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바우처 카드가 드디어 나왔다.
카드의 풀네임은 ‘충북여성농어업인 행복바우처카드’
한마디로 시골 여성들을 위한 문화복지 카드로
매년 화장품 가게, 서점, 문방구, 미용실 등에서 15만 원을 쓸 수 있다.
카드가 나오면 미용실부터 달려갈 참이었다.
2년 전에 롤 매직을 하고 한 두번 가볍게 커트한 게 전부였다.
빗질도 하지 않은 채 날마다 고무줄로 달랑 묶으며 지내다 보니
머리카락은 어느새 치렁치렁 등짝까지 자라 있었다.
어떤 스타일로 할지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읍내 미용실부터 갔다.
매번 갈 때마다 다음엔 여기 오지 말아야지 했는데 도착해보니 또 그 미용실이다.
작년에 인테리어 공사에 많은 돈을 들여 넓고 쾌적한 곳으로 이전했는데
실력보다 공간이 주는 안락함을 택한 것이다.
시골 읍내 미용실들이 다 거기서 거기.
실은 썩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지 못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도착한 미용실에는 손님이 없었다.
두 미용사가 소파에 앉아 휴대폰과 tv를 보며 각자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한 것 같아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하셨어요? 오늘 날씨가 진짜 좋네요.)
오랜만에 반가운 이웃을 만난 양 소파에 앉아 그녀들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어머 쌍꺼풀 수술하셨네요? 와 너무 잘 나왔다. 훨씬 예뻐지셨어요.)
평소보다 과하게 너스레 떠는 나를 감지했다.
몸에 꽉 들어찬 봄기운 탓이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저한테 어울리겠다 싶은 스타일로 알아서 해주세요.)
원장님과 직원이 매우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마 이런 손님을 미용사들이 가장 싫어하지 않을까?
(저처럼 얼굴이 긴 편이니까 긴 머린 안 어울려요. 단발로 자르는 게 어떠세요?)
(전 긴 머리도 잘 어울리는데요.)
원장님 말에 순간 욱해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근데 왜 물어 보냐구? ‘허’하고 짧은 한숨을 훅 내뱉은 원장님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한 걸 씹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럼 롱 레이어드 세팅 파마 하세요.)
(네 그걸로 해주세요.)
욱하지 말고 원장 말을 들었어야 했다.
세 시간에 걸친 세팅 파마는 쌍수를 한 직원분이 맡아서 해주셨다.
원장님보다 이 분 실력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우리 동네 아줌마들도 이견이 없다.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져 완성된 머리를 차분히 볼 시간도 없이 미용실을 나왔다.
곧바로 한살림 매장으로 장을 보러 갔는데,
식품 진열대 유리에 비친 내 머리를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이것은 머리카락인가? 사자머리 가발인가?
90년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온 후보들의 바로 그 폭탄머리가
내 머리에 가발처럼 씌워져 있는 게 아닌가?
티나 터너 언니가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와 출생년도가 같은 올드팝스타 언니.
긴 머리에 파마는 처음 해본다.
내 머리가 원래 이렇게 되는 건지 미용사의 실력 탓인지 모르겠다.
갓 볶은 머리를 다시 고무줄로 질끈 묶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무줄 풀고 아이들에게 머리를 보여줬더니
지오 표정이 슬로우 화면처럼 서서히 일그러졌다.
충격과 혐오와 ‘내 엄마 아니야’하는 강한 부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엄마, 너허어...어무 이상해. 먼저 머리가 훨씬 나아.)
당장 다른 미용실 가서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
그 미용실은 이제 절대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이 폭탄머리를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중이다.
그냥 이번 기회에 이미지 대변신을 시도해볼까?
티나 터너, 신디로퍼! 이 추억의 언니들을 소환해 레트로 펑크스타일로 가봐?
컬러풀하게 염색도 하고?
일단 머리는 묶고 팝스타 언니들의 재기발랄 넘치는 에너지만 소환하기로 했다.
첫댓글 ㅎ 너무 궁금해요^^ 사진으로 좀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