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原理原本) - 제1권
[07] 그렇다면 타락의 시작을 알아보자
아담 해와를 창조하기 전에는 무형세계(無形世界)의 천사들은 천사장(天使長)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직접(直接)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 누시엘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로 의논 상대가 되었고 온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의 생명의 근본이면서도 모든 행복요소(幸福要素)였다.
하나님이 무형세계를 지어놓고 천사들로 협조하게 하면서 실체만물세계(実体萬物世界)의 창조가 시작되었다.
유형실체세계(有形実体世界)를 지으신 것은 무형세계(無形世界)에 자기의 존재를 유형실체세계를 통하여 번식(繁殖)에 기초로 하시고자 하심이 목적이었는데 그 중심이상(中心理想)은 천사장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천사장 세계에는 이 중심점(中心點)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형실체세계를 창조하심에 하나님은 자기 이상(理想)의 전개와 함께 기뻐하며 동시에 천사장도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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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물의 주인공격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셨든 하나님은 아담, 해와에 대하여도 사랑을 하시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서 천사장에 대해서는 대하는 일이나, 사랑하는 일이나 멀리한 것이 아니었는데 천사장은 아담 해와가 존재하지 않을 때보다는 자기 자체에 있어서는 더욱 만족감을 느껴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담, 해와가 받으니 자기에게 대한 사랑이 감소(減少)하는 감(感)을 느껴서 다시금 이런 감도 느끼지 않은 동시에 사람에게까지 가는 사랑을 자기가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작(工作)한 것이 죄의 시작이었다.
즉 하나님은 해와를 지극히 사랑하시니 그 해와 자체를 자기 소유로 하고자 하여서 천사장 누시엘은 아직 성숙(成熟)하지 않은 해와를 대하여서 유혹(誘引)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2장 9절에 생명수(生命樹)와 선악과수(善惡果樹)가 있더라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니 생명수는 아담을 표시함이고 선악과 나무는 해와를 표시함이다.』
천사장이 해와를 보니 아름다운지라. 그리하여 해와의 사랑을 빼앗기 위하여 해와의 정조(偵操)를 빼앗으려 할 때 천사장(天使長) 누시엘은 하나님이 허락(許諾)하지 않는 행동을 시작하니 그 자체의 마음에는 공포심(恐怖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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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포심을 가지고 해와의 사랑을 빼앗으려 하기 위하여 해와의 정조를 빼앗고 보니 누시엘의 마음에 있는 공포심과 동시에 천사장의 지혜(智慧)가 해와와 사랑의 일체(一体)를 이루고 나니 해와는 천사장적(天使長的) 지혜의 소유자(所有者)가 되는 동시에 공포의 마음(刺戟)을 자극받았다.
그러고 보니 해와는 미성숙기(未成熟期)에 있었지만 자체(自体)의 지혜가 밝아짐을 통하여 보니 해와 자기의 남편(男便)은 아담이라 하는 것을 명백(明白)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담이 자기의 남편이므로 다시금 남편 그대로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와는 다시금 아담한테 사랑을 강요하게 된다.
그 강요하는 해와의 지각(智覺)을 피(避)하지 못하고 그의 요구(要求)에 응(應)하니 해와의 공포심이 벌써 생기게 되니 하나님의 법(法)을 탈선(脫線)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니 아담 해와는 나무 밑에 숨게 되는 행동이 시작됨에 무화과나무잎(無花果樹葉)으로 범행(犯行)한 부분을 가리게 되었다.
이것은 창조함을 받은 몸에 선하게 지었는데 만약 손으로나 입으로 따먹었으면 그 부분을 가렸을 것인데 이 부분을 가리는 것은 이 부분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 자체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타락이라는 출발이 시작하여 악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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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善惡果)라고 한 것은 만약 하늘의 뜻대로 성숙(成熟)하여 이상적 격위의 사랑(理想格愛)을 주고받을 존재가 된 후에 하나님의 신(神)이 아담 마음에 임재(臨在)하여서 사랑이 성사(成事)하였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만물의 주인공으로 완전히 준비되는 동시에, 이것이 이상(理想)이련만 그와 반대의 행동이야말로 탄식(嘆息)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해와와 사랑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 즉 아담의 사랑을 받았으면 지극(至極)한 선(善)의 근본을 시작하는 결과의 행동이 시작하여 영원한 선이 될 것이었는데 그 반대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악(惡)의 근본 결과의 행동이 해와의 사랑에 달리기 시작한 자체이니 선악과(善惡果)로 표시한 것이다.
선악과라는 말은 씨라는 뜻이다. 선(善)의 씨도 해와와의 사랑 일체(一体)로부터인데 악(惡)의 씨가 되고 보니 해와의 행동을 과연 누가 탄식하지 않겠는가?
그런고로 여인이 지금까지 구속(拘束)받고 있는 사실은 그 원인(原因)이다. 이 구속이 해방(解放)되어 평등시기(平等時期)가 재림시(再臨時)가 가까워져 온 줄로 알 수 있는 원인(原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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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독교에서 삼위일체(三位一体)라고 하는 명사는 무엇이냐 하면 즉 하나님 아담 해와가 완전하게 일체(一体)가 되어야 할 중심의의(中心意義)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과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로 되어 있다.
하늘 중심한 삼위일체(三位一体)가 악(惡) 중심하고 삼위일체가 되고 말았으니 악(惡) 세계인 사탄 세계에도 삼위일체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은 우리 사람의 아버지격으로 대입(代入)을 받아 순종하지 않고(不順), 믿지 않고(不信), 모시지 않는(不侍) 한 본체(本體)로 역사(役事)한 셈이다.
신약(新約)에 보면 예수도 불순·불신·불시자(不順不信不侍者)를 대하여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들은 너희들의 아비 마귀(魔鬼)에게서 낳았으니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의 욕심(慾心)을 행하려 하느니라 하시었다. 이 말씀은 타락의 근본이 주인격의 본체는 사탄이라고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뱀이란 즉 사탄을 표시한 바를 밝히 알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품의 자식에 처하고 말았음을 알고 다시금 본래의 아버지를 찾아가야 할 노정(路程)이 본래의 구원노정(救援路程)이다.
아담 해와가 범죄하고 보니 본래 아담 해와에게 주입(注入)하여 준 하나님의 근본 자체(根本自体)인 터 즉 생심(生心)을 중심하고 장성(長成)하여 하나님이 임재(臨在)할 수 있는 터, 자체 즉 아담의 영인체(灵人体)는 악(惡)을 범(犯)한 자체의 몸에 있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거두심이었다.
그래서 범죄하기 전에 한 영(灵)의 자체가 하나님 오른편에 계셨다가 제2 아담 격으로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이 즉 독생자(獨生子) 예수였다. 독생자라는 명사도 여기에서 명백하게 되는 것이다. 죄(罪)를 짓기 전 아담의 영(灵)이 예수의 영에 주입(注入)받아 오심이 근본목적(根本目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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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는 죄를 짓기 전 아담의 완전히 성숙(成熟)한 존재로 나타나서 복음(福音)을 시작하심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잃어버린 자녀(子女)들을 다시금 찾아서 타락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찾아 옮겨 놓고자 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은 원수의 품에서 구속(拘束)받고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사니 그 양심적(良心的) 고통(苦痛)은 이 사실을 알려주는 간접적(間接的) 자극(刺戟)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품으로 옮겨 놓아 하나님을 근본(根本) 아버지로 직계(直系) 혈통관계(血統關係)를 맺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이 남아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성사(成事)를 완성치 못하였기에 재림(再臨)의 요구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악의 혈을 받았으니 양자(養子)의 관계(關係)로써 본(本)되는 근본 피(血)를 받아서 소생(蘇生)되어 창조이상(創造理想)인 부모(父母)를 복귀(復帰)함이 우리 인간의 전체 목적이다.
탄식(嘆息)할 것은 양자(養子)와 같은 존재로 된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악(惡)으로 인(因)하여 시작되니 이런 명사가 생겼구나! 우리 근본 아버지는 영원(永遠)의 아버지며 사랑하여 찾아주신 아버지시다.
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모시며 또 어머니는 모시는 그 시기(時期)가 즉 지상(地上)에 재창조이상(再創造理想)이 시작되는 시기다. 이 시기를 알려서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찾는 그 기쁨의 온 천주(天宙)를 찾고자 하는 것이 근본목적(根本目的)이다. 이 목적은 재림시(再臨時)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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