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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으로 믿음의 눈을 떴는가? / 2020년 2월 16일 주일 예배
본문 / 요한복음 9:1-12
저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과거에 굿 닥터라는 연속극은 재미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에 리메이크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산타가 거짓말인 것처럼 천국도 없다는 말을 듣고 실망에 빠집니다.
세상을 떠난 아빠와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의사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천국은 마음의 문이 열려있는 사람만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믿음의 눈이 뜨인 사람만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믿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본문은 요한이 복음서에서 증언하는 일곱 가지 표적 중에 여섯 번째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이 세상의 물질과 영광으로 자신의 육체의 만족을 섬기는 자들로 타락한 자들이 원하는 세상과 육신의 만족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자들로 창조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자들로 타락한 그 죄인들의 실상을 드러내시고 그 불가능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인지 구원의 표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자신을 숭배하며 사는 자들을 향해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가셔서 너희들의 잔치는 끝이 났다 선포하시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내가 흘리는 십자가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의 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시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으로 구원은 너희들이 내어놓는 열심과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증거하셨습니다.
빈들에서 굶주린 자들에게 오병이어의 표적으로 내가 생명의 떡이다 말씀하시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자들이다 하시고 물 위를 걷는 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 구원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날 때부터 못 보던 맹인을 고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는 생명의 빛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의 만족으로 삼지 않고 사는 죄인들을 목마른 자들, 굶주린 자들, 병든 자들로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나는 생명의 물이며 생명의 떡이다 말씀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소경을 고치심으로 자신이 생명의 빛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물과 떡을 먹지 못하면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죽어야 하듯이 예수를 마시고 먹지 못하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 하셨으므로 주님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죄인들에게 너희들은 모두 어둠에 갇혀 보지 못하는 소경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 빛을 따라 살기 전까지 어둠에 즉 죄와 사망을 따라가는 죄인입니다. 맹인이 자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생명의 빛이신 예수를 따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심판의 불바다를 향해 가고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을 향해 담대하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는 사람입니까? 보지 못하는 맹인입니까? 본문 1절에서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말씀합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고쳐주신 다양한 병자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장 많이 고쳐주신 병자가 맹인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헬렌 켈러는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3일만 볼 수 있다면 이란 글에서 눈을 뜬 첫날에 자신의 인생의 희망을 준 설리반 선생님을 마음껏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보지 못한다고 생각만 해도 캄캄한 방에 갇힌 것처럼 암담함과 절망이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맹인으로 이 세상을 산다고 생각해보셨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들에게 너희들은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소경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넓게는 타락한 모든 인생들이며 좁게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믿음의 눈을 뜨게 될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생들이 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맹인,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그 맹인들 중에 빛이신 주님이 찾아와 죄와 저주와 사망의 어둠을 몰아내고 눈을 열어보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믿음의 눈을 뜬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이 소경들을 고쳐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이고 주님은 소경 그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세상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 중에 세상을 보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가족 중에는 잠간 있다 사라질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진짜 소경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진짜 소경들을 보면서 전혀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여러분 자신도 소경일 수 있습니다. 소경은 소경을 불쌍히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문에서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소경을 고쳐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타락한 모든 인생들의 실존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고 물을 때에 본문 3절에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질병은 죄로 타락한 사망에서 나오는 증상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어떤 질병도 없습니다. 죄와 사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와 사망이 사라진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눈을 뜬 이후에도 죄를 짓기도 하고 병에 걸려 고통을 받다 죽지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병에 걸리고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된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육체의 질병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사망의 증상이듯이 영이신 하나님을 떠나 죄로 죽어 있는 죄인들에게 영적인 질병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과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 영적인 질병인 불신을 육신의 질병으로 비유하여 보지 못하는 자, 소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맹인은 많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인 진짜 소경은 얼마나 많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으니 사람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보며 나는 맹인이 아니라고 안심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의 다 맹인인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불바다에서 고통을 받게 될 믿음 없는 맹인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 불쌍한 맹인들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도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교회에 오셨을 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롯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습니다. 맹인이었던 이스라엘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며 열심히 실천한 바리새인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서기관들과 안식일과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던 성도들에게 너희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 않는 맹인이라고 하면 그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향해 하나님도 모르는 맹인이라고 멸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믿음 없는 맹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예수님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먼저 보셨고 찾아가셨습니다. 주님이 보셨다는 것은 주님은 그를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 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가 택한 자가 누구인지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맹인들을 고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맹인 됨을 인정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자신의 맹인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맹인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처럼 누가 보더라도 숨길 수 없는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소경을 찾아가시는 것처럼 자신의 죄인 됨을 아는 사람을 찾아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우리도 맹인이냐며 대적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는 맹인이 아니라고 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39절에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맹인들만 있는 세상에 볼 수 있는 딱 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가득한 곳에 예수님은 죄 없는 의인 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영원한 사망에 떨어진 죄인들의 죄를 없애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만족하며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타락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하나님께로 가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경이 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찾아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주님은 그 일을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도 빛으로 오셔서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어떻게 고치셨습니까? 본문 6절부터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많이 고치셨지만 맹인을 치유하는 것처럼 비위생적이고 이상한 방법으로 병을 고치신 적은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서는 예수님이 한 맹인을 고치실 때에는 진흙에 침을 뱉은 것이 아니라 아예 눈에 침을 뱉었다고 증언합니다. 유독 예수님은 맹인을 고치실 때에 특별한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된 죄인들이 어떻게 믿음의 눈이 열리게 될 것인가를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사람의 눈에 침을 직접 뱉으시고 본문에서는 진흙에 침을 뱉으심으로 타락한 인간의 실존이 진흙임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령을 넣어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림으로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죽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파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눈을 뜨지 못하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한 파멸,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주에 떨어진 인간들은 흙에서 온 자신의 육체의 만족인 정욕과 탐심을 위해 세상의 흙을, 잠시 있다 사라지는 썩어질 세상의 영광을 파먹다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으로 자신의 육신을 섬기며 살다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 저주받은 맹인들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진흙에 침을 뱉었다는 것은 너희들은 저주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2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말씀합니다.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께 침 뱉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미 침 뱉을 받음으로 파멸에 떨어진 죄인들을 찾아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그 파멸에서 건져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또 다시 그 진흙 같은 맹인들에게 침을 뱉으시고 그 흙에 자신의 침을 진흙으로 짓이기시는 것은 내가 저주 받은 죄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표적인 바다 위를 걸어오신 주님이 제자들이 타고 있던 고통과 사망이 가득한 그 배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주님이 사망을 짊어짐으로 제자들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내가 파멸에 떨어진 죄인들과 연합하여 그들의 맹인 됨을 내가 짊어지고 저주와 심판을 받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가복음 18장 32절에서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할 것이다.”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마가복음 15장 19절에서는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침 뱉음을 받음으로 저주에 떨어진 맹인들을 위해 자신이 대신 침 뱉음과 저주를 받음으로 죄인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저주와 사망의 그 어둠을 자신의 십자가의 피로 씻어내신 것입니다. 맹인들의 그 보지 못하는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은혜가 생명의 빛이 된 것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흙과 침을 짓이며 주님이 눈에 바른 진흙은 그 맹인의 저주와 사망을 대속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십자가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죽어야 너는 비로소 보게 될 것이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이 너의 몸에 붙어 나의 죽음과 네가 하나가 될 때 너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하나님을 보는 믿음의 눈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맹인들의 그 보지 못함을 가져가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진흙을 맹인에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실로암은 히스기야 왕이 전쟁 때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연못의 특성상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에서 낮고 낮은 곳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사망의 목마름으로 죽어가는 자들에게 생명의 물과 연못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실로암은 높은 하늘에서 낮은 세상으로 오셔서 맹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만들어진 은혜와 구원의 연못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8장에서 하나님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믿음 없는 맹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맹인이 된 죄인들이 저주와 사망을 씻어내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어 낮은 곳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가 있는 곳으로 맹인을 보내는 것입니다. 맹인은 주님이 가라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에 순종함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보이지도 않는 맹인의 눈에 진흙을 이겨 붙여 놓으면 더 답답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맹인은 실로암 연못까지 더듬으며 내려가야 합니다. 그 연못에서 진흙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무릎을 굻고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죄인들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만나 믿음의 눈을 뜨고 구원을 받은 길은 자신을 부인하고 즉 자신의 소경됨을 인정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겸손한 십자가의 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낮은 곳으로 보냄을 받으신 주님은 낮은 곳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맹인들을 만나시기에 그들을 낮은 곳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교만한 맹인들은 자기 죄를 씻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의지하며 교만해 있는 맹인들은 자신이 맹인인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내가 죽어야 하고 저주 받아야 할 죄인임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죽는 맹인들이 믿음을 눈을 떠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이 증언하는 일곱 가지 표적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맹인으로 타락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나의 저주와 죄를 속량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죄를 사함 받아 영안이 열린 성도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처럼 믿고 사랑하고 소망하십니까?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삼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는 나는 본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맹인 됨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자기 의에 빠져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이 시대에도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보지 못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한 성도들은 여전히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며 그 세상의 영광과 물질과 힘으로 자신을 섬기고 얼마 되지도 않는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를 의지하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자아숭배의 자리 그 맹인의 자리와 사망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았기에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만이 실체임을 알고 그것을 환영하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던 것입니다.
나는 눈을 떴다고 자신을 속이지 말고 정말 믿음의 눈을 뜬 성도답게 이 세상에서 나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 남을 섬기는 십자가의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시고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 죄와 어둠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날마다 깨끗하게 씻어내어 밝은 눈으로 하나님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