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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것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
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18:20,21)
지난 3월 18일에 예배당 공사 착공 예배 때 전해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의 말씀은 눅7장에 기
록된 죄인인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믿음, 즉 예수님을 믿는 교회의 믿음은
이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일생 동안 순전한 나드, 향유를 준비하여 신랑이신
예수님이 오시자 그 머리와 발에 부어드린 그 신앙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교회라고 한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죄인인 한 여자는 창조 때 처음 사람으로
부터 흘러내려 주신 신랑이신 예수님을 신앙한 모습, 신앙의 표본으로 보이신 뜻이라는 것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한 여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성도라고 하는
이 모임의 사람들이 참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향유의 삶인가.
예수님은 신랑으로 신부를 맞기 위해 그 신부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향기로운 생축으로 자신을 드
리신 향유가 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신부가 될 자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릴 때, 순전한
나드, 값진 향유 같은 신앙으로 예수님의 향기가 되어 있는가, 이제 예수님의 교회의 예배할 성도
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그 믿음의 모습이 순전한 나드로 예수님의 향기여야 한다.
그 향기는 곧 자신에게서 예수님이 보이고, 나타나는 것으로써, 앞으로 그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가 아니라, 이미 그 모습, 그 삶이 된 자가 함께 예배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그것이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된 것이요, 예수님의 교회라고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교회!
여기는 예배자만 필요한 곳으로서, 그 같은 믿음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신부 자격은 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니,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예수님의 향유가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교회만이
성영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영님이 세우신 예수님의 교회만
구원이 있고 예수님의 신부이고 예수님과 함께 있어 예수님의 강림 때 부활하는 것이요, 산 채로
들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장소에 와서 두 번째 예배로 드리는 말씀이 예수님의 교회의 참모습, 곧 예수님의 배필로
서 신부의 자격이 된 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을 보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입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
니라 성경의 말이라는 것 분명합니까? 그러면 어떻게 혀가 권세가 있다는 말입니까? 권세는 어떤
큰 힘이나 세력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 혀가 대관절 무슨 힘이 있고 세력이 있다고 혀의 권세라고
한 것입니까? 이 권세라고 한 권세는 우리 사람에게는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혀의 권세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혀의 말이 무슨 권세가 있다고 그 말로 죽고 산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얼마
나 많은 말을 하고 살고 있습니까? 아마도 자기 일생에 하고 산 말을 쓸어 담을 수만 있다면 거기
에 쓸 말, 즉 사는 말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구멍이 촘촘한 그물
에다 쓸어 담는다면 거기에 남아 있을 쓸 말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그 말에 '권세가 있다'라
는 것입니다. 도대체 말에 권세가 있다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말은 사단의 것이냐 하나님 것이
냐, 그 말의 근거가 사단이면 입에 사단의 권세가 있다는 말이고, 그 말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
이면, 그 입에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배로 배가 부르게 된다고 했으니 여러분 이 말씀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 다 인정합니까? 심각히 듣기 바랍니다. 지금
자신들에게 무엇으로 배불러 있는지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밥 먹고 배부른 것을 살펴
보라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듯이 자기 입의 말로 말미암아서도 배부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으니 여러분은 지금 자기
배가 불러 만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자기 배를 들여다보세요, 지금 무엇으로 만
족하고 있는 것인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는 것 아닙니까?
혀의 권세를 말씀했습니다. 혀의 권세로 말미암아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
러분이 이 말씀을 가벼이 여겨 읽는 정도로만 안다면, 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심각히 받지 않
는다면 그 믿음은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신영과 진정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언어생활
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누이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3:10-11에 기록되기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
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자기 생명을 정말 사랑한다면, 영생에 들어가는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합니다.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신영한 인격이 돼 있지 않으면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자격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순전한 신앙으로 예수님의 향기, 예수님의 교회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말씀하는 악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각으로 대하고 말하는 것을 말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인격적이지
않은 언어 쓰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 말하기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입의 말이 하나님,
곧 예수님의 말씀과 같으라는 말입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말하라는 거예요. 봉사하는 것도
자기 기분 내려고 하고, 남이 하니 하고, 어쩔 수 없이 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
암아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그 기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 그 말입니다. 그 외에는 다 악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악한 말이라 하는 것은 그 근거가 사단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은 자기를 나타내는 도구예요. 그 입의 말에 의해서 그가 어떤 사람이냐, 즉 사단에게 근거되어
있느냐, 하나님께 근거되어 있느냐 하는 거에요. 말은 자기를 나타내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 인격
을 알 수 있고 믿음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누누이 말의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것,
말에 덕을 나타내라는 것을 강조하고 당부하고 책망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12:34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다시
말해, 너희가 악하니 어떻게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말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 입의 말은 곧 자기 속에 있는 것이 나오
는 것이라고, 자기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과 그 말씀을 가진 능력이 나올 것이요, 세상이 있
으면 세상이 나올 것이요, 자기가 있으면 자기 것이 나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실
과도 좋듯이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복음으로 차 있고, 생명으로 차 있고 기쁨으로 차 있으면 입
을 벌려도 예수님의 기쁨이 나오고 행복이 나오고 생명이 나오는 것이지만, 이 선함이 없는 마음에
는 시기심 질투심, 보복심, 자랑, 훼방하는 것들로 차 있으니 선한 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이라 결국 네 마음 때문에 정죄를 받는 것이지만, 마음
의 것을 드러내 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니 너의 말을 가지고 심판 날에 심문을 받고 뭐한다고 하
셨어요? 정죄하리라, 정죄는 심판받는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가 이것을 지적하여 말하였는데, 샘
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 했듯이 예수님의 교회라 함은 향유같이 예수님의 향
기가 된 것을 말하고, 악한 말이 그 입에 없는 신영한 인격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예수
님의 교회에 합한 자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 신영한 인격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지
금까지는 예수님의 교회가 지향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여기에 오신 성도들은 예수님의
교회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예수님의 교회만이 예배자라는 것을 분명히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신부로서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신영함이 그에게 없다면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니 그리
알기 바랍니다. 자기의 말로 누구 마음에 상처를 입히거나,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것 등은 다 그
말의 근거가 사단입니다. 사단의 권세가 혀에 있는 거예요. 우쭐하는 말, 우월감에서 나는 말, 잘
난 체하는 말, 경우 없는 말, 부리는 말, 막무가내의 말, 명령의 말, 자기주장의 말, 신경질적인
말, 불평을 달고 하는 말, 말의 무게 없고 생각 없이 함부로 하는 말, 유익 없는 것들로 말 많은
것, 이런 것들은 다 근거가 사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십시오.
이런 모습은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니요, 인격적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성영님이 없는 짐승과 같
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을 다하여 몸을 불사르듯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예수님의 향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에 걸려버리면 자기 말에 재갈 물리지 않으면, 자기
악한 것을 드러내는 악취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말씀을 근거하여 생각과
혀의 말과 행동이 변화되지 않으면, 악한 영들에게 자기의 혀를 잡히게 되고 생각을 점령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열매가 되어 배가 부를 것이고, 그러니 입으로 그 열매를 내고 사는 것
이니 그 믿음이 헛될 수 있다는 것, 두려운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
기 입의 말을 살필 줄 모르고 자기를 보는 눈이 없으면, 그것은 마음이 어두워 있는 소경입니다.
마음이 어둡고 눈도 어두우니 말씀도 하나님의 의도대로 볼 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로 나온 때부터 자기를 믿음으로 세우는 일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자기의
말에 하나님의 것을 담는 그 경건의 훈련을 피 흘리기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롬10:8에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
의 말씀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가까이 있는 믿음의 말씀을 입으로 늘 시
인하여 말할 때 성영님이 함께 복창하시고 그 말씀이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심어져 뿌리를
내려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그 열매가 또 입의 열매가 되어 나오는 것을 또 자기가 먹
음으로써 입에는 말씀의 열매가 있고 그 열매로 말미암아 배가 부르게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입에 있게 되면 곧 마음에도 있게 되니 그러므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언제나 늘
가까이 있는 말씀으로 믿음을 훈련하여 세웠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예수
님의 말씀을 믿고 입으로 끊임없이 시인하고 믿음의 말씀을 말하면, 마음에 그 믿음이 꽉 채워져
서, 그것이 입의 열매가 되고 그 열매로 배가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치료가 자기에게서 완전해지고 예수님의 안식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 믿음이 진짜 참믿음이 되어 복이 되게 하려고
그것을 누누이 말씀하시고 명하시고 이르셨습니다. 혹 알지 못할까 하여 열심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않고 나는 믿음이 없다, 믿어지지 않는다, 하는 말을 입에 두고 있
다면 이것 또한 부정적인 입의 열매로서 마음에 그 부정적인 것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고, 그 열
매를 또 자기가 먹게 되어 궁극에는 그것으로 배가 부르게 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55:11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
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입의 말은 헛되이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파종한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 열매를 맺듯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으면 그 말씀은 반
드시 열매를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내신 말씀은 곧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이루어져 그 말
씀대로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아주 형통한 자가 되었음을 여
러분 앞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57:19에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
나님께서 하신 입의 말씀만 열매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술의 말도 열매를 짓는다는 것입
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입의 말은 자기 안에서 맺어진 열매요, 그 열매가 나오는 것이라고 그것으
로 배가 부르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사람도 자기의 말이
자기 삶을 좌우하고 이끌어 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의 중요성을 누누이 다룸으로써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계속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이 부정적이면, 자기에게서 나는 말이면 그것
은 근거가 사단이요, 사단에게 근거되는 모든 말은 하나님께 거짓이요, 독을 담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교만이요, 악으로서 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 하나님 쪽의 것이면 성영님께서 그대로 행하여 이끌어 가시게 될 것이요, 그 말이 사
단 쪽의 것이면 사단이 그 말대로 이끌어 감으로써 그 혀와 삶을 얽어매고 그것으로 배가 부를 것
이라는 말입니다. 언어행동이 말씀의 삶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
다. 하나님께 빌며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드린다 해도 하나님과 관계되는 복은 없는 것입니다.바로
부정적인 것은 사단의 것이니 그 권세로 그의 혀를 잡아 부정적인 말을 하게 하고 부정적인 삶이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근거 없이 무턱대고 도적질하고 실패케 하고 죽이는 것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기를 바랍니다. 악한 영이 훼방하도록 빌미를 주는 것이 곧 자
기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라는 말입니다. 그 혀의 언어를 통해서, 말에 따라서 악한 영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점령할 권세가 되어서 그같이 부정적인 것들로 배부르게 하고 부정적인 것
들로 입의 열매가 되어 자기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부정적인 것들을
내비치고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그런 삼킬 자 찾는 것에 분투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은 악의
영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바랍니다. 제가 사실 오늘 여러분이 다 아는 말을 하고 있
는 겁니다. 그러나 말에 능력이 돼 있지 않은 모습들을 너무나 보게 되어서 교회가 악의 영들에
훼방을 받고 성도들 간에 불미스런 불편한 감정들로 얽혀 있는 것들이 보이고 하여, 예수님의 교
회라고 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기에 이 말씀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빌
미를 가져다준 자신을 살피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 전가하는 아주 성숙되지 못한 모습들에
탄식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여기는 예배자들
의 모임으로 예배하는 예수님의 교회인 것이지, 그래서 예수님의 강림의 신앙을 가지고 그 사모
함으로 깨어 있는 예수님의 지체들이 모인 예수님의 교회인 것이지, 귀신의 처소가 아닙니다.
더더구나 자기를 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하여 오늘도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면, 말씀을 듣고 그냥 흘려버리는 교만한 자세들을 당연히 여
기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냥 지금 다 나가 주기 바랍니다. 지금은 때가 그것을 비위 맞추고 바로
세워 보려고 하는 때가 아니요, 이미 그 능력이 돼 있어야 하는 것이요, 그래서 먼저 믿은 사람들
이, 또는 직분자들이 믿음의 본이 되어 예수님의 향기를 냄으로써, 늦게 믿으려고 나온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여기에 다른 이유 없습니다. 새겨듣기 바랍니다.
사람은 입의 말과 마음이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마음에 있는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예전에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말을 살펴야 됩니다. 순간순간 날마나 자기 언어
를 살펴야 돼요. 자기 혀의 말이 아까 말했던 그런 부정적인 말들로 사단의 권세에 쓰이고 있는지
자기 혀를 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혀의 말을 늘 살피면서 성영님을 의지하여 성영님께서
혀를 잡아 권세가 돼 주시고 지배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사모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
로가 결단하여 말의 실수가 없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영적인 것을 깨는 그런 말
들을 안 할 것으로 아주 결단하고 이 깨물고 혀를 단속해야 합니다. 기쁨의 말을 하겠다. 감사하
는 말만 하겠다. 생명의 말만 하겠다 하고, 말씀을 시인하고 시인하면 그대로 이루어져 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져서 입에 달고 있는 불편한 말들이 있습니다.
배불러 죽겠어! 음식 먹고 배부르면 배불러 죽겠다, 아이고 죽겠네 좋은 것도 죽겠네 합니다. 배
부르면 좋지 않습니까? 배고픈 것이 고통이고 괴롭잖아요. 배부르다는 것은 풍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니 배부르니 좋다 해야 하는데 '죽겠네'하는 것입니다. 배불러서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심지
어는 기뻐 죽겠네, 속상해 죽겠네, 못 살겠네, 이런 말들에 길들여지고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표현들이 왜 나오는가, 자기 속이 부정적인 것으로 차 있기 때문에 의
식 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되는 일이 없어, 이게 내 팔자인가 봐
죽었으면 좋겠어, 이런 부정적인 표현들이 자기 입에 있다면 계속 이 부정적인 삶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것에 원망하는 마음이 서고 이 같은 자기 상황의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미움으로 자기 안에 채우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그것으로
배불러 고통을 겪는 겁니다. 마음과 혀를 사단의 권세에 두었기 때문에 자기 안에 평안으로 배불
리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깨는 것으로 채워서 곧 피해의식, 피해망상에 잡히고, 그러니 그 마음
에 평안이 머물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다고, 불평이, 원망이 입의 열매가 되었다. 네 입의 말로
인해서 네가 잡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에 잡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14:28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된 생
명을 말하고, 복을 말하고, 기쁨을 말하고, 예수님의 것으로 그 같은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한
것이 너에게로 갈 것이요, 저주의 말, 불신의 말, 부정적인 말이 네 입에 있으면 그것이 너에게
그대로 머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갈6:7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
로 거두리라 콩 심었더니 팥이 난 것이 아니고, 그대로 콩이 났다. 팥 심었더니 콩이 되는 것이
아니더라. 부정적인 것을 입에 담고 마음에 심으니 긍정적인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더라는 말입니
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에 평안이 없고 환경이 생활이 얽히고 무엇인가 막혀 있다면 그동안 자기
의 입의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입의 권세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점검해 봐야 합니다.
약3:2에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했습니다.
자신의 혀, 곧 말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도 다스린다. 자기의 온 삶과 행동에 복종
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 있는 자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의 삶을 살려 하면
자기의 말부터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를 둔 부모 되신 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의지가 아이에게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만일 부모의
의지가 부정적이면 그 부정적인 것이 자녀에게로 그대로 흘러가서 그 삶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입의 말로 말미암아 어린 자녀들 속에 씨를 뿌리는 것이 되고 그것이 자라남으로써 이후 성장하
여 그 부정적인 열매를 자녀들에게서 걷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너무나 중요한 이 원리, 말의 권세가 하나님이시면, 그 권세로 말미암아 어린 자녀들에
게도 그 권세의 언어를 쓰고 산다면, 성영님께서 자녀와 함께 계시는 복이 있게 될 것이고, 부정
적인 말의 권세는 사단이기 때문에 그 권세가 자녀에게로 흘러가서 자녀의 의지가 되는 너무나
두려운 흐름이기 때문에 이 같은 원리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지식으로 받아 자기 입의 말을, 말
씀을 근거한 긍정적인 영의 복된 언어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근거를 사단에게 두었던 자기 성
품의 말, 부정적인 말들을 깨끗이 회개하여 버리고, 하나님께 근거를 둔, 예수님과 그 말씀으로
자기 입의 말이 되게 하여, 자신도 복을 받는 영혼이 되고, 자녀도 그 복 안으로 들이는 부모가
돼야 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복을 말하고 말씀으로 사는 믿음을 말하면 성영님께서 그렇게 이끌
어 가실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영과 혼과 육체의 삶으로
받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내가 반드시 받으리라 하는 결단과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그 복된 길을 위해서 힘쓴다면 반드시 그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먼저 호10:
12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셨으니 바로 하나님에게 어긋난 잘못된 마음, 잘못된 생각, 잘
못된 입의 언어를 갈아엎어야 합니다. 밭의 흙을 갈아엎어 돌도 골라내고 거기에 거름을 주고 흙
을 고르게 하여 파종하듯이 너희 마음속에 차 있는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다 골라내고 다 따내 버
려라, 시기심도 골라내 버리고, 경쟁심도 골라내고, 저주의 부정적인 것들도 골라내고, 욕심도 골
라내고, 탐욕도 골라내고, 마음이 좋은 밭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에다 예수님의 것, 생명을 담고 축복을 담고 사랑을 담고 평안을 담고, 말씀을 담음
으로써 이 엄청난 복의 것이 자기 의지가 되고 온전히 예수님이 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 의지가 이와 같으니 입에도 마음에도 이 복을 담고 배가 부르게 되니, 게임 끝 아닙니까? 그
언어에서 나오는 것이 뭐겠습니까? 언어에 담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영님이 권세가 돼 주신
말이지 않습니까? 일부러 억지로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쳐서 예수님의 것으로 흘려
주고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기 속에 담긴 세상의 말, 누추한 말, 자기의 말, 습관 된 부정적인 말들을 생각 없이 내뱉지 말
고, 무엇을 말하든지 자기 말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열매가 있다
는 것을 알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으로 온전히 마음과 생각의 열매가 되어 배가 부르
도록 훈련하는 가운데 성영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행하여 나가면서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
는 것으로 자기를 축복하고 자녀들을 축복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
은 아버지의 자녀라는 축복된 언어를 입에 담으시란 말입니다. 시인하라는 말이에요.
창2:19-20에 하나님께서 들의 모든 들짐승과 하늘의 나는 새들과 육축들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아담
에게 이끌어 주시고 이름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모든 들짐승, 육축, 새들에게 이름을 줄 때
그 성격이나 운명이 규정된 것입니다. 아담 앞에 지나는 짐승에게 사슴이라는 이름을 주면 그 이름
에 맞는 성격과 운명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호랑이라는 이름을 주면 그 이름에 맞는 성격과 운명
을 지니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이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하
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이름을 축복 된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어요. 이름을 바꾸
자 그 사람의 성격도 변화되고 그의 인생의 방향도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이름을 바
꾸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를, 또 자녀를 축복하라는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아버지의
자녀라는 이름을 딱 짓고 그렇게 축복하라 그 말입니다. 자기에게, 자녀에게 그렇게 이름을 짓고
그것을 축복하면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가고 그 복 안으로 들어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아브람이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어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많은 아들을 둔 아비라는 뜻이에요. 그 아내 사래도 사라라고 바꿔 주셨습니다. 예수님
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많은 아들을 두게 될 어미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곱도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복을 받을 자의 언약을 가졌으니 마땅한 그 이름,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기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에게 지는 것입니까? 아버지이시니, 사랑하는 장자 아들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아버지
는 사랑이신 것을 나타내신 거예요. 이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나게 하실
아들이기에 그 언약의 복을 넣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시다는 말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꾀쟁이, 육의 꾀로 사는 자라는 뜻을 가졌지만, 이스라엘은 그 엄청난 축복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시더니 마침내 그 이름, 이스라엘의 복이 되었잖습니까?
베드로도 원래 이름이 무엇입니까? 시몬이에요. 바요나 시몬, 갈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시몬
을 만나시자 빤히 얼굴을 들여다보시다가 이제 너의 이름을 시몬이라 하지 말고 베드로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더니 반석이라 불리운 그가 정말 '주는 그리스도
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게 되어 그 반석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잖아요. 천주교에서는 이 신앙고백 위에가 아니라 베드로 위에다 세웠지만, 그러나 우
리 개신교는 바로 이 신앙고백 위에다 세운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석이라는 이름 위에 세
워진 교회를 통해서 인류에게 기독교의 방향과 역사와 흐름이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다음 우리의 생각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여러분! 생각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일부러
예수님을 생각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자나 누우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되시니 신랑의 마음 신랑의 뜻으로
꿈을 품고 그것을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로잡아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 거예요.
행2:17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
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셨습니다.
이 뜻은 이미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생략합니다. 또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
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자꾸 보게 되면, 그 바라보는 것들이 나에게 끼치
는 위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텔레비전이 세상입니까, 아닙니까? 100% 세상입니다. 100% 세상이라는 것 분명히 말씀드립
니다. 오랜 과거에 제가 말씀을 준비하다 막히거나 힘이 들 때는 텔레비전을 좀 볼 때가 있었습니
다. 그런데 보는 시간이 30분 정도 되면 눈이 근질근질하고 가려 오기 시작합니다. 비벼야 시원할
것 같으니까 눈을 손으로 비빕니다. 비비고 나면 눈의 흰자위가 완전히 빨간 고추장 색깔이 돼 버
리는 겁니다.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귓속에서는 늘 웅성웅성 사람들의 시끄러
운 소리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귓속이 계속 간지럽고 바글바글 소리가 있는 거예요. 도대체 이것
이 뭐야 왜 귓속에 이런 시끄러운 소리가 있지? 마음에 깨달아졌습니다. 그 TV에서 들었던 소리들
이 다 귓속에 들어와 앉아 있다는 것을요. 물론 그런 것을 보고 듣고 한 것을 회개하고 쫓아내면
깨끗해지곤 했지요.
또 TV 속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을 볼 때 고양이로 보이는 여자도 있고, 여우로 보이는 여자도 있고
어떤 여자는 원숭이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여자는 쥐로 보이기도 했고 암튼 온갖 짐승의 영이 거
기 다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TV를 보려하면 화면이 안 보였습니다. 보이질 않아서 볼 수가 없었
어요. 그래서 집에서 다 치워버린 물건이 됐지요. 그래서 TV가 뭐냐, 오늘날 우리 영혼을 좀먹는
기계입니다. TV에 집착해 있으면 절대 믿음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
는 것도 아니에요. 텔레비전뿐입니까? 무엇이 되었든지 TV와 같은 것들에 붙들려 있으면 다 우상
이고 세상입니다.
악한 영들이 그것들을 통해서 영혼을 붙잡아버려요.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신
념으로 믿는 종교인은 되어도 영으로 맺은 믿음은 되지 않습니다. 행위로는 열심히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으로, 아들로 나는 영의 믿음은 안 된다는 말이에요. 제가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했습
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냐 보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위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무엇
을 집중하여 보고 있다는 것은 지금 거기에 자기가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런 매개체들이 세상이요, 사단과 인간이 합작해서 만들어 놓은 세상문화요, 그렇기에 자기가 지금
거기에 끌려간다면 지금 누구에게 끌려가는 것이냐, 사단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사단에게 나 좀
지배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말이 거부감 든다면 그것은 본인 일이지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확실한 믿음 바른 믿음이 되려면 세상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알려는 것에 영,
혼, 육 전인으로 힘쓸 때에 하늘의 모든 능력을 얻게 되어 세상 사는 것 어떤 것도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가 내 앞에 굴복하는 거예요. 만일 자기가 육의 일을 좋아하고, 세상 좋아하고 사
랑하는 것들이 있다면, 마귀를 향해 예수님 이름으로 물러가라 해도 오히려 비웃고 절대로 물러
가지 않습니다. '내 것을 네가 좋아하고 내 것을 네가 따르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물러가겠느냐,
네가 내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니 물러갈 수가 없지'하고 오히려 야유하는 겁니다. 믿음은 그 속
에 육을 좇는 것도 세상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만 기뻐하고 사랑할 때 마귀가 예수님의 이
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에게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마음에 품고 가지고 있으면 아무
리 마귀를 물리친다 해도 마귀는 물러가지 않습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데 어떻게 물러가느
냐?'하고 비웃습니다. 예수님 이름 거기에 사용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알기 바랍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실패와 성공도 되고 죽음과 삶도 되고 슬픔과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이성과 지
식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은 미련한 것 같지만, 그러나 사람의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여
합쳐도 하나님의 미련한 것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마귀가 와서 하와에게 "선악과 먹어,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까 봐서 하나님이
거짓말한 거야"하고 유혹하자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았잖습니까? 쳐다보니 어때요? 먹음직도 하
고 보암직도 하고, 쳐다보니 사단이 먹음직하게 보이도록 했고, 쳐다보니 보암직하게 보이게 했
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는 거예요. 바로 하와가 거기에 끌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으니 하와에게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 같은 세상이 끌
려온 것입니다. 하와가 바라본 세상은 타락하도록 유혹한 대상이었기 때문에 인간 속에 타락이
들어온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
내가 끌려간 것이요, 그것에 지배받으면 내게 끌려와 버리는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연합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바라보느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롯과 처와 두 딸을 성 밖으로 끌고
나오면서 목숨 부지하려면 뒤돌아보지 말고 저 앞에 보이는 산으로 빨리 도망하라 부지런히 달아
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렇게 앞만 보고 가라고 교훈을 준 것입
니다.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는 거예요. 세상을 좋아하여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는 것,
그 사건을 통해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을 다시 각인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마음이 소돔 성 세상 것에, 생각이 그 세상의 것에 있었기 때문에
도망하다가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집이 어떻게 될까 하여, 그동안 온 힘 다해 이루
어 놓은 자기 집이 너무 아까워 '불타면 어떡해,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는데 집에 둔 그
모든 것들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해' 이제 나는 어찌 살라고 하는 마음과 생각에 끌려가서 거
기에 있게 되니 도망하다가 자동으로 뒤를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즉시로 롯의 처가
소금기둥이 돼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롯의 처를 통해 이 같은 경고를 듣고 보면서도 변화 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는 것입
니다. 오늘날의 롯의 처가 많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예배자이겠습니까, 그러나 소금기둥이
되게 하신 것을 통해 분명히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보는 것이 위력이 있어요. 큰 위력입니다. 보는 것이! 그래서 절대 신앙이 성공하겠
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성공을 바라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먼저 가나안 땅을 상속으
로 주시겠다는 것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신 후 이 땅 가져라 하고 땅을 주신 것 아닙
니다. 먼저 무수히 떠 있는 하늘의 별들을 보고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 속
에다 꿈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아브라함 속에 넣
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가나안 땅에 끌려가게
했습니다.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을 아브라함의 마음에 꿈을 품게 하셨어요. 그런 뒤 마침내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에게 끌려오는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
게 약속하시길 성영님으로 꿈을 주시고 환상도 주시고 예언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여러분이 다 들은 것이니 재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에 반드시 성
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행진해야 합니다. 땅의 것에 실패는 괜찮아요. 그러나 신앙은 실패하면
안 됩니다. 참으로 신앙에 성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꿈을
가지고 그것을 믿음으로 시인하여 '성영님으로 꿈을 주세요! 성영님으로 꿈을 꾸게 하여 주세요!
성영님으로 환상을 보게 하여 주소서! 성영님으로 예언하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나는 신앙에 성공하겠다는 그 목표를 확실히 굳게 세우고 이제는 그것을 위해서 마음과 뜻과 목숨
을 다해 전진하고 예수님 사랑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말씀드립니다. 이 땅에서 이룬 만큼 하늘에 가서도 그 영광이 있는 것이지 이루지 않으면
하늘에 가서도 없어요. 내가 얼마만큼 예수님과 연합된 삶이냐, 얼마만큼 예수님으로 사는 믿음
이 되었느냐, 바로 그 믿음만이 그 나라 가서 영광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아멘.
예수님의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를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신 성영
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삼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죽고 사는 것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소책자p1-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