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3節 授受作用에 의한 萬有原力
하나님이 運行하시는 곳에 生存과 繁殖과 作用의 힘이 생기며 하나님은 自己의 二性性相을 닮은 곳에 運行 하시며 두 存在가 相對基準을 造成치 않으면 하나님의 二性性相을 닮을 수 없는 것이며 相對基準은 두 存在가 서로 잘주고 잘받을 수 있는 廻路를 지어 主體와 對象으로 서서 서로 不可分의 一體的인 關係를 맺을 때에 造成되는 것이다.
이렇듯 完全無缺한 相對基準을 造成하여 하나님의 二性性相을 닮지않은 것은 하나도 없음으로 하나님이 運行하시지 않는 被造物은 하나도 存在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모든 被造物은 하나님이 運行하실 수 있는 實體의 對象으로 創造되었음으로 無所不在하시다는 하나님의 遍在性을 理解할 수 있는 것이다.
天地創造의 造化는 平面的인 直行線上에는 있을 수 없고 서로 돌아갈 수 있는 立體的인 有機的 關係를 맺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은 두 存在사이에 잘주고 잘받을 수 있는 廻路를 造成치 않으면 아니된다.
어떤 物體가 다른 物體를 中心하고 돌려면 反對의 方向으로 움직이는 두 힘인 遠心力과 求心力이 두 物體사이에 주고 받는 廻路를 造成치 않으면 아니 된다.
즉 그 物體가 그 中心體에서 멀리 떨어지려는 주는 힘인 遠心力과 그 中心體가 그 物體를 自己편으로 끌어오려는 받는 힘인 求心力이 두 物體사이에 주고받는 廻路를 造成하여야 그 物體는 그 中心體를 中心하고 돌 수 있는 것이다.
이 주고 받는 平面的인 廻路가 다시 立體的인 廻路를 造成하는데서 創造의 造化는 나타나는 것인데 그 廻路의 距離와 貌樣과 狀態와 角度와 方向과 주고 받는 힘의 차와 주고 받는 速度의 차 等等의 要因에 의하여 千態 萬象의 造化의 美는 벌어지는 것이다.
物質을 構成하고 있는 最小單位인 原子의 構造도 陽子(+)를 中心하고 電子( -)가 돌아 授受作用에 의한 創造原理的 廻路를 造成하여 創造의 造化를 보여주고 있다.
天體의 運行을 보더라도 太陽을 中心하고 돌고 있는 地球와 地球를 中心하고 돌고 있는 달의 關係는 마치 陽이온을 中心하고 돌고 있는 陰이온과 陽子를 中心하고 돌고 있는 電子의 關係와 같아서 推理로써만 認識할 수 있을 程度로 微少한 分子속에서도 天體構造와 그 運行의 秘密을 歷然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墮落人間과의 關係는 太陽과 地球와 달과의 關係 와 같은 것이다.
人間은 無形의 하나님의 實體 對象이므로 하나님과 잘주고 잘받도록 創造되었다. 그러므로 人間이 만일 墮落되지 않고 完成되었으면 하나님과 完全한 授受의 廻路를 造成함으로 人間은 하나님을 中心하고 돌게 되었을 것이었는데 墮落됨으로 인하여 이 廻路가 끊어졌음으로 하나님을 中心하고 돌 수 없는 存在가 되어 하나님과의 生命의 因緣이 끊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이 끊어진 生命의 廻路를 다시 이어 주시려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完全한 人間 으로 오신 분으로서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完全한 對象이므로 하나님을 中心하고 돌 수 있는 분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生命에 動하고 靜하여 잘받고 잘주는 對象이 되어 그를 中心하고 돌기 위함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中心하고 돌고 있는 예수님을 中心하고 돌면 墮落人間도 하나님을 中心하고 돌게 됨으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授受의 廻路를 맺어 永遠한 生命의 因緣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仲保가 되어 우리들로 하나님과 原理的인 關係를 맺게 되는 것이다.
人間은 하나님과의 縱的인 授受의 回路가 끊어졌으므로 人間과 人間사이의 橫的인 授受의 廻路까지도 喪失하였으니 이것이 곧 墮落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創造原理에 의한 人間사이의 橫的인 授受의 廻路를 回復하여 하나님과의 縱的인 授受의 廻路까지 復歸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敎訓과 行跡은 모두가 이 目的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친히 弟子들의 발을 씻어주는 데서부터 生命까지 人間에게 돌려주시면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하셨고 「 先知者의 이름으로 先知者를 待接하는 者는 선지자의 賞을 받을 것이요 義人의 이름으로 義人을 待接하는 者는 義人의 賞을 받을 것이라」(마 10/41)고 하셨으며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아노라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알지 못하노라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마 10/32~33)하셨으며 「남을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너도 헤아림을 받으리라」(마 7/2) 하셨으며 「누구든지 弟子의 이름으로 이 小子中 하나에게 冷水 한 그릇이라도 주는 者는 내가 眞實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賞을 잃지 않으리라」(마 10/42) 等等의 말씀을 하신 것은 信仰生活도 잘주고 잘받는데서만 有終의 美를 볼 수 있다는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中에 두 사람이 땅에서 合心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고 말씀하신 것도 두 사람이 相對基準을 造成하는데 하나님의 攝理의 힘이 미칠 수 있다는 것을 意味하신 것이다.
格言에 家和萬事成이라 하였다. 夫婦가 사랑을 中心하고 잘주고 잘받는데 家和가 있고 家和에서만 萬事가 이루어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니 외짝 사랑이 있을 수 없다함은 이러한 原理를 證明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의 惠澤을 받을 때에 마음으로나마 感謝의 念을 돌리지 않으면 그와의 關係를 維持할 수 있는 힘은 반드시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肺도 한번 들여쉬면 한번 내쉬어야 그 機能을 發揮할 것이요 肉體도 靜脈血 과 動脈血에 의한 新陳代謝를 잘하여야 健康을 維持할 수 있으니 交感神經 과 副交感神經도 하나는 收縮케하며 하나는 伸張케하여 그 授受의 作用이 調和됨으로써만 血管伸縮의 均衡을 볼 것이요 肉體도 促進호르몬과 抑制호르몬이 서로 圓滿한 授受의 關係를 맺게될 때 均衡된 肉體를 保持할 수 있는 것이다.
한 國家를 興旺케하는 힘도 政府와 百姓사이에 上意下達의 授受의 關係가 成立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무릇 共存 共榮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러한 授受의 關係를 맺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뉴턴의 萬有引力의 學說은 創造原理의 한 面만을 把握한데서 提唱되었다. 만일 모든 存在物에 引力 즉 받는 힘만이 있다면 被造世界의 全存在物은 서로 衝突하여 全部 破壞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받는 힘이 있는 同時에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被造世界는 相互均衡 의 存在基臺를 維持하여 永遠에서 永遠에까지 存在의 힘을 維持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두 存在物이 完全한 授受의 關係를 맺어 各各 主體와 對象의 位置를 決定하면 生存과 繁殖과 作用의 힘을 發生하는 것이니 이 힘을 萬有原力 이라고하며 이 原力의 强弱의 數字的 表示를 原力係數라고한다. 이 原力係數 의 차에 의하여 引力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鐵은 地球와의 原力係數보다 磁石과의 原力係數가 크기 때문에 磁石에 끌리는 것이다. 元素의 이온化 傾向은 바로 각 元素가 다른 元素와의 사이에 갖고 있는 授受作用에 의한 原力係數의 差를 意味한다. 즉 칼륨이 나트륨의 것보다 强하다는 것을 意味한다.
被造世界의 모든 天體도 萬有原力의 法則을 떠나서는 運行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天體의 形狀과 그 特異性과 또 그 運行하는 方向과 軌道와 速度는 相互面에 갖고 있는 原力係數에 의한 創造原理적 造化에서 생기는 것이다. 流星이 떨어지며 地層과 鑛脈과 山脈이 생기며 地殼의 變化가 일어나는 現象 等은 모두 이런 原理에 의하여 벌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人間 또 人間 과 人間 사이에도 同一한 法則이 成立된다.
信仰의 程度의 차는 하나님과의 주고받는 原力係數의 差를 말한다. 人間이 墮落되지 않고 完成되었으면 主體로서의 하나님과 實體對象으로서의 人間과의 사이에 原力係數는 100%이다. 그러므로 이 原力係數를 凌駕하는 힘이 없음으로 完成된 人間은 絶對로 墮落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人間 이 完成 後 에 墮落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全能性을 否認하지 않으면 안 된다.
人間도 創造原理를 떠나서 創造되었을 수 없음으로 成長期間을 통하여서 비로소 完成될 것이었는데 하나님과 100%의 原力係數에 의한 關係가 맺어지기 전에 다른 存在와의 보다더 큰 原力에 끌리어 그와 相對하였음으로 墮落된 것이다. 그러므로 墮落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原力係數가 零이 되었다는 것을 意味한다.
하나님의 救援攝理의 目的은 이 喪失된 原力係數를 다시 100%에까지 끌어올리어 하나님과의 創造原理的 關係를 復歸하려는데 있으므로 이것을 復歸攝理라고 한다.
甲과 乙이 主體와 對象으로 서서 서로 주고 받게 되면 그 授受作用에 의하여 생기는 힘은 반드시 어떠한 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 作用에 의한 作用體는 다시 새로운 또 하나의 主體가 되어 이 主體가 된 作用體는 創造目的을 그의 對象位置에 세워놓고 그 目的을 이루려는 方向을 취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甲이라하고 인간을 乙이라고 하면 乙은 甲에게 美를 돌리고 甲은 乙 에게 사랑을 주어야 創造目的을 위한 原理的 授受關係를 맺어 眞理를 찾게 되는 것임으로 甲과 乙사이에 連結하는 直線은 眞理의 基準을 表示함으로 이 線을 眞理基準表示線이라고 한다.
甲과 乙이 授受作用의 힘에 의하여 새로운 또 하나의 主體가 된 作用體는 眞理基準表示線(AB)을 底邊으로 하는 二等邊三角形(ABC)의 頂點(C)으로 表示된다. 그런데 甲(A)과 乙(B)이 美와 사랑을 주고 받으면 그로 인한 힘은 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作用線을 表示하는 二等邊三角形은 頂點(C)은 善을 表示하는 點이 된다. 그러므로 이 點을 善基準表示點이라고한다.
이 二等邊三角形의 頂點(C) 즉 善基準表示點은 眞理基準表示線(AB)의 中心點(O)에서 그어지는 이 線(AB)의 垂直線上(OC)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 垂直線(OC)을 善基準表示線이라고 한다.
甲과 乙의 授受作用의 힘에 의하여 새로운 또 하나의 主體가 되어 作用體(C)의 對象인 創造目的(D)은 같은 眞理基準表示線(AB)을 底邊으로 하고 前者의 二等邊三角形과 反對방향에 그려지는 그의 相對的인 二等邊 三角形 (ABD)의 頂點(D)으로 表示된다. 그러므로 이 頂點(D)을 創造目的表示點이라고 한다.
이 後者의 二等邊 三角形(ABD)들의 頂點들(D D1 D2 D3) 즉 創造目的表示點들은 眞理基準表示線(AB)의 中心點(O)에서 善基準表示線(OC)과 正反對의 方向으로 그어지는 垂直線(OD) 上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 垂直線(OD)을 創造目的表示線이라고 한다.
善基準表示線(OD)과 創造目的表示線(OD)은 眞理基準表示線上(AB)의 같은 中心點(O)에서 反對方向으로 이 線(AB)의 垂直線으로 그어진 線들이기 때문에 이 두 線은 眞理基準表示線(AB)과 十字形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運行하실 수 있는 터가 되려면 이와 같이 主體와 對象과 作用體와 創造目的이 立體的인 十字形의 有機的 廻路의 關係를 맺어야 한다. 이 두 二等邊 三角形 (ABC,ABD)의 높이가 점점 적어져서 零이 되면 그 두 頂點(CD)은 底邊(AB)의 中點(O)에서 合致된다.
이와 같이 眞理基準表示線(AB)의 中心點(O)은 善基準表示點(C)과 創造目的表示點(D)이 合致되는 點이므로 眞理의 中心은 善의 中心이요 同時에 創造目的의 中心이다.
美의 主體인 甲과 사랑의 對象인 乙을 連結하는 眞理基準表示線(AB) 上에 사랑에도 美에도 偏重하지 않는 點은 이 線(AB)의 中心點(O)임으로 이 點은 良心基準表示點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眞理基準表示線(AB)의 같은 中心點(O)으로써 表示된 것으로 보아 眞理의 中心이 곧 善의 中心이요 良心의 中心이요 同時에 創造目的의 中心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良心은 항상 各自가 眞理라고 생각하는 그 眞理의 基準을 表示하는 線 즉 眞理基準表示線(AB)上의 良心基準表示點(O)에서 그 眞理基準表示線(AB)上에 그어지는 垂直線(OC)을 指向하는 것이므로 이 良心이 指向하는 垂直線을 良心基準表示線이라고 한다.
올바른 眞理에 立脚하면 그 良心이 指向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善을 結實하게 되는 것임으로 良心基準表示線(OC)은 善基準表示線(OC)과 同一 線上에서 合致되어 創造目的表示線(OD)을 對象으로 찾아 세우게되는 것이다.
人間이 墮落되지 않았으면 良心基準表示線(OC)과 善基準表示線(OC)과는 自律的으로 合致되었을 것인데 墮落으로 인하여 人間은 올바른 眞理를 찾지 못함으로 創造本然의 眞理基準表示線(AB)과 角度를 달리한 時代性 眞理基準表示線(A4B4)上에 서게 됨으로 따라서 그의 良心基準表示線도 創造本然 의 眞理基準表示線(AB)上에 선 良心基準表示線(OC)과는 같은 點이 아니고 分離된 點(O1)에서 다른 角度(O1C4)로 指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創造本然의 眞理基準表示線(AB)과 다른 線(A4B4)上의 다른 點 (O1)에서 다른 角度로 指向하는 이 時代性 良心基準表示線(O1C4)은 自然히 創造本然의 善基準表示線(OC)과 同一線上에서 合致되지 못함으로 그의 對象으로 찾아 세우는 時代性 創造目的 表示線 (O1D4)도 創造本然의 眞理基準表示線(AB)上에 선 創造目的表示線(OD)과는 全然 다른 線上에서 다른 角度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時代性 良心基準表示點(O1)의 位置와 創造本然의 良心基準表示點(O)과의 位置의 다름과 그 角度(C3O5)의 차는 良心의 苛責과 苦痛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그 苦憫과 苦痛은 그 두 點(O․O1)의 位置의 다름과 角度 (C3OC5)의 차에 正比例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良心基準表示點(O)을 찾기 위하여 祈禱에 의하여 이 길을 막고있는 物慾 情慾 等等의 모든 外的인 條件을 벗어버리고 無邪의 境地를 찾으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모든 道人들은 이 點(O)을 찾아 良心基準表示線(OC)을 따라나가 創造本然의 善基準表示線(OC)과 合致되는데 이르러 創造本然의 創造目的表示線(OD)을 對象으로 세워 나아가려하는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修道者들이 눈물로써 이 길을 찾아나온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에덴이 地上에 이루어지려면 누구에게나 公認될 수 있는 이 根本眞理가 나타나서 누구나 同一한 善基準表示線을 따라나아가 누구나 同一한 創造目的을 指向할 수 있어야한다.
墮落人間으로 하여금 이 良心基準表示點(O)을 찾아 善基準表示線(OC)과 合致될 수 있는 良心基準表示線 (OC)을 따라나아가 創造目的表示線(OD)을 對象으로 세우도록하는 使命을 하는 것이 義(O)다. 그러므로 義는 墮落으로 인하여 人間에게 要求되는 것이다.
이제 이 原理로써 眞(A) 善(C) 美(B)의 創造原理的 關係를 생각하여보자. 眞(A)은 美(B)를 要求하고 美(B)는 眞(A)을 要求하고 있다. 그러므로 眞이 主體로 서서 美를 對象으로 세워 原理的 授受의 關係를 맺으면 그로 인한 힘은 善 (C)을 結實하며 眞美로 結實한 善은 반드시 하나님의 創造目的을 對象으로 指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創造하시고 그에게 주신 祝福의 말씀도 바로 이러한 原理基臺를 造成하라는 말씀이었다.
아담(A2)은 主體로써 사랑의 表示體요, 해와(B2)는 그의 對象으로서 美의 表示體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가 完成되어 사랑과 美를 完全히 잘주고 잘받으면 반드시 그 힘은 善의 子女(C2)를 繁殖하여 創造目的(D2)을 達成했을 것이었다. 個人을 두고 보더라도 마음(A0)은 主體로서 사랑의 表示體요, 몸(B0)은 마음의 對象으로서 美의 表示體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이 完全히 주고 받는 立場에 서면 그 授受作用에 의하여 생기는 힘은 반드시 美(C0)의 結果를 맺게되어 그 個體는 하나님의 創造目的(D0)을 達成하게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아담과 해와가 사랑과 美에 의한 立體的 十字形의 有機體를 이루었더라면 이 家庭이 다시 하나님 앞에 사랑과 對象 으로 서서 美를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터가 되어 하나님이 永遠히 계실 수 있는 存在基臺가 되었을 것이었으니 이것을 四位基臺라고한다.
예수님과 聖神의 役事도 아담과 해와가 墮落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어야할 使命을 完遂하려는데 그 目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A1)께서는 사랑의 主體로서 美의 對象인 聖神(B1)과 完全히 美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일어나는 힘은 信徒들을 重生 (C1)케하여 重生한 사람은 하나님의 創造目的을 指向해 온 것이다. 이와같이 갑과 을의 사이에 일어나는 완전한 授受作用은 甲乙의 中心點에서 甲乙에 垂直角으로 그려지는 十字形의 線上에 새로운 두 極(丙 , 丁)을 일으키어 이 두 極사이에는 새로운 授受作用을 하게 된다.
甲과 乙사이에 일어나는 授受作用의 힘과 이 授受作用에 의한 다른 두 極(丙 , 丁) 사이에 일어나는 授受作用에 의한 힘은 甲乙의 中心(O)을 中心으로 하고 네 極을 통하는 平面的인 圓形運動을 일으키어 이 平面的인 圓形運動을 하는 힘은 다시 O을 中心하고 이 平面에 垂直角으로 서서 立體形을 그리는 다른 平面上에 同一한 圓形運動을 일으키게 된다. 甲乙間의 授受作用에 의하여 생기는 힘은 이와같이 O를 中心한 電子의 運動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두 存在사이에 일어나는 授受作用에 의한 힘은 반드시 立體的으로 廻轉하는 球形運動을 일어키나니 이 運動은 陽子를 中心한 電子의 運動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두 存在사이에 일어나는 授受作用에 의한 힘은 반드시 立體的인 運動을 일으키는 것이다. 陰陽의 두 極 甲과 乙사이에 그려지는 磁力線이 두 極을 連結하는 直線이 아니고 圓形을 그리게 되는 것은 甲乙 사이의 磁力은 甲乙과 十字形을 그리는 다른 線上에 다른 새로운 두 極을 일으켜 그 두 極 사이에 일어나는 다른 方向의 磁力의 影響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二性性相을 닮은 모든 被造物의 사이에 일어나는 授受作用에 의한 萬有原力은 모두 이렇듯 複雜한 立體運動을 일으키게되어 創造의 造化의 美는 나타나게되는 것이다. 사랑과 美를 表示하는 두 極사이에서 생기는 萬有原力은 이와같이 美와 사랑을 연결하는 線의 中心 O를 中心하고 이 두 極을 싸고 도는 球形運動을 하게되는 것임으로 美에도 사랑을 內包하고 사랑에도 美 을 內包하게 되는 것이다. 한 個性이 異性의 性品을 갖게되는 原因이 여기에 있다.
電氣에 관한 모든 原理도 이러한 授受原理에 의하지 않으면 完全히 解明될 수 없을 것이다. 授受作用에 의한 萬有原力에 관한 硏究는 오늘까지의 科學世界 를 보다 高次的인 새 世界로 變貌시키게 될 것이다.
마치 完全한 陽電이 생기면 完全한 陰電이 自然히 생기는 것같이 主體와 對象의 授受作用에 의하여 생긴 作用體가 또하나의 主體로 서서 創造目的을 對象目的으로 指向하여 創造原理를 完成한 하나의 有機體로 서면 이 有機體는 다시 그의 對象目的을 充當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有機體를 對象으로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되어 繁殖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繁殖도 完全한 授受作用에 의한 萬有原力에 의하여 自動的으로 생기는 것이다.
良心의 作用에 의하여 하나님과 人間과의 關係를 생각하여 보자. 人間은 墮落되었을 망정 바른 것을 위하여 살아야한다는 良心의 作用은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든지 뚜렷이 있는 것임으로 아무리 惡한 사람이라도 子息에게나 弟子에게 惡하라고 가르치는 父母나 先生은 없을 것이며 아무리 惡한 强盜라도 映畵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强盜를 볼 때에 그를 미워하는 것이 本性이다. 그러면 이 良心의 뚜렷한 作用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良心自體가 獨自的으로 그 作用의 힘을 일으킬 수 있다면 授受作用의 原理는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良心도 어떠한 主體에 대한 對象位置에 처하여 그와 相對基準을 造成하여 授受關係를 맺고있기 때문에 그 作用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 良心作用의 主體가 곧 하나님이시다.
授受作用의 原理를 認定한다면 良心作用의 原因을 追窮함으로써도 하나님의 實存을 認識할 수 있는 것이다. 人間은 墮落되었을망정 하나님의 對象位置를 취하려는 良心의 터가 있기 때문에 이를 터삼아 復歸攝理를 할 수 있는 것이다. 良心의 힘은 하나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程度에 의하여 强弱의 차가 생기는 것이다.
細胞의 分裂도 各 細胞 間에 完全한 授受作用이 成立될 때 일어나는 것이며 授受의 廻路가 막히게될 때는 病이 發生하는 것이니 人體를 해하는 균은 이 廻路를 막히게하는 作用을 하는 것이요 藥이라는 것은 이 廻路를 다시 回復 하는 役割을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