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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1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6
설교 제목: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법
소망, 신분, 방식 – Hope, Status, Style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1:8~11
설교를 위한 묵상:
우리는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이며 하나님이 완성하실 세상의 상속자들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소망 때문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가 결정된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했다. 이는 ‘새로운 생각’으로 ‘다른 생각’을 하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이 세상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소망하며, 다른 방식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기도하고 배우고 예배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곧 경륜이기 때문이다.
설교 개요:
1.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하나님 나라 시민의식
2. 우리의 신분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3. 우리의 방식 –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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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하나님 나라 시민의식
안녕하십니까? 설 명절 연휴 기간 동안에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모였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이 세상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때 우리는 사실 ‘하늘의 뜻을 받아 땅에 펼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경배할 때 하늘의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하늘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펼치실 것입니다.
그러 점에서 우리들은 지구촌의 가족이며,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서울시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그리고 서울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하늘에 등재되어 있다(ὑπάρχω, hyparcho)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오시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어서 나오는 구절에 따르면 우리가 새롭게 변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립보서 3:21
사도 바울은 우리의 낮은 몸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금 낮은 곳에 있고 주님의 몸은 영광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병에 걸리기도 하고 부서지고 망가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결국 썩어져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영광스러운 형체입니다. 썩지 않는 몸이며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런 몸을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상상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낮고 비천한 몸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주님이 우리의 몸을 그처럼 영광스럽게 변하게 하시려고 다시 오실 때 어떤 일을 하신다고 설명합니까?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만물을 복종하게 하신다는 말은 곧 심판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와 관련하여 좀더 자세한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20~26
주님이 오셔서 만물을 복종하게 하실 때 주님께 복종하게 되는 것은 통치와 권세와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통치와 권세와 능력은 낮은 몸을 가진 우리 인간을 타락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우리의 원수입니다(엡 6:12). 주님이 오시면 그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에 굴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날에는 모든 원수가 제압을 당하는데 사망까지도 멸망을 받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물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마침내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세상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열리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가 이런 모습이라고 소개해줍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에베소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1:8~11
하늘의 시민권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하늘의 신비한 뜻을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이며 이 세상을 위한 ‘마스터플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경륜을 한 마디로 정리하여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신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다고 하셨고, 고린도전서에서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모든 원수들 즉, 죽음까지도 멸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을 심판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의 낮은 몸도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뜻을 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하늘의 시민권자들이며 하늘의 대리인들이라면 우리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를 소망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시민권자요 하늘의 대리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위하여 저는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신분과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방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신분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먼저 우리의 신분입니다. 신분이라는 말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사회적 신분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옛날에는 양반과 상민이 사회적 신분을 특정하는 말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중인, 상민과 노비의 네 단계로 사회적 신분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금수저나 은수저 또는 흙수저라는 말로 사회적 신분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학군으로 사람을 구별하기도 하고 강남에 사느냐 또는 강북에 사느냐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은행신용 등급으로 사람을 나누는 직업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그 어디나 사람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산이나 학력, 또는 외모나 능력 등 여러가지 기준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회적 신분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신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30년 전 1894년에 갑오개혁으로 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제도가 폐지되었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사회적 신분제도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은 어떤 신분으로 살고 있습니까? 이것에 대하여 지난 주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지성소 안에 서 있는 제사장과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며, 백성들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들의 신분을 잊지 말라고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5
둘째,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통치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이사야 66:1, 행 7:49). 하나님은 그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그 통치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왕 노릇은 물론 이 세상의 왕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왕 노릇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5:17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5~6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에 두 가지 왕 노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왕 노릇은 군림하는 것이며 다른 왕 노릇은 섬기는 것입니다. 군림하는 왕 노릇에는 사망이 뒤따르며 섬기는 왕 노릇에는 생명이 따라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왕 노릇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2~45
3. 우리의 방식 –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기억할 점은,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단지 어떤 규범과 명령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신분이며 어떤 약속이 우리에게 있는지를 믿는 믿음과 소망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고 자신이 나중에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버지로부터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요셉이었기에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삶 가운데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꿈이 있는 백성은 율법을 함부로 깨뜨리지 않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졌는지를 믿는 믿음과 소망이 우리를 사랑과 관용의 사람, 포용과 진실의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행동 방식을 취하라고 명하셨습니까?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다른 하늘의 통치자들이 취하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져 있는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너무 분명하게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낮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장차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고 그에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연습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성소 앞에 서 있는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면, 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하늘의 보좌에 앉아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방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시도를 위해서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아간다면 우리는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몇 년 전에 읽은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라는 제목인데 톰 라이트가 쓴 책입니다. 사실 그 책의 원래 제목은 ‘After You Believe: Why Christian Character Matters’(2010)입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당신이 믿은 후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왜 중요한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책에서 톰 라이트는 미국에서 있었던 비행기 사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 사고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그 영화 제목은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입니다.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국내 비행기가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새떼가 비행기 엔진으로 들어가 두 개의 엔진이 모두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뉴욕시의 하늘을 날다가 엔진이 멈춰버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숙련된 기장 설렌버거는 부근의 허드슨강에 행글라이더처럼 비행기를 미끄러지듯 착륙하게 함으로써 승객 159명 전원을 구한 이야기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평상시에 수없이 많이 훈련하고 연습하여 몸에 익은 기술이 위기의 때에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인격의 훈련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지만, 훈련이 되어 말과 행실이 고상하고 마음씨가 너그러운 하늘 시민이냐 아니면 경건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언행이 불순하고 심사가 불안정하냐에 따라서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있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도 경건의 훈련이 중요하다고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강조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자기를 훈련하십시오.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디모데전서 4:7~8, 표준새번역성경
경건의 훈련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연습입니다. 그것은 기도나 예배, 또는 성경읽기나 경건한 서적을 읽는 것을 포함하며, 신자들과의 정기적인 교제도 경건한 삶을 개발하는데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 효과가 더 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경건의 훈련을 하면서 우리는 전보다 더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더 견고하게 붙들 수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이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면 경건의 연습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또는 영적인 감각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찬송가를 외워 부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기적인 교제도 필요합니다. 이런 모든 시간은 우리의 훈련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며 캄캄한 하늘을 비추는 빛으로 드러나게 하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