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로 병원 출퇴근… “운동 필요한 환자와 함께 달리고 싶어요”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김희정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김희정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매일 달리기로 출퇴근하며 주말에는 산에서 트레일러닝을 즐긴다. 김 교수가 병원 앞 산책로를 달리고 있다. 사진은 방역수칙에 맞춰 촬영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희정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45) 인터뷰는 환자 수술을 끝낸 직후 시작됐다. 지칠 법도 한데 활기가 넘쳤다.
원래 체력이 좋은지 물었다. 예전에는 수술 후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고 한다. 김 교수는 젊은 유방암 환자들을 많이 수술하는 편이다. 흉터를 최소화하려다 보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특히 어깨와 손목이 많이 아팠다.
지금은 안 아프단다. 달리기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까무잡잡한 피부가 유독 눈에 띄었다. 피부를 하얗게 보이려고 미백 화장품을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김 교수도 원래는 피부가 하얀 편이었다고 했다. 매일 달리다보니 까맣게 변했다는 건데, 조금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오히려 “건강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라며 웃었다.
○ 5년 전 해외유학 때 달리기 입문
과거에도 여러 운동을 시도했다. 특히 요가를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체육관까지 왕복 시간을 포함해 2시간씩 걸리는 운동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다. 늘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병원 내 헬스시설을 잠깐씩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2017년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 암센터로 유학을 갔다. 처음으로 여유가 생겼다. 현지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되자 집과 학교 사이, 약 5km를 달리기 시작했다. 40∼50분에 주파했으니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천천히 달렸다.
얼마 후 이사했는데, 병원으로부터 11km 떨어진 곳이었다. 거리가 두 배로 늘어났지만 그래도 달렸다. 나중에는 자전거를 하나 사 달리기와 병행했다. 자전거를 타고 병원에 가면 돌아올 땐 달렸다. 다음 날에는 달려서 병원에 갔고, 돌아올 때 자전거를 탔다.
2018년 여름이었다. 현지에서 철인3종 경기가 열렸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수영을 오래 했고, 보스턴에 온 후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를 매일 했으니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가신청을 했다.
수영으로 750m, 자전거로 20km를 간 뒤 마지막으로 5km를 달렸다. 정확한 기록은 기억나지 않는다. 김 교수에게 그런 기록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완주했다는 것과 가족들이 함께 응원해줬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귀국 후 달리기로 출퇴근
김희정 교수는 등산학교에서 암벽등반도 배웠다. 김 교수가 올 6월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을 하고 있다. 정승권 등산학교 제공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자 다시 바빠졌다. 환자 치료에 연구까지 하느라 운동할 여유가 없었다. 달리기를 잊고 한 달을 살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원 앞 한강공원이 예쁘다. 그 길을 달리면 되지 않을까?’
시간을 계산해 봤다. 자동차로 출퇴근하면 30분이 걸렸다. 한강공원에서 달린다면 1시간 정도가 걸릴 것 같았다. 2019년 3월, 김 교수는 ‘출퇴근 달리기’에 도전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약 10km. 천둥 번개가 내리치거나 미세먼지가 극도로 심한 날을 빼고는 거르지 않고 달렸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뛰었다.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시간∼1시간 20분이 소요됐다. 병원에 도착하면 계단을 이용해 연구실이 있는 12층을 올랐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후 한 달은 힘들었다. 단지 한두 달을 안 달렸을 뿐인데, 그 사이에 몸이 녹슬었나 보다. 근육통이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는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오랜 시간 수술해도 몸이 아프지 않게 된 게 이때부터였다. 김 교수는 “어느 정도 달리면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새소리도 들린다.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달리고 나면 하루가 상쾌해진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좋아지는 기분이다.
○트레일 러닝과 암벽 등반에도 도전
지난해 시어머니를 따라 북한산에 간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가정주부지만 히말라야도 세 번 갈 정도로 ‘산 마니아’다. 김 교수는 전에 산에 간 적이 별로 없다. 한 수 배우는 셈으로 시어머니를 따라갔는데 인상이 깊었다고 한다. 울창한 숲속에 있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후 초등학생 막내딸을 데리고 산에 종종 갔다.
산행 중 사람들이 달리는 걸 목격했다. 퍼뜩 그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달리면 더 좋지 않을까?’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등산로를 따라 달려봤다. 이른바 ‘트레일러닝’을 시작한 것이다. 경기 지역의 청계산에서 광교산까지 27km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오전 9시에 시작한 달리기는 오후 4시에야 끝났다. 신세계를 체험한 것 같았다. 트레일러닝에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김 교수는 매주 주말 휴일 중 하루는 산에 오른다. 물론 트레일러닝을 하기 위해서다. 보통은 10∼15km의 거리를 달린다. 김 교수는 “주말에 1시간 여유가 생기면 집 근처를 달리고, 3시간 여유가 있으면 산에 가서 뛴다”고 말했다.
트레일러닝을 하다 보니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암벽 등반이었다. 뭐가 하고 싶으면 꼭 해야 하는 성미다. 김 교수는 트레일러닝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등산학교를 찾았다. 아직 초보 딱지를 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차례 암벽 등반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젊은 여성 유방암 환자들과 함께 달리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환자 중 일부는 호르몬 치료로 인해 젊은 데도 갱년기 증세가 나타난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식단 조절도 중요하지만 운동이 꼭 필요하다. 김 교수는 “말로만 운동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달리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동아일보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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