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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없이 행복하게 죽을 권리는 매 순간의 삶을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가 펼쳐내는 연극의 등장인물은 맡은 역할을 마치면 무대 뒤로 사라지고 다른 등장인물이 나타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자아(몸-생각)는 맡은 역할의 마지막으로 죽음을 연기(演技)합니다. 자아의 죽음은 결코 종말이 아닙니다. 우리 의식 안에서 죽음은 삶의 일부고 생명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때는 생명의 절정입니다. 다 이루었고 다 마쳤습니다. 평화가 밀려옵니다. 남은 옅은 속박마저 끊깁니다. 자유입니다.
모든 자아는 고통 없이 행복하게 죽을 천부적 권리를 가집니다. 죽음은 유쾌하고 아름다운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유쾌하고 행복하게 죽을 권리는 그에 합당한 사회적 제도장치와 문화를 요구합니다. 거기에는 ‘의사조력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가 필수로 포함됩니다. 다음의 글은 대한변호사협회지 「인권과 정의」 제482호(2019. 6.)에 게재된 졸고입니다.(논문에 있는 각주 및 인용은 생략되었습니다)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허용 입법의 필요성
-실존적 사실 및 통계적 근거를 중심으로
Necessity of legislation to allow active euthanasia and physician-assisted suicide
- Focused on existential facts and statistical grounds
[초록]
한국은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좁은 범위의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은 안락사와 관련하여 주요 선진국들이 취한 조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웰다잉권의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선진 OECD 국가들은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실질적 인권보장 차원에서 의사조력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를 빠른 속도로 허용하는 추세에 있고, 한국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는 사회 병리적 상황들과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높은 수치의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도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 허용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인권 관련 국가기관들과 국회는 공조하여 이들 안락사 허용 여부와 관련한 전문적 실태조사 및 사회적 합의의 도출과 후속 입법 조치 그리고 ‘안락사 및 조력사 심사원’ 설치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희망한다. 선진 입법에 대한 충분한 참조를 기반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적극적 안락사 및 조력자살을 인정하는 입법 조치는 국민의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국가가 제공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준비가 될 것이며, 공포 없이 행복하게 죽을 권리는 생명체의 매 순간을 자유롭게 하고, 매일의 삶을 의식적으로 고양되고 사랑으로 각성된 자유의 삶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삶이야말로 웰빙과 웰다잉이 조화된 진정한 생명의 표현일 것이기 때문이다.
[Abstract]
South Korea acknowledges a narrow range of euthanasia under “Act on hospice, palliative care, and decisions on life-sustaining treatment for patients at the end of life”, but it has yet to fall short of the actions taken by major advanced countries regarding euthanasia, and therefore the "human dignity, values and the right to pursue happiness" guaranteed by Article 10 of the Constitution has not been materially realized in the realm of self-determination and well-dying rights to death. Advanced OECD countries are on the fast track to allow physician-assisted suicide and active euthanasia in terms of real human rights protection in response to social demands, and the high number of surveys in favor of active euthanasia and social pathological situations prevalent around the world, including Korea, suggest that our society is strongly requesting active euthanasia and physician-assisted suicide. We hope that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and other human rights-related state agencies and the National Assembly will work together to draw up a professional survey on whether to allow these euthanasia, draw up social consensus, follow-up legislative measures, and establish human and material infrastructure for the establishment of 'euthanasia and assisted death review board'. Based on sufficient reference to advanced legislation, legislative action recognizing active euthanasia and assisted suicide in accordance with Korean affairs will be the least preparation the state must provide for the death of the people's dignity, the right to die happily without fear will free every moment of life, and transform daily life into a consciously elevated, love-inspired life. Because such a life would be an expression of true life, in which well-being and well-dying harmonized.
Ⅰ. 서론
인간은 행복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는가? 라는 질문은 생명체인 각 개인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해당하는 안락사 내지 존엄사의 권리를 보유하는지 여부에 대한 탐색을 요구한다. 안락사(euthanasia)는 희랍어의 eu(행복하게)와 thanatos(죽음)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행복한 죽음’을 뜻한다. 2018년 7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발 저희 아버지를 죽여주세요”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요청이 올라왔다. “안락사가 조속히 시행돼 우리 가족 같은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길 바랍니다. 아버지는 췌장암이 말기로 통증이 너무 심합니다. 아버지가 핸드폰으로 한국이 안락사가 가능한지 검색하시고는 저에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신음하셨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 것보다 가족 모두가 모여 인사하고 인생을 편안하게 정리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현재 한국 형사법 체계에 의하면, 아들이 아버지의 부탁으로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 촉탁살인죄 혹은 자살방조죄의 죄책을 지게 되고, 만약 아버지의 부탁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존속살인죄로 처벌받게 된다. 즉 청원의 요지는, 청원인이 직접 부모를 살해하는 죄를 범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가 이와 같은 절박한 문제를 ‘적극적 안락사’ 혹은 의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조력자살’ 등을 통하여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취지이다.
후술하는, 과거 ‘보라매 병원 사건’과 ‘김 할머니 사건’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현재는 판례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하여 좁은 범위의 존엄사 내지 소극적 안락사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좁은 범위로 한정된 존엄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안락사의 정도 및 헌법 제10조와 제34조, 제36조가 천명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보건에 관한 국가보호요청권 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생명권은 너무도 자명한 천부인권으로서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헌법 제37조의 불가침의 본질적 기본권을 그 법적 근거로 가지고, 더불어 헌법 제12조의 자유권적 기본권과 결합하여 사물논리적 구조(Sachlogishe Struktur)에 따라 죽음의 시기, 방법, 장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자연히 도출된다고 할 것이다. 즉 적극적 안락사 허용의 문제는 헌법이 천명하고 국가가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지는 기본권, 특히 생명과 신체의 기능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구체적 실현 문제인 것이다.
이하의 장들에서 안락사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과 관련된 통계 분석적 자료들과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 조력자살 허용을 희망하는 한국과 외국의 사례들로서, 그 행위의 동기와 방법이 사랑과 연민에 근거한 불가피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동료와 의사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실존적 상황들을 적시함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가 의료인의 도움에 의한 ‘조력 죽음’(assisted death)을 포함하여 ‘적극적 안락사 허용’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음을 논하고자 한다.
Ⅱ. 안락사와 존엄사의 유형
안락사의 분류 내지 유형은 직접 생명체를 다루는 의사의 관점 및 형법학자의 관점과 조력자살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형법학자들의 일반적 분류 방법으로는, 안락사의 유형을 그 시행이 생명의 단축을 초래하느냐의 여부로 분류할 수 있다. 생명의 단축을 가져오는 안락사는 부진정안락사로서 살인죄의 성립여부가 문제되고, 생명의 단축을 가져오지 않는 안락사, 즉 진정안락사는 살해행위의 개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형법상 처음부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법학자들은 생명의 단축을 가져오는 부진정안락사를 다시금 ①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② 직접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로 구별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e)란 죽음이 임박하고 현대의학의 견지에서 불치의 환자, 특히 식물인간의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의사가 생명유지에 필요한 의료적인 처치를 취하지 않거나 이미 부착된 인공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경우를 말한다. 고통 완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 시술 방식이 ‘적극적인 처치’에 의하여 행해지는 안락사를 적극적 안락사(aktive Euthanasie)라고 한다. 또한 적극적 안락사는 ① 고통제거를 위하여 행해지는 안락사가 환자의 생명단축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해서 시술되는 직접적 안락사와 ② 환자의 생명단축을 직접적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 처치가 불가피하게-부작용으로-환자의 생명단축을 초래하는 간접적 안락사로 나누어진다. 또한 일반적으로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와 같은 의미로 새겨진다.
둘째로, 의사 혹은 법의학자의 관점에서 안락사의 유형을 살펴보면, 생명체의 의사표시 여하를 기준으로 자의적/비자의적/타의적(반자의적) 안락사로, 안락사 시행자의 행위 여하를 기준으로 적극적/소극적/간접적 안락사로, 생존의 윤리성에 따라 자비적/존엄적/도태적 안락사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명체의 의사에 반하는 타의적 안락사는 명백히 살인에 해당하고, 사회공동체 입장에서 해가 되고 부담이 되는 생명체를 제거하는 도태적 안락사도 나치 히틀러 방식의 인종청소 유사의 집단 살인에 해당하므로 절대적으로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로, 의료관계인의 조력에 의한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PAS) 혹은 ‘의사조력사’(physician-assisted death, PAD)로 불리는 범주가 있다. 안락사와는 외형적으로 다른 형태이지만 적극적 안락사 문제와 동반하여 많이 논의되고 있다. 주로 의사가 처방하고 지급하는 약물 혹은 주사제의 도움을 받아 실제 죽음의 실행은 안락사를 원하는 본인이 직접 시행하는 방식이다. 즉 외형적으로 의사조력자살은 안락사하는 본인에 의한 자살의 형태를 취하고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에 의한 타살의 형태를 취하지만 적극적인 방식으로 안락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2016. 2. 3.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공포된 후 대한의사협회는 2017. 4. 23. ‘의사윤리지침’을 개정하였다. 동 지침은 안락사의 유형을 연명의료중단 존엄사와 안락사로 구분하고, 다시 안락사의 범주 안에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같이 정의하면서 이 둘을 모두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형법 252조는 같은 조문 안에서 자살방조죄에 해당하는 의사조력자살을 적극적 안락사인 촉탁살인죄에 준하여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가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환자 혹은 그 가족의 동의 아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하고 있고 문제가 되는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로서 그 유형도 대부분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돕는 형태인 ‘의사조력자살’이 중심이 되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적극적 안락사의 범주에 의사조력자살을 포함 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조력자살을 포함하여 적극적 안락사 허용을 추진하는 나라에서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자살을 구별할 필요는 많지 않다고 하겠다.
Ⅲ.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세계적 동향
적극적 안락사 내지 의사조력자살 허용 여부에 대한 세계 주요국가의 입장을 살펴보면,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스위스는 조력자살은 허용하는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일곱 개 주와 캐나다 그리고 남미의 콜롬비아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으며, 호주의 빅토리아주는 의사조력자살과 제한적인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다. 현재 의사조력자살 내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OECD 국가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하에서는 주요국가들의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허용 여부와 그 시행요건 등에 대하여 비교법적으로 살펴본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요청에 의한 생명단절과 조력자살의 심리절차 및 형법과 장례법 개정법률」(Review procedures of termination of life on request and assisted suicide and amendment to the Penal Code and the Burial and Cremation Act)이라는 제목의 안락사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의사가 적극적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을 수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사람에 의하거나 의사라 하더라도 동 법에 규정된 요건을 준수치 않으면 범죄로 처벌 된다. 동 법은 안락사의 요건으로, 환자가 개선될 전망이 없고, 고통이 극심하고,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동의하고, 의사는 환자에게 그의 상황과 전망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최소 1인 이상의 다른 의사와 협의하고, 그 다른 의사는 환자를 직접 문진하여 위 요건에 대한 서면의견서를 작성하는 등의 요건들을 충족하고, 의사는 적정한 의료적 주의를 다 하여 환자의 생명을 단절하거나 자살에 조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어떠한 의사도 적극적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의 요청에 응할 의무는 없다. 의사가 관여하기를 꺼릴 경우는 동료 의사에게 환자를 맡길 수 있다. 안락사를 시행한 후 담당 의사는 검시관과 5개 지역심사위원회 중 하나에 통보한다. 지역심사위원회는 변호사, 의사, 윤리전문가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사후평가에서 규정을 위반한 의사를 1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최근에는 말기 암 등 질환이 아닌 “단순히 나이가 많이 들어 의식과 활동이 쇠약해지고 고독 등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마저 통과될 전망이다.
벨기에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The Belgian Act on Euthanasia of May 28, 2002)을 2002. 9. 3. 시행하였다. 동 법은 견딜 수 없는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초래하는(정신적 질환을 포함한) 치유 불가능한 질병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허용한다. 네덜란드와 비교해서 다른 점은 안락사 내지 조력자살을 요청하는 환자가 말기 환자가 아닐 경우 의사는 독립된 제3자인 전문가와 상의하여야 하고 환자가 요청한 후 안락사를 시행하기까지 적어도 1개월이 경과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벨기에는 2014. 2. 13. 안락사가 허용되는 연령제한을 삭제함으로써 미성년자를 포함 전 연령대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다. 종교계와 일부 의학전문가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법은 모든 연령의 아동이 아동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가 보증하는 한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이해할 수 있고 부모 또는 법정 후견인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룩셈부르크는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다음으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한 국가이다. 2009. 3. 16. 통과된 「안락사 및 조력자살 법」(The Law of 16 March 2009 on euthanasia and assisted suicide)에 따르면 심각하고 치유할 수 없는 상태의 환자가 반복적으로 요청하여 의사가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에 협력한 경우 민·형사 책임을 면제해준다.
스위스는 형법 114조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촉탁살인으로 보고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반면, 스위스 형법 115조는 방조자가 이기적 동기를 가진 경우에만 타인의 자살을 방조한 자를 처벌한다. 방조자가 이기적 동기에서 자살을 방조한 경우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 진다. 즉 이기적인 동기에서가 아니기만 하면 자살을 돕는 것이 처벌되지 않는다. 도움을 주는 자가 의사일 필요도 없고 다만 자살자는 의사결정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도움을 받는 자가 스위스 국적자 또는 거주자여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자살 목적으로 약물을 처방할 때 의사는 향정신성의약품법에 따라야 한다. 의사는 치명적인 약물의 처방 전에 환자를 개인적으로 진찰하여야 한다. 이 경우 선행조건으로서, 환자는 생명의 종기에 가까이 가고 있어야 하고, 대안적 가능성들이 논의되고 제공되어야 하며, 환자는 완전한 의사능력이 있어야 하고, 죽음을 초래하는 마지막 행위는 환자 자신에 의하여 행해져야 한다. 조력자살을 돕는 비영리단체인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는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 2명 있었다”라고 밝혔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과 ‘이터널 스피릿’(Eternal Spirit) 등 3개의 단체가 조력자살을 돕는다.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인터내셔널에는 각각 47명, 60명의 한국인 회원이 있어 이들 107명이 향후 조력자살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디그니타스는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존재한다. 자기결정권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기회 또한 제공해야 하지만 많은 국가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엄연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디그니타스는 외국인에게도 죽음을 선택할 기회를 주어 인간의 기본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2012년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고 조력자살을 지지하는 국민의 비중이 독일 87%, 스페인 85%, 오스트리아 83%, 영국 82%, 프랑스 80%에 달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법이 적용되는 관할구역 가운데 일곱 개 주에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중에 주의회의 입법에 의한 주가 버몬트(2013), 콜럼비아구(2017), 하와이(2018)이고, 주민발의·주민투표에 의하여 입법된 주는 오레곤(1994년 입법, 1997년 시행), 워싱턴(2008), 콜로라도(2016)이며, 법원 판례에 의하여 허용된 주가 몬태나(2008)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이를 허용하는 주가 많이 늘어나고 있고 2015년 이후 30여 개 주에서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6월 갤럽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73%가 “환자가 요청한다면, 고통 없는 수단에 의하여 말기 환자의 생명을 종결하도록 의사에게 허용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것을 보면 앞으로도 논의가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미국의 다른 주와 다른 국가의 모범이 되어 온 오레곤주 존엄사법에 따르면, 의사조력자살에 해당하는 의사의 행위가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약물 처방을 요청한 환자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의사능력이 있고, 오레곤 주 주민이며, 담당의사와 자문의사로부터 말기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죽기 원한다는 자발적인 의사표현을 한 만 18세 이상의 성인이 인도적이고 존엄한 방식으로 생명을 종결하기 위한 약물을 서면으로 요청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기질환이란 합리적인 의학적 판단으로,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의학적으로 확인된, 치유될 수 없고 회복 불가능한 질병을 의미한다. 한편, 환자를 사망케 할 의도를 가지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기 위하여 환자의 허가 없이 약물 요청서를 고의로 변조 또는 위조하거나 요청 철회서를 은닉하거나 파기한 자나, 환자를 사망케 할 목적으로 투약요청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의 경우 A급 중범죄자로 처벌된다는 형사 책임 조항을 두어 위 절차의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독일은 자살이 범죄가 아닌 점에서는 세계 각국과 동일하지만 자살방조죄 역시 범죄 구성요건에 없다는 사실은 특이한 점이었다. 방조는 공범의 한 유형이고 공범은 정범에 종속하여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자살이 정범을 구성하지 않으니 공범인 자살방조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독일에서는 자살방조의 한 유형인 의사조력자살도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1984년 독일 연방대법원의 비티히(Wittig) 사건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안락사를 입법화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오랜 논쟁 끝에 2015. 11. 6. 독일 연방의회에서 형법 217조에 영업적으로 자살을 방조할 경우 처벌하는 조문을 신설함으로써 사실상 의사조력자살이 금지되었다. 그 이전인 2012년에는 독일 조력자살 단체인 StHD가 독일에서 조력자살 금지가 법제화될 것으로 보고 미리 스위스로 근거지를 옮기기도 했다. 2015년 말 독일 주간지 포쿠스가 내놓은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4%가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했다.
캐나다 대법원은 2015. 2. 6.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은 캐나다 형법의 자살교사·방조죄와 승낙살인죄를 대상으로 한 판결이었다. 캐나다 대법원은 위 형법 조항들은 캐나다권리장전 제7조에 보장된 개인의 생명·자유·안전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의 환자와 같은 사람들이 가지는 권리장전 7조의 권리들을 부정하는 범위에서 무효라고 하면서 판결 이유에 적시된 헌법적 기준에 맞추어 입법할 의무가 의회에 있다고 판시하였다. 덧붙여 이 무효선언은 단지 의사조력자살의 형법적 전면 금지를 무효로 만드는 것일 뿐 의사들에게 죽음을 도와주도록 강제하는 것은 아니며 의사조력자살에 관여할지 여부는 의사들이 자신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하였다. 동 판결에 따른 입법 의무로서, 2016년 6월 캐나다 의회에서 「임종과정에서의 의사조력에 관한 법」(Medical Aide in Dying Act)이 통과되어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 되었다.
호주의 빅토리아주는 2017. 11. 29. 의사조력자살과 제한적인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입법을 하여 2019년 6월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 이 법률은 기대여명이 6개월 정도인 말기 환자들이 자신이 투약할 수 있는 치명적 약물을 획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만약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약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의사가 투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 요구를 검토하는 특별위원회도 두도록 하였다. 빅토리아주에서는 의원들과 의료인 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있었으나 대니얼 앤드루스 주 총리가 선친의 암 투병을 지켜보며 지지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입법은 급물살을 탔었다.
이상 기재와 같이, 의사 조력사 내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지라도 각 국가의 실제 제도운영은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국가 형성의 역사적 과정과 사회·문화적 특성, 주도적인 종교, 관습법을 포함하는 법체계 등이 나라마다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건국의 과정 및 종교 분포(개신교도 52%, 로마가톨릭교도 24% 등 범기독교가 80%를 차지)에 비추어 보아 애초부터 안락사 문제에 관대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였음을 알 수는 있지만, 시행 22년이 경과된 오레곤주의 존엄사 제도운영의 실제를 보면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오남용의 우려 등이 현실화된 사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의사조력자살이 시행되는 미국의 주들이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용어 대신에 존엄사 또는 자신의 선택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비추어 보아도 안락사 혹은 자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현존하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미국은 적극적 안락사보다는 의사 조력사로써 사회의 실제적 요청에 부응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스위스 형법은 적극적 안락사를 촉탁살인죄로 처벌하고 있지만, 자살방조는 방조자가 이기적인 동기인 경우에만 처벌하므로 자살 및 그 도움과 관련된 법체계 성립 과정에 따라서 조력 사망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영세중립국이라는 오랜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의하여 조력 사망의 대상자를 내국인에 한하지 않고 세계인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우리나라의 입법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독일의 경우는 형법 해석에 따라서 의사조력자살이 용인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나치에 의한 대량 살인을 경험한 사회적 특성이 조력사를 허용하는 국민적 합의 도출의 장애요소 중 하나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제도운영에 대한 비판과 반론도 없지는 않다. 네덜란드는 현재 안락사 요건이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우울증에서 정신분열증까지 다양한 정신 질환, 자폐증, 시력 상실, 또는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처지’에 대해서도 의사 조력사가 허용되고 있으므로 비판자들은 네덜란드의 안락사법이 한도를 넘었고 안락사가 고령자를 더 빨리 죽음으로 밀어내는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안락사 반대자들은 수익에 초점을 맞춘 의료 시스템과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주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비싼 치료를 거부하고 의료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대책으로써 조력 자살을 대안으로 제시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위 대부분 국가가 가톨릭을 위주로 하는 기독교 국가로서 자살을 금기시하는 전통 및 일부에서 제기되는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사 조력사 내지 적극적 안락사를 실존적인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일찌감치 실시해왔고, 제도운영의 기간 경과에 비례하여 이들 제도를 이용하여 웰다잉의 권리를 실현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전 및 사후의 철저한 확인과 통제로써 비판론에서 제기하는 부작용 및 위험성에 대한 예방 및 방지를 통하여 이들 위험이 특별히 사회적 문제로 현실화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있다.
Ⅳ. 대한민국에서의 존엄사 허용 판결과 입법의 전개 과정
대법원은 2004. 6. 24. 소위 ‘보라매 병원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선고했는데, 이 판결은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동 판결은, 보호자가 의학적 치료 권고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퇴원을 간청하여 주치의가 치료중단 및 퇴원을 허용하는 조치를 함으로써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에 대하여 보호자와 주치의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환자의 보호자는 살인죄가, 담당 의사들은 살인방조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하였다. 위 판결의 결과 지금이라면 실정법에 따라 존엄사로 인정되어 아무런 법률적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 살인범의 전과와 형벌을 부담해야만 했다.
위 판결 후 의료계의 관행이 바뀌었다. 이전까지 불치병 환자 가족의 요청이 있으면 의료진의 자율적이고 적절한 판단으로 ‘환자 퇴원 및 집에서의 사망’을 사실상 허락해 왔던 병원은 가족이 아무리 간청해도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담당 의사들이 임의로 환자를 퇴원시키면 살인죄와 방조범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병원은 무의미한 치료 행위라도 무조건 시행하는 것이 안전했기 때문에 효과 없는 연명 치료가 과도하게 시행되는 경향이 높아졌고, 그 결과 환자 및 보호자 그리고 담당 의료진에게 고통만 가중시키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에 따른 여파로서, 불치병 환자의 가족이 환자를 살해하는(사실은 소극적/적극적 안락사에 해당하지만) 사례가 빈발하여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대법원은 2009. 5. 21. 소위 ‘김 할머니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로써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하였다. 동 판결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 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라고 판시하여 엄격한 요건 하에 ‘연명 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존엄사’를 인정하였고, 그 법적인 근거는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을 들었다. 동 판결은 소위 잘 죽을 권리인 웰다잉권은 잘 살 권리인 웰빙권 안에 당연히 포함됨을 판시한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엄연히 삶에 속하는 ‘죽어가는 과정’도 마땅히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헌법 제10조는 웰빙권의 근거인 동시에 웰다잉권의 근거로 작용한다.
위 존엄사 인정 판결을 기화로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16. 2. 3. 「연명의료결정법」 즉 이른바 존엄사법이 제정·공포되었고, 2017. 8. 4.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관리체계와 이행 등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2018. 2. 4.부터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단행법률과 대법원 판례에 의하여,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이른 자로서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및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기준에 따라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말기환자’에 한해서 매우 제한적 범위의 안락사만이 허용되고 있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이 규정하는 연명의료의 종류 및 대상자 요건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시기적으로 사망에 매우 접근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 점 등에 대한 개선적 고려로 동 법의 개정 논의가 다수 존재한다.
Ⅴ. 적극적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한 논쟁
적극적 안락사(의사조력자살 포함) 금지론의 법적 논거를 살펴보면, ① 형법에 촉탁살인죄의 명시적 규정이 있는 등 적극적 안락사는 위법성조각사유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음, ② 형사법의 절대적 생명보호 원칙에 위반됨, ③ 금지론의 주된 논거로서, 허용으로 인한 남용위험의 존재 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 허용론의 법적 논거는, ① 형법 제24조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위법성 조각, ② 극단적 고통에 대한 치료행위 해당설, ③ 허용론의 주된 논거로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설 등이 주장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먼저 적극적 안락사 금지론의 논거를 개별적으로 비판하고, 다음으로 장을 달리하여 적극적 안락사 허용의 타당성을 기술하고자 한다. 금지론이 드는 절대적 생명보호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은, 실정법상 사형제도가 아직 존치되고 있고, 정당방위와 의무의 충돌에서 보증인의 택일적 생명 구조 및 면책적 긴급피난 등에서는 생명침해가 위법성을 조각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근거가 미약해 보인다. 고통이 극심한 채로 육체가 호흡을 계속하게끔 한다고 하여 그것을 생명의 보호라고 할 수는 없다.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바탕 위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한 삶의 실현이야말로 진정하고 실질적인 생명의 보호라 할 것이다. 금지론의 주된 이유인 남용의 위험성에 대하여는, 그 위험성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하여 시도 단위로 설치되고, 자격을 갖춘 변호사, 의사, 심리 및 가족윤리 전문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가칭 ‘인간의 존엄사 심사원’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본인의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의 일정 기간 거듭되고 확고한 의사표시를 제일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 신중하고 엄숙하게 법정의 세밀한 조건에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가족에 의한 남용 위험성은 물론이고 본인에 의한 잘못된 판단의 위험성까지 사전에 방지가 가능할 것이다. 즉 남용의 위험성은 금지론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허용론에서 위험성 완전 제거를 위한 입법의 정교한 기술 및 심사원 구성과 심사과정의 철저성 관철의 문제로서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7장 입법론에서 더 자세히 논하겠다. 그리고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은 다음 장에서 허용론의 이론적 근거를 논할 때 기술하고자 한다.
Ⅵ. 적극적 안락사 허용에 대한 존재론적 근거 및 당위론적 근거
존재와 당위는 상호 영향을 밀접하게 주고받지만, 특정 영역의 입법과정에서는 당위론보다 실존적 필요성이 더 주도적이란 점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음주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윤창호법), 친권 자동부활 금지제도(최진실법),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신해철법) 등에서 볼 수 있었다. 존재적 필요 상황이 여론을 형성하고 여론은 판례에 영향을 미치고 판례는 결국 입법으로 구체화 되는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의 사회적 논의인 비동의간음죄, 대체복무제도 신설 법안이 시사하듯이 이미 수많은 피해자와 전과자를 양산한 후의 뒤늦은 입법 조치는 매우 비효율적이므로 형식 논리적 이론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태도가 요청되며 사안에 따라서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치료 불가능에 이르기 전의 선제적 조치가 긴급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사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어떤 사안보다 우선하여 숙고해야 하고, 각 개인이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는 이론으로 논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중요한 직접적 실존의 문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적극적 안락사 허용 여부를 논할 때 이론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순수 이론적 혹은 객관적 측면을 중시해서 이 사안을 다루거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현재 한국에서 적극적 안락사 허용 필요성의 근거를 이하에서 적시하는데, 이를 존재와 당위의 문제로 구분하여 첫째로는 당위의 문제로서 그 이론적 근거를 들고, 둘째로는 사실적인 사회 병리적 상황 및 통계적 자료 등 실존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용 필요성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적극적 안락사 허용에 대한 당위론적 근거
먼저 규범의 문제로서,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되는 당위적 근거로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를 들 수 있고, 적극적 안락사는 이에 해당한다. 형법 제20조는 강학상 ‘초법규적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그 이하의 조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법성조각사유들을 일반화한 것인데 이 조문의 의미는 그 행위가 형법전에 규정된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사회상규’라고 하는 자연법에 해당하는 행위면 위법성이 탈락함을 선언하는 기본권 보장 규정이라 할 것이다. 이 형법 규정은 헌법 제37조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맥락에서 대비된다. 그러므로 적극적 안락사는 일단 구성요건 단계에서는 촉탁·승낙살인죄 혹은 자살방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위법성의 단계에서는 형법 제20조에 해당하여 위법요건을 탈락시킴으로써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스위스 형법이 자살방조죄에서 방조자가 비이기적인 동기일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근거도 이와 같은 원리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형법 제20조 사회상규 개념은 가장 기본적인 위법성 판단의 기준을 명문화한 것으로서 행위가 법 규정의 문언상 일응 범죄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이 극히 정상적인 생활형태의 하나로서 역사적으로 생성된 사회생활 질서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위법성이 저각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며, 어떤 법규성이 처벌 대상으로 하는 행위가 사회발전에 따라 전혀 위법하지 않다고 인식되고 그 처벌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사회정의에 배반된다고 생각될 정도에 이를 경우나,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목적 가치에 비추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수단으로 행하여졌다는 평가가 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이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라며 사회상규의 구체적 기준으로서, ‘행위가 사회발전에 따라 전혀 위법하지 않다고 인식되고 그 처벌이 무가치할 것’,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수단으로 행하여졌을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간통죄와 낙태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및 헌법불합치결정에 의하여 반성적 폐지의 길에 들어선 것도 이런 대법원 판례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사 역시 후술하는 실존적인 사회적 요청과 통계 분석에 근거하여 추정되는 사회발전에 따라 위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그 처벌이 무가치하다는 인식에 도달했기 때문에 사회상규에 부합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적극적 안락사 허용에 대한 존재론적 근거
자연법적 당위인 사회상규는 사실적 사회상황 및 사회 구성원들이 표출하는 집단의식의 장기적 추이에 따라서 생성, 변동, 소멸한다. 적극적 안락사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서, 한국과 외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사회 병리적 상황들 및 사회적 집단의식에 대한 통계 분석적 조사자료를 이하에서 기술한다.
가.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허용을 희망하는 한국과 외국의 사례들
사례 1). 92세의 식물화석학 권위자 화이트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며칠 후 그녀의 딸은 어머니를 살인한 혐의로 체포됐다. 치매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살인혐의 체포는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다. 많은 이웃은 어떤 일이 일어났건 그건 연민과 사랑으로 인한 행위였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호주 전국에서 안락사와 조력 죽음(assisted dying) 논쟁을 한층 더 가열시키고 있다.
사례 2). 최근 안락사(조력자살) 논란을 재점화시킨 104세의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아들과 만난 뒤 친구와 함께 안락사를 돕는 기관이 있는 스위스 바젤에서 스스로 삶을 마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구달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는 않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 같다며 지금 나이에 이르게 된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락사를 돕는 이터널 스피릿의 뤼디 하베거는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노인이 스위스까지 먼 길을 와야 한다. 그가 집에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했다.”라며 호주 정부를 비판했다. 스위스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상당 기간 의향을 내비쳐왔다면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다.
사례 3). 아버지와 가족 동의에 따라 말기 환자인 아버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아들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됐다. 포천경찰서는 또 아들에게 아버지를 살해할 것을 종용하고 범행 현장에 함께 한 큰 누나를 존속살해 혐의로, 현장에 같이 있던 어머니를 살인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사례 4). 아내 B씨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남편을 지극히 간호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입원과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았고 심적 고통과 의료비 부담 등을 감내하기 어려웠을 B씨는 마비 상태인 남편에게 설치된 인공호흡기의 전원차단 버튼을 눌렀고 A씨는 사망했다. 해서는 안 될 B씨의 선택이었지만, B씨가 받아왔을 고통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사례 5).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즐거운 사라’ 저자 마광수 교수의 정년 퇴임 소감이 의미심장하다. 경찰은 마광수 씨(67세)가 베란다 방범창에 스카프를 이용해 목을 맨 채 발견된 점을 토대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이다.
사례 6).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장례엑스포에 ‘안락사 캡슐’이 전시됐다. ‘죽음의 의사(Doctor Death)’로 불리는 안락사 활동가 필립 니슈케 박사와 알렉산더 바닝크 디자이너가 3D 프린터로 만든 ‘사코’라 불리는 이 안락사 캡슐은 질소통과 석관(石棺)이 한 세트를 이룬다. 니슈케 박사는 “죽고자 하는 사람이 캡슐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내부가 질소로 가득 차게 된다.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지만 급속하게 1분 30초 안에 정신을 잃은 뒤 5분 안에 죽게 된다. 사람들이 죽기 원할 때 죽음을 제공하는 기계다. 언제 죽을지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믿는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한 선물로 받았다면 자신이 택한 시간에 선물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자살에 대한 찬반양론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죽기 위해 목을 매달거나 기찻길에 뛰어드는 것보다 이 방법이 훨씬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안락사 캡슐 디자인을 온라인에 올려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3D 프린터를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나. 적극적 안락사 허용이 요청되는 통계 분석적 근거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40세 이상∼79세 이하 남녀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태도 등을 조사한 통계 중, 적극적/소극적 안락사와 관련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5.7%가 목숨만 유지하는 연명 치료를 반대했다. 그리고 연명 치료를 포함 죽음과 관련하여 필요한 결정의 주체에 대해서는 본인이 74.5%로 압도적으로 높으며, 가족 18.1% 전문가 7.4%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63.3%는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였다. 더 나아가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에 90.2%가 이에 동의한다.
좋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종합해 보면 ‘죽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에 대한 동의가 가장 높고, 이와 더불어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는 동의가 다음으로 높아서 본인이 준비하고 결정하는 자율성을 매우 중요한 항목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죽을 때 가족들과 관계가 나빠지면 좋은 죽음이 아니다’에 대한 동의도 높다. 반면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와 ‘죽은 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어야 좋은 죽음이다’는 동의가 가장 낮은 항목이다. 이는 생존 기간이라는 양적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죽은 후의 상황은 좋은 죽음의 중요 요소가 아님을 보여 준다.
2004년 국민 1,0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고통이 극심한 환자가 죽을 권리를 요구할 때 의료진은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가에 69.3%가 동의했다. 의사가 환자의 호소를 받아들여 약물이나 의료기구로 환자를 죽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 56.2%가 찬성했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39.1%였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법연수생의 86.3%, 전공의 91.4%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65세 이상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은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데, 노인의 10.9%가 60세 이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고, 그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40.4%며 건강문제가 24.4%다. 10명 중 9명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연명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고, 집에서 본인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가족과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암 환자의 경우 90%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들 중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16%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노인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노인의 91.8%가 연명 치료를 반대하고 있고, 6.7%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높아 27.7%, 건강문제 27.6% 등의 순이었다.
2019년 2월 서울신문은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법연수원에 의뢰해 안락사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암 등 각종 난치병에 걸린 환자 또는 그의 가족(이하 환자) 544명, 전국 병원의 전공의(레지던트·인턴) 183명, 사법시험 합격자인 사법연수원생 64명 등 총 791명이 응했다. 안락사 법적 허용 찬반을 물은 결과 88.5%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찬성했다. 적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환자의 58.7%는 적극적 안락사의 법적 허용을 찬성했다. 찬성의 이유에 대하여는, 고통을 덜어 줄 수 있고(56.9%),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이며(20.8%), 회생 불가능한 병에 대한 치료는 무의미하다(14.9%)는 것이었다. 반면 연수원생 78.1%와 전공의 60.2%는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고(연수원생 56.0%, 전공의 53.3%), 환자가 경제적 부담 등으로 강요된 죽음을 선택할 것(연수원생 24.0%, 전공의 17.4%)이라는 것이었다. 한자와 비 환자의 경우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환자는 죽음의 당사자의 관점에서 직접적이고 진지하게 안락사를 바라보지만, 의료인과 법조인은 제삼자적 관점에서 죽음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일어나는 사태로서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자세로 바라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비 환자가 환자로 상황이 변경될 경우 안락사에 대한 관점 역시 역전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에선 불교(84.3%)에서 많은 찬성이 나왔고, 천주교(75.1%)와 기독교(71.6%)도 과반이 넘었다. 인간 생명을 절대적 가치로 존중하는 천주교와 기독교는 안락사에 대해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찬성이 많다는 사실은 평온한 죽음에 대한 바람은 종교적 신념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상의 기재는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 온 전국 단위의 조사 분석 결과 중 적극적 안락사와 좋은 죽음에 대한 태도와 연관된 통계 외에도 연명치료에 대한 견해, 고령자의 자살 및 그 이유, 병원 임종에 대한 선호 등에 대한 조사결과도 같이 적시하였다. 그 이유는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적극적 안락사 내지 조력사망을 대하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고 결국 실제 입법과정에서는 이런 관련 통계들이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참조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 기재한 조사결과 중 적극적 안락사와 연관된 통계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2004년 조사에서 이미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명시적 반대는 39.1%에 불과하고, 56.2%의 찬성 의사를 포함한 적극적 안락사 긍정 입장이 국민의 60%를 넘고 있다. 2018년 조사에서는 국민의 63.3%가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것’을 나쁜 죽음의 대표적 사례로 생각한다. 이를 반대해석하면 건강수명 73.2세 이후 육체적 혹은 심리적 고통 속에서 호흡하며 단지 시간만 보내는 삶은 진정으로 존엄한 삶이 아니고 따라서 그렇게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도 역시 존엄한 죽음이 아니라는 의미다. 더 나아가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는 문항에 90.2%가 동의하고 있음은 매우 주요한 사실이다.
“(고통 속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것”이 나쁜 죽음의 대표적 사례인 것과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죽음의 시기와 방법의 결정에 있어서 국가, 가족, 전문가 등 외부적 요인을 제거하기를 원하고, 고통의 개인적 임계치를 스스로 판단하여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정하는 순수한 자기결정권을 희망한다고 판단된다.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가장 크게 침해하는 외부적 요인에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촉탁·승낙살인죄 및 자살방조죄 등으로 처벌하는 국가 법체계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므로 입법을 통하여 각종 침해 구조를 정합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각 개인에게 회복되고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의 과정이 실현되는 선진 복지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용의 위험을 제거한 입법으로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허용한다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위 통계는 또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내용 중에는 그 시기와 방법뿐만 아니라 장소의 선택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피조사자의 90%는 좋은 죽음의 하나로 죽음의 장소를 병원이 아닌 평소 살던 집에서 가족과 같이하기를 원하는데 이는 입법 조치에 있어서 안락사 시행 장소도 세심하게 규정될 필요를 환기시킨다.
다른 한편, 사회 구성원 다수가 원하는 제도라고 하여 반드시 이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그 제도가 생명과 연관된 것이라면 다수결에 친하지 않을 가능성도 깊이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비판은 의사 조력사 내지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당사자의 의도와 다르게 생명을 포기케 할 염려 즉 삶을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위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사회적 요청으로서 웰다잉권과 관련된 당사자의 자유 선택지를 확장/보장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죽음을 제도적으로 은연중에 강제하거나 묵시적으로 강요할 수 있다는 염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제도운영에서 사전 및 사후의 적절한 통제 및 당사자의 의사와 상황에 대한 거듭된 확인으로써 삶을 선택할 권리 혹은 안락사 의사를 철회할 권리는 언제나 철저하게 보장된다.
Ⅶ. 입법론
적극적 안락사 입법론은 세 갈래로 살펴볼 수 있다. 형법전의 촉탁·승낙살인죄 및 자살방조죄 조항을 개정하는 방법, 이미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을 바탕으로 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 관련 규정을 신설 삽입하는 방향으로 동 법을 개정하는 방법, 적극적 안락사 관련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첫째, 형법 각칙에 규정을 신설 혹은 개정하면 간편성과 입법의 효율성에서 가장 좋을 것이지만 법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많은 논쟁과 분란을 일으킬 것이 명백해 보이고,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은 매우 세밀한 입법 조치를 요구하므로 이는 입법론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둘째,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은, 많은 토론과 노력 및 시간을 투하하여 어렵게 제정하여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을 무효화 하고 새롭게 사회적·경제적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는 비효율성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입법론은 선진적인 주요 안락사 입법을 충분히 참조하여 우리의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을 바탕으로 의사조력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 관련 규정을 신설 삽입하는 방향으로 동 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사료한다. 개정법의 명칭은 헌법 제10조와 조화롭게 가칭 「인간의 존엄한 죽음과 조력사망 및 고통완화치료에 관한 법률」로 함이 어떨지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조력사망’이라고 한 것은 조력자살과 같은 의미이면서도 자살이라는 어휘가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부정적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생명 연장 집중치료’와 ‘고통 완화 집중치료’가 그것이다. 이는 치료의 주된 목표를 어디에 두는 가에 따른 분류로서, 생명 연장 집중치료는 기존 의료시스템으로 확립된 치료방법론이므로 더 논할 사항은 없다. 그러나 소극적/적극적 안락사의 영역에서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치료는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 것이므로 치료의 중심 목표는 고통 완화치료에 집중되어야 한다. 개정법에 규정될 고통 완화 집중치료는 의학적·생리학적 완화치료는 당연하고, 종교적·심리학적·윤리적·영적·예술적 분야 등이 동원되는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치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호스피스’는 고통 완화치료 안에 포섭되는 개념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 및 조력자살과 관련된 구체적 입법의 내용은 스위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등의 선진 안락사 입법을 참고하여 한국 실정에 맞는 규정을 제정함이 좋을 것이다. 이들 안락사의 최소한의 요건은, 성년자 본인의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의사표시,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극심, 변호사·의사·윤리전문가·심리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어 조직되고 고통 완화치료 시설이 부치된 가칭 ‘안락사 및 조력사 심사원’에서 3개월 전후 기간 3차례 이상에 걸친 본인의 의사표시와 그 의사표시에 대한 재확인, 그리고 위 요건들에 대한 신중한 심사의 이행으로 정하고, 당사자가 미성년자면 직계존속 및 법정대리인(직계존속과 법정대리인이 다를 경우) 전원의 동의를 요건으로 더한다. 심사위원 등의 위법과 비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법정형을 정하여 판단의 윤리성과 신중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안락사 시행 방법은 고통을 최대한 제거하고 당사자를 자연스럽고 편안한 죽음으로 유도하는 과정이 필수다. 주로 자연적 성분의 향정신성 약물을 주입 혹은 지급하거나 질소탱크를 사용하는 방법 등이 가능할 것이다. 조력자살의 경우에는 안락사 시행 장소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조사에 의하면 절대다수의 국민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하나 집에는 약물이나 주사제 혹은 기계·기구를 다룰 전문가가 없으며 가족, 친지들에 둘러싸인 당사자가 안락사를 직접 시행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절하게 느낄 사람이 많다. 따라서 스위스와 같이 집에서 당사자가 직접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희망에 따라서는 의료관계인이 당사자의 집으로 가서 조력을 제공하는 형태인 제한적인 적극적 안락사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안락사 시행의 모든 과정은 비디오로 녹화되어야 하고, 시행 후에는 시행보고서가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은 대강의 줄기만을 기재한 것이고 실제 입법작업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실태조사, 비교 실정법적 연구, 공청회, 국회와 전국적 수준의 토의 등 보다 자세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함은 당연할 것이다.
Ⅷ. 결론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임계치에 도달한 사람에게 명예롭지 못한 형태로서의 삶의 기간의 단순한 형식적 연장을 직·간접적으로 강제한다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웰다잉권 등 헌법상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동시에 국가는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육체적 삶만이 생명이고 죽음은 생명과 무관한 것이라는 생각은 첨단 현대 과학에 의해서도 아직 입증되지 못한 이론 중의 하나이다. 실제로 뇌 과학, 분자유전학, 생리학, 의식 등에 대한 현대 첨단 연구결과 전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우리가 여전히 죽음과 생명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종교인들과 형이상학자들은 제외하고라도,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뇌과학자, 의사, 과학적 의식연구자, 철학자들의 연구 성과로써 뒷받침되고 점진적으로 오늘날의 주류적 사상으로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생명은 삶과 죽음 전부를 통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확률이 높다. 하나의 큰 생명이 펼쳐내는 ‘통시적이고 전체적인 삶’의 과정의 일부인 동시에 변화 과정 중의 하나가 죽음의 진정한 정체일 수 있다. 더구나 아직 삶이 종료되지 않은 채로 벌어지는 현상인 ‘죽어가는 과정’ 혹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아직 엄연히 삶에 속하는 부분임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안락사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삶의 단순한 종결로 보기보다는 전체적 삶의 최종 완성으로서 기적과 같은 생명현상의 절정에 해당하는, ‘삶(죽음이 아닌)에서 가장 중요한 절정의 사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이미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삶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헌법상 국가의 의무인 동시에 기본적 인권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안락사의 영역에서도 실질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래와 같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은 옳다고 할 것이다. “죽음은...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 있는 한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다음에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좁은 범위의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은 안락사와 관련하여 주요 선진국들이 취한 조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웰다잉권의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선진 OECD 국가들은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실질적 인권보장 차원에서 의사조력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를 빠른 속도로 허용하는 추세에 있고, 한국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는 사회 병리적 상황들과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높은 수치의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도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 허용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인권 관련 국가기관들과 국회는 공조하여 이들 안락사 허용 여부와 관련한 전문적 실태조사 및 사회적 합의의 도출과 후속 입법 조치 그리고 ‘안락사 및 조력사 심사원’ 설치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희망한다. 선진 입법에 대한 충분한 참조를 기반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적극적 안락사 및 조력자살을 인정하는 입법 조치는 국민의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국가가 제공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준비가 될 것이며, 공포 없이 행복하게 죽을 권리는 생명체의 매 순간을 자유롭게 하고, 매일의 삶을 의식적으로 고양되고 사랑으로 각성된 자유의 삶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삶이야말로 웰빙과 웰다잉이 조화된 진정한 생명의 표현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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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인들과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가 부족하는걸 느꼈습니다
반려견의 안락사는 이해하면서
사람의 생과 존엄에 대하여
죽음과 별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교수님의 깨우침으로 한 생각 크게 해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난치병환자와 정신질환자에게도 조력자살 적극적안락사 도입을 희망합니다
국회 안락사법 입법청원 동의구합니다. 3.1.까지
국회 청원 사이트에서
아래 비회원동의가 편해요.
여기 카페에서 찬반논쟁이 엄척나네요.
저도 동의받는게 어렵네요.잘 부탁드립니다.
널리 알려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