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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며 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모르는 이
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그 기도가 말하는 의미와 뜻, 말씀하신 분의
생각과 합당하게 깨달아 알고, 그 뜻으로 믿음이 되고 그 뜻으로 살고자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 아닙니다. 단지 교회 오면 의레 해야 하는가 보다 하고 열심히 외워서 입으로만 달달
외웁니다. 사실은 말씀 전하는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뜻을 예수님의 생각에 맞게 말하는 사람도
없고 전해주는 자도 없습니다. 왜냐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의 균형이 온전히 틀어져 버리듯
이 성경의 뜻을 아는 것도 그와 같은 모습들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일반 신자들은
더할 나위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기도의 삶을 말합니다. 기도가 곧 삶이요, 삶이 곧 기도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믿기 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이 기도가 일생 자기의 기도가 되고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기도가 말씀하는 뜻을 잘 깨달아서 자기 믿음이 되고 기도가 되고 삶
이 돼야 그것이 믿음이요, 예수님과 함께 있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는 자기의 원하
는 육(세상)의 복이나 얻으려고 믿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 한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 생각으로 깨끗이 돌아 앉아야 합니다. 그동안 예수님 믿고 뭐 좀 잘되 보려고 교
회 나오고 믿는다고 했던 자기 생각을 뒤집어버려야 합니다. 진짜 믿으려면 자기 생각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리, 즉 영생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부터 믿음을 가지고, 자기 영혼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믿는 것으로 돌아앉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는 모두가 사망의 길에서 지옥으로 달려가는 줄도 모르고 육체의 소욕을 좇
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것이 하늘에 들어갈 수 없는 지옥에 떨
어지는 죄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놓아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사셨으므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님의 피 흘리신 공로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자는, 믿음의 합당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 기도의 능력이 되는 예수님의 말씀이 삶이 돼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 이전에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라
고... 나라가 임하시라고...하는 문자적인 것이야 아는 것이지만, 문자적인 것 안다고 기도라고 하
는 것도 아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알려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신 대상은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메시아 언
약을 가지고 죄인으로서 피 흘려주실 구세주 예수님을 기다리며 구약을 거쳐 온 사람들입니다. 그
들이 예수님을 만나자 그분이 곧 자기들이 기다린 메시아인 줄 알아보았고,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
라 하시니 그 즉시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그냥 입으로
문자를 외는 것이 아니라, 이 제자들과 같이 구약의 말씀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과 예수님이 구주
라는 예수님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죄인으로서 죄인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 영접한 자가
받는 기도입니다. 왜냐? 예수님께서 기도의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셔서 곧 기
도는 아버지께 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 마6:4에,6에 8에
서도 너의 아버지, 네 아버지께서, 너희 아버지께서 라고 말씀하시므로 바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아버지요, 기도는 그 아버지께 하는 것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을
거쳐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자(구원받을 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그
믿음의 관계에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기도는 세상을 좇아 사는 자의 기도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의(예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예수님 가르쳐주신 기도의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그
내용의 뜻을 여러분에게 열어서 말씀을 드릴 것이기에, 여러분이 받는 기도가 되고, 말씀이 돼서
예수님의 나라와 의를 온전히 소유하는 능력이 되고 권세(천사가 섬기는)있는 믿음의 복 안에 들
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따르는 삶은 사망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 여러분 다 알지요? 또한, 인간 앞에는 멸망으로
가는 세상 길과 영생으로 가는 하늘길 두 길이 나 있다는 것도 여러분 다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
렇기에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는 너희는 이제 무엇 먹고 살까? 입고 살까? 무엇 마실까 하는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이시면 이방인이 구하는 것 위에 필요한 모든 것
을 더하여 주시는 것이니,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기도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이것을 여러분이 사
람의 말, 말씀 전하는 제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 맞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음을 믿는 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삶이 되어서 하늘 아버지와 말씀으로
대화하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고 도우심
을 받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삶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다고 하나님께 나온 사람들의 믿는 것의 방향이 교회에 나오기 전에 가지고 있
던 복의 개념, 즉 세상 삶이 잘 풀리고 돈도 많이 벌어 세상에서 잘살고 싶은 것에다 두고 있습
니다. 또한 자손들이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교회 나오기 전 우상에 복을
빌고 자연에 복을 빌고 귀신에게 복을 빌었던 것처럼 교회 나오는 이유 또한 이런 세상 것들을 위
해서 똑같이 빌면서 구하고 찾는 것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수년 또는 수십 년을
자랑하지만, 사람들이 변함없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육신의 삶의 것을 열심히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어서 하나님께는 여전히 이방인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육의 필요를 구하다 그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낙심하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냐? 안 살아 계시냐? 하며 마음이 헤
매고 다니는 겁니다. 어디 가면 하나님을 만날까? 어디가야 이 불안한 마음이 없어질까? 어디로
가서 기도해야 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잡다한 생각에 끌려다니며, 이 부흥회 저 부
흥회 쫓아다니고 이 산 저 산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믿기 원하면 자기 생각, 자기 요구 다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 것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것으로 자기 속을 기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기에 힘쓰고 예수님을 따르기에 힘쓰고 예수님과 사귐의 관계가 되어야 할 것으로 아주 뜻을 딱
두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
시는,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으로 속사람이 사는 능력이 되어 아들로 다시 나는 자격을
갖추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요 그의 형제로 유업을 같이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까짓
땅에서 사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늘을 받았는데 땅에 것인들 채우지 않으시겠는가 말입니
다. 일생 세상 것 매여서 붙들고 있으면 모래 위에 집 짓는 것과 같아서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말
씀하셨으니 죽음 뒤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희
생하는 것이 아버지예요. 또한, 그 아버지를 존경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것이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일이 성공하시도록 함께 뜻을 따르는 것이 참 아들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예요. 아들
이 아버지의 일에 뜻을 받들어 드리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국 아들이 아버지 것을 모두 상
속 받는 아들의 유익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로 아버지를 너무나 존경하고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함께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십자가에 달
리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영광이 되신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다
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버지의 참 아들이(아들로 날
자)면 아버지와 뜻을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또 자기의 유익이 되는 것도 안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께서 같이하셨고 또한 예수님의 뜻을 같이하는 것이 내게 너
무나도 큰 유익이고 엄청난 복이라는 것을 알기에 예수님의 뜻에 함께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 뜻에 함께하는 예수님과 또 함께하기를 원하는 너희도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처음 말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관계부터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예수님으로 말미
암아 아들이 된 자가 아버지께 하는 기도요, 삶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하는 기도, 즉 대화예요.
아들이 아닌 자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그저 뜻도 모르고 입으로만 외우는 것일 뿐이요, 예수님의
뜻에 함께하여 예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의를 구하며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온전한 성품으
로 형상을 이루는 기도요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기도할 때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시고, 영
원불변하시고, 하는 이런 격찬의 수식어를 찾을 수 있으면 다 찾아서 늘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내용의 뜻도 모르고 그저 입에 올려서 달달 외우는 데만 충실합니다.
왜입니까?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처음 나오면 외우게 되는 것이 이 기도일 것
입니다. 예배 때마다 이 기도는 빠지지 않고 하고 있으니 어른도 아이도 똑같이 다 따라서 외웁니
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에 이 기도는 예배 끝날 때쯤 하는 후렴, 예배 끝난 사인과 같이 생각하
는 겁니다. 마귀가 이 기도를 사람들 속에 주문 외우듯 뜻도 모르고 염불하듯이 입에 달려서 달달
외우도록 조종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믿음의 목적이 하늘에 것이 아닌 땅의 것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쳐주신 기도는 크게 두 부분입니다. 처음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것으로서 세 가지
인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나라이 임하옵시며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도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그다음 우리의 것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
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
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다시 말하면 "위의 기도의 모든 뜻이 이루어지시니, 모든 영광이 아버지
께 영원히 있습니다. 모든 영광은 아버지의 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있어 뜻을 같이하는 예수님의 사람의 기도입니다. 하나
님 아들의 기도요 예수님으로 아들 된 자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주
소, 기도의 대상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
다. 물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아들만이 하는 기도라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으니 아십니
다만, 그러나 반드시 여러분이(구원받을 자라면) 가져야 할 영적 지식이 있습니다. 지식을 따라서
아들의 믿음이 되라는 말입니다. 이 우주 안에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잘
알다시피 '하나님'은 이름이 아니라 '신'이라는 부름입니다. 창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하신 하나님이 원어로는 엘로힘인데, 엘로힘은 강하고 능하신, 위엄이 있으신, 전능하신,
유일한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는 신이 없다는 뜻이에요. 창조주 엘로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다'하는 것에서 신을 부르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성
경은 하나님만 엘로힘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능력을 행하는 천사에게도 엘로힘이라고 했어요. 그
것은 힘 있고 신적인 능력이 있다는 뜻에서 엘로힘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하고 엄연히 구
분됩니다. 그래서 '하나님'하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신이라는 부름이라는 것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세상에 모든 종교나 미신 세계도 자기 하나님, 자기 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
신에서도 땅의 신, 하늘 신, 용왕 신, 나무 신, 태양 신 하며 신을 말하고 찾지 않습니까? 그것이
그들이 찾는 하나님입니다. 사단이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속이며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에게 피
조물인 자연의 것들을 대상으로 하여 신으로 섬기게 함으로써, 그 뒤에서 경배받는 겁니다. 그래
서 이 우주 안에는 신이라고 하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분명
한 지식 없이 하나님을 자기 안에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고 부른다면 거짓 신이 '내가
하나님이다'하고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러 나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어떻게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잘 배워서 정확한 자기 지식이 되고 자기
안에서 아는 하나님이 되어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우주 안에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
신을 구별시키신 자기 이름을 주셨어요. 구약에서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는
구원과 심판의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알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다음 신약에서는 온 인류를 구
원하시고 심판하시는 이름으로 오셨는데 뭐예요? 예수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
의 이름, 구주의 이름이신 예수님, 예수님 이름을 알고 부르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죄인
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알고 부르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떼려
야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이 이름을 알고 맺은 관계로서 하는 기
도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러분에게 풀어서 가르쳐드릴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고 인간을 지으신 분이라는 것도 알고 그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해
도 예수님을 빼놓으면, 예수님을 모르면 예수님과 관계된 하나님이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비도 주고 햇빛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
신 것을 안다고, 천지 만물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 안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비도 주고 해도 준다는 것 압니다. 그러니까 자연재해 나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어쩌면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냐고 원망하잖아요? 그들도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
서 관계를 모르면서 무조건 '믿습니다!'하고 다니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했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거짓 신을 부르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여'하신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하셨으
니 그러면 하나님이 아버지셔야 하는데 왜 아버지인가? 그 관계를 분명히 알고 하는 기도가 돼야
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 예수님
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얻은 자는 그 아들의 생명이 있는 자요, 영생하는 아들의 생명을 받았으므
로, 그를 예수님의 형제라 하고 그도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라고 합니다. 이같이 예수님으로 말미
암은 자녀가 되었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부를 때, 바로 아버
지와 아들의 관계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심으로써, 관계를 정확히 알고 하라는 뜻을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 없이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
실 수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과 하나 된 그 관계를 알도록 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을 아버지로 만나야 하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마 6장에서만도 너희 아버지라고 한 것이 무려 13
번이나 됩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냐,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하는 관계를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기
도의 대상이 누구예요?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 입니다. 그 외에도 마6:6에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6:9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7:11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3에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영을 주시지 않겠느냐 요15:16.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요16:23에 너희가 무
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라고 말씀하여 기도하는 것도 구하는 것도
'하늘의 아버지께'라고 분명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의 아버지께 구하는 삶을 사
셨어요.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께 기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여'를 부르면서 기도
하고 '주여'를 삼창하고 기도하라고 하는데 걱정이라 말이죠. 정말 도대체 왜 '주'가 기도의 대상
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알 수가 없어!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주'이십니다. '주'라는 것은 '주인'이라는 뜻이니 그러므로 예수님은 분명
히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
신도 아버지께 기도의 본을 보이셨고, 우리에게도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셨으니 그 예수님을 보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아버지께 기도하라'라
고 하시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천사를 볼
때도 '주'라 불렀고, 종이 주인에게도 '주'라고 불렀고, 아내가 하나님의 뜻을 가진 남편에게도
'주'라고 불렀고, 또 신하가 왕에게도 '주'라고 불렀고, 하나님의 종에게도 '주'라고 했고, 거지가
자기에게 베푸는 자에게도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나 땅에나 많은 주가 있다(고전8:5)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에게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지금 자기가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 '주'가 누가 될지 모르는 겁니다. 인간의 주인 노릇하는 공중 권세 잡은 악
한 영들이 '내가 너의 주다'하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을 좀 해보세요. 누구나 글 읽을 줄 알잖아요? 오늘날 글자 모르는 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돼 있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여 가르치신 것을 사
람들이 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까? 바로 주 노릇하는 악한 영들이 눈을
가려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이신 것은 분명
히 맞습니다. 그러나 그 주 예수님께서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하라고 하셨으니 그것을 깨달
아 관계부터 바르게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약 백성은 감히 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다 올릴 수 없다고 해서,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대
신 '주'라고 불렀고 그 주께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입에 올리다 혹
이나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되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 함부로 입에 올리지를 못했습니
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
성이니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대신 '주'라고 부르는 것이 공동체의 호칭이고 또한 예수님이 구원을
이루시기 전이므로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 백성이 여호와 하나
님을 '주'라고 불렀으니 우리도 '주'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는 것이 되어 오늘날 이 신약에는 대답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대
답을 할까요? 사단의 영들이 대답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은 무시하고 '여호와여!''주여!'하고 입에 붙여진 이름처럼 부르고 나오는 것
을 보면 참 신기하다 싶은 겁니다. 신기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열심히 '주'부르며 기도하고 나
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하고 나오는 것은 어디 가르침인지
그것을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성서 어디에 있는 것인지 누구의 가르침인지 성경에는 없는데 말
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는 것 여러분 주님이 이름입
니까? 성경 어디서 '주'가 이름이라고 했는지 제 성경에서 없는데 이해를 못 하겠는 겁니다. 왜?
오늘날 이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경을 잘못 알면서도 성경을 아는 것처럼 스스로 자신에게 속
아서 나와 말씀을 전한다고 하고 있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그같이 하나님을 '주'로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
계밖에는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이름으로 맺지 못하고 '주'로 맺는다면
주인과 종의 관계뿐이지 '구주'로도, 죄 용서도 생명 얻는 것도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더
라도 '주'를 부르더라도 정확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 자기 안에서 알고 부를 때 그것이 능력입니다.
악한 영들이 덤비고 속여도 속지 않는 확실한 믿음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과 나는 아버
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세상에서도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자녀의 신분이 결정됩니다. 그것
처럼 예수님이 피 흘려 낳아준 공로를 입은 자는 하나님 자녀임이 보증되는 것입니다. 아무나 아버
지라 부르는 것이 아니에요. 혈육의 관계만이 아버지입니다. '주'로 피 흘려 나를 낳아주셔서 하나
님이 아버지이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 이름으로 피 흘려 나를 낳아주셔서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사63:16에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고 했고, 시89:26에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했는
데 여기서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아부'인데 이것은 '나의 창조자'란 뜻입니다. 나를 창조하셨다는
만드셨다는 뜻에서 아버지, '아부'라고 부른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하
신 그 아버지는 그 뜻에서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생명을 주시는 구주로 오
셔서 그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시더니 참으로
십자가에 올라가 피 흘려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피 흘리게 하셔서
나를 낳아주신 것입니다. 피 흘리신 산고의 고통, 그 수고를 통해서 낳아주신 그런 아버지와 자녀
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영님)으로 다시 난 절대적인 관계요, 실제적인 관계입니다.
죄 없는 피로 낳으신 혈육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3:17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고 마17:5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예수님을 깊이 알고 관계를 맺으라는 말
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야 아버지를 아는 것이니 저의 말을 들어라 하신 것입니다. 약1:18에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 나를 낳아 주신 분에게만 부르는 이 호칭, 해산의 수고를 동해서 낳은
관계에서만 부를 수 있는 호칭,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녀를 두시기 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삼 년 반 동안 전하시다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해산의 고통을 겪으셨어요. 돌로 맞고, 침 뱉음 당하시고, 채찍으로 맞아 피 흘리시고, 머리에 가
시관 쓰시고, 십자가에서 양 발과 양 손에 대못으로 박혀 피 흘리시고, 달려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피 흘리고,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흘려주신 피, 사흘 동안 무덤에 들어가셔
야만 했던 그 하나님의 엄청난 경험을 통해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아버지라 하니까 그냥 막연히
관계도 모르면서 부른 것 아니에요? 그렇게 막연하니까 부르기가 왠지 껄끄러우니 꼭 의붓자식처럼
주워다 기른 자식처럼 껄끄러우니까 그냥 주여 주여 하나님 하나님만 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얼마나 좋습니까?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여러분, 참으로 예수님이 피
흘려 낳아주신 관계라는 믿음에서 아!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구나! 예수님이 피 흘려 나를 낳아주
셨구나! 하는 그 믿음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입니까? 자기 속에 아버지가 오셔계신 그 확
증의 믿음이 있습니까? 성영님이 여러분 안에 그 확증의 믿음을 주셨습니까? 그러면 아버지 한번
크게 불러보세요. 예수님의 피로 나를 낳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외쳐 불러보세요. '아버지!' 얼
마나 좋습니까? 아버지, 아버지가 돌보신다고 하잖아요, 아버지가! 양육하신다 하셨잖아요? 염려
말라 하셨잖아요? 염려 말라! 예수님께서 너희 아버지가 다 아신다....., 그 아버지가 저 멀리 하
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 계시려고 성영님으로 내 안에, 여러분 안에 오셔 계신 겁니다.
자녀는 당연히 아버지의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상속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이니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성영님으로 기르시고 아버지 것을 상속받는 자가 되게 하
시는 겁니다. 다른 집 자식이 내 자식보다 잘났다고 해서 불러다가 상속해주지 않습니다. 내 자식
이 부족하고 못났어도, 그래도 아버지의 상속자는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이방 여자에게
'내 자녀가 먹는 떡을 빼앗아서 개들에게 주겠느냐?'하셨습니다. 네가 자녀이면 하늘에 계신 아버
지께 기도하라. 네가 자녀이면 아버지 것이 네게 오게 되어 있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다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신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 성경은 세 종류의 하늘과 그 하늘
마다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음을 기록해놓았습니다. 신10:14에 모든 하늘의 하늘과 느9:6에 대하2:6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시68:33에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양하라 해서 이같이 여러 하늘
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후12:2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지라 했는데 곧이어 4에서
그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지만, 셋째 하늘,
하늘들의 하늘로 이끌려 갔는데 그곳을 낙원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바로 우리 아버지 계신 하늘이
셋째 하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하늘을 원어로는 '우라노이스'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좌
를 펴고 계신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그다음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히9:24에 참 하늘이라고 했습
니다. 그것은 그 어떤 부정적인 것들이나 요소가 미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만 충만한
곳, 하나님의 생명(빛)으로만 충만한 곳, 하나님만 계신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그다음 엡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
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는데, 악의 영들이 어디 있다고요? 하늘! 사단과 그
영들이 하늘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관계도 모르면서 무조건 '주여,주여!''하나님,하나님!'
하고 불러대면 하늘의 공중권세 잡은 악의 영(귀신)들이 '내가 주다'하고 달려든단 말입니다. 계8:
13에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했는데 여기 공중은 원어 상으로는 '중간 하
늘'입니다. 그래서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을 원어로 '에프라니우스'라고 하는데 바로 중간 하늘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같이 대기권을 넘어서 그 위쪽에 있는 하늘, 중간 하늘이 악한 영들의 거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 대기권, 모든 피조물이 숨을 쉬고 사는 하늘을 첫째 하늘이라고 하는데 헬라어로 '아에르'
라고 합니다. '시간 세계'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하늘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하면 엡2:2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
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해서 바로 악한 영의 영향을 받고 있
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사단과 그의 영들이 공중(중간 하늘)에 거처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가장하여 세상 임금 노릇을 한다고 했잖아요? 세상을 지배하고 임금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은 성경의 지식을 따라서 믿고, 기도도 성경의 지식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인데, 그
지식 없이 사람의 가르침을 따라서 믿는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악한 영들의 타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지식이 없이, 지식을 따라 된 믿음이 아니니 사귐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만 부르
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신 하늘의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고 '주여'로 관계를
관계를 맺으려 하니, 다 악한 영들의 속임에 붙들려서 그것이 관계를 잘못 맺고 있는 것인지 감히
생각도 못 하는 겁니다.
롬10:2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열심이 있는데
말씀대로 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자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
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
이 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너무너무 아니더라. 자기
생각을 좇아 행하는 데, 자기 의를 세우는 데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좇아서 힘쓰고 있는
거예요. 목사 방식을 좇아서 힘쓰고 있는 겁니다. 사람이 세운 제도를 좇아 행하는 데만 열심입니
다. 자기가 지금 성경의 가르친 말씀대로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었는가? 살펴볼 줄을 도무지 모
릅니다. 그런 관심도 없어요. 그러니 다 하나님을 귀신 섬기듯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고 하나의 포장 정도이지, 정말 얼마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바꾸어서 믿음을
타락시키고 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식을 좇아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자가 되게 하려고 이렇게 밝히 가르쳐 드리는 이 가르침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자기의 신
앙으로 받아 삼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음을 똑바로 배워서 똑바로 믿는 자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시간 제한 없습니다. 장소 제한 없습니
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기도하며 삶이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주여!'가 아니
라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가 이름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관계가 돼서 남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니까 '예수 이름으로 하는가 보다'하는 것이 아
닙니다. 관계를 자기가 분명히 알고 그 믿음이 돼서 기도할 때에 악한 영들의 타깃이 되지 않고
속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주셨음에도 사람들이 예
배의 기도할 때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시고 하는 이
런 격찬의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은 왜 그런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불확실하기 때
문에 그렇습니다. 관계가 불확실하니 그걸로 맺어보려고, 하나님을 높이는 말들로 감동하게 하려
고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구약의 주 여호와께 기도한다고 하면 이런 격찬의 수식어들이 다 따라
붙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아들이면 아버지께 그런 수식어들이 필요치 않습니다. 진짜 아들이면 아
버지가 거룩하신 줄도 자비하신 줄도 무소 부재하신 줄도 다 압니다. 아들이 아버지 아는 거잖아
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었으면, 예수님을 알고 맺은 관계이니 아
버지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소 부재하신 분인 줄도 알아요. 거룩하신 분인 줄도 알아요. 전
능하신 분인 줄도 알아요. 은혜가 넘치는 분인 줄도 알아요. 자비하신 분인 줄도 알아요. 아들이
면 이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하늘에 계신 아버지''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속에 사랑도, 은혜도, 용
서도, 긍휼도, 자비도, 돌보심도, 양육하심도, 징계하시는 일도, 아버지면 징계도 하시잖아요?
징계 없으면 사생자지요. 잘못 가면 아버지가 징계합니다. 매도 드십니다. 징계하심도, 믿음도,
감동도 다 포함하고 있는 끊을 수 없는 관계, 그래서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녀이면 보호와 양육을 받고 아버지의 것 엄청난 복을 상속받는 것이니,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관계부터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아버지의 양육을
받고 아버지의 것을 누리며 살기 원해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겁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의 가족
이 되었으니 아버지께 늘 기도로 대화하며 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독생자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
주셨는데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 그 하늘 아버지의 깊은 사랑,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를 더욱 깊이 깨닫고, 오늘 아버지와 아들의 절대적인
관계로서 경험하시는 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며 1부 말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의 말씀을 여기서 맺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니 감사합니다. 성영님이
이 모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바른 믿음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p113-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