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금요일 아침 대전역에 도착하여 면접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추동으로 가는 60번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가 마을에 들어서자 빽빽한 나무가 들어선 숲길을 지나 창문으로 넓은 호수가 보였습니다.
'와, 영상이나 사진으로 본 것이랑은 차원이 다르구나.'
정말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호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넋놓고 창밖만 바라보다가 도서관 앞 정류장에서 같이 면접을 보러 오신 지안님, 준혁님과 함께 내렸습니다.
도서관 가까이 다가가자 거센 빗속에서도 안에 있는 아이들의 대화소리와 웃음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이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가 저희를 보며 인사합니다. 마주 인사하니 다시 바쁘게 움직입니다. 문 너머에선 맛있는 냄새가 났습니다.
'아, 저녁을 만들고 있구나.'
다른 분들과 현관 앞에 앉아서 기다리던 차,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맛있는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볶음밥이었습니다.
화장실로 향하려는 저를 최선웅 선생님께서 멈춰 세우시고는, 볶음밥 간을 보고 가라 하십니다. 제대로 제 소개를 하기도 전에 저는 그 볶음밥 한 숟가락을 받아먹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흔히 집에서 만들어먹는 볶음밥, 딱 그 맛이었습니다. 긴장이 탁- 풀렸습니다. 면접을 보러온 것이 아니라, 놀러온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난 놀러온 게 아니야. 면접을 보러 왔지.'
기다리는 동안 마음 속으로 계속 되새겼습니다. 볶음밥과 떡볶이를 먹고, 후식으로 마을 이웃 분이 주셨다는 수박까지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 팀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상을 정리하고 잠깐 비는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글쎄요. 대화를 나눴다기보다는, 어색함에 가만히 있는 제게 그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열 마디 질문에 겨우 한 마디 대답하면 다시 열 한마디의 말들이 돌아옵니다. 뜬금없는 가위바위보도 시작됩니다. 그대로 묵찌빠도 몇 판 했습니다. 어쩜 묵찌빠를 그렇게 잘하나요? 한 판도 못 이겼습니다.
그 상황에서 낯선 사람이라는 어색함과 경계심 같은 감정은 무색했습니다. 신기합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친근하게 대해줄 수 있을까요? 저를 이 공간에 받아들여준 것만 같아 기뻤습니다. 아직 면접은 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면접 시작 전, 선생님께서 영상 하나를 보여주십니다. 아이들 사이사이에 실습생들이 앉습니다. 그렇게 둘러앉아 영상을 봅니다. 도서관에서, 마을 곳곳에서, 마을 밖에서 생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즐겁게 뛰어놀기도 하고, 조용히 책을 읽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삶'을 담은 한 편의 다큐였습니다.
영상을 다 보고 면접을 시작하기 전, 자기소개를 합니다. 이름과 학년(나이), 좋아하는 것, 이번 방학에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재미있게, 최선웅 선생님을 시작으로 한 명씩 차례로 지목하는 방식으로 한답니다. 지목 당해 소개를 마친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지목합니다. 선생님이 소개를 마치고 누구를 지목할까 이리저리 둘러보시니,
모두 눈을 피합니다. 물론 저도 조용히 시선을 내렸습니다.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공통 질문이 들어옵니다.
"좋아하는 색과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캐릭터와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떻게 이 도서관에 오게 되었나요?"
"이 마을/도서관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사를 잘 하나요?"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등등..
면접관들이 미리 준비해온 질문들과 즉석 질문이 이어집니다. 면접자 1명과 다수의 면접관이 마주보고 앉아 진행했던 여태까지의 면접과는 달리, 이번 면접은 다같이 둘러앉아 대화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긴장이 덜 되는 것 같다고 느끼다가도, 오히려 더 긴장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었을까요?
면접이 끝나고, 마을 이웃 분이 주셨다는 과자를 앞에 두고 놀았습니다.
"선생님은 별명 있어요?"
"없어요. 지어주세요."
순식간에 감귤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생겨납니다.
제 이름표에 적힌 이름이 김귤민이기 때문입니다.
규리, 규랑이와 제 이름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쓰리규네, 쓰리규."
한 마디에 순식간에 조합도 생겨납니다.
왼쪽에서 열 마디, 오른쪽에서 또 열 마디.
차근차근 대답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폭풍 같은 대화가 지나갑니다.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습니다.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인사하고, 추동팀 숙소로 향합니다. 아늑한 공간에 짐을 놓고 최선웅 선생님, 지안님, 준혁님과 추동팀 하는 일, 궁금한 점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비를 뚫고 아침 산책을 합니다.
실무자 면접은 체력 테스트였나요?
비바람에 우산도 뒤집어질락 말락 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복잡하던 생각이 정리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도 호수는
정말 멋졌고, 빗소리는 듣기 좋았습니다.
호수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바람에 물결이 일렁입니다. 선생님께서 수면 위로 지나가는 바람의 모양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신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먼저 가셔야 하는 준혁님을 배웅하고, 얼마쯤 뒤 지안님을 배웅하고, 마지막으로 저도 시내로 가는 60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인사 드리니 손 흔들며 배웅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한덕연 선생님과 영어 공부하다가 규민씨 이야기 들었어요.
어리지만 넘치는 열정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자꾸자꾸 감사함으로
그렇게 추동에서 지낼 규민씨 모습이 그려져요. (아직 안만나뵀지만..)
응원합니다!
그림 같고 소풍 같고 모험 같은 면접이었군요.
올 여름 호숫가마을에서 꿈꾸며 노래하며 살기 바랍니다.
실무자 면접은 체력테스트…. 벌써 비밀을 알아채신 듯…? ㅎㅎㅎㅎㅎ
삼귤, 감귤 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