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율법은 열려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소위 ‘안식일 논쟁’으로 불리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제자들이 배가 고팠던지 길을 헤치고 나가다가 보이는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불치의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제때 끼니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고된 예수님의 전도의 여정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애잔하게 바라볼 수 있을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바리새인들은 뜬금없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 옵니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출 20:10의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와 출 34:21의 ‘밭 갈때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입니다. 두 구절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을 행동이 불법이라고 명확히 규정짓기는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가령 배고파서 당장 허기를 채우는 일은 생업을 위한 농사행위로 치부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고, 반면에 안식일 규정에 보면 미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미리 양식을 예비해 놓도록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허기가 진 것이니 결국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 명확히 명시된 규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행동을 굳이 불법이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은 일로 인해서 예수님과 바리새인, 서기관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이를 지적하면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라고 칭하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고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논쟁은 왜 벌어지게 되었고, 또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첫째, 떡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정결법은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바가 없습니다.
둘째, 구약의 율법에 정결법에 대한 내용은 주로 레 12-15장에 나오는데 출산한 여인, 피부병, 유출병, 월경 등 주로 감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주어진 의학적인 차원에서의 명령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에서의 정결법의 구약적인 근거를 굳이 찾아본다면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는 제의적인 관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셋째, 바리새인들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장로들의 전통은 그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법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데도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으면 안된다”는 새로운 정결법을 만들어 추가한 장로들의 전통은 잘못된 것일까요? 그러한 시도 자체는 결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열려 있다는 것은 구약성경의 율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해석되고 적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전에 상술했던 것처럼 율법은 “최소한의 규범”입니다. 2백만 이상의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할 공동체의 국법, 시민법, 개인 윤리를 아우르는 법 치고는 결코 많지 않습니다. 이 “최소한의 규범”은 3500년 전에 선포되어서 화석처럼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받은 사람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해석과 적용은 구약에 명시되어 있는 율법의 정신에 위배됨으로 인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