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로 남은 슬픔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241030 서경희
10대에 이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유명한 천재 작가가 쓴 소설이며, 나와 같은 나이에 썼다 등등.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은 이 소설의 첫 장을 넘기며, 앳되고 예쁘고 총명해 보이며 다소 반항적이었던 소녀 작가의 얼굴이 내 시선을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난 이 소설의 제목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뿐, 내용이나 사강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잊고 있었다. 너무나 화려한 수식어가 따르는 작가에 대한 흥미 자체도 10대에 부딪혀야 했던 입시와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던 것 같다.
거의 50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만지며 들었던 반가움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저 내 10대를 잠깐 본 것 같은 반가움이었나? 소설 속의 세실이 아닌 단발머리에 촌스럽지만 눈만은 초롱초롱했던 나를 잠깐 스치듯 만난 느낌이다.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한국전쟁이 막 끝난 우리의 시대와는 달랐던 유럽의 상황, 자유로웠던 문화적 우월감의 유럽을 다시 한번 느끼며 18세의, 이제 막 성인이 된 자유롭게 흐트러진 짧은 머리를 한 앳된 얼굴과 주점 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 노트에 끄적이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짧아져 가던 담배가 자주 오버랩되었다.
엄격함과 절제를 강요받던 세실이 자유로우며 어찌 보면 무절제한 듯이 보이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되며 경험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세실이 느끼는 자유로운 감정과 남녀관계의 모습들, 그리고 다시 세상의 눈으로 보여지는 자신을 만들어가야 하는 압박 속에서 반항하는, 조금은 맹랑한 소녀의 어설프고 귀여운 감정묘사는 즐거웠다. 자신이 만드는 드라마 속의 배우들처럼 그녀의 의지에 휘둘리며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만족하며 느끼는, 마치 어른이 된 듯한 우월감과 작은 위기에도 흔들리며 거부하고 저항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을 의지하고 불안해하는 사춘기 소녀의 이중적인 모습에 책을 읽으며 몇 번을 미소 지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의 죽음을 접한 세실과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은 왠지 씁쓸했다. 막장드라마의 끝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세실이 명명한 그 슬픔은 어떻게 끝을 내어야 하는지, 마치 책을 읽는 내게 숙제로 남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