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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을 무대로, 감독이 단원들에게 당부한 것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에 #대전작가회의 #르포작가단 취재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얼마 전, #마당극패_우금치, <#적벽대전> 6-7월 장기 공연이 끝났습니다. <적벽대전>은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비극을 담아낸 지역스토리 마당극입니다. 그 성과과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우금치'에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우금치별별축제 준비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류기형 예술감독님이 기꺼이 인터뷰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르포 인터뷰 기사를 쓰다보니 분량을 줄이고 줄였는데도 너무 길어서 편집에 애를 먹었습니다.
편집된 기사로 아쉬워 원래 쓴 기사와 함께 올려놓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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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성과 공동체: 대전이라는 도시를 다시 부르기
-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인터뷰] 마당극 〈적벽대전〉의 연출가, 마당극패 우금치 류기형 예술감독을 만나다
"대전작가회의 르포작가단'은 지역의 현실과 중요한 현안을 알기 쉽게 취재하고, 또 새로운 지역 스토리 발굴 등을 통해 지역 현실과 이슈를 전달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조훈성(대전작가회의 르포작가)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비극을 담아낸 '마당극패 우금치'(*이하 '우금치')의 창작 마당극 〈적벽대전〉이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6일까지는 '별별마당 우금치 관용극장'에서, 또 바로 이어진 24, 25일은 '서구문화원 아트홀'까지 앙코르 공연을 올렸다. 지역 극단에서 무려 한 달간 연이어 한 작품을 연이어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에 대한 아픈 기억을 마당극에 담아 복원하면서 예술로 평화와 인권에 대한 메시지 전한다는 것은 극단 구성원 특별한 의지가 있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에 시민들의 성원도 뜨거웠다. 그 기간 거의 2천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으니, 골령골의 기억을 통해 평화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했던 바람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만하다.
'우금치'는 1990년 창단해, 지역 역사와 공동체를 소재로 창작 활동을 이어온 대전 대표 공연예술단체다. 극단의 뿌리가 되는 '놀이패 얼카뎅이'의 1985년 창립부터 따지면 올해가 만 40년의 역사를 기념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금치'의 <적벽대전>은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옛 충남도청사 앞 야외 공간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지역에서 레퍼토리 공연으로 거듭 이어지면서 그 성과와 앞으로의 걸음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아 취재를 하려 했다. 하지만 '우금치'가 바로 이어 <우금치 별별축제>를 개최하면서 취재가 어려울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선뜻 <적벽대전>의 작가이자 연출자인 '류기형' 예술감독이 시간을 내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29일 수요일 저녁 다섯 시부터 별별마당 우금치의 예술감독 집무실에서 <적벽대전>의 제작 과정과 의미, 앞으로의 극단의 예술 활동에 이르기까지 거의 두 시간 동안 깊이 있게 이어졌다. 우금치 관용극장 위로 한 층의 계단을 더 올라 류기형 예술감독과 테이블에 마주 앉았는데, 축제 준비로 분주한 기운이 묻어나면서도 사전 취재 질문지를 꼼꼼히 살펴본 태가 묻어난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도 그렇게 (딱딱하게) 얘기를 해야 하는 거야?"라며 농을 건네고는, 곧 40년 넘는 그 지난한 세월을 담담히 풀어내면서 서서히 목소리에도 장단이 실린다.
얼카뎅이에서 우금치까지, 광대로 사십 년 산 몸마당극패 우금치의 역사는 놀이패 얼카뎅이(*이하 '얼카뎅이')의 시간까지 합치면 올해로 만 40년을 넘겼다. 류기형은 그 시작을 "얼카뎅이 시절, 85년부터 잡으면 올해가 41년, 만 40년"이라고 말하면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문화를 민중에게'라는 표어랄까, 우리 연극을 거점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문화운동을 구현했다"라면서, 당시 '얼카뎅이'는 지역 농촌을 돌며 풍물과 민요를 가르치고, 촌극 작업으로 농민운동 단체들과 연계해 '두레'라 부른 현장 활동을 왕성하게 벌였다고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장터와 농민 투쟁 현장에서 길놀이와 선전극 등으로 농민들과 연대하고 함께했다고 회상하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함께 상황풍자극 <벗이여 해방이 온다>라는 작품을 기억해 냈다. 작품은 6·29 민주화 선언, 전두환 군부독재와 노동현장의 죽음들까지를 한데 다룬 정치풍자극이었는데, 이 작품이 많이 호평도 받았고, 전국 대학 축제에 많이 초청되면서 전문극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전국민족극한마당에 <흰고개 검은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라는 작품을 출품했는데, 우리는 나름 서울 실내 극장에 맞추어 고심해 만든 작품이 "무대극도 아니고 마당극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듣고 큰 상처를 안고 내려왔다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절치부심 끝에 <바람>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때 현장에서 익힌 원형 마당과 짧고 빠른 대사, 노래·춤·풍물이 섞인 표현 언어가 지금의 우금치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1990년 얼카뎅이에서 나와 '우금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경위도 인상적이다. 자신들의 시작이 농민운동과 떼놓을 수 없었고, 또 농민운동의 뿌리이자 우리 역사가 깊게 얽혀있는 동학농민전쟁을 기리며, 우금치 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격하던 농민군의 꿈을 잇겠다는 뜻이 단체 이름에 스며있다고도 했다. "민중의 전형이 농민에서 출발하지 않았나."라는 그의 설명처럼, 우금치의 초창기 작품은 <호미풀이>(1990) <아줌마 만세>(1991) <우리 동네 갑오년>(1994) 같은 농민극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우금치'는 이제 농민극에서 도시 빈민, 환경, 황금만능주의, 고령화 사회의 노인 문제, 광주 항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점차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보편성"을 고민하는 예술단체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스스로 정리하듯, 넓어진 소재들의 밑바닥에는 결국엔 "인권과 생명, 인간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 '우금치'의 역사를 또 잘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골령골 아래 살았던 사람, 뒤늦게 알게 된 7천 명의 죽음<적벽대전>은 그 인권과 생명의 서사에서 본다면 대전이라는 도시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골짜기 밑으로 내려간다. 골령골 산내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 작품은, '우금치'와 '류기형'에게 단순한 지역 역사극이 아니라 그간의 역사적 진실의 무지와 죄책감에서 출발한 위령굿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우금치가 '대동'에서 출발하지만 96년부터 2006년까지 '하소동' 산속, 골령골 바로 밑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산 거죠."라는 류기형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시기 한 장소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 민간인 학살지로, 7천여 명이 트럭에 실려 와 집단 학살된 곳이다. 골령골 이야기를 접한 것은 심규상 기자 등 언론과 학자들의 취재와 발굴 조사 연구 이후인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고 했다. "이렇게 큰 역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아래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구나, 죄의식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자고 했죠."라고 말하는 류기형 예술감독은 이 작품을 쓸 때, 술을 들고 골령골을 밤에도 가고 네 번이나 찾아갔다고 했다. 자신은 무슨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 밑에 원혼들이 있고, 그곳 영령을 기리고 위로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다.
"<적벽대전> 공연은 매번 위령굿이고 씻김굿입니다.
광대의 역할은 결국 무당이라고 생각해요.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억울하고 비참했던 것들을 씻어내는 일,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공연을 앞두고 그는 단원들에게 "정성을 다하라, 공연 10분 전에는 떠들지 말고, 침묵 속에서 작품만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위령굿을 준비하는 무당처럼 신성한 태도로 무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태도는 집단학살을 연극으로 재현하는 윤리적 기준을 묻자,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 "정성"과도 이어진다.재현할 수 없는 학살, 감각으로 불러내는 무대<적벽대전>은 지금까지 숱하게 공연되면서 조금씩 서사가 바뀌고 보완되고 있는데, '동호와 미순네', '영철네' 두 집안의 개인사와, 천도되지 못한 망자들의 여정으로 정리되고 있다. 초연 당시 특설 야외무대에서는 제주4·3, 여순사건, 보도연맹 등 역사적 사건을 장면화하고, 군인들의 집단학살 사격 장면 등 거대한 이미지 중심의 서사가 주되었다. "야외에서는 굵직굵직하게 대형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죠. 대전을 상징하는 이미지, 매핑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대전역을 보여주고, 쑥부쟁이 저승사자들이 여럿 나오기도 하고, 학살 장면 역시 대형으로 만들고…." 하지만 소극장으로 옮기면서 작품을 섬세하게 다듬으면서 두 집안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제주 4·3과 여순 사건 등은 상당 부분 덜어냈다. 대전교도소가 정치·사상범과 제주·여순 관련 인물들을 함께 수용했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반영하되, 과도한 설명으로 서사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적벽대전>은 "귀신들의 출신과 사연, 다양한 사투리"를 통해 조금 더 다층적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망자들이 반복해 가지 못하는 '서천 꽃밭'은 무속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억울한 원혼이 구천을 떠도는 상태를 상징하는데, "그 억울함과 원망이 풀리기 전엔 저승으로 갈 수 없다"라는 설정은, 학살 재현을 위령굿이자 천도굿으로 삼겠다는 그의 관점을 서사 구조 안에 심어놓은 장치라 할 수 있다.
"그 억울함과 원망이 풀리기 전엔 저승으로 갈 수 없다“
무대 후면 돌계단과 흙색 계단, 비탈에 매달린 인형과 탈, 영상 속 나무와 유해 발굴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에 바닥에 쏟아지는 발굴 사진들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는 골령골을 형상화하는 기호들이다. "처음 야외에서 했을 때도 그렇고 진흙, 흙은 민초가 섞여 있는 흔적이죠. 배우 몇 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 거기 묻혀 있는 거예요. 탈은 그 얼굴들입니다."라고 연출 의도를 듣는데, 재현할 수 없는 학살을 무대화한다는 연출자로서의 고민이 잘 묻어나 인상적이었다. 극의 종반부 무대 바닥에 투사되는 실제 발굴 사진은 연극의 허구성을 스스로 끊어내는 다소 폭력적인 이미지이기도 한데, 그는 이 장면을 "이게 거짓이 아니다, 사실이고 진실이다"라고 관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연극으로만 보면 그냥 연극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마지막 사진을 보면 이게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는 걸 느끼게 되죠. 아마도 이를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았을 거예요."또, <적벽대전>에 삽입되는 동요와 놀이, 포크송과 군악은 이 학살 서사와 병치되며 특유의 감각적 대비를 만드는데, '고향의 봄', '오빠 생각' 같은 1930, 40년대 동요는 방정환과 색동회 운동, 일제에 맞선 계몽·아동 운동의 맥락을 품은 노래들이다. 그는 "민족적 정서를 아이들의 노래로 심어 넣은 저항"의 동요라면서 이 노래들을 연극 안에 넣는다. 또 학살 장면에서는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태인을 지켜본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라고 알려진 '도나 도나(Dona Dona)'를 조앤 바에즈 버전으로 사용한다. 유대인 제노사이드와 골령골 학살을 음악으로 교차시키는 이 선택은, 특정 장소의 비극을 세계적인 제노사이드 속에 위치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충일 추모 음악으로 쓰이는 '탭스(Taps)'는 한국전쟁 이후 현충일 행사 때마다 들어온 군악이다. 그는 "현충일에 추모해야 할 이들이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라는 역설을 이 음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집단학살 재현의 윤리적 기준을 묻는 말에 연극적 모든 선택에 있어서 다른 말을 장황히 늘어놓기보다는 "정성"이라는 한 단어에 그 대답을 대신한다. "7천 명이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진심으로 정성을 들인다면 한편에서 왜곡이나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원혼들이 저한테 크게 욕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요.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사과하는 게 당연하고요, 또 진심을 가지고 했다면 그 마음은 통할 거라고 믿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공연을 한 번 하면 우리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일상이 잘 안돼요.
맨날 보는 작품인데도 또 울고, 또 마음 아프고… 공연 기간 내내 무거운 데 들어갔다 나왔다 하길 반복하니까요."
집단학살을 다루는 연극에서 당사자성과 트라우마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인터뷰 도중 나는 골령골 학살 피해 유족으로서, 총소리와 쓰러지는 몸짓이 불러오는 유전된 공포에 관해 이야기했다. 4·3, 한국전쟁, 5·18, 세월호 등과 같은 국가 폭력과 제노사이드, 사회적 참사 재난을 다룬 무대에서 고통스러운 슬픔을 통감하는 데 있어서 그 예술적 재현이 애도와 정치적 해석에서 관객·창작자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말했는데, 창작자로서 진심과 정성의 작업을 하지만 이에 대한 위축된 심리와 일상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공감하며, "사실, 공연을 한 번 하면 우리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일상이 잘 안돼요. 맨날 보는 작품인데도 또 울고, 또 마음 아프고… 공연 기간 내내 무거운 데 들어갔다 나왔다 하길 반복하니까요."라고 솔직한 고충을 꺼낸다. 그는 "창작자의 심리·정신 건강을 돌볼 필요"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전문극단의 책임을 다시 앞에 놓는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인권·생명 이야기라는 큰 서사에 대한 유족과 시민들의 공감과 응원, 격려가 힘이 된다고도 했다.
대전이라는 도시, '한밭'과 '대전(對戰)' 사이'붉을적(赤)', '푸를벽(碧)', '대전(大田)'을 겹쳐 놓은 <적벽대전>이라는 제목은 쉽게 봐서는 안 될 듯하다. 그는 음과 양, 갈등과 화해, 상생의 가능성을 함께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근대도시로 1932년도 도청사 이전과 철로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도시다. 교통 요충지로 대전은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섞이고 정착하고 이주하면서 첨예한 역사적 갈등의 현대사와 겹칠 수밖에 없다. "이 도시 자체가 갈등으로 얼룩진 도시 같아요. 교통의 요지라는 건 좋은 사람도 나쁜 놈도 많이 오가는 공간이라는 뜻이니까요."라는 그의 말처럼, 적벽의 '붉은'과 '푸른' 색깔을 서로 대립하면서도 섞여야 하는 태극처럼 읽지 않을 수 없다. 대전이라는 도시 정체성은 지역 정치 지형만 봐도 그렇다. 편이 없는 것 같다가도 다 같은 편이 될 수도 있는, 대전은 '한밭' 공동체와 '대전(對戰)'의 전장 사이를 오가는 도시다.<적벽대전>은 극장에서라도 한 번,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대한 고통스러운 어제의 기억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무대가 없다고 골령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 <적벽대전>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대전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이후의 숙제들: 동학, 홍범도, 시민 마당극단인터뷰의 마지막에서 류기형은 "우금치는 앞으로도 인권과 생명, 역사와 지역을 가로지르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의 숙제도 꺼냈다. 하나는 '동학'인데, '우금치'라는 이름 자체가 동학농민전쟁 우금치 고개에서 왔기에, '동학'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이 끌려가며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작품을 구상하고도 있고, 색동회 운동과 동학을 엮어보려는 작품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국립대전현충원과 홍범도인데, 그는 대전 현충원에 묻힌 홍범도 장군과 훈장·서훈 문제를 둘러싼 최근 논쟁들이 "지역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국가적 논란"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대전 출신 사성구 작가와 함께 '홍범도'를 다룬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우금치'가 단체 역사가 오래된 것만큼 "나이를 먹더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가보자"라는 태도로, 시민 마당극단을 만들고 시민예술교육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마당극 워크숍을 주도해 시민들과 함께 마당극 교육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기록물로 남겨 시민 마당극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하나의 모델로 제시할 계획이다. 이 시민극단이 만들어지면, '우금치'는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 예술의 매개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류기형 예술감독이 그간 마당극을 쓰고 연출한 창작 작업을 책으로도 묶고 있다는 것까지 듣고 나니 <우금치 별별축제>의 첫 번째 초청작 극단 초인의 <스프레이>가 시작할 시간이다. 마지막에 앞으로 <적벽대전>은 매년 6월 25일부터 약 3주간 정례 공연으로 자리 잡을 예정이라는 계획도 듣는다. '시티투어' 같은 도시 관광 프로그램이라든지, '성심당' 같은 지역 명소와도 연계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잇다보니 채 고개를 반도 넘지 못한 것 같아 괜히 마주한 이의 주름을 살핀다. 그랬더니, 이야기 끝이 아니라 언제든 이야기를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이의 얼굴에 미소가 피는 걸 본다. '우금치'의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그랬고, 걸어갈 그 길 위에서 이들의 마당극은 여전히 '아픈 곳을 중심으로 삼는' 예술로 존재하려 한다니 또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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