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後百済(今 全州)
後百済(今 全州)
後百済는 甄萱의 도읍한 땅 곧 金州이니 三国史에 甄萱은 尙州 加恩県人이라. 体貌가 雄奇하고 志気가 個儻하니 軍을 徙하여 西南海防에 赴하였다가 労로서 裨将이 되었다.
新羅真聖王 六年에 群盜가 蜂起하니 萱이 徒侶를 嘯聚하여 京師의 西南州県을 칠 때 가는 곳마다 響応하여 드디어 武珍州을 엄습하고 完山(今 全州)에 都하여 스스로 後百済 王이라 称하고 侦를 唐에 遣하여 藩을 称하였다.
輿地勝覽에 全州 北五里에 옛 土城이 있으니 甄萱의 築한 곳이라 하더라.
往事悠々疽背翁
繽紛紅葉大城東
可憐探獻金山寺
亡国何関絕影聽
往事가 悠々한 疽背翁이여.
繽紛한 紅葉이 옛 城東이로다.
可憐하다 探하는 金山寺이니
亡国이 어찌 絶影驟과 관계하리오.
疽背翁은 甄萱이 臨死에 등창으로 死한 故로 云하였으니 三国史에 甄萱의 子 十余人 中 第 四子 金剛이 身이 長하고 智가 多하였다. 萱이 位를 伝하고자 하니 其兄 神剣이 萱을 金山寺에 가두고 金剛을 죽이고 스스로 王이라 称하니 萱이 季男能乂와 女襄福과 嬖姿姑比 等으로 더불어 高麗에 와서 부치니 高麗 太祖 —礼로써 厚待하고 높여 尙父라 하니 苴이 疽가 発하여 黄小仏寺에서 죽었다.
繽紛紅葉은 圃隱夢周 全州万景 楼詩에 말하되 青山隱約扶余国 紅葉繽紛白帝城이란 뜻을 写한 것이다. 探馨(音구)는 子를 探함이니 觳은 鳥의 子이다. 자를 探함은 萱이 子 神劔을 치고 神劔은 父를 幽하였다.
絶影臑은 甄萱이 高麗에 드린 馬이니 高麗史에 萱이 麗 太祖에게 絶影臑을 드렸다가 後에 絕影 名馬가 至함에 百済가 亡한다는 讖言을 듣고 이에 뉘우쳐 人으로 하여금 도로 請하거늘 太祖가 그 愚함을 웃고 許하였다.
- 한글
후백제(지금의 전주)
후백제는 견훤이 도읍했던 곳인 금주이다. 삼국사기에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이라고 했다. 체모가 강건하고 기개가 굳셌으니, 군대를 이끌고 서남해로 갔다가 노력 끝에 비장이 되었다.
신라 진성왕 6년에 무리를 모아 봉기하였는데, 훤이 부하들을 규합하여 경사의 서남주군을 칠 때 가는 곳마다 호응하여 마침내 무진주를 습격하고 완산(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여 스스로 후백제왕이라 칭하고 신하를 당에 보내 藩을 칭하였다.
여지승람에 전주 북쪽 5리에 옛 토성이 있는데 견훤이 쌓은 곳이라고 한다.
지나간 일이 오래되었구나, 등창 늙은이여.
화려한 홍엽이 옛 성동이로다.
가련하구나, 찾는 금산사여.
망국이 어찌 절영구와 관계하리오.
등창 늙은이는 견훤이 임종에 등창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삼국사기에 견훤의 아들 10여 명 중 넷째 아들 금강이 몸이 크고 지혜로웠다. 훤이 자리를 물려주고자 하니 맏아들 신검이 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금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다. 훤이 계남능앙과 여승복, 첩비자고 등과 함께 고려로 와서 고구했더니 고려 태조가 예로써 후대하고 높여 상부라 하였다. 훤이 등창이 발해 황소불사에서 죽었다.
혼돈한 홍엽은 벽은 몽주의 전주만경루시에서 "청산 은약이 부여국, 홍엽 혼돈한 백제성"이란 뜻을 쓴 것이다. 탐형(발음)은 자식을 찾음이니 형은 새의 새끼다. 자식을 찾음은 훤이 아들 신검을 치고 신검은 아버지를 가둔 것이다.
절영구는 견훤이 고려에 바친 말이다. 고려사에 훤이 고려 태조에게 절영구를 바쳤다가 후에 절영이란 명마가 이르러 백제가 망한다는 예언을 듣고 후회하여 사람을 보내 도로 구했으나 태조가 그 어리석음을 비웃고 허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