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이며, 전국 유일의 도심 한옥군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처음 맞는 건물은 전주대사습청이다
전주대사습청은 전주대사습놀이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대사습놀이(판소리, 농악, 기악, 무용, 민요, 가야금, 시조, 궁도, 고법)와 관련한 공연을 전수하고 체험과 전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또, 조선 숙종 때부터 시작된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와 전통을 보전하고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 한옥마을에선 지붕자락이 살짝 하늘로 향해 있는 아름다운 지붕선을 만날 수 있다.
1910년 조성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 발달과정의 중요한 공간으로,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20여개의 문화시설이 산재되어 있으며, 한옥, 한식, 한지, 한소리, 한복, 한방 등 韓스타일이 집약된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이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은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유적으로 1410년(태종 10)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완산·계림·평양 등 3곳에 창건하여 태조의 영정을 봉안했고, 1442년(세종 24)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종전이라 했다.
사적 제339호이며, 정전은 보물 1578호이다.
전주이씨 이성계의 고향이기에 조선시대엔 전주부윤을 두어 도읍지 한양 다음으로 중요시 여기던 도시라고 생각하게 하는 유적지라 보면 된다
경기전 앞 하마비도 범상치 않게 세워져 있다
경기 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중건되었다. 경기 전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그리고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경기전은 소진되었으나 영정은 묘향산 보현사에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614년(광해군 6) 전라도관찰사 이경전(李慶全)이 다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중건한 것으로, <중수상량문(全重修上樑文)>이 남아 있다.
이경전은 한산이씨로 아계 이산해의 아들이며, 토정 이지함의 종손, 한음 이덕형의 처남이자 우리 약산 오광운 선조의 외고조 안응형(동사 안정복의 종6대조,선조 외조카)의 처남이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본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으로 남향한 다포식 맞배집 건물로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3번째 기둥렬에 고주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壇)을 놓았다. 이 단의 양옆에는 일산과 천개를 세웠다. 본전 앞의 헌(軒)은 본전보다 1단 낮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 포작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의 구성은 정자각 구성과 같다.
경기전 정전은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정전(正殿) 기능과 내신문(內神門) 내 신로(神路) 및 향로(香路)의 엄격한 격식 구비, 정전과 배례청(拜禮廳)의 평면 조합과 어방(御房 : 어진을 모신 방)구조 등의 특색, 남한에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진전, 구조 부재들의 이음과 맞춤이 정확하고 견고,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 기법 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8년 12월에 보물 제1578호로 지정되었다.
왕실 사당임을 감안할 때 신문(神門)이라고 호칭되며 홍살문 안쪽 내·외신문의 세 문을 통과할 땐 ‘동입서출’, 다시 말해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와야 한다. 가운데는 태조의 혼령이 드나드는 ‘신도’이기 때문이다.
본전 외 창고를 위시하여 여고와 실록각이라고 하는 문고가 있다.
경기 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 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 21년)의 일이다.
본전 동쪽에는 계유정난의 주인공인 세조의 둘째아들 예종대왕의 태실과 비가 있다
또 경내에는 태조의 22대 조이며 전주 이 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肇慶廟·유형문화재)가 있다.
특히 태조 어진(국보)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왕조 어진들이 모셔진 어진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기 이전 왕의 어진으로 유일한 태조의 어진이다
세종과 정조의 어진은 후대에 그려졌다(모습이 완전이 거짓이다)
이에 비해 그나마 조선말 통치를 했던 고종과 순종의 어진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기 때문에 실제 모습으로 후대에 어진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철종의 어진만은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통한 어진으로 태조와 함께 귀하게 남아있다
영조의 어진은 반신상으로 정통 어진이라 하기엔 미흡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진에 비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어진이다
경기전으로 어진을 봉행한 장면을 복원해 놓았는데 몇 백명이 그림 하나를 위해 이렇게 성대하게 움직였으니 왕의 실체와 어진인 그림은 조선시대 둘이 아닌 하나로 간주된 것 같다
그리고 경기전 서쪽으로 제사를 위해 또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많은 부속건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경기전이 오랫동안 관광객과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도심 속에 담긴 고풍스러운 모습과 우거진 수목 덕분이다. 경기 전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있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과 진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경기전 옆에 전동성당이 들어서 있다
오늘은 때마침 미사가 열리는 시간이라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이 전동성당은 천주교 포교 초대 역사와 함께 한다
초기 천주교는 이벽에 의해 그 인척으로 확산되는데 이들은 모두 당시 서인들에 의해 중앙관직에서 쫓겨난 남인들의 후손이 주가 된다 그래서 이벽과 그 처남의 집안 즉 다산 정약용 집안, 그리고 권철신, 권일신 집안 , 윤선도 집안, 권시 집안, 풍산홍씨 집안 등이 연루되는데 이곳에는 진산사건 윤지충, 권상문과 관련(권상문- 권시집안인데) 그 이종사촌인 유항검 집안과 이 집안으로 시집온 우리 매장 오석충의 딸인 오숙혜 올캐 이순이 즉 오리 이원익의 후손 이윤하의 딸 등이 이곳에서 순교하게 된다
당시 진산은 전라도 지역이라 이곳 전라감영으로 끌려와 순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주에서 살기도 했다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 전동성당이다
이 성당은 바로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던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곳에 있다.
풍남문은 보물 제308호로 일반적인 성문과 마찬가지로 성벽의 일부를 형성하는 석축기대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그 위에 중층문루가 있다.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다. 1734년(영조 10) 성의 시설이 낡아서 수축할 때의 공사 내역을 기록한 조현명의 〈명견루기 明見樓記〉에 의하면, 이 성문은 조선 초기에 도관찰사 최유경(崔有慶)이 축성했다고 한다.
처음 성(城)을 수축할 때 남문 위에는 명견루라는 3층 문루가 있었는데, 1767년 3월 화재로 소실되자 그해 9월부터 관찰사 홍낙인(洪樂仁)이 재건을 시작했다. 이때 현재의 모습처럼 2층 문루가 되었으며 풍남문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성벽과 나머지 성문은 자취를 감추고 이 문만 남게 되었다.
전동성당은 1891년(고종 28) 보두네(Francis Baudounet) 신부가 전주 남문 밖에 집을 매입하고 정착하였다. 그 뒤 1908년 프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성당 건축에 착수하여 1914년에 준공을 보았다.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 건물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한 점이 많으나 건축양식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회색과 적색의 이형(異形) 벽돌을 사용하여 섬세한 모양을 꾸며낸 점은 같으나 반면에 아치의 모양이나 종탑의 양식은 전혀 다르다.
두툼한 외부 벽체와 반원아치의 깊숙한 창이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고딕양식의 명동성당이 내부 열주 사이를 뾰족한 아치로 연결한 아케이드인 데 반하여, 이 성당은 8각 석주 사이가 반원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그 규모가 크고 외관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이 성당은 건평 189평에 대지 4,000평이며, 전주 중앙본당이 1956년에 준공되기 전까지는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이었다.
한옥마을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조선 시대의 고풍스러운 공간으로 정전, 돌담, 대나무숲 등이 사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먹거리, 놀 거리가 풍부한 전주한옥마을 안에 있어 전동성당과 함께 돌아보기 좋으며 주변에 한복대여소가 많아 한복을 입고 돌아보기를 추천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