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회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1~3
가정은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는 인생의 요람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어버릴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모든 믿는 자들의 영적 가정으로서, 교회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낳음을 받고, 양육을 받으며, 그래서 교회는 우리가 저 천국에 이를 때까지 떠날 수 없는 신앙생활의 터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있어서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은 교회의 의미와, 그리고 교회의 목적과 사명 등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 교회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십자가가 달려 있는 종교적인 건물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도 교회를 구약에 나오는 성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란 결코 건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구약의 의미
구약에는 교회란 말을 가리키는 두 가지 용어가 있는데, 곧 ‘카할’(???-Kahal)과 ‘에다’(???-Edhah)입니다. 첫째로, ‘카할’이란 말의 뜻은 ‘부르다’에서 온 말로 ‘부름 받아 모인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신 죄악에 깊이 빠진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삼으시려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반역한 아담과 하와에게 “아담아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우상 섬기던 곳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응답하여 모인 무리가, 곧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둘째로,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임을 또한 ‘에다’라고 했는데, 이는 “ 하나님께로부터 지정된 장소나 처소에 모이는 모임”을 뜻합니다. 교회의 ‘영적인 의미’만을 중히 여기고, 교회의 외적인 가치나 조직, 내용 등을 경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란의 노른자는 껍질이 있기에, 그 가치가 보존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개인주의적 신앙생활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교회의 모임에 가입하여, 사명을 다하고, 아름다운 친교를 나눠야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신약의 의미
신약 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명칭은 ‘에클레시아’(Ekklesia)인데, 이는 ‘.....으로부터’라는 ‘에크’(εκ)와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클레시아’(κλησια)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아 모인 무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의 단체”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본문 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리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역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광주 지역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건물은, 그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입니다.
2. 교회의 명칭
1)하나님의 집
딤전 3:15에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고난과 슬픔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온갖 불안과 공포와 위협이 성도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면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고 노래했습니다. 집은 우리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며,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사탄의 온갖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게 됩니다. 또한 집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곳인 것처럼,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범죄로 인하여 상하고 찢긴 영혼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그리스도의 몸
엡 1:22에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머리는 전체를 대표하고 전체를 상징할 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머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꼬리를 잘린 파충류,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은 생존할 수 있지만, 머리를 상실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교회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엡 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했고, 고전 12:27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것입니다. 몸의 각 지체는 서로 동고동락합니다. 고전 12:26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들어도 온 몸이 아파합니다. 몸의 어떤 한 부분만 아파도 온 몸이 함께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육체에 있어서 한 지체의 기쁨과 슬픔이 전체의 몸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롬 12:15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고통을 모르는 체 하지 말 것이며, 형제의 영예를 시기하지 말고 같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성도들은 다투거나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버스 안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승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함께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이 얼마나 불편하였겠습니까? 어느 중년의 승객이 참다못해 다음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내리려고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던 그 승객은 버스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더니 다투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다툼의 장소로 인식된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 교회는 분쟁하는 교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에서의 큰 다툼은 작게 인식되지만, 교회에서의 작은 다툼은 세상에서 큰 다툼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작은 다툼이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다툼이 있는 곳에 화평을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3)그리스도의 신부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자신의 신부 또는 아내로 보셨습니다. 렘 2:2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라고 하셨고, 렘 3:20에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고 하셨으며,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교회와의 관계를 ‘혼인 잔치 비유’와 ‘열 처녀 비유’ 등을 통해서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가장 가까운 사랑의 관계를, 신부 또는 아내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교회가 주님만을 사모하고 사랑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부가 신랑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듯이, 교회가 주님의 신부라면 교회는 반드시 주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면, 성도들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름답게 단장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성도들이 아름답게 단장할 수 있습니까? 벧전 3:3-4에 “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어떤 면에서 천국 미장원과도 같습니다. 먼저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혼의 거울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허물과 죄악을 밝히 비춰줍니다. 그래서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추한 모습을, 성경 거울은 낱낱이 보여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악을 씻어내는 물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부가 머리를 아름답게 꾸미듯, 성도는 머릿속을 아름다운 생각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육신의 생각이 가득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지만, 신령한 생각을 품으면 평안이 오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는 눈을 아름답게 단장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 허탄한 것들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밝은 영안으로 하늘나라의 영광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눈이 어두워진 자는, 말씀의 안약을 사서 눈에 다시 발라야 합니다. 성도는 코를 단장해야 합니다. 육신의 코로 호흡을 하듯, 신령한 코로 성령의 생기를 호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코로 세속의 썩은 냄새를 구별하고, 신령한 향기 곧 기도로 호흡해야 합니다. 성도는 귀를 단장해야 합니다. 막혔던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세상의 소리에는 귀를 닫아야 합니다. 마귀의 속삭임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변할 줄 아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입을 단장해야 합니다. 입으로 썩어질 것을 마시지 말고, 더럽고 악한 말을 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손과 발을 단장해야 합니다. 두 손으로 선한 일을 하고 자비를 베풀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쁜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또한 자기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단장해야 하며, 착한 행실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신부의 기쁨은 신랑을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 되신 예수님은 그 속사람을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만을 반갑게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3. 교회의 사명
1)예배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삼위 하나님께 대한 예배입니다. 교회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성령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의 구경꾼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인처럼 예배의 실패자가 아니라, 아벨처럼 예배의 성공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성공 자가 되기만 하면, 우리의 영혼이 잘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 습관적 예배가 아니라, 최고의 것을 준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말씀 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까? 하나님이 지금 나의 찬송을 기쁘게 받으실까? 내가 드린 예물을 기쁘게 받으실까? 나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전도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라면, 전도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에는 얼굴 색깔이나 모습이나 민족이나 언어가 다른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많은 민족이 있습니다. 많은 언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둘입니다. 구원받은 ‘신자’가 있고,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할 일이 뭐냐? 건강한 교회가 할 일이 뭐냐?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에게 나가서 예수 복음을 전하고,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불신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신자는 사탄이야!” 불신자가 사탄입니까? “불신자는 마귀야!” 불신자가 마귀입니까? 예수님은 불신자를 뭐라고 말씀합니까? ‘잃어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눅 19: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리면 찾아요? 안 찾아요? 시간가는 것 따지지 않아요. 돈 드는 것 따지지 않아요. 힘 드는 것 따지지 않아요. 잃어버린 자녀를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찾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누가 가서 찾아드려야 합니까? 먼저 구원받은 우리가 가서 찾아드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은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관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3)교육
교회는 불신자에게는 전도를 하고 성도에게는 교육을 시키는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사도들은 그 명령에 따라 날마다 예수가 주님이심을 가르치고 또 전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예수님의 형상으로 자라게 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결코 사람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령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입술로만 교육시키신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제자들에게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대로,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교육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봉사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또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이웃을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어려운 성도들의 가정을 찾아가 김치도 담가주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는 귀한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마다 식당에서 봉사하고, 차량으로 봉사하고, 방송실에서 봉사하고, 주일학교와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회계 단에서, 선교부에서 봉사하고, 청소를 하고, 주보를 꽂고, 꽃꽂이로 봉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5)성도의 교제
성도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 중요합니다. 인류봉사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도들 상호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입니다. 전도가 열매 맺는 것이라면, 교제는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의 꽃을 피워야, 전도의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보여줄 때, 세상 사람들은 그 꽃향기에 이끌려 교회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암세포는 혼자 노는 세포라고 합니다. 우리 몸에 수백만, 수천만 개의 세포가 있는데, 모두가 몸을 위해서 함께 힘을 합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암세포가 몸에 생기면 혼자 논다고 합니다. 혼자 놀면서 세력을 확대하다가, 나중에는 악성 종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급기야는 몸을 망치게 만들고, 생명을 앗아 간다고 합니다. 혼자 노는 세포가 결국은 몸을 망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교제를 힘쓰지 않고, 혼자 놀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당이나 짓는 사람은, 어떤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사사로이 당을 짓지 말고, 공적으로 투명하고 아름답게 성도의 교제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