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2021년 2월 14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마태복음 13:1-9
군대에 가면 다른 부대에 잠시 가서 임무를 수행하는 파견을 갈 때가 있습니다. 다른 부대에 가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내무반을 함께 사용해야 됩니다. 제가 전방에게 근무할 때 저는 이제 갓 자대에 배치된 이등병이었습니다.
이등병은 피곤하고 고단합니다. 다 눈치를 봐야 될 사람이니 내무반에 한시도 마음 편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방에 폭설이 내려 공병대에서 중장비를 운전하는 병사가 파견을 나온 것입니다. 저와 비슷하게 입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긴장한 것이 얼굴에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대의 선임병들이 그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군대의 문화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같은 소속 부대가 아니면 계급도 명령도 안 통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선임병이 심부름을 시키면 재빨리 대답하고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하지만 그 파견병에게는 아무 명령도 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어디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까?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금도 하고 은사도 있고 방언도 하는 것을 보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일까요? 군인도 다 같은 대한민국 육군이며 멀쩡하게 계급장이 있는데도 소속이 틀리니, 한 내무반 한 가족이 아니니 전혀 명령과 복종이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행위와 직분으로 멀쩡한 성도인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신 말씀을 순종으로 결실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다면 그가 직분이 목사와 장로여도 어떤 큰 은사와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과 가족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내 백성은 내 음성을 듣고 순종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가족은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와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자신이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의 자존심과 감정이 용납하지 않아도 그 자아를 십자가에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회에는 입으로는 주구장창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지만 결국은 자기 뜻대로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간다는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보면 여러분은 두렵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사람일까? 나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길 가와 돌밭과 가시떨기도 모두 생명의 말씀인 천국복음을 듣고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들도 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은 길 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같은 자들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수십 년간 교회에 들락거리며 예배를 드리고 천국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길가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정욕과 탐심이라는 자아숭배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대로 마귀가 다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길 가와 같은 자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돌밭과 같은 자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고 마음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얼핏 믿음 있는 성도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러더군요. 자신이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이 다 믿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을 때 울기도 하고 기쁨으로 받는 것을 보며 그 말씀대로 사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는 것으로 끝나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고난 없는 신앙생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난 없이 믿음이 드러나고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고 기쁨으로 받는 마음이 있어도 결국 삶으로 돌아가 시험과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지 못하면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이 가족이 된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순종으로 결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성도들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는 곧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는데 결국은 그것은 세상을 못을 박은 것이라는 겁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세상에서 나온 자,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세상에서 나왔으니 이제 바울은 세상의 통치와 그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러나 마음은 세상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편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길 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들도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될 뻔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세상에 있을 때 나름대로 갖고 있는 그 행위와 믿음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적당히 봐주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죄를 심판하는 공의와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을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누구나가 십자가의 대속과 은혜를 믿고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회개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왕이며 주인이고 나는 예수님의 종과 노예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앞에 회개한 자들에게서 나오는 믿음의 열매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순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하신 겁니다. 그들은 십자가 앞에 회개한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하고 왕이신 주님의 말씀에 종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셨는데 믿음은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회개하고 그 몸을 말씀으로 쳐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그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며 아버지 제가 가겠습니다! 말하고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까?
애초에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과 뜻과 감정과 고집과 자존심을 섬기려는 그 자아를 십자가에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와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하나님과 무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참 이상한 것이 그러면서도 천국에 가겠다고 갈 수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믿으면서 말입니다. 다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교만하게 타락한 자신을 섬기는 자아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나라는 운으로 대충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 확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때에 들어가는 나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가족이며 나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원수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버려진 아이들과 깡패들을 돌보고 믿음으로 키운 박보영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더군요. 한 번은 한 아이가 교회 안에서 담배를 피우기에 담배를 당장 끄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 기분이 나쁘니 건드리지 말라고 대들며 한 번만 자신을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막으려는 순간 주먹이 얼굴에 날라 와 무참하게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쓰러진 목사님을 얼마나 발로 차고 짓이겨 놓았던지 얼굴이 부어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자식처럼 사랑으로 돌보던 아이에게 비참하게 폭행을 당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강단 앞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그 아이의 면회를 가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아이는 그 길로 밖으로 나가 죄를 짓고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인격과 자존심을 뭉개버린 아이를 용서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더군다나 면회까지 가 그 얼굴을 보고 싶겠습니까? 왜 그 아이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이 목사님에게 너는 나에게 그 아이보다 더 더럽고 악한 죄인이었다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 뚱뚱 부은 얼굴로 그 아이의 면회를 갔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기절할 듯이 놀라며 사람의 눈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 수 있을까할 정도로 울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내가 또 면회를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올 때 그 아이에 대한 미움은 다 사라지고 내가 더 사랑으로 보살펴야지 하는 마음만 들더라는 것입니다.
순종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 내 감정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내 자아를 십자가에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만을 하고는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나 자신을 부인하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십자가로 자신을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