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과 백제(百濟)의 패망敗亡)
백제(百濟) 의자왕(義慈王)은 밖으로 신라(新羅)와 싸우고 안으로 호화(豪華)로운 생활(生活)을 누림으로 국고(國庫)가 비어 백성(百姓)이 원망(怨望)하여 나라 형세가 심히 위태(危殆)한 중에 당(唐)의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신라(新羅)의 청원(請願)으로 해육군(海陸軍)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라장(羅將) 김유신(金庾信)의 병(兵) 5만과 합(合)하여 백제(百濟)에 침입(侵入)할 새 이때 백제의 신하(臣下) 성충(成忠)과 흥수(興首)는 옥(獄)에서 죽고 장군(將軍) 계백(階伯)은 5천병으로 나아가 싸우다가 황산(黃山)에서 전사(戰死)하니 세상에서 이를 삼충(三忠)이라 하니라. 적군(敵軍)이 이에 조수(潮水)같이 몰려 들어와 의자왕(義慈王) 20년 7월 13일에 백제(百濟) 서울 부여성(扶餘性)이 함락(陷落)되고 동 18일에 웅진(熊津)이 마저 무너지니 의자왕(義慈王)은 당군(唐軍)에게 잡혀가고 왕자(王子) 부여풍(扶餘豊)은 의병(義兵)을 일으켜 막)다가 또한 패망(敗亡)하니 시조(始祖) 온조(溫祚)로부터 의자(義慈)까지 역세(歷世)가 21세요 역년(歷年)이 678년 이러라.
<한글>
제18과 백제의 패망
백제 의자왕은 밖으로 신라와 싸우고 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림으로써 국고가 비어 백성들이 원망하여 나라 형세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신라의 요청으로 해육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김유신의 5만 명 군대와 합세하여 백제를 침입했습니다. 백제의 신하 성충과 흥수는 옥에서 죽고 장군 계백은 5천 병력으로 싸우다가 황산에서 전사했는데, 이들을 삼충이라 불렀습니다. 적군이 조수같이 밀려들어오자 의자왕 20년인 677년 7월 13일 백제 수도 부여성이 함락되었고, 18일 후 웅진도 무너졌습니다. 의자왕은 당군에 잡혀갔고, 왕자 부여풍은 의병을 일으켰지만 역시 패망했습니다. 시조 온조에서 의자왕까지 21대에 걸쳐 678년간 백제가 지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