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 16일 주일낮 예배 설교
설교 제목: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
마가복음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설교를 위한 묵상:
예수께서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누룩이 망치는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룩 없는 유월절의 떡이시라는 말씀의 의미도 생각해 볼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시고 그것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떡의 이미지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그 백성이 의지하고 살아야 할 생명을 의미한다.
그 떡은 구약성경에 진설병으로 나타나며 신약성경에서는 성찬의 떡으로 기념된다. 이는 주님을 항상 앞에 모시고 사는 삶,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의미한다. 잠언 3장 5절과 6절의 말씀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설병이며 성찬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주목하고 무엇을 의지하여 살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삶의 목적이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것이 떡이라는 이미지에 담긴 놀라운 의미다.
***
설교 개요
1. 주의하라!
2. 바리새인들의 누룩
3. 헤롯의 누룩
4. 누룩 없는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
1. 주의하라!
먼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하라는 단어, ‘블레뻬떼’(blepete)라는 말은 본래 블레뽀(blepo)라는 단어입니다. 물론 다른 복음서에서는 프로스에코(prosecho)로서 ‘너희 앞에 두고 잘 봐라’ 하는 의미로서 ‘앞에 두라’(pros- before + echo have), 앞에 두고 잘 보라는 의미이고요, 블레뽀도 주의깊게 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잘 보라는 거죠.
그것이 너희 안에 들어와서 너희 떡을 변질되게 하지 않는가 잘 보라 하는 거겠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게 하시는데, 또 그 일에 동참하는 제자들이 그 길을 걸어가는데 그 일을 가로막거나 또는 변질되게 하거나 하나님의 뜻 하신 바를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 목적의 변질을 일으키는 것, 그런 교훈, 그런 가치관을 따르는 것을 누룩으로 비유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바리새인들의 누룩
그러면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무엇일까요? 그 앞 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한번 보여 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마가 8:11).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여기서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과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것, 그런 것을 아예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들의 지위를 보존하고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내맡기며 그냥 떠내려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개입하는 그 위대한 운동, 새로운 혁명, 왕의 혁명에 동참을 못했습니다. 어쩌면 ‘무사안일주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바라보고 수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해악입니다. 그것은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며, 꿈을 포기하게 합니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어 두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와 감동과 그리고 거기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과 이런 것들이 다 말라 비틀어버리고 소진되게 만들며 고갈시켜버리는 그런 작용을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이며 완악함이며 무지함이며 마음이 굳어버린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음이 그런 생각에 물든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결코 동참할 수가 없다는 뜻이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스며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마가복음 8:11, 개역개정판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와서는,
예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그에게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요구하였다.
표준새번역성경
바리새인들은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못마땅한 것일까요? 아니면 갈릴리에서 온 촌뜨기가 자신들의 지위를 흔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요? 그들에게 지켜야 할 무엇이 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알량한 그 지위와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그들의 역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린 것은 아닐까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 사람이 무슨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겠어!
우리가 보면 알아, 금방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구!
별것도 아닌 것이, 저렇게 나대고 설치고 있다니,
가소로운 일이야! 저 사람이 어디 출신이라구?’
그들은 이미 호기심이나 감동 또는 감탄을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에는 눈물이 메말랐고 그들의 찬양에는 기쁨과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감탄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고목처럼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을 뿐입니다.
주 중에 최병길 장로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강릉의 아드님 집으로 가셨는데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복통을 느끼고 병원에 가서 보니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수술을 하고 진찰을 했는데 위장과 직장에 문제가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입원하게 되셨습니다. 만약에 서울에서 홀로 계시다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고독사를 당했을 것이라고 최장로님은 나중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의 요청으로 주민센터에 의료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는데 마침 그 직원이 우리 교회와 저를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연말에 아파트 통장을 통해 지역사회에 구제금을 기부했는데 그 일에 대해서 주민센터 직원이 감사인사를 드리러 올 계획이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직원은 전에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에서 제가 설교할 때 참석한 적이 있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최장로님의 의료지원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고 지침에 따라 돕겠다는 약속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 권사님도 감동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제 아내도 기도 중에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얻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삶의 자리에서 때때로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끼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과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이 하실 일에 대하여 기대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에 염려와 걱정을 낳게 하는 바리새인의 누룩은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때때로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저에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마치 발가락 사이에 생긴 무좀처럼 껍질이 두꺼워지고 생기를 잃어버리고 악취를 발생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스며드는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여 쫓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자의 비극이며 삶의 퇴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한치도 물들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누룩 없는 유월절의 깨끗한 떡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누룩 없는 떡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누룩 없는 떡이야말로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3. 헤롯의 누룩
그럼 헤롯의 누룩은 무엇일까요? 헤롯의 누룩에 대해서는 헤롯 당원들의 주장 즉, 헤롯이 진정한 통치자이며 유일한 통치자로 믿고 따르는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아질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헤롯당은 헤롯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 나라를 인간의 나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어디 그런 게 있겠어?
헤롯이 만드는 세상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헤롯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거야!’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면, 헤롯의 누룩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나 믿음을 배제하고 우선 중요한 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리나 권력이나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그것이 헤롯의 누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불신앙’이라면 헤롯의 누룩은 ‘인본주의’라고 볼 수 있죠. 여기서 말하는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하는 교만한 마음이죠. 우리는 그것을 바벨탑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자! 하늘에 닿을 탑을 쌓아 흩어짐을 면하자!’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자기중심주의의 전형적인 형태가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물자와 나라들의 희생과 수고와 피와 땀을 짜고 수집해서 자기의 배를 불리고 자기의 도시만을 부강하게 하려고 하는 태도, 그것이 지나간 제국주의가 보여준 횡포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 제국주의는 지금도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에서 바벨탑처럼 상징화되는 힘으로 온 세상에 활개치고 있습니다. 헤롯의 누룩이 온 세상에서 발효되어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대하고 살면서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인간의 나라,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정신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하다 할지라도 사람은 흠이 있는 존재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처럼 우리 조상들은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항상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하겠습니다.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할 때, 그 의미가 바로 이런 뜻이겠지요. 사람은 최선을 다할 뿐,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바란다는 마음의 태도를 견지한다면 우리는 최선이 무엇인지를 좀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우리 편, 우리 그룹, 우리 당,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세상이 과연 지상낙원 또는 최적의 세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물러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헤롯의 누룩이 나쁜 까닭은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헤롯왕은 다른 독재자들처럼 상대방을 제거하고 왕이 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상대방을 제거하려는 태도로 임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실 헤롯의 누룩에 깊이 물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말은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협력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능력을 키워 나가려면 헤롯의 누룩을 제거하고 순전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공동체를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지금 우리나라에서 헤롯의 누룩은 정치적으로 과열된 양진영 또는 모든 개인들의 삶에 아주 강력하게 침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말씀하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생육 번성 충만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 사람들은 마땅히 바리새인들의 누룩인 냉담함, 그리고 헤롯의 누룩인 오만함, 이것을 경계해야만 되겠습니다.
4. 누룩 없는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누룩 없는 유월절의 떡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생명을 위한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시면서 자기 몸을 부서뜨려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산 떡은 자기중심성이라는 바벨론의 진수성찬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 진수성찬은 차라리 우상의 제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죄악에 물들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이렇게 편지에 썼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5:7~8
우리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공동체 안에 묵은 누룩을 소제해야 하겠습니다. 묵은 누룩은 악하고 악의에 찬 태도나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은 냉랭한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헤롯의 누룩입니다. 그런 누룩이 공동체에 퍼지면 오만한 자들이 일어나고 약자가 외면당합니다. 그리고 어느 새 공동체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세상에서 온 육신의 자랑과 탐욕의 정신만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런 곳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 대신에 원망과 불평이 자라납니다. 그런 공동체에 어떻게 생명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또 예수님이 이 세상의 생명을 위한 떡이면서 동시에 하늘로서 우리에게 오신 떡이시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모습, 그것이 구약의 진설병으로 상징화되고 신약의 성만찬의 떡으로 상징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막에 있던 진설병(陳設餠)은 레헴 파님( לֶ֥חֶם פָּנִ֖ים)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는 Showbread 또는 Bread of Presence라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얼굴 앞의 떡’(The Bread of the Faces)이라는 의미입니다. 진설병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동시에 성만찬의 떡을 통하여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의식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힘입어 산다!’는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인사하고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데 그것이 진설병과 성만찬으로 표현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하늘로서 내려오신 산 떡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며 하나님의 현현이시고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먹고 그 떡을 먹으면서 그 분을 힘입어 그분을 따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