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나도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나문사) 원문보기 글쓴이: 志于學士최동군
魯 南宮敬叔言 魯君曰 請 與孔子 適周 |
노나라의 남궁경숙이 노나라 임금에게 말했다. “공자와 더불어 주(周)나라에 가기를 청합니다.” |
魯(노나라 노) 南宮敬叔(남궁경숙) 言(말씀 언) 魯(노나라 노) 君(임금 군) 曰(가로 왈) 請(청할 청) 與(더불 여) 孔子(공자) 適(맞을 적//가다) 周(두루 주) |
|
魯君與之 一乗車 両馬 一豎子倶 適周問礼 |
노나라 임금은 그에게 수레 하나, 말 두 필, 시자 한 명을 갖추어 주고, 주나라에 가서 예를 묻게 했다. |
魯(노나라 노) 君(임금 군) 與(더불 여) 之(갈 지//어조사) 一(한 일) 乗(탈 승) 車(수레 거) 両(두 양) 馬(말 마) 一(한 일) 豎(세울 수//내시) 子(아들 자) 倶(갖출 구) 適(맞을 적//가다) 周(두루 주) 問(물을 문) 礼(예도 례) |
|
蓋見老子云 辞去 而老子送之曰 |
대개 이때 노자(老子)를 보았다(만났다)고 전한다. (공자가 작별)인사말을 하고 갈 때, 노자가 송별하며 말하기를 |
蓋(덮을 개//대략) 見(볼 견) 老子(노자) 云(이를 운) 辞(말씀 사) 去(갈 거) 而(말이을 이) 老子(노자) 送(보낼 송) 之(갈 지//어조사) 曰(가로 왈) |
|
- 吾聞 富貴者 送人以財 仁人者 送人以言 - 吾不能富貴 窃仁人之号 送子以言 曰 |
- 내가 듣기에, 부귀한 자는 사람을 전송할 때 재물로써 하고, 어진 자는 사람을 전송할 때 말로써 한다고 합니다. - 나는 능히 부귀하지 못하지만 인자(仁者)라는 이름을 훔치고 있으니 (인자라고 자처하기를 좋아하니) 다음 말로써 그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며 가로되 |
吾(나 오) 聞(들을 문) 富(부유할 부) 貴(귀할 귀) 者(사람 자) 送(보낼 송) 人(사람 인) 以(써 이) 財(재물 재) 仁(어질 인) 人(사람 인) 者(사람 자) 送(보낼 송) 人(사람 인) 以(써 이) 言(말씀 언) 吾(나 오) 不(아니 부(불)) 能(능할 능) 富(부유할 부) 貴(귀할 귀) 窃(훔칠 절) 仁(어질 인) 人(사람 인) 之(갈 지//어조사) 号(이름 호) 送(보낼 송) 자(아들 자) 以(써 이) 言(말씀 언) 曰(가로 왈) |
|
- 聡明深察而 近於死者 好議人者也 - 博辯広大 危其身者 発人之悪者也
- 為人子者 毋以有己 -為人臣者 毋以有己 |
- 총명하고 깊게 관찰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에 가까운데(죽음의 위험이 따르는데), 이는 남을 잘 비판하기 때문이요, - 광대하고 많은 지식으로 언변이 뛰어난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로운데, 이는 남의 나쁜점을 잘 발견해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의 자녀된 자는 자신의 존재(有)를 내세우지 말며(아버지뻘 되는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 사람의 신하된 자도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임금 앞에서 자기를 치켜세우지 않아야 한다.) |
聡(귀밝을 총) 明(밝을 명) 深(깊을 심) 察(살필 찰) 而(말이을 이) 近(가까울 근) 於(어조사 어) 死(죽을 사) 者(사람 자) 好(좋을 호) 議(의논할 의//책잡다) 人(사람 인//남) 者(사람 자) 也(어조사 야) 博(넓을 박) 辯(말씀 변) 広(넓을 광) 大(큰 대) 危(위태할 위) 其(그 기) 身(몸 신) 者(사람 자) 発(필 발//밝히다) 人(사람 인//남) 之(갈 지//어조사) 悪(악할 악) 者(사람 자) 也(어조사 야) 為(할 위) 人(사람 인) 子(아들 자) 者(사람 자) 毋(말 무) 以(써 이) 有(있을 유) 己(몸 기) 為(할 위) 人(사람 인) 臣(신하 신) 者(사람 자) 毋(말 무) 以(써 이) 有(있을 유) 己(몸 기) |
|
孔子 自周 反于魯 弟子 稍益進焉 |
공자가 주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니 제자들이 더욱 늘어났다. |
孔子(공자) 自(스스로 자//로부터) 周(두루 주) 反(돌이킬 반) 于(어조사 우) 魯(노나라 노) 弟(아우 제) 子(아들 자) 稍(점점 초) 益(더할 익) 進(나아갈 진) 焉(어조사 언) |
>> 공자와 노자와의 만남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 물었다는 이야기는 <사기열전>, <사기세가>, <공자가어> 등에 나온다. 그만큼 공자의 생애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공자견노자도(孔子見老子圖) 문례노담도(問禮老聃圖) 등의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지고 있다.
노자는 도교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고 그의 사상은 장자와 더불어 <노장사상>이란 이름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노자는 성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도 않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는 우주만물의 근본적인 진리를 도(道)라고 이름지었는데, 사람이 도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법률, 도덕, 풍속, 문화 등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무위 자연' 사상이다.
도교는 유교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철학사상이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한고조(漢高祖) 유방이 오랜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파괴된 생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을 주요 정치이념의 하나로 삼았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의 도교사상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상고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신선사상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 중국에서 들어온 도가사상과 결합해서 풍류를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하는 등 도교사상이 지속적으로 성행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산림(山林)속에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현재 창덕궁, 덕수궁 등 조선궁궐 속에는 기괴하게 생긴 괴석들이 조경법의 하나로써 여기저기에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궁궐이 곧 신선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이다.
>> 노자에 대한 논란
하지만 노자는 실존인물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마천은 사기 권63 <노자한비열전> 에서 노자를 한명이 아니라 3명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첫번째로 초나라 출신의 이이(李耳, 자는 담(聃=老聃)로 생몰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공자가 찾아가서 예(禮)를 배운 사람이라는 것으로 봐서는 공자보다 나이가 대략 열살에서 스무살 정도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역시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노래자(老萊子)로서 70세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장난을 하면서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해 주었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세번째로는 주(周)의 태사 담이라는 사람으로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 경과한 때에 진(秦)의 헌공과 회담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마천이 보기에 노자는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은둔생활을 하던 군자를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봤다. 따라서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만났다는 것도 유가의 입장에서 도가의 사상을 일부 수용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학술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도가의 사상이 유가의 사상보다 훨씬 후대에 완성되어진 내용이기 때문이다.
>> 노장사상과 묵가사상이 유가사상보다 후발주자인 이유
춘추전국시대에 유가의 사상 중에서도 춘추시대 공자의 사상은 비록 현실성은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혼란한 세상을 극복하기 위한 이상주의 적인 정치, 덕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유가의 사상은 맹자에 이르러 큰 틀에서는 덕치를 강조하되 세부적으로는 역성혁명까지도 지지하는 등 좀더 강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공자에서 맹자로 넘어가면서 이렇듯 내용이 강성으로 바뀌는 것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세상의 혼란도가 더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한편 도가의 사상은 무위자연, 즉 쉽게 말해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구제해 보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고 새로운 차원의 해법을 찾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겸애설의 묵자로 대표되는 묵가사상도 마찬가지다.
또한 노장사상을 황로사상이라고도 한다. 황로란 황제(黃帝)와 노자를 묶어서 부르는 이름인데, 갑자기 전설상의 <삼황오제> 중의 한 사람인 황제는 왜 끌어들였을까? 이는 노장사상의 원조를 황제로까지 연결시켜서 노장사상을 유가사상보다 더 오랜전통의 사상으로 보이게끔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묵가도 마찬가지다. 묵가 역시 자신들의 사상을 유가사상보다 오래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의 <우> 임금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렇듯 자신들의 시조를 전설상의 인물로 채운다는 것은 그만큼 사상적으로 후발주자 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노자가 지었다는 책인 <노자 도덕경>은 <노자>라고도 하고 그냥 <도덕경>이라고도 하는데
약 5,000자,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도경 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 德經>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