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서 부딪히는 팬데믹
광주효동초등학교 교장 이명숙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와 함께 우리 교육도 많은 과제에 직면하였다. 학교는 제때 개학을 하지 못했고, 그나마 어렵게 열린 학교도 교육보다는 방역과 안전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학교 밖의 안정적 돌봄 체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은 사회적 돌봄의 공백 현상을 심화시켰다.
교육 당국의 지침에 따라 교육계획을 계속해서 변경해야 했고 갑작스럽게 도입된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어려움을 겪은 교사들, 학교에 오지 못한 채 학습 무력감과 관계 형성의 어려움을 겪은 학생들, 개학 연기와 원격수업에 따른 자녀의 학습과 돌봄 공백으로 어려움을 호소한 학부모들 모두 코로나로 인한 학교의 변화로 당혹감을 느끼면서 팬데믹 시기 교육이 맞닥뜨린 본질적 문제들을 직면해야 했다.
팬데믹으로 학교가 겪는 변화와 어려움을 살펴보고, 코로나로 문이 닫힌 학교가 드러낸 학교의 역할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에서 추구할 학교 교육의 방향을 함께 찾고자 한다.
● 코로나와 학교의 변화
코로나 시대, 학교의 재발견
코로나19가 불러온 학교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학교가 멈춰서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학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묻게 되었다. 그동안 학교로 상징되는 공교육의 위상은 제대로 서지 못했다. 초중등교육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거쳐야 하는 국가의 제도로 강제된 과정으로 여겨지고 늘 사교육의 입시교육 효능과 비교되어왔다.
작년 코로나19 사태로 초·중·고등학교는 6월에야 문을 열었다. 그마저도 모두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대입 일정에 쫓기는 고3은 매일 등교했지만, 학년과 지역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들쭉날쭉 학교에 갔다. 원격수업이 이뤄졌지만 친구들과의 소통과 교감, 학급, 학년, 학교 단위의 교육활동으로 작동하던 학교의 기능은 멈췄다.
예년보다 100일가량 늦게 학교 문이 열리면서 각 가정에서는 돌봄 부담을 호소했다.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녀들의 시간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부모들의 부담, 무기력하고 흐트러진 생활습관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아이들, 가정환경에 따른 교육격차 심화 등 역설적이게도 학교의 역할은 학교의 부재로 증명되었다. 학습은 물론이고 가정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했던 아이들의 생활과 돌봄을 학교가 도맡아왔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방역과 안전, 학습과 배움을 넘어 학교와 공교육의 존재 이유, 학교의 돌봄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학교가 겪는 어려움
코로나로 사상 초유의 어려움을 겪은 작년과 올해를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학교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로 닥쳐오는 상황에 허겁지겁 대처하며 교육활동을 꾸려나가야 했다. 등교 제한과 원격수업의 답답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학교 교육의 취약한 부분이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다가왔다.
코로나 상황에서 교육청의 지원과 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이제 교육, 돌봄, 복지의 영역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감염병에 대한 방역 차원에서만 안전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정의 경제 여건이나 학습 환경의 격차를 넘어서는 안전한 학습과 복지의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가정 여건과 학생 개인차에 따른 학력 격차의 심화에 대해 우려하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격수업 상황에서 방치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원격수업 여건이 잘 갖춰진 가정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에게도 가장 본질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의 소외 문제는 남는다. 학생 간 접촉을 줄이고 거리두기 확보를 위해 학교에서는 유연한 교육과정 운영, 맞춤형 학습관리, 비대면 상황에서의 소통과 협력활동 활성화를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교육행정 당국의 대처와 한계
감염병의 위험 속에서 온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코로나를 겪은 지 1년이 넘었지만 학교는 여전히 안전과 학습의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학교의 혼란이 일어나는 근본적 이유는 일관된 대응의 원칙이 적용되기보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지침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중구난방으로 지침이 나오는 것은 교육 당국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적 안목과 진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책임 있게 방역과 학습의 병행 원칙을 제시하고 구체적 대응은 학교의 자율권을 존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학생·교사·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유능하지 않았으며, 면피용 지침은 원칙이 불분명하고 학교현장의 상황과 거리가 있었다.
다치지 않으려면 닫아야 하는가?
원격수업, 등교 인원 제한 등으로 물리적인 제약 속에서 진행하는 교육은 학교가 멈추는 최악을 피하는 잠깐의 미봉책일 뿐 실질적인 교육이 가능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또 등교 수업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노리고 겨우 문만 열고, 오로지 거리두기에 급급하여 소통도 활동도 차단한 학교에서 학습과 배움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코로나로 다치고, 닫히는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돌보고, 교육을 위해 먼저 관계를 잇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일 터지면 다칠까 하고 책임이 무서워서 닫는 학교는 코로나로 마음이 다치는 학생들을 돌볼 수 없다.
● 코로나의 역설로 드러난 학교의 역할
지식만이 아닌 관계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의 관계 맺음의 교육과정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더불어 살기를 익힌다.
그러므로 교육의 본질은 관계의 학습이고, 관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지식과 학습은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지식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다양한 가치와 태도를 습득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 학교 교육은 안전한 학습과 온전한 성장의 관점으로 이뤄져야 한다.
돌봄도 교육이었다
학교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돌봄 공백 현실을 드러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개학 연기를 발표하며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한 자녀 돌봄의 대안으로 ‘학교 안 돌봄’ 방식인 긴급돌봄을 내놨다.
여러 조사에서 코로나로 학교를 나오지 못하는 사이 학생들은 체중증가와 비만이 늘었고, 학습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밝혀졌다. 등교중지로 인해 학부모들은 돌봄에 관심이 몰렸고, 안전하고 믿을만한 돌봄 기관이 없다 보니 학교 돌봄에 많이 의존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긴급돌봄이 운영된 한계가 드러났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전담인력과 전용공간 확보가 관건이었으며 가장 큰 문제는 학교의 돌봄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 코로나, 위기에서 기회로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합의
코로나19 이후,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추구해야 할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공교육으로서의 학교는 배움에 있어서 평등해야 하고,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먼저 배움과 성장을 위해 가정, 사회, 학교에서 안전하게 돌봄을 받으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학교가 안전하고 온전한 배움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가정, 사회와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이 이뤄지고 학력 격차에 대한 우려들이 대두되었다. 학생들의 학력 격차에 대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부모의 교육, 경제 수준,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학력 격차를 걱정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과 정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학교가 문을 열며 감염에 대한 긴장과 우려로 방역과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다. 안전과 더불어 아이들의 온전한 성장과 회복을 위해 학교는 학생들의 관계와 연결의 회복을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학생들이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연결되는 것은 정체성 형성과 학습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학교로 집중된 돌봄 기능을 마을과 사회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가장 긴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인 학교에 돌봄 기능을 맡겼다. 장기적으로는 학교와 함께 마을과 지자체에 다양한 돌봄 기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좀 더 세심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교육을 위해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과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표준에 대한 전망도 내놨다. 코로나는 종식 이후에도 우리의 일상에 계속 영향을 줄 것이고,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학교 교육이 사회 변화와 교육적 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원격교육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적 만남과 관계를 찾아가는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의 교육은 온라인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과는 다르게 대면으로 해오던 기존 교육의 역할과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대면의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습으로 사회적 관계성을 기르고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학습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학교는 지식뿐 아니라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 교육은 안전한 학습과 온전한 성장의 관점으로 이뤄져야 하며 가정, 사회와 함께 친밀한 관계, 정서적 안정, 건강, 소속감과 정체성 등의 기본적인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인간들이 그동안 저질러온 일들과 그 결과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지구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위기를 제대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의 교육이 요구된다.
우리가 추구할 미래 교육의 방향은 우리가 맞닥뜨릴 위기 앞에서 경쟁적 각자도생의 상태를 극복하고 코로나19와 같이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려움을 협력하여 이겨내는 사회적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교육에 대한 합의를 통해 학교 교육이 감당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