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라떼 이영란
제주 두모악에 가면 김영갑 사진 작가의 갤러리가 있다.
그즈음 사진 공부에 관심이 많던 나여서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시야에 가득 담기던 제주의 푸른 하늘과 오름과 나무들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곳을 나오면서 작가의 포토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가슴에 품고 나왔다.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셔터를 누르며 담았을 섬의 외로움과 그의 외로움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책갈피언들이 함께 진행하게됐던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과목은 ‘욕지도할머니 바리스타’ 였다.
우리나라 1호 바리스타이신 대구 여대성 선생님, 커피 애호가 배종숙 선생님과 함께 진행된 수업은 1년이나 걸렸다.
경상대에서 이론부터 시작해서 프라이팬에 커피콩을 직접 볶고, 맛을 보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할머니들은 처음과 달리 차츰 신이 나셨다.
한산대첩행사와 욕지도행사, 요트행사들을 거치며 할머니들의 손길은 조금씩 더 날렵해지셨다.
카페 창업 공간을 마련하기위해 할머니 한 분이 건물을 내어주셨고, 정부 지원금을 아껴가며 인테리어를 하고, 직접 콩을 볶고 갈아서 만든 원두로 오픈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매일 욕지도를 오가며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
할머니들이 자기가 손수 내리신 커피를 맛보라시며 자꾸 주시는 바람에 나는 하루에도 몇 잔의 커피를 사약처럼 마셔야했다.
‘맛있어요~ 맛있어요~’를 영혼을 쥐어짜며 목청껏 외쳐댔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리운 할머니들...
오픈을 며칠 앞두고는 아예 욕지도에서 나오지않고 잠을 잤다.
그때 알게 된 섬의 적막과 고요는 평화가 아니었다.
사방이 바다인 섬에서는 일찍 해가 지고, 일찍 해가 떴다.
모두들 일찍 잠이 들었다.
그렇게 깜깜한 섬에서 바라보던 밤바다는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그때 수업을 받으시던 할머니 한분의 남편이 도시에서 내과 의사를 하시다가 노후에 섬에서 낚시하고 밭 가꾸며 사는 게 꿈이어서 욕지도로 오셨다고 했다.
처음엔 텃세도 심하고, 오후 4시 넘어 욕지도를 떠나는 마지막 배를 보면서 바닷가에 서서 하염없이 그렇게 일 년은 우셨다고 했다.
욕지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던 밤, 나는 격하게 섬의 외로움에 공감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들을 거치며 협동조합서류를 만들고, 오픈을 하며 방송도 많이 타게 되면서 할머니들도 유명세를 탔다.
아이들처럼 좋아하시던 할머니들 얼굴도 생생하다.
첫 수업 시작때 “우리가 이 나이에 무슨 커피를 판단말이고~” 반신반의하시며 탈퇴한 할머니들은 오픈 후 나름 짭짤한 수익에 뒤늦게 엄청 후회들을 하셨다.
그뿐인가~ 방송도 타고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직접 내려서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파격을 넘어 신선 그 자체였고 아름답고 멋졌다.
난생 처음 만들어보는 협동조합서류 때문에 고민하고 잠을 설쳐대며 머리를 쥐어짜던 고난의 시간들은 그런 할머니들의 얼굴을 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오히려 할머니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할머니들이 만들어주시던 나물들과 갈치국은 지금도 그리운 음식들이다.
그 후 코로나로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또 지나가고, 할머니들은 살아오신 연륜과 지혜와 인내로 잘 견디어주셨고 지금은 다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예전처럼 자주 가서 뵙지는 못하지만 언제라도 달려가면 반겨주실 할머니들이 계셔서 너무 든든하다.
2차 정부 지원금때 예산 부족으로 전화가 오셨을 때 바쁜 일정들이 많았지만, 그때 주저하지않고 달려갔던 일은 참 잘한 일이었다.
앞치마와 머그컵들과 냅킨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때 나를 도와 재능기부를 해 준 동생들, 기꺼이 착한 가격과 선물로 그릇들도 챙겨주신 도자기 공장 사장님.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많아서 따뜻하고 힘이 난다.
예전에 아주 흥했던 섬 욕지도.
나이트클럽도 있었고 예쁜 기생들과 일본으로 가는 유학파들이 많아서 부자섬으로 불렸다는 욕지도.
통영에 많은 섬들이 있지만, 유독 마음이 더 가는 건 바리스타 할머니들과 함께한 시간들과 추억 때문이다.
대부분 칠순을 넘으신 할머니들의 제 2의 인생 도전과 열정은 오래오래 욕지의 아름다운 서사로 기록될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욕지도는 그렇게 나에게 왔다.
그 섬에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