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天時代와 天地人참父母
제1장 천주부모
1. 새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이냐
4) 사랑과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이상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위해서 투입하는 데서만이 이상이 현현하는 것이요, 참된 사랑이 형성되는 것이요, 참된 행복과 평화가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야, 대상아! 너는 나를 위하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될 수 없습니다. 전부가 그런 사상을 세웠다가는 어떻게 되겠어요? 전부가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되면 갈라지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이상적 요건을 성립시킬 수 있는 기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면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에 둔 것입니다.
주체가 대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는 데서만 참된 사랑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원칙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만 참된 이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복도 거기에서만, 평화도 거기에서만, 참된 자유도 거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해 존재하는 원칙이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과 참된 자유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77-318, 1975.3.23)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그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아니면,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그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가 되는 자기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웠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그러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떤 대상 앞에 주체의 입장에 있으면 자기를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립니다. 분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다운 인간은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 참다운 이상, 참다운 평화와 행복도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창조의 근본원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75-378, 1975.1.1)
하나님은 한 분이지요? 절대자이시고 한 분입니다. 그 한 분이 완성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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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는 큰 일 나는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도 상대적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둘이 하나되는 데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평화라는 말 자체, 평평히 화한다는 자체는 벌써 상대성을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평화나 행복이라는 말은 독자적인 입장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권과의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서 행복합니까?” 하나님께 그렇게 물어볼 때, “그렇고 말고!” 한다면 문제입니다. “천지만물을 왜 지었소? 이 만 우주를 왜 지었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하나님이 고독하기 위해서, 슬프기 위해서, 어렵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예술품 같은 것을 만들 때 어떻습니까? 물론 공장에 나가서 일당을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 가지고 생명을 투입할 정도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증진되는 겁니다.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136-104, 1985.12.20)
인간들끼리는 이상적인 세계 혹은 참되고 영원한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영원하고 불변한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하고 불변하며 유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는 이상도 그럴 것이고, 사랑도 그럴 것이며, 평화와 행복도 그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이니, 이상이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말들은 혼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혼자서 사랑해서는 뭘 하고, 이상이 있으면 뭘 하고, 평화와 행복을 가지면 뭘 하느냐?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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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 이외에는 없다고 우리는 단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니, 사랑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들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서 우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그런 가치적 존재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74-161, 1974.11.10)
이상의 세계는 창조의 목적이 실현돼야 하는 세계요, 신을 닮아야 하는 세계입니다. 항상 인간은 사랑이 넘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원하고 있으며,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제조(製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創意的)인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창안(創案)해 내고 계획하고 개선하고 생산하는 등의 활동 전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神)은 통일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도 통일적이어야 하며 사회생활도 통일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즉, 사랑하면서 창조하고 창조하면서 사랑하는 통일적인 인간과 통일적인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은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뤄 놓음으로써 창조적 생활면에서는 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랑의 생활에 있어서는 전혀 신을 닮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조화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 조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화가 없는 곳에 평화나 행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지가지의 비참상(悲慘狀)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도 신을 닮은 이상적인 생활과 이상적인 세계를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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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신이 원하고 인간의 본심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창조적이면서도 신을 중심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인간인 것이며, 또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환경을 개선하는 창조적 활동이 계속되면서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사이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대조화의 통일세계입니다.
그 같은 새로운 타입의 인간들이 새로운 통일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혀 오던 일체의 슬픔이나 고통 혹은 싸움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65-259, 1972.11.13)
영원한 내용의 본질 같은 성품, 속성이 무엇이겠느냐 할 때는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들딸 4대가 살 때 할아버지에게 “그렇소?” 하고 물어도 “그래!”, 아버지에게 물어도 “그래!”, 부부끼리 서로에게 물어도 “그래!”, 아들딸도 “그래!” 합니다. 전부가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동서남북의 가정, 나라의 가정 전체에게 물어도 “옳소!” 하고, 그 답을 하나님도 좋아해야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중심 삼고 좋아하겠느냐 할 때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은 무엇을 중심 삼은 중심존재냐?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 삼은 중심존재라고 포괄적인 결론을 내리더라도 반대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195-59, 1989.11.5)
하나님은 어떤 존재냐? “나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니까 우주에서 나와 같은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고 그러면, 그 하나님은 낙제입니다. 자신은 높지만, 자신을 잊고 저 지옥 밑창에 있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려고 허덕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어떤 게 하나님이에요? 높은 것만을 사랑해야 하나님의 자격을 갖겠어요, 지옥 밑창까지도 자기를 잊고 사랑하겠다고 하는 속성을 가져야 하나님의 자격을 갖겠어요? (95-184, 197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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