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방(本房)으로~! - 2009. 10. 12. (월)
다섯째 날, '이감' 통보가 왔다. 구치소 본방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메르스 때문에 1주일 간 신입방에서 보낸 후, 본방으로 배치된다. 점심 후, 같이 입소한 4명이 짐을 싸서 각자가 속한 본방으로 흩어졌다. 구치소는 죄명이 같은 사람들끼리 생활한다. 경제사범은 '경제범 방'으로, 절도는 '절도범 방'으로, 마약 사범은 '마약범 방'으로, 조직 폭력과 강도는 '강력범 방' 등으로 분리돼 있다. 그리고 명찰 색깔도 다르다.
일반 사범은 '흰색'
마약 사범은 '푸른색'
조직 폭력은 '노랑색'
'나 82-5', 나동 8층 2사(舍) 5호방이다. 가장 높은 층이라 우선 훤했다. 담당 교도관이 '5호 방은 가장 분위기가 좋다'고 말해준다. 본방에 들어섰다. 매우 갈끔하고 환해서 좋다. 신입방이 여관이라면 이 곳은 마치 호텔같다. 모두 운동 중인지 청색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를 포함 모두 11명이다. (6명은 중년이고 5명은 청년) 소년방 봉사원으로 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간단하게 인사하자 30대 총무가 수건과 반바지를 건네주고는, 신입방에서 가지고 온 담요를 구질스럽다며 반환처리 한다. 경제범 방이라서 그런지 우선 모든게 풍성했다. 이곳에 적응하려면 '영치금'도 풍족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된다. 재판으로 모든 것이 압류돼서 거의 빈털털이가 됐는데, 명색이 경제범이고 사업하다 들어왔으니 방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녁 시간은 매우 일사분란했다. 군대로 치자면 신입방이 훈련소라면 이곳은 이미 고참들이라, 분담을 해서 깔끔하고 풍성하게 차려 내 놓았다. 사식으로 구입한 훈제 닭고기, 쇠고기, 동그랑땡, 김이 올려졌다. 저녁 후, 설겆이와 방을 닦고 사제 밍크 담요를 3장 씩 깔았다. 신입방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잠자리가 펼쳐졌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8명 수용방에 11명이 있으니 잠자리가 부족해 1명은 음식 저장소인 선반 안에서 자야만 했다. 잠자리를 펴면 선반에서 음식들(라면, 훈제 닭고기, 김 등)을 선반 위로 옮기고 그곳을 비운 후 신입이 자야 하는 것이다. 폐쇄 공포증이 있던 내겐 그것은 지옥이었다. 그렇게 내 여정은 첫날부터 지옥을 경험하게 됐다.
이곳은 직제가 구분돼 있다.
봉사원 - 과거의 '방장'
총무 - 내부살림 총괄
소지 - 기결수 (재판이 끝나 확정된 죄수) 중에서 형량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중에서 선발한 도우미, 물과 음식을 날라 준다.
하루 일과는
06:00 - 기상
06:15 - 점호
06:30 - 아침 식사
11:30 - 점심 식사
17:30 - 저녁 식사
21:00 - 소등 (형광등만 끄고 오스람 램프만 켜짐)
● 등불을 찾아
늘 자유롭게 살아 왔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본능만이 꿈틀대는 구치소와 교도소의 생활은 문자적으로 지옥 그 자체였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출소를 하기 위해 생활을 모범으로 유지하고 억압된 틀에 맞추는 것은, 교도소 생활이 익숙한 일반 강력범들의 그것에 비해 10배나 힘들었다. 그럼에도 붙들어 주고 힘을 준 것은 가족이었고 내면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등불이었다. 내면 수련에 어느 정도 익숙한 자신조차 본능이 민감하게 꿈틀돼 오히려 많은 장애로 다가왔고, 기관지염 마저 도져 몸이 엄청나게 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험한 일을 해보지 못한 아내가 생활 전선에 처해져 가장 역할을 하고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입장에서, 아빠란 작자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게 했다.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염원이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써 내려간 글과 밖에선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책 읽기와 종교적 탐구는 비록 희미하지만 유일한 등불이었다.
억압된 삶은 사람을 더욱 예리하고 민감하게 만든다.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본 자연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알았고, 인간이 환경에 얼마나 처절히 구속되는지 진저리 쳐지도록 인식하게 된다. 그렇지만 악하다고 생각한 인간들이 또한 얼마나 순수한 영혼인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를 갈구하는지 새삼스레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짧았지만 2년간의 수형 생활은 자신을 엄청 성숙시켜 놓았다. (계속)
(이 글은 1인칭의 마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소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