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가을호 당선자
등신불
작은 불이 큰불을 낳고
불이 불을 일으켜 세우듯
활활,
그대에게 꺼지지 않는
대상포진
뼈까지 저린 통증의 진실
외로이 저항하고
그리움 알알이 쏟아낸
세포들의 혁명
모빌
흔들리며
피는 꽃
염혜원/ 서울 출생. 2024년 《시와경계》 디카시 등단. 경남고성국제한글디카시 공모전 우수상 외 수상.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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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와의 행복한 동행
업무 중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너무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한없이 겸허해지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시와경계》 심사위원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디카시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게 해준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자연과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작은 순간들이 저에게 말을 거는 듯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디카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장면들이 저의 시선에 머물러 디카시가 되는 과정은 저에게 기쁨과 새로운 발견을 안겨주었고 그 덕분에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제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앞으로 디카시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디카시인이 되겠습니다.
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 디카시의 창시자 이상옥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이승하 교수님, 김성규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문학고을과 글향 문우님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아침저녁으로 영양제를 챙겨주며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남편과 든든한 응원군 세 아이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디카시 신인우수작품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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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이스의 등장과 디카시의 미래
디카시 발원 20주년을 맞아 계간 《시와경계》에서 또 한 분의 뉴페이스 디카시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디카시인의 본격 등장은 2018년 오장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제정한 오장환디카시신인문학상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문학용어로 등재되고 2018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디카시가 수록되면서 디카시가 본격문학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이전에 디카시는 시인들이 여기로 쓰는 디지털 시대의 다소 재미있고 가벼운 양식의 시 정도로 치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오늘은 기술과 예술이 융합해 혁신과 창조를 이끌어내는 아트테크 문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아트Art와 테크놀리지Technology가 결합한 아트테크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예술적 징후이다. 예술가들이 가상 현실(VR), 증강 현실(AR), 인공지능(AR)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디카시는 기술을 표상하는 디카와 예술을 표상하는 시가 결합한 아트테크의 선구다. 또한 지금은 디지털 미디어 보급의 확산과 일상화로 매체언어는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를 넘어 소리, 그림, 사진, 음악, 동영상 등의 다양한 기호를 포괄하는 멀티언어적 속성을 지닌다. 디카시는 다양한 기호를 표상하는 영상기호(사진)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표현하는 멀티언어예술이기 때문에 매체언어예술로서도 가장 선구적이라 할 것이다.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아트테크, 매체언어 문화 현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디카시 발원 20주년에 즈음해서 디카시는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쓰기의 도구로 활용하며 디지털 정신을 가장 탁월하게 반영하는 디지털 시대의 최적화된 시로 자리잡고 있다.
디카시는 더 이상 여기의 문학이 아닌, 본격문학으로 본격 디카시인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다. 염혜원 디카시인을 추천하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염혜원 시인은 누구보다 디카시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로 수용하며 디카시야말로 자신을 표현하고 세계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장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등신불」은 나무들이 타서 벌겋게 된 형상이다. 그 가운데 나뭇가지 하나가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태우며 붉을 밝히고 있는 것이 전경화해 클로즈업된다. 이것은 작은 불이 큰불을 낳고 불이 불을 일으켜 세우는 형국이고, 이것은 활활 타서 그대에게 꺼지지 않은 마음이고 등신불이다. 여기서 그대의 상징성을 주목해야 한다. 단순한 연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의인화 된 그대는 자유이고, 진리이고, 종교적 대상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릴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떠올리고, 또 종교의 신성성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디카시는 영상기호와 문자기호의 복합문식성을 탁월하게 보인다. 「대상포진」도 영상기호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이면의 진실을 드러낸다. 극미의 세계를 인간이 안고 있는 자유, 사랑 같은 근원적인 인문담론을 거시적으로 확대 재생산해낸다. 「모빌」은, 이것이 완결성을 지니는 것인가, 라고 의문 제기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작품도 영상기호와 문자기호라는 복합문식성의 디카시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빌」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극순간 포착해서 날것으로 드러내는 여백과 극서정 특유의 미의식을 투영함으로써 극순간 양식이라는 디카시의 장르적 특성을 드러낸다.
염혜원 시인 같은 뉴페이스가 디카시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심사: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