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눔세에 대하여(1) : 마음 겨눔세
劍道뿐만 아니라 다른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승부에 임해 상황에 따라 움직일 때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하거나,
배짱이나 담력을 끌어올려두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것은 와야만 하는 결과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검도 시합에 임해서 지금 막 싸움을 개시해야 하는 순간,
가장 먼저 공방(攻防)에 유리한 태세를 갖춘다.
이것이 겨눔세(構え)입니다.
겨눔세란 고정(固定)된 유체적(有體的)인 형태가 아니라
千變萬化하는 心身卽一의 태세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겨눔세는 편의상 無形, 有形의 겨눔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를 ‘마음(心) 겨눔세’, 혹은 ‘기(氣) 겨눔세’라 말하고,
후자를 ‘몸(身) 겨눔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검도에 있어서의 마음자세를
先人의 저술에서 살펴보며 풀어보고자 합니다.
“대저 검술이란 敵을 죽이고 벌하는(殺伐) 일을 일컫는다.
그 殺伐의 念을 맹렬하고 똑바르게 즉각적으로 적의 心胸을 뚫어
관통시키는 것을 제일의 요점으로 한다.”
이것은 막부 말기의 奇傑 히라야마 코조
(平山行蔵: 字는 子龍. 1760~1829)의 『劍說』의 머리말에 있는 말입니다.
* 에조(蝦夷: 일본의 동북부에 사는 민족집단. 아이누족)의 삼장(三蔵)
히라야마 코조(平山行蔵: 막부 말기의 기걸(奇傑)
곤도 쥬조(近藤重蔵: 에도 후기의 서지학자. 1771-1829),
마미야 린조(間宮林蔵: 에도 후기의 탐험가)
다시 말해 劍術이란 生死를 결정짓고 승패를 밝히는 武道로서,
거기에는 타협이라고는 티끌 만큼 조차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몸을 던져 앞으로 나아가 쳐서 쓰러뜨리는 것뿐이다, 라고 하는
소름끼칠 만한 기백(氣魄)이라고 ‘검(劍)의 길(道)’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코조(行藏)뿐만 아니라 古來의 검도서들 역시 異口同聲으로, “검술이란
생사를 결정하는 길이다.”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定說인 듯합니다.
덧붙인다면
잇사이 초잔(佚齋樗山: 1659-1732. 고양이의 묘술의 저자)의
『텐구예술론(天狗藝術論)』에서는 ‘검술은 생사의 순간에 쓰는 기술’이고,
미나모토 스가네(源菅根)의 『검법략기(劍法略記)』에서는
“검술 배우는 것은 항상 生死를 가르는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 『검설(劍說)』에서는,
“칼을 받거나 흘리거나 하는 손끝만의 교묘한 것은 일절 사용하지 말고,
자신이 마음에 둔 곳을 향해 적의 자극에 흔들리지 말고 뚫고 나아가
단칼(一刀)에 치고 마무리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흡사 굶주린 독수리나 호랑이가 먹이를 향할 때와 같은 모습으로,
필사의 각오, 몸을 던지는(捨身) 자세로서, 혹여 만에 하나 틀어질 때는
‘간뇌(肝腦)가 땅에 흩어지고, 이후 그것으로 끝일 뿐’이라고 하는,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 박력입니다.
검도에서는 자주 ‘守, 破, 離’라고 하는 수행의 순서에 대해 가르침을 받습니다만,
저희의 守의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같은 전력투구의 자세가 중요하겠습니다.
물론 언제까지 이와 같은 마음자세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즐겨 휘호했다는 白樂天의 <강루연별(江樓宴別)> 의 한 소절
‘한류대월징여경(寒流帶月澄如鏡:
차가운 시냇물에 달그림자 드리우니 맑기가 거울 같구나)’
그 어떠한 것에도 구애됨이 없는 맑고 서늘한 심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분발하고 또 분발해서 그 끝까지 분발한 기(氣)를 쌓아가지 않으면
도저히 도달하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劍을 마음에 두신 여러 형제분들,
검도의 마음자세는 곧바로 일상생활에 직결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평소의 연습에 대용맹심(大勇猛心)을 가지고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헤이겐 히라야마 시료(兵原平山子龍)의
『검설(劍說)』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