의원 문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예산읍에는 이비인후과가 이곳 하나뿐이라고 한다. 참 난감했다. 처음부터 조금 멀더라도 아산 시내 쪽으로 갔으면 병의원이 많아 쉽게 가시를 뽑을 수 있을 텐데.... 후회되고, 목은 아프고, 덥고, 짜증이 많이 낳다. 왜 도고까지 와서 이 고생인가....
그 때 퍼뜩 이비인후과를 찾아 올 때 근처에서 본 의원 간판이 생각났다. 간판에 내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건강검진 등 여러 가지를 쓴 의원이었다. 급하게 찾아가 진료 신청을 하고 목에 가시 걸린 이야기를 하니 뽑아 주겠다고 하였다. 이미 오후 시간이 많이 흘러 잘못하면 천안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할지 모르고 대학병원에 가서도 전문의가 없어 고생이 많을 것이니, 자신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아니고 장비가 부족하지만 해보겠다고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쓰는 것보다 짧은 장비로 15분간의 사투 끝에 겨우 가시를 뽑아내었다. 가시가 강해 많이 아팠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시가 뽑히니 목이 그렇게 편할 수 없고,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환자 입장에서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주 주려는 진짜 훌륭한 의사를 예산에서 만난 것이었다. 감사 인사를 여러 번 드리고 집에 오니 긴 여름 오후나 다 끝나가고 있었다.
두 번째 보건소 방문은 작년 늦가을이었다. 가벼운 배탈이 나 속이 조금 불편하였다. 이틀 후 아산 병원에 다른 일로 예약이 되어 있어 그 때까지 참으려니 편치 못했다. 화천리에 있는 조그만 보건소에서는 주변에 약국이 없어 약까지 보건소에서 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보건소 구경 겸하여 찾아 가보니 환자는 없고 보건소장님은 조용히 독서 중이었다. 증세를 설명하고 약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증세가 장염일지 모르고 장염은 위험할 수 있으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였다. 지금 증세가 심하지 않고, 혹시 심해지면 내가 시내 병원에 바로 갈 것인데 일단은 약을 주면 고맙겠다고 사정하여 1일치 약을 받았다. 약을 먹으니 속이 좀 편해 졌다.
예전에 농촌에 병의원이 부족하고 교통이 불편할 때는 농촌의 보건소가 지역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외딴 섬이나 산간 오지의 보건소는 확실한 존재 이유가 있다. 그러나 내가 사는 도고 정도의 농촌지역에서는 차로 몇 분만 더 가면 다른 의료기관이 많이 있어 보건소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현재 농촌 보건소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수준은 예전 약국과 비슷해 애매한 것 같다. 이런 보건소 유지를 위해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 등에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그 예산을 타 복지 부분에 사용하고 인력을 다른 곳에 활용하면 훨씬 효율적일 듯하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보건소가 주는 특별한 혜택은 사라지고, 오히려 민간 의원 등의 영업을 어렵게 하는 면도 있다. 면사무소에 있는 보건소 가까이에는 일반의원이 하나 있다. 보건소와 어렵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처에 한의원도 있었는데 폐업을 했다고 한다. 폐업 이유가 보건소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보건소에 가면 진료비가 좀 싸지만 의료보험 환자에게는 큰 차이가 아니다.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만성 질환 환자에게는 보건소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응급환자나 조금만 특별한 병을 가진 환자는 앞의 사례와 같이 보건소에서 진료 받을 것이 없다. 야간이나 주말에는 보건소도 열지 않는다. 119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보건소에 배치되어 있는 의사는 공중보건의로 군대 대신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보건소에서 하는 일은 내가 사는 도고에서 보면 참 편해 보인다. 면사무소에 일이 있어 갈 때 보건소에 들려보면 환자 구경이 힘들기 때문이다.
보건소와 공중보건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여야 한다. 한국은 의사가 크게 부족해 응급진료 등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나라이다. 우선 화천리 보건소와 같이 주변에 의원과 약국이 없는 곳에는 보건소장으로 공중보건의를 배치해 간단한 질병은 바로 진료와 투약이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반대로 면사무소에 있는 보건소와 같이 가까이 민간 의료기관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에서 귀한 의사를 둘 필요가 없다.
의사는 더 중요한 곳에서 일 해야 한다. 대신 경험이 많은 간호사나 의료 행정가를 배치해 건강 상담을 해주거나 물리치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목에 가시가 걸린 사람이 왔을 때, 이런 경우는 이비인후과로 가야하고 근처에 이비인후과가 없으니 아산 시내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만 받아도 사람들은 고생을 덜 한다. 그리고 응급상황 발생 시에는 근처 큰 병원으로의 이송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건소 보다 농촌지역의 119시스템을 더 촘촘하게 운영하여야 한다.
타성에 젖어 예전대로 운영되는 보건소 시스템을 바꾸어 보자. 농촌에서 사람 살기가 편해진다. 이러한 조그만 개혁이 쌓이면 국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이 개선되고, 국가 예산도 줄고, 일자리도 늘 수 있다. 찾아보면 한국의 공공 서비스 중에는 개혁되어야 할 것이 많다.
첫댓글 체험에서 우러나온 의견 공감^^ 그런데 예전에는 동네병원 의사 선생님이 목에 가시를 쉽게 제거했죠. 그런데 지금 못하는 이유는 의사의 진료 경험 부족과 의료사고에 대한 공포심일 것입니다. 공중보건의사는 제시한 의견대로 의료서비스가 낮은 지역에 보낼 뿐더러 적어도 인턴과정은 거친 경력의사로 보내면 어떨까요? 또한 의료사고에 대한 처벌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의사의 심적 부담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 작은 것들이 좋은 쪽으로 바뀌어가면 희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