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아주기> (소아과 의사 최연호 지음, 글항아리 펴냄) 중에서
“나심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사람이 살아오며 알게 된 인류의 오래된 지혜 아홉 가지를 나열했다. 하나, 인지 부조화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정리한 이론인데 기존의 믿음에 배치되는 현실을 부정하는 사고나 자기가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맛없는 신 포도라고 판단하는 사고를 가리킨다. 둘, 부정의 길이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보다 무엇이 틀렸는지를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셋, 현실 참여와 책임이다. 외국의 속담에 “타인의 치아로 씹을 수는 없다” “가려운 곳을 가장 잘 긁을 수 있는 것은 내 손톱이다”라는 것이 있다. 넷, 반취약성이다. 키케로는 정신을 놓으면 벌에게 쏘일 수 있다고 했다. 다섯, 시간의 중요성이다. 손안의 새 한 마리가 나무 위의 새 열 마리보다 낫다. 여섯, 집단 광기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개인으로 있을 때는 광기가 발현되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집단, 당파, 국가 수준에서는 빈번하게 광기가 발현된다.” 일곱, 적은 게 많은 것이다. 굳이 해외 사례를 들지 않아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우리의 한자 성어가 있다. 여덟, 과신하지 말라. 고대 그리스 시인은 확신에 모든 것을 잃었고 경계심에 모든 것을 지켜냈다고 말했다. 아홉, 손실 기피 성향이다. 이익에 따른 기쁨의 크기보다 손실에 따른 고통의 크기가 더 크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의원병은 주로 더할 때 나타난다.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추가할 때 벌어진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후회가 더 크기 때문에 행동을 하게 되고 그 컨트롤은 어설픈 개입으로 종결지어지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명언처럼 “완벽하다는 것은 무엇을 덧붙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인간이 사는 곳은 ‘지금’이다. 어제도 살았고 내일도 살겠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인간의 뇌가 세상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기준점이 된다. 대니얼 길버트는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인간의 경향성을 ‘현재주의presentism’라고 칭했다. 인간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그려볼 때 ‘채워넣기filling-in’라는 실수를 하는데 그 재료는 항상 ‘현재’라는 것이다. 현재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과거 회상과 미래 예측에 투사되기 때문에 정확한 과거의 기억을 해낼 수 없으며 가능성 높은 미래를 상상해낼 수 없게 된다. 대니얼 길버트는 과거 기억의 빈 공간을 현재의 경험으로 채우는 경향성은 특히 우리의 과거 감정을 기억할 때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또한 우리의 상상은 현재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이는 상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미래를 상상해본다는 것은 사실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다.”
“기억은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이고 사실 적당한 양의 기억도 나름의 한계가 있어 또 문제가 된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의 대니얼 섹터 교수는 인간이 보이는 기억의 오류를 7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망각에 의한 것으로 일시성(기억을 소환하는 접근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감소하는 것을 말하는데 초기에는 구체적이었던 기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구성되면서 점점 일반적인 기억으로 변함), 방심(주의를 안 했기 때문에 기억을 잘 못하는 것), 그리고 차단(기억 속에 있는 정보를 빼내는 것에 실패하는 경우)이 있고, 왜곡이나 부정확한 것으로는 오귀인(정확한 기억의 출처 혼동), 암시성(개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에 외부로부터 받은 잘못된 정보가 통합되어 원래의 기억이 바뀌는 현상), 편향(인간은 현재 알고 있거나 믿는 것에 일치시키기 위해 과거 기억을 일관된 것으로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대니얼 섹터 교수의 7가지 기억의 오류 중 마지막은 집착이다. 이것은 자신이 잊고 싶은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 자꾸만 병적으로 떠오르는 오류다.”
“우리는 망각과 함께 살고 있다. 오히려 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대척점에 망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우리는 왼손에 기억을 오른손에 망각을 들고 있는 것이다. 망각의 기술은 없다. 아니 망각이 기술이다. 망각을 하면서 더 즐겁고 더 아름다운 좋은 기억을 많이 채워넣는 것이 기술이다. 좋은 경험을 자주 하고 좋은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면 왜곡되는 기억에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편에 서 있다. 우리는 믿지 못해서 두려워한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사실 두려움이다. 옥시토신은 종교적인 믿음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 지구상에 종교가 탄생하게 된 진화적인 이유가 바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은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게 되고 종교는 다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강화시킨다. 영성은 자신을 초월하며 더 높고 더 고귀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제를 말한다. 뇌 안에서 이러한 삶의 자세를 관장하는 호르몬이 바로 옥시토신이다. 두려움이 믿음을 만났을 때 확실한 승자는 믿음이다.”
“나는 행복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불러서 행복한 것이다.” 나심 탈레브는 ‘호르메시스hormesis’를 언급했다. 독이 강하면 인체에 들어와 사람을 사망하게 만들겠지만 소량의 독, 즉 유해 물질은 신체에 자극을 주어 스트레스에 대응하게 만든다. 우리 몸은 직접적으로 방어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비해 방어력을 증강시켜놓기도 한다.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프래질’한 사람과 ‘안티프래질’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결국 내 몸이 자각하고 반응하는 것에 따라 누구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되고 누구는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 되는 것이다. ‘외상후 성장’은 시련을 딛고 이겨나가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지칭한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소통하려는 도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변화된 자신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과정에서의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은 타인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겠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한강 지음, 문학동네 펴냄) 중에서
“언젠가 읽었다. 우리들 각자는 평생에 걸쳐 한 사람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행동을 지시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며 울고 웃는다고. 그 사람이란 바로 우리 자신이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이 감시자이자 감시당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