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의 기악음악
중세의 기악음악은 악보로 보존된 것이 극히 드물며 악기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의 세밀화·회화·조각이나 연회·축제 그리고 궁정에서의 여흥 등에 대한 묘사·서찰·시들을 통해서 악기들이 사회의 각 계층에서 음악적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악기들로만 연주된 상당량의 음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악기로는 플루트, 리코더, 숌(shawm, 현대의 오보에 같은 리드 악기), 코넷(cornet, 트럼펫과 비슷한 악기), 부이진(buisine, 나팔꽃 모양의 벨을 가진 길고 곧은 트럼펫), 색버트(sackbut, 중세의 트롬본), 봉바르드(bombard, 숌 족의 일종), 백파이프, 프레텔(fretel, 팬파이프의 시골풍 타입), 차임 벨, 카릴롱(carillon, 교회의 종루에 매달려져 있는 한 벌의 종들로, 건반이나 페달을 눌러 소리나는 악기) 등이 있었고, 타악기로는 심벌즈, 탬버린, 종, 트라이앵글과 네이커스(nakers, 케틀 드럼), 타보르(tabor, 작은 드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드럼들이 있었다.
현악기로는 비엘(vielle, 바이올린의 조상), 레베크(rebec, 비엘보다 작으며 음역은 높다), 살터리(psaltery, 쳄발로의 전신), 류트, 허디-거디(hurdy-gurdy, 비올의 몸통과 비슷한 형태의 찰현악기) 등이 있었고, 건반악기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형 오르간(portative organ)과 큰 사이즈의 고정형 오르간(positive organ)이 있었다. 이 시대에 교회가 권장하는 음악은 성악음악이었고, 이후에 다성음악이 발달했을 때에도 교회는 악기 연주가 신자들의 마음을 교란시킨다 하여 오르간 이외의 악기 사용을 금지했다. <멜리아두스 왕의 로망스>의 삽화. 악사들이 살터리와 만도라의 반주로 노래하고 있다. 동시대인들은 이 시대의 악기 타입을 구별하기 위해서 ‘haut(high)’와 ‘bas(low)’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음높이나 음색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고 음량(volume)과 관계되는 말로, ‘큰 소리’와 ‘작은 소리’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사냥이나 전쟁, 야외에서의 행사에는 트럼펫·숌·봉바르드·색버트와 타악기들 같은 ‘큰 소리’ 악기들이 사용되었다. 세밀화들은 사냥꾼이 동물의 뿔로 만든 작은 호른을 불고 있거나, 전쟁 장면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문헌들을 통해서, 왕이나 영주들이 다른 도시로 입성하는 행렬음악으로, 대관식이나 결혼 같은 기념식에서, 또는 전령관의 도착을 알릴 때 트럼펫과 드럼 등의 ‘큰 소리’ 악기들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롤랑의 노래〉에서도 그가 호른과 부이진을 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네이커스나 타보르 같은 타악기들도 십자군 전쟁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중세의 음악적 여흥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춤이었다. 춤음악에는 파이프와 타보르, 백파이프, 허디-거디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12세기 로망스들은 축제와 결혼행사에 관악기와 타악기 반주에 맞추어 추는 여러 종류의 춤들을 묘사하고 있다.
악기 연주는 대체로 종글뢰르들의 영역이었다. 이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태도는 이중적이어서, 잡기에다 도둑질에도 능한 퇴폐적인 인물들로 간주하면서도 훌륭한 연주자들의 연주는 상당히 즐겼으며, 심지어 귀족이나 왕들은 이들을 자신의 궁정에 후한 급료를 지불하며 고용하기도 했다. 교회 또한 공식적으로는 종글뢰르들을 사악한 자들로 간주해 성사에 참여하는 것조차 거부하면서도, 몇몇 고위 성직자들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종글뢰르들을 자택에 고용했고, 수도원에서도 특별한 축제행사 중에는 그들을 불러들였다.
종글뢰르들은 주로 공공연주가 금지되는 사순절 기간 동안 정규적으로 회합을 가지면서 서로 노래와 연주 레퍼터리들을 교환하거나 배웠다. 1210년에 기로 드 칼랑송(Guiraut de Calanson)이 쓴 〈종글뢰르들에게의 조언(Conseils aux Jongler)〉에 따르면 종글뢰르들은 적어도 열 개 정도의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요구되었다고 한다.
중세의 기악음악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즉흥음악, 성악곡의 기악적 연주와 춤음악이고, 현존하는 것으로서 최초의 기악음악은 에스탕피(estampie)라는 13세기의 춤음악이다.
<출처 : 서양음악사 100장면,pp.12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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