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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0일 주일 메시지 (설교안)
시리즈 주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세 번째 설교
제목: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인가?
누가복음 19:11~28, 골로새서 1:13
설교 목적
세상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통해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세상을 두고 벌이는 하나님과 마귀의 전쟁을 설명한다. 세상은 곧 하나님의 나라이자 동시에 마귀의 나라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될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성경의 관점을 분명히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이 설교의 목적이다.
설교 개요
1. 세상에 대한 성경의 관점
1-1. 세종의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조선
1-2.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 왕의 귀환
2-1. 국가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 영토, 국민, 주권
2-2. 이 땅에 대한 주권 회복이 하나님 나라다!
2-3. 예수 그리스도의 대관식
3. 하나님 나라와 흑암의 사탄 나라
3-1. 이 땅과 백성을 놓고 벌이는 대결
3-2. 진리를 좇는 자들이 속한 나라-미가 6:8
3-3. 집단의 악에 가담하지 말라: 미라이학살, 안병하 국장
4.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땅 끝까지 미친다
4-1. 땅 끝까지: 시 22:27, 67:7, 행 1:8
4-2. 자기 몸을 깨뜨려 장벽을 허물다!
4-3. 선과 악의 대결장: 개인, 소그룹, 국가, 폭력의 현장
5.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인가?
5-1. 진리를 행하는 그 어디나 천국이다
5-2.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5-3. 여호와의 증인들이 세상 정부에 대하여 가진 오해
1. 세상에 대한 성경의 관점
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이 세상이나 그 가운데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만약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의 마음에 없는 것이다(요한일서 2:15). 이처럼 세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대상이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에 이렇게 정반대의 의미가 들어 있는 말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왕래가 잦았는데 고대로 갈수록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화의 전달이 많았습니다. 종교는 물론 언어도 일본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반도에서 온 사신은 하늘에서 온 사람들로 존대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이 당나라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보다 더 많이 발전하게 되자 임진왜란을 일으키며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그 이후 일본의 문화가 한반도로 수입되는 등 문화의 역전 현상이 생겼습니다. 전에 일본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온 사신들을 하늘처럼 받들었지만 이제는 발바닥 아래에 두고 짓밟았습니다. 그런 일은 오늘까지 이어져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고 뻔뻔하게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불쌍히 여기던 시절이 있었으며, 일본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하나라도 얻기를 소원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조선인’이라는 말은 시대에 따라서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며 경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세상’이라는 말이 성경에서 그렇게 다르게 사용됩니다. 본래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가리키는 이름은 ‘하늘과 땅’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창 1: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것입니다(시 24: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하나님이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냅니다(시 19:1). 시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 지어다’(시 96:1)라고 했습니다. 사람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을 예배하자고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시 96:11~12상)
성경이 바라보는 세상, 성경이 바라보는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졌음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즐거이 노래하며 예배하는 멋진 예배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이 세상을 사랑하시며 언제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설명하는 성경의 또 다른 설명은 매우 어둡고 부정적입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세상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18~19
이처럼 성경은 이 세상에 대하여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두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요?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을 때 조선인에 대한 의미가 급변했듯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성경의 설명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던 세상이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 왕의 귀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기뻐하는 세상으로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다시 본래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런 일을 하실 때마다 제자들은 놀라고 또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을 받은 삭개오는 회개하고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 온 것 같은 느낌을 제자들은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곧 예루살렘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가 하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습니다. 이제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바야흐로 온 천하에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아직 때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 주시려고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비유(比喩, parable)란 어떤 실체를 다른 것에 빗대어 그림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11~28을 공동번역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까닭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드러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먼 나라에 왕위를 받으러 간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되 자신에게 주어진 므나를 가지고 장사를 하면서 왕이 돌아와서 다스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을 왕으로 모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왕위를 주는 더 큰 왕에게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진정(陳情)을 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귀인을 진정한 왕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통치가 시작될 세상을 기대하면서 기쁨으로 준비합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왕위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한 나라가 세워지려면 먼저 영토(領土)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살 국민(國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국민이 그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주권(主權)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국가의 삼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있는 세상에 이미 있는 백성들을 누가 다스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즉, 주권의 문제입니다. 그 주권을 가진 분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를 저버리고 자기의 주권을 거짓의 아비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배반이며, 주권을 잃어버림이며, 종살이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인간을 속여 인간을 종으로 부리고 통치하는 세력을 사도 바울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고 부릅니다(엡 6:12).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세상 임금’이라고 부르셨습니다(요 12:31, 16:11).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한복음 12:31~32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가고 새로운 왕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 임금을 따르던 무리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왕, 더 너그러운 왕을 모시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맞이합니다. 그리고 새 왕이 다스릴 세상을 준비합니다. 새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셔서 만 왕의 왕이 되시는 왕관을 받으시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들리심으로 하늘로 승천하실 때 그 대관식(戴冠式, coronation)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세상 임금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이제 이 땅에서는 반격(反擊, insurgence)이 시작되었습니다. 왕의 귀환까지 벌이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신학자들은 ‘전투하는 교회’ (a Militant Church)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진리라는 이름의 므나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으로 장사하는 백성들처럼 우리는 진리의 싸움을 싸우는 군대입니다. 우리는 이마에 어린 양의 인을 받았고, 우리 입술로는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며, 십자가의 정신으로 짐승과 싸우는 십자가의 군대입니다(계 15:3).
3. 하나님 나라와 흑암의 사탄 나라
이제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땅과 이 땅의 백성들을 두고 벌이는 마귀와의 일전입니다. 마귀의 무기는 거짓과 속임수이지만, 우리의 무기는 진리와 의, 평화의 복음, 구원의 확신, 그리고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 6:11~17). 예수님은 끝까지 진리를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기에 예수님의 백성이며 군대입니다(요 18:37).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끝까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통곡과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히 5:7).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는 많은 제물이나 희생이 아니라 세 가지라고 미가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진실되게 사는 정직, 친절하게 대하는 사랑,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미 6:8).
이 세상에는 이처럼 진리에 속한 자들과 거짓에 속은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거짓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지혜로 행동합니다. 그 차이는 실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처럼 두 지혜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대조하면서 경고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3~18
거짓으로 살면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며 그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진리로 살면 화평하며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미군의 어느 부대가 베트남의 미라이라는 마을에 들어가서 양민 500여명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미라이 학살, My Lai Massacre). 이 일에 가담한 미군은 26명이었는데 비무장 민간인을 죽였습니다.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과 아동이었습니다. 오직 켈리 중위만이 재판을 받고 3년간 옥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 참여한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두려움과 분노가 점령할 때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악이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지역 치안의 총책임자였던 전라남도 경찰국장은 시민들을 보호했습니다. 당시에 신군부는 광주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고 경찰국장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 때 전남 경찰국장은 “상대는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경찰들에게 시민들을 보호하도록 했답니다. 그러나 5월 26일 곧바로 직위해제되고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88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안병하 경무관입니다. 지난 2006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으며 경찰교육원에는 ‘안병하 홀’이 만들어져 시민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바친 안병하 경무관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금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미라이에서는 미국의 젊은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일어난 악한 일에 모두 동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5.18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집단적인 악에 대하여 거부하고 진리로 싸워 이긴 안병하 선생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에 대하여 선으로 싸우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미워해야 세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 수 없는 세상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집단적인 악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땅 끝까지 미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군대로서 살아갈 때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땅끝까지 미친다고 노래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시편 22:2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편 67: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 누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라고 하셨습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땅 끝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상과 천상을 가르지 말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지 말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가르지 말고, 교회와 세상을 가르지 맙시다. 온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고 하나님이 두 팔로 품으심을 기억하며 빛을 밝게 비춥시다.
우리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붙들리지 말고, 오직 진리를 따르며 나아갈 때 등잔 밑의 어두움도 물러가고 온 세상에 흩어진 크고 작은 촛불들이 모여 마침내 광명한 세상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우리는 해처럼 밝게 빛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바치셨습니다(엡 2:14~16). 그렇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한 바울도 자신을 이와 동일한 일에 바쳤습니다(고후 5:13~19). 하나님의 아들들은 본래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마 5:9). 우리는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를 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와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을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둘을 가로막아 높아진 장벽을 허무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미워하고 싸워 이겨야 할 원수는 바로 우리 안에 의심과 두려움을 던져주는 마귀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이 원수와 홀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소그룹에도 누가 더 높은가 하는 교만과 우월의 마음을 일으키는 불화살을 마귀는 쏘아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교만이라는 마귀의 불화살을 꺼버리셨습니다. 유대인의 최고 회의장에서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예수님을 정죄할 때 가말리엘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폭력으로 무죄한 예수님을 가혹하게 죽였을 때 그 살벌한 분위기를 깨고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하게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싸움입니다. 그런 싸움은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고난입니다. 그들은 천국을 볼 것이며 그들의 희생으로 천국이 넓혀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정의, 사랑, 신앙을 세우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5.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인가?
그러면 이 세상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입니까? 진리를 행하는 어디나 천국이며, 거짓을 행하는 어디나 지옥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나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천국으로 변화되며 그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나 거짓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편안할 수 있지만 그들이 마귀에게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 어두워지며 그 결과로 깊은 한숨과 고통의 신음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찬송가의 가사처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골 1:13)고 했습니다. 거짓에 속아 사는 것은 흑암의 권세 아래 사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리를 따르며 은혜와 의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곧 천국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그 결과를 가리키는 그림언어입니다. 실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삶 가운데 경험하는 실체를 말합니다. 굳이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 그 자체가 누구에게는 천국이요, 누구에게는 지옥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정부는 악한 자에게 속하였습니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여호와의 왕국이라고 부르면서 문자 그대로 이 땅에 세워질 하나님의 정부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구절은 요한일서 5장 19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개역개정)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세상의 통치자들이 권력을 가지면 악한 자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악한 것이라기보다는 누구든지 어떤 단체든지 악한 자의 지배를 이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으로 받는 것이 합당합니다.
정부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 두 경비정의 충돌로 일어난 사고로 침몰한 해경 경비정72정이 있습니다. 1980년 신군부가 세력을 잡던 시절에 일어난 그 사고로 군대에 보낸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자식들의 시신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그 경비정이 월북했다는 거짓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식을 잃고 도리어 숨죽이며 살았던 그 유족에게 기쁜 소식이 들렸습니다. 금년 3월 4일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은 39년 전에 침몰한 그 경비정을 탐색하겠다는 설명회를 열고 해상 헌화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국정조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족이 그렇게 요청해도 되지 않던 일이 이렇게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졌습니다. 정부의 권력은 이처럼 사람들을 돌보고 위로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정부가 악한 것이 아니라 정부 안에서 선으로 악을 대항하여 싸울 때 정부에도 천국이 임하고 그 정부가 섬기는 국가에도 천국이 임할 것입니다.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진리를 순종하며 실천하는 곳은 천국이요, 마귀에게 속아 거짓에 굴복하는 곳에는 지옥이 늘어갑니다. 10년 전에 인기 여배우 한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그 여배우는 고 장자연씨입니다. 힘을 가진 자들에게 짓밟혔고 그 진실을 기록한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목격도 하고 그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론계와 연예계, 그리고 정치계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가녀린 여배우의 원한을 풀어줄 용기를 가진 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7일, 캐나다에 거주하는 동료 여배우가 책을 쓰면서 방송에 출연하여 증언했습니다. 그 방송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제 마음을 후비며 남습니다:
“그 편지를 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있어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보다 더 높은 데 있는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이 왜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분들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죄가 다 드러나잖아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 말은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보다는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의 사익을 위해서만 쓰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써야 한다는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 나라, 천국이 임합니다.
다음 주에는 세상의 종말과 휴거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끝>.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03 -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인가(설교안) (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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