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죽교의 참사(慘事)
이성계는 명국에 사절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해주에 가서 무술(武術)을 연습하고 오다가 낙마(落馬)하여 중상을 입고 벽란도(碧瀾渡)에 있으며 병을 조리하는 중이다. 조금 전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방원이 정몽주를 자기 집에 청하여 술을 권하며 하는 말이 저 무너진 담을 보시오 우리 고려가 저 담과 같으니 원컨대 상공은 우리 이씨를 위하여 일하시오. 종주 이에 단심가(丹心歌)를 불러 변치 않을 뜻을 보였다.
방원이 이로부터 몽주를 죽이려고 꾀하더니 이성계 명에 간 사이에 몽주 이성계의 우익(羽翼)으로 조정에 있는 자를 다 구축하고 성계의 세력을 약하게 만들었다. 방원이 이것을 알고 벽란도에 있는 자기 아버지를 가 뵈이고 몽주의 하는 일을 낫낫치 보고 하였다. 부자간에 무슨 밀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틈을 보아 죽이는 일일 것이다. 몽주도 성계의 병을 위문하려고 벽란도에 가서 문병하고 오는 길이다. 선죽교에 오니 방원은 임의 역사 조영규(趙英珪)로 하여금 몽주를 처 죽이니 그 피가 석교위에 흘러 피의 흔적이 지금까지 물들여 있어 보는 사람들로 눈물을 자아낸다.
성계는 곧 황희석을 왕궁에 보내어 정몽주의 죄상을 말하되 몽주는 대간을 이용하여 풍양을 모함하였으니 속히 장준(張俊) 등을 불러 그 죄를 밝히소서. 왕은 김진양 이숭인 등을 다 원지로 귀양 보내고 군국실권은 다 이성계에게 맡기었고 왕은 자유가 없었다. 몽주 죽은 후에 시체를 간수할 사람이 없더니 우현보(禹玄寶) 등이 산승(山僧)을 시켜 매장하다.
정몽주 있는 동안 고려가 있고 고려가 없어질 때 몽주도 없어졌다. 몽주의 호는 포은(圃隱)이니 그 견확한 지조와 명철한 학리는 동방 이학의 조종이며 지금까지 또 조선이 있을 동안 정몽의 피를 사모하는 인사들이 다리위에 물든 피를 보고 울지 않을 사람이 없다.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되고 넋이야 있던 없던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길이 있으랴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일백 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백골이 진토 되어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가실 줄이 있으랴
후인이 읊은 시
백일고려국 (白日高麗國) 단심정몽주(丹心鄭夢周)
심심교하수(**橋下水) 불인한강류(不人漢江流)
상동
1. 다리 밑 물소리 목이 메어
다리 곁 푸른 풀 다시 살어
2. 산하가 해져도 그의 붉은 맘
풍우에 갈아도 그의 붉은 피
3. 난신적자 이것도모 그의 맘
충신의사 이것 듣고 그의 눈물
4. 청천백일이 밝은 것 없고
태산교익이 높은 것 없다
5. 노한 듯 우는 듯 저 이기 듯
천만고의사람 꾸짓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