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장자 B.C.369-286 추정)
몽(蒙)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몽 지방의 칠원(漆園)이라는 곳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했고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는 매우 인자하게 생기고 학자로서의 풍모가 느껴지는 외모이며
학문이 넓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빼어난 문장으로 세상일과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이에 어울리는 비유와 우화를 들어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를 비판하였다.
당대의 학자들은 그의 말을 당해내지 못했고 그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어
오히려 왕공(王公)이나 대인(大人)들에게 등용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我寧游戲汚瀆之中自快/아영유희오독지중자쾌)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며
(無爲有國者所羈/무위유국자소기)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다
(終身不仕 以快吾志焉/종신불사 이쾌오지언)’
고 말해 그가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았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장자의 사상과 이론 역시
공자, 맹자, 순자, 노자 등과 같이
전국시대 대부분 군주의 야망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통하여 군주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