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과 왕정복고(王政復古)와 삼별초(三別抄)
원종(元宗)이 위(位)를 이음에 국정(國政)이 권신(權臣)에게 있음을 통한(痛恨)하여 홍문계(弘文系) 이송례(李松禮) 등으로 하여금 권신(權臣) 임연(林衍) 임유무(林惟茂) 등을 쳐 물리치고 대정(大政)을 도로 임금에게 돌리니 인종(人種) 후(後) 8세(世) 148년간 권신(權臣)의 차지하였던 대정(大政)을 다시 회복하였더라. 이때 삼별초군(三別抄軍)이 최씨(崔氏) 집정시(執政時)부터 도적(盜賊)을 막기 위하여 두었으나 실상은 역대(歷代) 권신의 이용(利用)이 되어 도리어 국가(國家)에 근심이 되었더니 및 왕정(王政)이 복고(復古)된 후에 왕(王)이 장군(將軍) 김지발(金之跋)을 강화(江華)에 보내어 이를 해산(解散)하였더니 배중손(裵仲孫) 노영희(盧永禧) 김통정(金通精) 등이 삼별초군(三別抄軍)을 거느리고 반(叛)하여 진도(珍島)와 탐라(耽羅)에 웅거하거늘 장수 김방경(金方慶)과 몽고(蒙古) 장수 홍다구(洪茶丘) 등이 합병(合兵)(合倂)하여 차(此)를 평정(平定)하니라.
- 한글
원종이 왕위를 계승하자 국정이 권신들에게 있음을 안타까워하여, 홍문관 관리 이송례 등으로 하여금 권신 임연, 임유무 등을 축출하고 왕실에 정사를 되돌려놓았습니다.
이로써 인종 이후 148년 간 권신들이 장악했던 국정 운영권을 왕실이 되찾게 되었습니다. 당시 삼별초군은 처음에는 도적을 막기 위해 설치되었지만, 실제로는 역대 권신들에 의해 이용되어 국가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왕정이 복구된 후 왕은 장군 김지발을 강화도에 보내 삼별초군을 해산시켰습니다. 그러자 배중손, 노영희, 김통정 등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반란을 일으켜 진도와 제주도에 웅거하였습니다. 결국 김방경과 몽골 장수 홍다구 등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이들을 평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