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 배경 1874년 가을에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탈고했다. 차이콥스키의 얼룩진 삶에 끈질기게 실처럼 따라다녔던 것은 신경쇠약 증세였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민감했던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해 스승이자 피아노의 대부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colai Rubjnstein,1831~1881년)에게 작품을 헌정하고 스승의 의견을 기다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루빈스타인은 이 작품을 엉뚱하고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곡이라고 신랄한 평을 서슴치 않았다. 문제는 연주하기에 너무 어렵고 악장들은 너무 잘게 조각 나 있으며 서투르게 취급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이런 2류 작품은 반드시 대대적으로 수정을 해야만 자신이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차이콥스키가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쓴 편지에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적혀 있다.
격분한 차이코프스키는 독일의 명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low,1830~1894년)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던 뷜로는 이 곡을 미국 연주회 도중 1875년 10월 25일 벤저민 존슨 랑의 지휘와 함께 보스턴에서 초연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도 연주해 호평을 받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분명 루빈스타인의 비평에 “나는 음표 하나라도 고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결국 고치고야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이 작품을 최초로 본 루빈스타인의 비판은 무시했다. “진정 하나의 진주와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한 초연자 뷜로가 어떤 조언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1876년 런던 초연의 협연자로 나선 에드워드 댄로이터(Edward Dannreuther)의 수정이 두 번째 판본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댄로이터는 초연 당시 프로그램 노트에 해설을 쓰기도 했다. 1969년 발견된 댄로이터의 가필 판본은 그의 수정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는 1876년 댄로이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현명하고 실제적인 제안들’에 감사를 표했고, 재 출판될 경우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썼다. 그는 루빈스타인의 감정에 찬 비판은 거부한 채 댄로이터의 건설적인 제안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작품에 수정이 가해지자 3년 뒤에는 루빈스타인이 직접 화해를 구하게 되었고 스승이자 친구인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다고 한다.
최종본에서 가장 창조적인 변화는 바로 1악장 도입부 4분의 3 지점에서 폭발하는 거대하고 자유롭게 낙하하는 ‘화음의 폭포’다. 이는 리스트의 제자이자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알렉산더 질로티(Alexander Siloti)의 조언이 적극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 곡 해설 1악장 Allegro non tropppo e molto maestoso(지나치게 빠르지않게 그리고 매우 장엄하게) 웅장하고 풍부한 색채로 시작하는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조성과 전개가 자유로운 편이다. 오히려 환상곡적인 느낌까지는 이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강렬함과 화려하고 육중한 피아노가 서로 대결하는 듯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특징으로서, 장대한 1주제와 낭만적인 2주제의 뚜렷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2악장 Andantino Semplice(조금 느리고 소박하게) 느린 안단테 악장과 스케르초 악장을 뒤섞어놓은 듯한 혁신적인 악장.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잠이 드는 아기의 평온함으로 시작하여, 프레스티시모로 질주하는 환상 속의동화를 꿈꾸다가 첫 자장가로 돌아오는 모습은 지극히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연상시킨다.
3악장 –Allegro con fuoco(빠르고 즐겁게 그리고 격하게)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맹렬하고 장대하며 스펙타클한 악장으로 손꼽힌다. 오케스트라의 네 마디 서주 후부터 펼쳐지는 피아노의 굵고 거친 슬라브 무곡풍의 론도 주제와 이어지는 간결한 가요적인 부주제가 잇달아 펼쳐지며 서정과 기교의 긴박감 넘치는 조화와 대비를 이룬다. 특히 마지막 피아노 코다 부분에서의 빠르고 강렬하며 비르투오시티 넘치는 옥타브와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총주의 터질 듯 벅차오르는 사운드는 러시아의 호방함과 저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전곡 감상 (36:43)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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