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02월 06일 주일 메시지
시리즈 제목: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7. 하나님의 얼굴
시편 27:8~9
설교 목적
시편 27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는 말씀을 만난다. 이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의 얼굴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아보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는 성경의 표현을 볼 때 그것은 태양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서 성경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속성이 드러난다.
나는 이 설교에서 태양과 관련하여 그리스인들도 이카로스의 신화를 통해서 중용의 도를 가르친다는 점을 소개한 후에,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사람들의 예를 제시할 것이다. 성경이 들려주는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아를 뛰어넘는 체험을 의미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 속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설교를 통해서 내가 생각해 보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1)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2)성경이 제시하는 지혜가 그리스인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3)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지.
설교 개요
1. 하나님의 얼굴과 태양
2. 이카로스의 이야기
3.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사람들
4. 지성이면 감천이다!
……………………………………………
1. 하나님의 얼굴과 태양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 노랫말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것입니다:
인자한 그 얼굴 예수님 얼굴 걱정을 모르는 예수님 얼굴
우리의 맘 속에 예수님 얼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예수님 얼굴
제가 어렸을 때 교회당의 왼쪽 전면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정말 그렇게 생기셨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의 실제 모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예배당의 벽에 걸려 있던 예수님의 얼굴은 미국인 화가 살만(Warner Sallman, 1892–1968)이 1940년에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그리스도 우리의 인도자(Christ our Pilot)도 예배당의 다른 쪽에 걸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소개된 모든 그림들은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예수님이 중동에서 태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새롭게 그 얼굴을 추정하여 제시했습니다. 그 모습은 검은색 곱슬머리에, 햇빛에 그을린 진한 구릿빛 얼굴색을 가진, 구레나룻이 북슬북슬한 전형적인 중동 남성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어떨까요? 성경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요 1:18)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내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한 분으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엎드러져 죽은 자처럼 되고 맙니다(계 1:17, 사 6:5, 삿 6:22,23).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먼저, 밧모섬의 요한은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을 뵈옵고 그 얼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의오른손에일곱별이있고
그의입에서좌우에날선검이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의 얼굴은 하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강렬한 빛 앞에 압도되어 요한은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승천하신 예수님을 뵈었을 때 정오쯤 되었는데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신과 일행을 비쳤다고 말했습니다(행 26:13).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이처럼 도저히 그 앞에 다가갈 수도 설 수도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 모습을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을 초월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에 대하여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그것은 따뜻한 빛을 비춰주는 햇살에 비유됩니다. 민수기 6장에는 제사장의 축복기도가 나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서 백성들 앞에 서서 그들을 축복할 때는 다음과 같은 말로 축복하라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그얼굴을네게로향하여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이같이내이름으로이스라엘자손에게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수기 6:24~27
제사장의 축복기도는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마치 햇살처럼 그 백성에게 비추시기를 비는 축원입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누구에게 비추신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그 얼굴을 드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은 마치 태양빛과 같아서 그 얼굴이 비추는 사람은 은혜를 입으며 형통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그 얼굴을 숨기시면 그 사람이나 나라는 어두움 가운데 패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곤란한 일 가운데 빠진 성도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시 88:14)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숨기시는 것은 마치 태양이 그 빛을 잃고 더 이상 빛을 비추지 않아서 모든 생명이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태양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은 좀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2. 이카로스의 이야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 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앞으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곰과 호랑이는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했지만 곰은 100일을 견뎌서 마침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웅녀인데 그가 환웅을 통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단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조상이 하늘로서 왔음을 알려줍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태양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손재주가 뛰어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다이달로스인데 무엇이든 잘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는 괴물을 가두는 미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래버린스(Labyrinth)라는 그 미로감옥에는 만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는데 테세우스라는 젊은이가 그 괴물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그 전에도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잡으려고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괴물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곳의 내부는 복잡한 미로(迷路)로 되어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성공했습니다. 괴물을 해치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 미로의 주인인 미노스왕의 딸이 테세우스와 사랑에 빠져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에게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준 사람은 그 미로의 설계자인 다이달로스입니다. 긴 실을 들고 가서 그 실을 따라 나오면 된다고 알려준 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를 그의 아들과 함께 높은 탑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아들과 함께 감옥에 갇혀 지내던 다이달로스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날개를 만들어 그 감옥을 빠져나갈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새의 깃털로 날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밀랍과 새의 깃이 필요했습니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가 손재주가 많은 것을 알고 간수에게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요구한다면 갖다 주라고. 그가 다 만들면 그것을 가로채서 사용하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마침내 날개가 완성되었습니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날개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이기 때문에 하늘 높이 날아서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빠져 죽을 수 있으며, 너무 낮게 날아서 바닷물에 날개가 젖으면 무거워져서 날 수 없게 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부자는 매일 나는 연습을 하다가 마침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일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이카로스는 좀더 높이 날아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경고를 잊어버린 거겠지요. 결국 이카로스의 날개는 태양빛에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이 신화 속에 어떤 교훈을 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무슨 일에나 지나치면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말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인들은 그 말을 메뜨론 아리스똔(Metron Ariston)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용(中庸)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그리스인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달로스가 옥에 갇힌 이유가 있습니다. 이카로스가 바다에 빠져 죽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하늘을 높이 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세상 모든 일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인간의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치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 이야기 속에는 이와 다른 흐름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인간의 행동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또 다른 주관자가 있어서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중요한 일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뜻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사람들
어찌 할 수 없는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뵌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를 속이고 그의 장자권을 가로챘다가 집에서 달아났습니다. 형이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타향살이가 어느 새 20년이 지났습니다. 야곱은 결혼하여 여러 자녀들을 거느리고 재산도 많이 불었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야곱은 자기 무리를 셋으로 나누어 고향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선발대의 보고에 의하면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고 합니다.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그가 얍복강 나룻터에 다다랐을 때 모든 짐승과 종들, 그리고 가족을 다 건너게 하고 자기만 홀로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씨름에서 야곱은 자신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이 씨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침이 되어 천사는 떠나고 야곱은 일어났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와 함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니!’라는 깨달음으로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난 야곱은 형을 맞으러 나갑니다. 죽음과 삶이 더 이상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형을 만나서 그에게 달려가면서 일곱번 몸을 굽혀 땅에 엎드립니다. 형은 그 모습을 보고 동생을 얼싸안고 함께 울며 화해를 합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이 이제 지나가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뵌 후에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을 마주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소원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 중에 제가 소개하고 싶은 두 번째 인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모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그 세상을 물려받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서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오셨다고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갈릴리와 온 유대 땅으로 전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메시아로 생각하고 환영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하던 분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환영과 비난, 칭찬과 조롱 사이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드디어 삼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의를 하고 그것을 실행할 때가 다가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의 삶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 이 땅에 펼쳐지려면 예수님이 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 나아간 곳은 늘 기도하던 나지막한 언덕이었습니다. 그곳은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마 26:36, 막 14:32).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조금나아가사얼굴을땅에대시고엎드려기도하여이르시되
내아버지여만일할만하시거든이잔을내게서지나가게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다시두번째나아가기도하여이르시되
내아버지여만일내가마시지않고는이잔이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마태복음 26:39,42
예수님이 마셔야 할 그 잔이 어떻게 예수님을 지나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행악자들을 모조리 죽이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그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달아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동안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온다고 그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됩니까? 결국 하나님의 뜻은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지는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면 누군가는 이렇게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곤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제자들을 깨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6절).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행악자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그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에 동참한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세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선교사요 사도입니다. 그는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길은 육로와 해로를 포함하는 길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지중해 바다는 풍랑의 위험이 늘 있었습니다. 바울은 피고인의 신분으로 그 배에 올랐습니다. 배는 처음에는 잘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몇날 몇일을 해를 보지 못하고 거친 바람에 배가 파선될 위기에 빠졌습니다. 구원의 희망이 사라져 갈 때 사도 바울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밤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사도 바울이 그날 사람들 앞에서 말한 것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내가너희를권하노니이제는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속한바곧내가섬기는하나님의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두려워하지말라네가가이사앞에서야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여러분이여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사도행전 27:22~26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그 배는 멜리데 섬에 도착했고 승선한 인원 276명 모두 안전하게 구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 응답을 받은 사도 바울은 파선의 위험에 빠져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해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신분은 미결수였지만 그는 위기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뵙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모두 위기 가운데서 간절하게 하나님과 씨름을 했거나 기도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마주하여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20년 묵은 원한이 풀리기도 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 문을 열 수도 있었으며, 침몰의 위기에 빠진 뱃사람들을 구원할 수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초월하고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4. 지성이면 감천이다!
시편 27편에서 성도는 이렇게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여호와여내가소리로부르짖을때에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내얼굴을찾으라하실때에내마음이주께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편 27:7~8
하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추는 것과 같아서 그 앞에 눈을 뜰 수 없고 설 수도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이 비치면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하나님의 얼굴은 진노하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얼굴은 따스한 봄볕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본 하나님의 얼굴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치기를 바라고 빌 것입니다. 그것은 어둔 길을 인도하는 빛이며 위험한 가운데서 구원하는 반석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난관과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환난 날에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서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계속됩니다. 두려움이 커질 수도 있고 마음이 낙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는 계속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성도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견뎌냅니다.
고난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은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은 그 역사를 볼 것이며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포기하고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최악의 선택은 자신과 세상을 저주하고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편 27:13, 14
이 구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더욱 실감납니다:
그러나나는살아생전이땅위에서
야훼의 은덕을 입으리라 믿사옵니다.
야훼를 기다려라. 마음 굳게 먹고 용기를 내어라. 야훼를 기다려라.
시편 27:13, 14, 공동번역성경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서서 손을 대면 그 일을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진실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을 우리 조상들은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지성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지극한 정성’이라는 의미와 함께 ‘지극히 성실함’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동시에 지극히 성실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조급하게 행동하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도 교회에 권면하기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고 말했습니다. 지성을 다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이며,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묵상하고 찬양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이 우리를 바위 위에 높이 세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도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지성으로 살아갑시다. 할렐루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