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이승재의 무비홀릭]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동아일조 2021-07-02 바뀐 세상이 두렵다. 이유가 사라진 세상이다. 단발머리 살인마가 산소통에 연결된 호스로 재미 삼아 사람을 죽인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해리슨앤컴퍼니 제공
[1] 딱 이틀 전 출근길이었어요.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몸에 찰싹 달라붙다 못해 몸과 물아일체 경지에 도달한 살색 레깅스를 입고 아기 손바닥만 한 핸드백을 오른쪽 어깨에 멘 채 만원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하필이면 자리에 앉은 제 코앞에 서는 거예요. 저는 들여다보던 스마트폰을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 넣었어요. 혹시나 그녀를 카메라로 찍는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요. 눈을 둘 데가 없어진 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처럼 도리도리질을 하며 시선을 좌우로 돌렸는데, 대부분은 곁눈질로 힐끗 보면서도 관심 없는 척을 하였어요. 오로지 제 바로 옆에 앉은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만이 영화 ‘엑스맨’의 돌연변이 진 그레이처럼 눈에서 파괴 광선을 격렬하게 뿜어내며 그녀를 관찰하면서 매우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2] 30대 이준석이 제1야당 대표가 되면서 MZ세대가 정치권의 뜨거운 구애를 받기 때문일까요? 저 같은 아저씨들은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꼰대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돌아버릴 지경이에요. 대학생 남녀가 킥보드 한 대에 함께 탄 채(이거 불법이에요) 뒤에 선 남자가 앞 여자친구의 몸에 하체를 밀착하고 부비부비하며 테헤란로를 쌩 지나가도(이건 더 불법이에요) 이젠 욕하지 않고 ‘트렌드’라 생각하려 노력해요. 저녁 버스정류장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의 입술을 츄파춥스처럼 빨고 있어도 이젠 욕하지 않고 ‘힙’하다 생각하려 노력해요. 백화점에서 무거운 출입문을 여는 순간 쌩하니 반대편에서 먼저 들어와 버리는 10대를 마주하면 이젠 욕하지 않고 ‘자아가 분명하다’ 생각하려 노력하고 말이에요. 꼰대탈출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제가 요즘 느끼는 감정은 세대차를 넘어 세계차가 아닐까 싶어요.
[3] 할리우드 코미디영화 ‘인턴십’(2013년)에는 저 같은 꼰대 아저씨가 맞닥뜨리는 신세대의 낯선 세계가 풍자적으로 그려져요. 고객을 사로잡는 화려한 언변으로 크게 성공한 영업맨 닉(오언 윌슨)과 빌리(빈스 본)는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해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심지어는 스마트폰 탓에 손목시계조차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계를 팔아먹기란 불가능해진 거죠. 천우신조로 구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은 두 아저씨.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구글의 매니저가 회사의 ‘룰(rule)’을 확인하는 다음과 같은 ○× 문제를 내는데, ①상사와 맥주 마시기 ②동료 인턴과 연애하기 ③회사 음식을 집에 가져가기 등 3개 문항에 대해 두 아저씨만이 유일하게 모두 ‘○’를 선택해 동료 신세대 인턴들로부터 ‘노땅’ ‘머저리’ ‘조직다양성을 위한 수단’이라는 비난까지 한 몸에 받게 되지요.
‘소스파일’ ‘코드’ ‘버그’ 같은 달나라 언어의 융단폭격에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간 두 사람은 드디어 실력발휘를 할 절호의 기회를 얻어요. 고객센터에서 고객의 불만전화에 응대하는 일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빌리는 놀라운 아날로그식 감성 입담을 자랑하며 분노한 고객들의 마음을 단박에 누그러뜨려요. 하지만 구글로부터 받은 빌리의 평가점수는 0점! 왜냐고요? 컴퓨터에 로그인을 하지 않아 녹음파일이 남질 않는 바람에 그는 상담업무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 거죠. “로그인하지 않으면 출근한 것이 아니다”라는 디지털시대의 뉴노멀을 받아들이기엔 그들은 너무 서툴고 촌스럽고 인간적이었던 거예요.
[4] 영화 제목처럼 이젠 노인, 아니 노땅을 위한 나라는 더 이상 없어요. 코언 형제 감독의 최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년)에는 조부부터 3대에 걸쳐 시골 보안관으로 살아온, 이젠 은퇴를 앞둔 남자 벨(토미 리 존스)이 나와요. 그는 이 시대가 두려워요. 조부와 아버지가 보안관으로 활동할 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른 세계이니까요. 예전엔 범죄에 치정이나 돈 같은 동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이유라는 게 사라져 버렸어요. 재수 없는 단발머리를 한 안톤(하비에르 바르뎀)이란 이름의 남자가 산소통에 연결된 호스로 사람들 머리를 뚫어서 죽이고 다니는데,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는지 뒷면이 나오는지에 따라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하며 그저 인간사냥을 만끽할 뿐이니까요. 여기서 보안관이 한탄하는, 규칙도 사라지고 인과(因果)도 사라지고 선악조차 구분되지 않는 예측불가 세상은 내로남불이 힙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작금의 대한민국과 신묘하게 포개어지기도 해요. 영화 속 노인은 말하지요. “녹록지 않은 세상이야. 오는 변화를 막을 수가 있나. 접을 건 접어야지.”
이제 아시겠지요? 이해하려 드는 순간 꼰대가 되어요. 생각을 접으세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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